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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재무지표도 공시…쪼개기 상장땐 모회사 주주보호책 내놔야 [자본시장 밸류업, 머니 대이동]

<상>첫 단추 끼운 밸류업-옥석 가리기 시험대

대주주 소유 비상장사 정보 공시

내부거래 꼼수 이전 '터널링' 차단

장기 가치제고 관련 정보도 요구

예측정보는 면책조항…부담 없어

"확실한 인센티브·페널티도 필요"

김소영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이 2일 오후 서울 여의도 한국거래소에서 열린 기업 밸류업 지원방안 2차 세미나에서 축사하고 있다. 사진 제공=금융위원회






금융 당국이 2일 발표한 밸류업 공시 가이드라인에 이른바 ‘쪼개기 상장’ 등 비재무제표 관련 내용까지 담도록 한 것은 기업 지배구조 문제가 코리아 디스카운트 주요 요인 중 하나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2022년 LG화학이 알짜 배터리 사업부를 물적 분할해 LG에너지솔루션을 상장한 것이나 카카오가 카카오뱅크·카카오페이 등을 줄줄이 상장한 사례 등은 지배구조 문제로 한국 증시가 저평가를 받은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정부도 다양한 지배구조 이슈 중에서도 모·자회사 중복 상장 문제를 콕 짚었다. LG에너지솔루션 사례처럼 성장성 높은 사업 부문을 물적 분할해 자회사를 상장할 경우 모회사 일반 주주 권익을 보호·증진할 수 있는 방안을 내놓을 것을 제안했다. 그렇지 않으면 분할 자회사를 비상장 완전 자회사로 유지하겠다는 계획을 투자자들에게 설명할 필요성이 있다는 것이다. 지배주주나 특수관계인이 비상장 개인 회사를 통해 상장사 이익을 이전하는 ‘터널링’과 관련해 정확한 사실관계나 향후 계획 등도 투자자에게 설명하는 게 필요하다고 정부는 짚었다.

이날 발표된 밸류업 가이드라인의 가장 큰 특징은 이런 비재무적 정보와 함께 미래 지향적인 사안을 공시 대상으로 요구하고 있다는 점이다. 재무 정보는 과거 실적에 대한 정보인 만큼 기업가치를 정확하게 평가하려면 기업이 중장기적인 목표를 제시하고 계획 수립과 이행하는 과정을 살펴보는 것이 중요하다. 거래소 공시 규정에도 이미 예측 정보와 관련한 면책 규정이 마련돼 있는 만큼 기업 부담도 크지 않다는 설명이다. 정부는 목표 변경이 불가피하다면 정정 공시도 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앨릭스 에드먼스 런던비즈니스스쿨 교수는 이날 자본시장연구원과의 대담에서 밸류업에 대해 “기업이 투명하지 않아 정보가 없으면 불확실성으로 가치가 저평가될 수 있다”며 “기업이 장기적인 가치 제고 계획을 공시하고 원하는 투자자들에게 실적 이상 정보를 제공하는 것은 바람직한 방향”이라고 말했다.



관건은 기업들이 자율적인 밸류업 공시에 얼마나 적극적이고 빠르게 호응할 것인지다. 이번 가이드라인은 공시 참여는 물론이고 작성 내용까지 모두 기업 자율이다. 일본은 지난해 3월부터 자율적인 공시를 유도했으나 지난해 말까지 상장사의 26% 정도만 참여했다. 공시 기업 수가 늘어나면서 올해 3월 말 기준 45%로 늘었으나 공시가 정착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정부는 이달 중 가이드라인을 확정하고 준비되는 기업부터 공시에 나설 것으로 기대하고 있으나 아직 구체적인 일정은 확실하지 않다. 기업들이 관심을 보이고 있지만 아무리 빨라도 2~3개월이 걸릴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몇몇 대기업이 앞장서야 다른 기업들도 조금씩 참여할 가능성이 크다.



일단 정부는 밸류업 자체가 긴 호흡으로 꾸준하게 추진하는 과제인 만큼 서두르지 않겠다는 방침이다. 이날 박민우 금융위 자본시장국장은 “급하게 공시하는 것보다 자율적으로 제대로 계획을 수립해 제대로 공시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진정성 있는 공시가 좋은 시장 평가를 받고 투자로 이어지는 등 선례가 나와야 한다”고 말했다.

다만 투자자가 비교해야 할 지표가 많아 판단할 수 있는 기준이 모호하다는 우려도 적지 않다. 가령 숫자로 비교할 수 있는 재무지표 항목에서도 주가순자산비율(PBR)·주가수익비율(PER) 등 시장 평가 지표, 자기자본이익률(ROE) 등 자본 효율성 지표, 배당 및 자사주 소각 등 주주 환원 지표 가운데 어떤 지표를 내세울지도 기업 자율이다. 적자 기업일 경우 영업이익이 마이너스라 PBR이나 PER 등을 입력할 수 없는데 이 경우 매출·이익 증가율 중심으로 작성할 수 있다. 그만큼 기업 자율에 무게를 둔 것이지만 투자자에 혼선을 초래할 여지도 있다.

이 때문에 자율성도 좋지만 확실한 페널티와 인센티브가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오랫동안 저평가된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해소하고 국내 투자자들이 투자를 늘리려면 결국 세제 등 확실한 인센티브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당국은 구체적인 검토가 마무리되는 대로 세제 지원 방안을 발표한다는 계획이다.

이준서 한국증권학회장(동국대 경영학과 교수)은 “배당 등 세제 관련 내용 없이는 시장에 미치는 영향이 크지 않겠지만 당국의 밸류업 의지를 재확인했다는 데 의미가 있다”며 “자율성에 기반을 둔 밸류업과 별개로 상장 요건 등을 강화해 좀비 상장사에 대한 퇴출이 이뤄져야 훨씬 효과적인 대책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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