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의령에서 물에 빠진 아이들을 구하다 숨진 고 전수악 여사의 추모비가 47년 만에 새단장됐다.
군은 최근 용덕면 용덕초등학교 한편에 자리 잡은 전 씨 추모비에 얼굴 부조상과 추모벽을 추가 설치했다고 28일 밝혔다. 전(당시 32세) 씨는 1977년 5월 18일 장을 보고 돌아오던 길에 용덕면 운곡천에서 물놀이하던 국민학교(현 초등학교) 1학년생 2명의 비명을 듣고 곧장 물에 뛰어들었다. 1명을 구조한 뒤 다른 1명을 다시 구하다가 함께 급류에 휩쓸려 숨을 거뒀다.
지역민들 애도 속에 장례식이 치러졌고 전 씨의 추모비가 건립되는 등 추모 열기가 고조됐으나, 세월의 풍파 속에 추모비는 녹슬고 전 씨도 잊혀갔다.
이에 오태완 의령군수가 전 씨를 수면 위로 올렸다. 오 군 수는 보훈 정책 업무 보고 자리에서 “전수악 여사는 헌신과 희생의 표본”이라며 “의령군 유일한 의사자를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 충의의 고장에 걸맞게 예우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군은 전 씨의 숭고한 희생정신을 담은 추모비를 주민들이 잘 접할 수 있도록, 담장을 허물고 주변을 정리하겠다는 뜻을 보건복지부에 전하며 국비를 따냈다. 이로 의사자 추모 기념 사업 공모에 선정됐다.
추모비에는 ‘여기 사랑과 희생의 불꽃 치솟는 숭고한 인간애가 있다. 1977년 5월 18일 장봇짐 팽개치고 뛰어들어 물에 빠진 어린 목숨은 구하고 운곡천 푸른 물속으로 숨져 간 전수악 여사의 거룩한 정신은 영원한 횃불 되어 천추에 길이 빛나리라’라고 새겼다.
용덕면 주민들은 전 씨 추모사업 추진에 크게 환영했다. 추모비를 처음 건립할 때 모금 운동을 벌일 정도로 안타까워했던 주민들은 전 씨를 곧은 행실과 바른 품성을 가진 사람으로 기억했다.
동갑내기 친구 김순연(77) 씨는 “정말로 정말로 착한 사람이었다. 좋은 친구 좋은 부모 좋은 이웃이었다”며 “새미(빨래터)에서 이웃 빨래 도맡고, 시부모 종기를 입으로 빨던 사람이 순악이었다”고 회상했다.
이해수(67) 씨는 “비가 많이 와 부락 앞 개울에 물이 차면 학생들을 일일이 업어서 등하교시켰다”며 “똥도 버릴 게 없는 사람이라고 너무 착해서 명이 짧다고 다들 그랬다. 10살 때 어머니를 여의고 외롭게 살았는데 자식 낳고 살만하니 그런 변고를 당했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전 씨의 자녀들은 연신 고마움을 전했다. 딸 여경화(57) 씨는 “예쁜 우리 엄마 얼굴을 이렇게 기억해 주고 볼 수 있게 해주셔서 눈물 나게 고맙다”고 말했다. 아들 여상호(55) 씨는 “잊혔다고 생각했는데 새로 단장해 정말 잘 꾸며주셨다”며 “어머니처럼 용덕 주민은 물론이고 남에게 도움 되는 사람으로 살아가겠다”고 말했다.
사고 생존 학생이었던 전 씨(55)는 “유가족께 평생 아픔을 안겨드려 너무 죄송하다. 고인의 은혜를 갚을 수 없지만 열심히 살면서 봉사하고 기억하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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