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와 자치구들이 민선 8기 1년을 맞은 가운데 초선 구청장들 사이에서 인사권에 대한 불만이 증폭되고 있다. 서울시가 기술직 공무원 인사권을 20년 넘게 틀어쥐면서 구청장 인사 권한이 반쪽짜리로 전락했다는 비판이다. 특히 지난해 서울 25개 구청 가운데 18곳에서 새로운 구청장이 취임하면서 이 같은 관례에 대한 개선 목소리가 나온다. 구청장들은 2년 차에 접어들면서 개발·방재·보건 등 주민 관심이 큰 역점 사업을 추진하고 싶지만 사업과 관련된 기술직 인사를 직접 할 수 없어 애로 사항이 많다는 입장이다.
7일 각 서울 자치구에 따르면 구청장들 사이에서 서울시의 기술직 공무원 인사권을 구청에 넘겨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현재 행정·세무·사회복지 등 행정직 인사는 구청이 직접 하는 반면 토목·기계·조경·환경 등 기술직 인사는 서울시가 일괄적으로 한다. 지난해 말 기준 자치구를 포함한 서울 공무원 수는 행정직이 2만 9129명, 기술직은 1만 3855명이다.
잠잠하던 인사 문제가 최근 다시 불거진 것은 서울 구청장 70%가 ‘초선’이기 때문이다. 지난해 6·1 지방선거에서 서울 25개 자치구 가운데 18곳에서 초선 구청장이 탄생했다. 재선 이상은 이미 수년 전부터 인사 시스템을 경험했지만 갓 1년이 지난 초선들은 인사권자가 자신의 조직 인사를 제한적으로만 할 수 있다는 점을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다. 한 초선 구청장은 “지난해 7월 첫 출근 후 기술직 인사권은 서울시에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황당했다”며 “직원이 구청장이 아닌 서울시 눈치를 보니 구정에 어려움이 있다”고 토로했다.
서울시는 1999년 7월부터 25개 자치구의 기술직 인사를 일괄 담당해왔다. 당시 ‘시장·군수·구청장과 시도 협의로 기술 직렬 공무원 승진 후보자 명부를 통합해 작성할 수 있다’는 지방공무원법에 근거해 시가 기술직 승진·전보 인사를 통합해 실시한다는 합의가 이뤄졌다. 자치구가 인사에 관여하려면 서울시와 사전에 협의해야 한다.
당초 통합 인사가 시작된 배경은 24년 전에는 구정이 행정 업무 중심이었던 데다 기술직 공무원이 숫자나 승진에서 불리했기 때문이다. 근무평정이 이뤄지려면 후보자 5명이 있어야 하고 승진을 위해서는 결원이 생겨야 하는데 소수 직렬에서는 이러한 여건을 갖추기가 어려워 통합 인사가 낫다는 이유도 있었다.
구청장들은 사회 분위기가 많이 달라졌는데도 여전히 서울시가 인사권을 쥐고 있는 것은 문제라는 입장이다. 개발, 방재, 보건, 동물 복지, 환경 등이 주민들의 주요 관심사가 되면서 기술직이 중요해졌고 기술직 우대 분위기로 직렬 간 승진 속도도 비슷해졌는데 행정 편의만 생각한다는 것이다. 서울 자치구 공무원이 7급에서 6급으로 승진할 때 걸리는 기간(2020~2022년 평균치)은 기술직이 8년 3개월 9일, 행정직은 8년 7개월 14일이다.
구청과의 협의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는 불만도 크다. 2018년 말 터진 시와 서초구 간 인사 갈등이 대표적이다. 당시 서초구가 4급 기술직 자리에 행정직 직원을 배치하려 하자 시는 1년간 서초구를 통합 인사에서 제외시켰고 조은희 서초구청장(현 국민의힘 의원)은 시가 구청 의견을 반영하지 않는다며 반발했다.
기초 지방자치단체 권한을 강화하도록 정책 기조가 바뀌는 만큼 지방공무원 인사 제도 개편도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인천의 경우 시가 기술직 통합 인사를 하다 구청장의 요청으로 최근에는 구청이 직접 인사를 하고 있다. 서울의 한 구청장은 “결원이 생기면 구청이 알아서 인사를 하겠다고 시에 건의를 하면 그때마다 그러겠다고 해놓고는 안 한다”며 “앞으로 구청장협의회 조직을 키우고 그런 문제들을 해결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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