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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점] ‘적의 적은 친구’…‘동상이몽’ 중·러의 반미 결속으로 국제질서 요동친다

◆중·러 밀착 배경과 동북아 정세

아·태로 확장하는 나토 압박과 밀착 수위 높인 習·푸틴

중러, 뒤바뀐 역학관계·뿌리 깊은 불신에 속내 다르지만

美 대중 포위·우크라전쟁 지속에 전략적 결속 계속될 듯

북중러·한미일 진영 대결 고착에 동북아 안보 위기 고조


“러시아와 중국 관계는 역대 최고 수준에 도달했으며 더욱 더 강력해지고 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3월 20일자 중국 인민일보 기고문)

“어떤 통치 모델도 보편적이지 않으며 어느 한 나라가 국제 질서를 좌지우지해서는 안 된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3월 20일자 러시아 로시스카야 가제타 기고문)





러시아를 방문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지난달 21일 모스크바 크렘린궁에서 건배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냉전 정책의 설계자로 불리는 미국의 외교관 조지 케넌은 92세이던 1997년 1월 4일 일기에서 향후 국제 정세를 예견했다. 그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가 동유럽으로 세력을 키우면 모스크바가 동쪽의 이웃 나라, 특히 이란·중국과의 관계를 발전시켜 나토의 압박에 균형추가 될 반서방 군사 블록을 형성하려 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지난달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러시아 국빈 방문은 26년 전 케넌의 예측이 틀리지 않았음을 전 세계에 확인시켰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러시아를 찾은 시 주석과 함께 ‘중러 신시대 포괄적 전략 협력 동반자 관계 심화’를 선포하며 두 강대국의 ‘반미 연대’가 과거 어느 때보다 공고해졌음을 과시했다. 강준영 한국외대 중국학과 교수는 “지난해 6월 나토 정상회의는 중러 관계를 전례 없이 강화시키는 계기가 됐다”고 설명했다. 유럽 군사 협의체인 나토가 한국·일본·호주·뉴질랜드 정상을 초청한 자리에서 러시아를 ‘직접적 위협’, 중국을 ‘이익·안보·가치에 도전하는 세력’으로 각각 규정하며 아시아태평양까지 영향력을 확장한 것이 중러 관계를 한 단계 끌어올리는 분기점이 됐다는 것이다.

대미 공동 전선 위해 뭉친 왕년의 앙숙



냉전 시대에 줄곧 적대적으로 지냈던 중국과 러시아가 본격적인 밀월 관계에 돌입한 것은 러시아에서 푸틴 집권 3기가 시작되고 중국에서 시 주석이 취임할 때쯤이었다. 양국의 권위주의 성향이 강화된 2012~2013년 무렵이다. 2014년 나토의 동진을 빌미로 우크라이나 크림반도를 강제 병합한 러시아는 서방의 제재에 맞서기 위해 중국과의 거리를 한층 좁히기 시작했다. 중국도 도널드 트럼프에서 조 바이든 행정부로 이어진 미국의 포위 전략에 대항하려면 러시아와 손을 잡아야 했다.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은 서방의 견제와 적대적 시선을 받는 두 나라를 급속도로 밀착시켰다. 깊은 상호 불신에도 불구하고 현재 중국과 러시아에는 서로가 서구의 경제·군사적 압력에 대항해 공동전선을 펼 수 있는 유일한 강대국이다. 냉전 당시 소련을 공동의 적으로 둔 미중 화해의 동력이 된 ‘적의 적은 나의 친구’라는 외교 논리가 50년이 지난 지금에는 미국의 적대국이 된 중러 관계를 지배하고 있다.

국제형사재판소(ICC)의 전쟁범죄 기소로 국제적 ‘파리아(pariah·천민)’가 된 푸틴 대통령에게 중국은 피폐해진 러시아 경제를 뒷받침하고 국제사회에서 러시아의 위상을 지켜줄 수 있는 생명줄이다. 러시아 경제는 상당 부분 중국에 의존하고 있다. 지난해 러시아 전체 수출액의 약 20%를 중국이 차지했고 외환시장에서 달러화보다 위안화 거래가 더 많아질 정도였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서방의 승리로 끝나거나 푸틴이 몰락하는 것은 중국의 국익에도 부합하지 않는다. 카네기국제평화재단의 테무르 우마로프 연구원은 독일 방송 도이체벨레(DW)와의 인터뷰에서 “푸틴 정권이 무너지고 모스크바에 친서방 정부가 수립되는 것은 중국에 재앙적 시나리오”라고 말했다.

하지만 크렘린궁에서 나눈 두 정상의 악수가 얼마나 굳건한가에 대해서는 회의적 시각이 많다. 미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의 존 커비 전략소통조정관이 “애정이나 사랑이 아닌 정략결혼”에 비유한 중러 파트너십의 약한 고리에 국제사회는 주목하고 있다. 러시아를 중국의 ‘운명공동체’로 규정한 시 주석은 우크라이나 문제에서 대(對)러시아 군사 지원 방안에 대해 선을 긋고 있다. 미국 외교 매체 포린폴리시(FP)는 “중국은 러시아가 전쟁에서 패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며 “그러나 베이징이 잔인한 침략의 공범으로 보이는 것도 원하지 않는다”고 분석했다. 김재천 서강대 국제정치학 교수도 “중국은 미국보다 뒤처져 있는 경제를 발전시켜야 하므로 우크라이나 사태에 깊이 연루되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며 “러시아와의 입장 차이가 분명히 있다”고 진단했다.

다급한 러시아 곁에서 이익 챙기는 中





사실 이번 러시아 방문에서 시 주석은 내준 것 없이 푸틴 대통령의 곁에 선 것만으로 적잖은 경제적 이익을 챙겼다. 3월 정상회담에서 두 정상이 서명한 14개 경제 협력 협정에는 러시아의 위안화 결제 확대, 북극해 항로에서의 협력, 과학기술 공유 등 중국에 유리한 내용들이 대거 포함됐다. 러시아가 중국으로의 천연가스 수출 확대를 위해 추진한 ‘시베리아의 힘 2’ 가스관 건설 사업에 중국은 끝내 합의하지 않았다. 유럽정책분석센터(CEPA)의 러시아 전문가 샘 그린은 미국 라디오방송 NPR에서 “푸틴은 크렘린을 베이징에 저당 잡혔다”고 지적했다.

기울어진 양국 협정은 러시아가 중국의 ‘하위 파트너’로 전락한 역학 관계의 변화를 반영하고 있다. 냉전 초기에 소련의 원조를 받던 중국은 이제 약하고 고립된 러시아의 ‘형님’ 지위를 차지하게 됐다. 문제는 힘의 불균형이 초래한 일방적 관계가 양국 간의 새로운 갈등과 경계의 소지가 될 수 있다는 점이다.

두 강국이 ‘모든 핵보유국은 국외에 핵을 배치해서는 안 된다’는 공동성명을 발표한 지 나흘 만에 푸틴 대통령이 벨라루스에 전술핵 배치 계획을 밝힌 것은 양국 관계가 겉보기만큼 굳건한 것은 아니라는 관측에 불을 붙였다. 시 주석은 이번 방문을 통해 냉전식 이분법에 골몰하는 미국과 차별화되는 ‘평화 중재자’ 이미지를 구축해 개발도상국, 이른바 ‘글로벌 사우스(global south)’에 대한 영향력을 키우려 했다. 시 주석이 러시아를 떠나기 무섭게 핵 위협 수위를 높인 푸틴 대통령의 행동은 시 주석의 노림수에 찬물을 끼얹는 것이었다.

19세기 청나라와 러시아의 불평등조약, 1960년대 중소 이념 분쟁과 국경 전쟁 등 숱한 갈등을 겪으며 100년 넘게 두 나라 역사에 깊이 뿌리내린 상호 불신과 견제는 여전히 사라지지 않고 있다. 강 교수는 “중국과 러시아가 미국에 대항하느라 연합하고 있지만 동상이몽 상태”라며 “지금의 공감대가 끝까지 가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관측했다. 강 교수는 이어 “미국과의 관계가 끊어져도 자원으로 먹고살 수 있는 러시아와 달리 이미 미국 중심의 글로벌 밸류체인에 들어가 있는 중국이 미국과 완전히 디커플링되기는 어렵다”고 지적했다.

블록화·다극화하는 세계…美 부담은 커져



다만 미국의 대중국 압박과 우크라이나 전쟁이 지속되는 한 중러가 전략적 결속을 깨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영국의 경제 매체 이코노미스트는 2차 세계대전 이후 국제 정치의 큰 틀을 형성한 미국·중국·러시아 사이의 ‘전략적 삼각형’이 새로운 양상을 나타내고 있다고 분석했다. 중국의 마오쩌둥과 옛 소련 이오시프 스탈린의 협력은 냉전 시대의 막을 열고 옛 소련 니키타 후르쇼프와 마오의 분열은 데탕트 시대를 열어 냉전 종식을 가져왔다. 최근 미국에 도전하는 중러 연합은 세계를 블록화·다극화함으로써 기존의 국제 질서를 유지하려는 미국에 이미 적잖은 부담을 안기고 있다.

우선 러시아를 고사시켜 우크라이나 전쟁을 종식시키려던 미국의 전략은 중국을 필두로 대러시아 제재에서 이탈한 국가들로 인해 차질을 빚고 있다. 중국의 직접적인 무기 지원 없이도 중국의 경제적 도움과 군수 물품 제공 덕에 러시아는 장기전을 버틸 시간과 힘을 비축하고 있다. 향후 대미 갈등 수위에 따라서는 중국이 러시아에 대한 지원 수준을 더 끌어올릴 수도 있다. 미국 아메리칸대의 중러 관계 전문가 조지프 토리지언은 “미중 관계가 계속 악화한다면 중국은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러시아를 돕기 위해 훨씬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중국의 팽창주의는 갈수록 강력해질 것으로 전망된다. 독일 소재 메르카토르중국학연구소(MERICS)에 따르면 러시아는 지금껏 아시아에서 현상 유지 외교정책을 펴며 인도·베트남 등과 우호적 관계를 유지해왔지만 앞으로는 남중국해 등 영유권 분쟁 지역에서 중국 편에 서야 할 수도 있다. 이는 곧 아시아 지정학의 지각 변동과 긴장 고조를 의미한다. 러시아를 손에 넣은 중국이 중동·아프리카·중남미 등지의 중립적 개도국들까지 포섭해 미국 주도의 국제 질서를 거부하는 거대한 블록을 형성할 가능성도 있다. 이 경우 미국의 ‘패권 국가’ 위상은 치명타를 입을 수도 있다.

동아시아의 지정학은 특히 위태로워졌다. 일각에서는 중국이 러시아와의 안보 협력을 대만 무력 통일의 지렛대로 삼거나 중국과 러시아가 핵 협력을 본격화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권위주의 진영의 일원으로서 중러 밀월에 편승한 북한의 행보도 주목된다. 김 교수는 “중러 밀착으로 수정주의 국가인 북중러와 자유주의 가치를 공유하는 한미일 3국의 진영 대립이 고착되면서 동북아 안보 위기가 고조되고 있다”며 “이 구도에서 전략적 가치가 높아진 북한이 도발을 시도할 가능성이 커지게 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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