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정부가 삼성전자(005930) 등 국내 반도체 기업에 약속한 투자 보조금의 집행 결정이 지연되거나 축소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삼성전자는 신속한 지원금 지원을 요청하는 행사를 미국 현지에서 개최하며 미국 정부를 우회적으로 압박하고 있지만 미국 역시 내년 대선을 앞두고 있어 반도체 보조금이 정치 문제로 번질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4일 재계와 반도체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 미국 법인은 지난달 미 워싱턴DC에서 여야 상·하원의원을 초청해 반도체 산업의 영향을 분석하는 리셉션을 열었다. 행사에는 민주당 소속의 마크 켈리 상원의원과 마이클 매콜(공화당), 라자 크리슈나무르티(민주당) 하원의원이 참석했다. 삼성전자 미국 법인은 “삼성 반도체는 30여 년에 걸쳐 470억 달러에 달하는 투자를 집행했다. 삼성이 반도체지원법 결정에 앞서 투자를 결정한 것은 미 의회와 행정부에 대한 신뢰 때문”이라고 강조한 것으로 전해졌다. 미국 정부가 약속한 보조금을 적기에 지급해달라고 촉구한 셈이다.
미국 정부는 반도체지원법을 도입하면서 미국에 반도체 공장을 짓는 기업들에 총 527억 달러(약 69조 원)의 보조금을 주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지난달 초 “미국 정부가 군사용 반도체 생산을 위해 인텔에 최대 40억 달러의 보조금을 선지급할 것”이라는 보도가 나오면서 분위기가 급반전됐다. 보조금을 신청한 반도체 기업이 130여 곳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미국 기업 우선’으로 정책 방향을 바꾸면 보조금 규모가 줄거나 지급 시기가 뒤로 밀려날 수 있기 때문이다.
국내에 법인을 둔 글로벌 반도체 장비 업체의 한 고위 관계자는 “미국 정부가 삼성에 대한 보조금 지급을 미루고 있다는 이야기가 업계에 확산하고 있다”며 “삼성의 미국 텍사스 테일러 공장 공사에도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삼성전자 등 국내 기업들의 반도체 사업 전략에도 차질을 빚을 수 있다. 삼성전자는 텍사스 테일러의 파운드리 공장(250억 달러)을 비롯해 테일러와 오스틴에 총 2171억 달러를 투자하겠다는 계획을 밝힌 바 있다. 주대영 한국반도체디스플레이기술학회 연구위원은 “선거철을 앞둔 상황에서 미국 기업을 먼저 챙긴다는 정치적 의도가 고려될 수도 있다”며 “인텔이 TSMC나 삼성전자에 비해 파운드리 첨단 기술력이 부족한 만큼 ‘떡 하나 더 주는’ 식의 지원 확대가 이뤄질 수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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