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시에서 빚을 내 투자하는 신용융자 잔액이 최근 증가세를 지속하다 20조 원마저 돌파한 것은 개인투자자들이 일부 상승률이 높은 테마주에 베팅을 늘렸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실제 올 들어 증가한 ‘빚투’ 규모는 3조 8000억 원 정도인데 개인투자자들이 많고 테마주가 집중된 코스닥에서 70%가량인 2조 7000억 원이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전문가들은 최근 코스닥지수가 하락세를 보이는데 조정이 본격화할 경우 담보 부족에 몰리는 ‘빚투족’이 대거 양산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21일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신용거래융자 잔액은 20일 기준 20조 2863억 원으로 집계됐다. 19일 빚투가 20조 1369억 원으로 10개월여 만에 처음 20조 원을 넘겼지만 하루 만에 또 1500억 원가량 증가할 만큼 위험한 투자 행태가 지속되고 있는 것이다.
특히 빚투는 지난해 말(16조 5186억 원)에 비해 3조 8000억 원 가까이 증가했는데 코스피보다 시가총액 규모가 5분의 1에 불과한 코스닥에서 2조 7000억 원이 늘며 기승을 부리고 있다. 코스닥의 신용융자 잔액은 10조 4618억 원으로 9조 8245억 원을 기록한 코스피보다 많은 실정이다.
아울러 이틀짜리 단기로 돈을 빌려 투자하는 ‘미수거래’ 규모 역시 증가했다. 4월 들어 하루 평균 미수거래액은 2129억 원으로 1월(1730억 원) 대비 23%나 늘었다.
빚투 열기가 뜨거운 것은 최근 코스닥에서 2차전지 등 특정 종목들에 급등세가 집중되면서다. 올 들어 코스닥에서는 2차전지와 로봇, 인공지능(AI) 등 테마 업종이 크게 올라 최근 하락 종목 수가 상승 종목 수보다 많은 날에도 지수가 오르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증권사들이 금융 당국의 주문에 발맞춰 지난달 일제히 신용융자 금리를 내린 것도 빚투 증가에 한몫하는 측면이 있다. 지난해 말까지만 해도 연 10%에 달했던 증권사들의 신용융자 금리는 최근 단기 기준 3~5%대까지 떨어졌다.
일부 폭등 종목들을 보면서 “나만 소외될 수 없다”는 개인들의 ‘포모증후군(Fear of Missing Out·FOMO)’이 암호화폐 광풍 이후 재등장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김용구 삼성증권 수석연구원은 “미래 성장 테마들이 시장에서 득세하는 과정에서 포모와 같은 심리적인 요인이 빚투 증가에 한몫하고 있다”고 말했다.
빚투가 급증하자 대형 증권사도 주식·채권 등을 담보로 돈을 빌려주는 증권담보대출을 일시 중단하고 있다. 증권사들은 통상 신용거래융자와 증권담보대출 등을 자기자본의 100%까지만 할 수 있는데 빚투 증가로 한도가 거의 찼기 때문이다. 한국투자증권은 이날부터 증권담보대출을 일시 중단하고 영업점 창구와 모든 온라인 플랫폼에서 신용융자 신규 매수 주문을 막았다. 키움증권도 이날부터 신용융자 대용 비율 조정에 들어갔다. 보증금률에 따라 40∼55%였던 대용 비율은 30∼40%로 내리고 현금 비중은 5%에서 15%로 올렸다.
최근 증시가 조정 국면에 진입할 조짐에 빚투에 대한 경고음은 커지게 됐다. 신용거래융자로 주식을 샀을 경우 최악의 상황인 ‘반대매매’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증권사가 투자자가 돈을 빌려 산 주식을 시장가(일반적으로 거래되는 금액보다 약간 낮은 금액)로 팔아버리고 빌려줬던 돈을 회수하는 것이다. 청산되는 물량 자체도 지수에 부담일 뿐 아니라 담보 비율을 채우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다른 주식을 파는 ‘악순환’까지 이어지며 증시 수급을 옥죌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 수석연구원은 “최근 공매도 물량도 늘고 있는데 시장 상황이 악화되면 매도가 매도를 부르는 악순환이 이어질 수 있다”면서 “종목 펀더멘털(기초체력)을 잘 보고 투자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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