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적 관점에서 봤을 때 시계 수집으로 이룬 자산 가치 상승이 주식 시장의 성과를 능가했던 사례는 매우 많습니다. 그래서 컬렉터들에게 지금이 시계에 투자할 때라고 조언하죠. 시계 가격이 일시 하락할 수는 있겠지만 결국 다시 상승할 것임을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토마스 페라치 필립스옥션 아시아 시계 부문 총괄(부회장)은 최근 서울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시계 시장 전망을 묻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그는 글로벌 경기 침체로 명품·미술품 등 고가품 시장이 위축되고 있는 상황에서도 시계 시장은 비교적 선방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페라치 총괄은 “지난해 필립스의 연간 시계 경매 총액은 2억 1200만 달러(약 3040억 원)였는데 이는 역대 최고 규모인 2022년(2억 2700만 달러)과 비교해 7%가량 줄어든 수치”라며 “다른 고가품 분야의 매출 감소액이 30~50%에 달한다는 점을 볼 때 시계 경매 시장은 상대적으로 단단한 수요를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의 관찰에 따르면 경기 침체 분위기 속에서 고가 시계 시장은 양 중심에서 품질 중심으로 전환되는 중”이라며 “컬렉터들이 과거보다 덜 구매하는 것은 맞지만 구매력은 크게 변하지 않았으며 단지 더 높은 품질의 제품에 집중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페라치 총괄은 스위스 제네바 기반의 시계 전문 경매사 앤티쿼럼을 시작으로 소더비·크리스티를 거쳐 2017년 필립스옥션에 합류한 20여 년 경력의 ‘스타 옥셔너’다. 특히 필립스 홍콩에서 아시아 시계 부문 수장을 맡은 뒤로는 수차례 기록적인 경매를 이끌며 주목받았다. 2017년 미국 명배우 폴 뉴먼이 애용해 ‘폴 뉴먼의 데이토나’로 불렸던 롤렉스 코스모그래프 데이토나를 1775만 달러(당시 약 200억 원)에 낙찰시켰고, 2023년에는 청나라 마지막 황제 푸이가 소장했던 파텍필립을 약 82억 원에 판매했다. 경매 출품작을 남김없이 판매하는 ‘화이트 글러브 세일’을 아시아 시계 경매에서 최초로 달성해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그가 한국을 찾은 것은 2018년 이후 두 번째다. 당시 한국 시계 시장과 컬렉터들의 잠재력에 주목해 한국을 찾았지만 직후 코로나19 팬데믹으로 한국 진출이 주춤했다. 7년 만에 한국을 찾은 그는 “2018년 이후로도 줄곧 한국 시장에 관심을 가졌는데 이제야 본격적으로 시장 진출 전략을 펼쳐볼 만한 시기가 왔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한국 시계 시장은 일본·중국 등에 비하면 초기 단계다. 일본의 경우 1980년대부터 빈티지 시계 수집 열풍이 불었고 지금도 세계 최대 시계 컬렉팅 시장으로 꼽힌다. 중국 역시 2000년대 이후 젊은 컬렉터들이 새롭게 등장하며 글로벌 ‘게임 체인저’로 거론되는 성숙 시장이다. 페라치 총괄은 “한국 경매 고객들은 역사적으로 미술품에 더 높은 관심을 보여왔다”며 “하지만 최근 수집 가치가 높은 빈티지 고급 시계에 대한 수요가 뚜렷하다. 한국 시계 경매 시장이 매년 5%씩 성장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고 기대했다. 그는 홍콩 중심으로 운영되는 필립스옥션 아시아가 아직 한국에서 현장 경매를 진행할 계획은 없지만 한국 고객들을 대상으로 다양한 이벤트를 계획하고 있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어린 시절 스와치 시계부터 수집을 시작한 유서 깊은 컬렉터이기도 한 그는 한국 컬렉터들에게 시계를 고르는 조언도 건넸다. 그는 “시계를 고를 때는 품질과 희소성 두 가지를 반드시 확인해야 한다”며 “기계식 시계의 경우 보존 상태가 좋다면 수십 년 혹은 100년 이상도 보존되기에 다음 세대에 물려줄 수 있는 자산으로서도 가치가 있다”고 말했다. 또 “시계를 좋아한다면 시계 수집은 단순한 투자 이상의 의미일 것”이라며 “결국 내 최종 조언은 자신이 착용했을 때 정말 마음에 들고 기분이 좋아지는 시계를 사야 한다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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