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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상 가장 위대했던 5가지 퍼터…캘러미티 제인부터 투볼까지

디자인 변혁 이끌면서 공전의 히트 기록

그랜드슬램과 메이저최다승 등 신화창조

2018년 PGA 투어 시즌 최종인 투어 챔피언십 우승 후 ‘캘러미티 제인’ 트로피를 들고 있는 타이거 우즈. 캘러미티 제인은 골프 성인으로 불린 보비 존스가 사용하던 퍼터다. Getty Images




드라이버가 장타의 쾌감을 알려주는 클럽이라면 퍼터는 실속을 챙겨주는 클럽이다. 18홀 동안 퍼터를 사용하는 빈도는 대략 25~40회나 된다. 한 홀이나 한 라운드를 마무리하는 것도 언제나 퍼터다. 퍼터는 그만큼 소중하다. ‘골프 황제’ 타이거 우즈의 아들 찰리가 아빠의 14개 클럽 중 마음대로 만지지 못하는 유일한 채가 퍼터라는 말도 있다.

다른 클럽과 마찬가지로 퍼터도 그동안 다양한 디자인의 변화를 겪어왔고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모델이 출시됐다. 그 중에서도 역사적으로 중요한 변혁을 이끌면서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5가지 퍼터를 소개한다.

캘러미티 제인으로 퍼팅을 하고 있는 보비 존스. 그는 그랜드슬램을 포함해 메이저 13승을 모두 이 퍼터로 했다. Getty Images


보비 존스의 그랜드슬램 도운 캘러미티 제인

캘러미티 제인(Calamity Jane)은 골프 성인으로 추앙받는 보비 존스가 사용했던 퍼터다. 평생 아마추어 신분을 유지한 존스는 1930년에는 4대 메이저 대회를 모두 제패하며 골프 역사상 유일무이한 그랜드 슬램을 달성한 인물이다.

존스는 1923년 US 오픈 우승을 시작으로 1930년 US 아마추어챔피언십 제패를 끝으로 28세에 은퇴할 때까지 메이저 13승을 달성했다. 이 모든 우승을 함께한 퍼터가 캘러미티 제인이다. 약간의 오프셋이 있고 블레이드 헤드 형태에 히코리 샤프트를 장착한 캘러미티 제인은 스코틀랜드의 로버트 콘디라는 인물이 제작했다. 당초 윌리엄 윈턴이라는 영국 런던의 골프클럽 판매상이 이 퍼터의 주인이었지만 나중에 짐 메이든이라는 스코틀랜드 골퍼 손에 들어갔다. 메이든은 1920년 평소 친분이 있던 존스가 퍼팅에 대한 불만을 토로하자 이 퍼터를 사용해 보라고 권했다.

존스는 캘러미티 제인을 한 번 사용해 본 뒤 그 느낌에 반했다. 이 퍼터에 캘러미티 제인이라는 이름을 붙인 건 메이든이다. 캘러미티 제인은 1800년대 후반 미국에서 활동했던 프런티어 우먼 마사 제인 캐너리(Martha Jane Cannary)의 별명이다. 존스는 은퇴한 뒤 골프클럽 제조사인 스팔딩의 컨설턴트로 활약했는데 스팔딩은 1932년부터 1973년까지 캘러미티 제인 이름이 붙은 수많은 퍼터를 생산했다. 엄청난 숫자의 캘러미티 제인이 팔려나가고 많은 우승의 순간과 함께했지만 보비 존스 외에 누구도 이 퍼터로 메이저 우승을 달성하지는 못했다. 미국프로골프(PGA) 투어 시즌 최종전인 투어 챔피언십 우승자에게는 캘러미티 제인 트로피가 주어진다. 투어 챔피언십이 열리는 이스트레이크 골프클럽은 보비 존스의 홈코스였다.

1950~1960년대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불스 아이 퍼터. 센터 샤프트 디자인을 적용해 관성모멘트 성능이 뛰어났다. Getty Images


시계추 개념의 센터 샤프트 적용한 ‘불스 아이’

흔히 퍼팅 스트로크는 시계추처럼 진자 운동을 해야 한다고 말한다. 1940년대 미국의 티칭 프로였던 존 로이터도 이 개념을 생각했다. 로이터는 새로운 퍼터 개발에 매달린 끝에 첫 번째 모델인 스위트 스트로커스(The Sweet Strokers)를 만들었고 이후 이를 개조한 불스 아이(Bulls Eye)를 내놨다.

당시 대부분의 퍼터는 샤프트를 힐 쪽에 꽂았는데 불스 아이는 거의 헤드 중앙에 샤프트를 장착한 센터 샤프트 형태였다.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이 디자인 덕분에 불스 아이는 빗맞은 타구에 대한 관성모멘트가 뛰어났다. 또한 부드러운 황동으로 만든 페이스는 임팩트 순간 느낌과 피드백이 뛰어났다.

1949년 불스 아이 퍼터를 본격적으로 시장에 내놓은 뒤 1951년 루 워스햄이 피닉스 오픈에서 이 퍼터로 우승하자 불스 아이도 덩달아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1958년 로이터는 아쿠쉬네트와 협업해 불스 아이를 대량으로 생산하기 시작했다. 1960년대 초반에는 투어 선수 4명 중 한 명이 불스 아이를 사용했을 만큼 큰 인기를 끌었고 오랫동안 사랑을 받았다. 최초의 왼손잡이 메이저 우승자인 밥 찰스, PGA 투어 통산 19승의 톰 카이트, 통산 15승의 코리 페이빈 등이 이 퍼터를 애용한 대표적인 선수였다.

핑의 창립자 카르스텐 솔하임이 투어 우승자가 사용한 퍼터와 똑같은 복제품을 금으로 만들어 보관하는 골드 퍼터실에서 앤서 퍼터를 들고 있다. 사진 제공=핑




전 세계 주요 투어 500승 이상 거둔 ‘핑 앤서’

핑의 창립자 카르스텐 솔하임이 개발한 앤서(Anser)만큼 성공을 거둔 퍼터가 또 있을까. 앤서 퍼터는 핑 제국의 탄생을 알린 제품이다. 그동안 전 세계 주요 투어에서 거둔 우승이 500승을 넘는다.

핑 앤서가 1966년 처음 출시됐을 때만 해도 시장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하지만 이듬해 줄리어스 보로스가 피닉스 오픈에서 앤서로 우승하면서부터 선수들 사이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그러자 솔하임도 GE를 그만두고 가족회사인 핑을 설립했다.

앤서는 현대 퍼터의 시초이기도 하다. 헤드 뒤를 파낸 캐비티백과 그 잉여 무게를 주변에 재배치하는 페리미터 웨이팅, 낮은 무게중심 등 여전히 현대 퍼터에 적용되고 있는 기술이 앤서 퍼터에서 비롯됐다. 1980년대 앤서 퍼터에 대한 디자인이 만료되자 수많은 아류 제품이 쏟아져 나왔다. 타이거 우즈가 사용하는 스코티 카메론 뉴포트2의 원형도 앤서다.

1986년 마스터스 최종 라운드 17번 홀에서 버디 퍼트를 성공한 뒤 퍼터를 들어올리며 기뻐하고 있는 잭 니클라우스. Getty Images


니클라우스의 메이저 최다승 이룬 ‘맥그리거 리스폰스’

마스터스 역대 최고의 명장면 중 하나는 1986년 잭 니클라우스가 우승할 당시 4라운드 17번 홀에서 보여준 버디 퍼트다. 퍼트를 성공한 니클라우스는 왼손으로 맥그리거 리스폰스(Response) ZT 퍼터를 한껏 치켜 올리며 기뻐했는데 이 장면은 저조하던 퍼터 판매를 단숨에 반등시키는 역할을 됐다.

당시 니클라우스는 46세로 모두 그의 전성기는 끝났다고 말할 때였다. 실제로 1984년 이후 우승이 없었다. 하지만 니클라우스는 1986년 마스터스 최종일 65타를 치며 그레그 노먼과 톰 카이트를 1타 차로 따돌리고 메이저 18승째를 달성했다. 특히 후반에만 6차례의 1퍼트를 선보일 정도로 신들린 퍼팅감을 자랑했다.

클레이 롱이 개발한 리스폰스 ZT는 커다란 알루미늄 헤드에 캐비티백 디자인을 하고 있었다. ZT는 제로 트위스트(Zero Twist)의 약자로 그만큼 안정감이 뛰어났다. 하지만 커다란 헤드 탓에 인기를 끌지 못했다. 그러다 니클라우스의 마스터스 제패 이후 유명해지면서 약 35만 개나 팔려 나갔다.

실제 크기와 똑같은 크기의 2개 볼이 그려져 직관적인 정렬을 할 수 있게 한 오디세이 투 볼 퍼터. Getty Images


500만개 이상 판매오디세이 신화 창조한 ‘투 볼’

퍼터에서 중요한 건 정확한 정렬과 필링이다. 2001년 출시된 캘러웨이 오디세이 투볼(Two Ball)은 가히 혁명이었다. 헤드 뒤에 실제 볼과 똑같은 크기의 2개의 볼이 그려져 있는 디자인은 직관적인 정렬을 가능하게 만들었다. 뒤쪽에 더 많은 무게를 둬 볼이 초기에 미끄러지는 스키드 현상도 획기적으로 줄였다. 페이스의 인서트는 부드럽고 확실한 타구감을 줬다.

투볼 퍼터는 시장에 나오자마자 선수와 대중 모두에게 큰 관심을 끌었다. 2002년과 2003년 사이 4개의 퍼터가 팔릴 때마다 그 중 1개는 투볼 퍼터였을 정도다. 단순한 인기를 넘어 말렛 퍼터의 대중화라는 하나의 현상으로 이어졌다. ‘영원한 골프 여제’ 안니카 소렌스탐 역시 전성기 시절 투볼 퍼터를 애용했다. 레슨 프로 신분으로 올해 5월 메이저 대회인 PGA 챔피언십에서 좋은 성적을 거둬 ‘벼락 스타’가 된 마이클 블록은 여전히 투볼 퍼터를 사용 중이다.

투볼 퍼터가 출시된 지 20년이 넘었고 그동안 다양한 버전이 나왔지만, 여전히 그 기본 개념은 사라지지 않으면서 다양한 변주를 하고 있다. 그동안 판매된 투볼 퍼터는 500만 개가 넘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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