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장 입구에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보호구 착용 안내 표시가 생긴 후부터는 외국인 근로자들이 스스로 안전 장비를 챙깁니다.(이샘물 리오기업 대표)”
부산 명지녹산국가산업단지에 위치한 리오기업은 해양 플랜트·중장비·특장차 등의 외관 특수 도장에 특화된 기업이다. 기업 규모는 영세한 편이다. 지난해 기준 매출은 36억 원, 근로자 수는 15명에 불과하다. 게다가 모든 생산직이 인도네시아·미얀마·동티모르 등지에서 온 외국인 근로자로 구성돼 있다. 다시 말해 이들이 사용하는 언어가 제각각이다. 이 때문에 단순 업무 지시는 간단한 한국어로 할 수 있지만 정부의 법규나 정책 등을 등을 상세히 설명하는 건 이 대표에게 굉장히 힘든 일이다. 2021년부터 단계적 확대 시행이 예고됐던 중대재해처벌법(중대법) 역시 마찬가지였다. 골머리를 앓던 이 대표의 숨통을 틔어준 건 안전 서비스 디자인이었다. 이 대표는 지난 해 한국디자인진흥원의 ‘안전 서비스 디자인 사업’에 지원했고, 사업 대상으로 선정됐다.
이후 리오기업은 어떻게 변했을까. 디자인 컨설턴트와 외국인 근로자, 관리자가 함께 수차례 컨설팅을 진행한 결과 리오기업의 핵심 문제는 역시나 ‘외국인 근로자가 인식하기 어려운 안전 사인’이라는 데 의견이 모였다. 이 대표는 사실 중대법 적용 대상이 아니었던 2021년부터 이미 안전 수칙, 보호구 착용 표시 등을 공장에 붙여었다. 하지만 모든 내용이 한국어인데다 직관적이지 않아 외국인 근로자들이 이해하기 어려웠다. 이 대표는 “사업장 안전 유지를 위해 다양한 안내물을 설치했지만 내용이 복잡해 오히려 직원들이 혼란스러워 해 이해도가 떨어지는 역효과가 일어났다”고 설명했다.
리오기업의 안전 디자인 개발을 담당한 디자인 기업 마코의 관계자는 “국내에 외국인 근로자가 많음에도 불구하고 이들을 위한 안전 사인과 관련한 정부 지침은 없다”며 “한국어와 영어 병기 표현 가이드라인만 있는 수준”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픽토그램의 경우 한국과 외국에서 쓰는 양식이 다르다”며 “노랑 등 특정 색이 가지고 있는 의미도 차이가 있어 공통 분모를 찾기 쉽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리오기업은 다양한 국적의 근로자들이 공통으로 이해 가능한 이미지와 색감을 찾아냈다. 그 결과 근로자들의 행동에 변화가 생겼다. 자발적으로 보호경·헬멧 등을 착용하게 된 것이다.
리오기업은 내친 김에 안전 디자인 뿐만 아니라 색을 통한 기업 브랜딩도 진행했다. 이를 위해 보라와 주황 등 제조업에서 많이 사용하지 않는 색을 사용해 리오기업 만의 차별화된 이미지를 구축했다. 사업장에서 착용해야 하는 헬멧과 안전 표어 안내판 등을 주황색으로 제작해 소속감과 통일감을 높였다.
전문가들은 리오기업에 적용된 안전 디자인이 외국인 근로자들에게 의지하고 있는 국내 상당수 중소 제조업체들에게 모범 사례가 될 수 있다고 말한다. 실제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올 1분기 기준 전국 외국인 근로자(E-9) 26만 47명 가운데 80% 수준인 20만 9670명이 제조업에 종사하고 있다.언어와 관계없이 직관적 소통을 가능케 하는 안전 디자인이 외국인 근로자가 많은 사업장에서 산업 재해를 예방할 수 있는 도구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윤성원 한국디자인진흥원 서비스디자인실장은 “산업에 있어 생산성과 효율성이 최우선이던 시대가 지났기 때문에 근로자를 중심으로 산업 환경을 재구축해야 한다”며 “제도적 미흡함, 시설 노후화, 근로자 고령화, 외국인 근로자 증가 등 다양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안전 디자인의 전략적 사용을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