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8일(현지 시간) 영국과 첫 무역 합의를 이루면서 관심은 한미 무역 합의가 언제, 어떤 방식으로 이뤄질지에 쏠리고 있다. 이와 관련해 하워드 러트닉 미 상무부 장관은 이날 블룸버그TV 인터뷰에서 “(일본) 한국과의 무역 협상은 영국과 달리 복잡해 시간이 많이 걸릴 것”이라고 언급해 협상 과정이 난항을 겪을 수 있음을 시사했다.
이날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이번 무역 합의를 계기로 미국이 ‘고관세, 보호무역주의 국가’로 자리 잡게 됐다고 논평했다. 그러면서 “미국과 협상에서 영국의 임무는 이기는 것이 아니라 가능한 적게 잃는 것이었다”고 덧붙였다. 조 바이든 전임 행정부에서 무역대표부(USTR) 부대표를 지낸 세라 비앙키 에버코어ISI 애널리스트는 “(미국의 무역흑자국인) 영국이 관세율을 0%로 낮추지 못하다면 어떤 나라도 가능하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지난해 대미 무역흑자 660억 달러로 미국의 무역적자국 8위인 한국으로서는 협상 과정 자체가 순탄하지 않을 것임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특히 미영 무역 합의 소식이 전해지자마자 미국 완성차 업계가 즉각 반발하고 나섰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포드, 제너럴모터스(GM), 스텔란티스 등 미국 자동차 ‘빅3’는 “(영국과 합의에 따라) 미국산 부품이 거의 없는 영국산 자동차를 수입하는 것이 더 저렴해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트럼프 행정부가 영국산 자동차에 관세를 낮춰준 것이 멕시코와 캐나다에 주요 생산 기지를 둔 미국 완성차 업체들의 수입 비용을 더 높이는 결과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이러한 특혜가 향후 아시아 및 유럽 경쟁 업체와 협상에서 선례가 되지 않기를 바란다”고 못 박았다. 자국 산업 눈치를 봐야 하는 트럼프 행정부가 한국을 비롯한 다른 나라와의 협상에서 자동차 등 핵심 산업과 관련해 양보할 여지가 좁아질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미영 간 무역 합의 소식에도 세부 사안에서 양측의 입장이 엇갈리고 있다는 점도 변수다. 영국은 미국 측이 철강·알루미늄에 대한 25% 관세를 철폐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반면 백악관은 보도 참고자료를 통해 “철강과 알루미늄에 대한 (무역확장법) 232조에 따른 관세에 대해서는 대체 협정을 협상할 것”이라고 언급했다. ‘철폐’가 아닌 ‘조정’에 무게를 둔 셈이다. 전문가들은 난관이 가장 적을 것으로 예상된 영국조차 전통적 형식의 무역협정이 아니라 주요 원칙만 담은 일종의 프레임워크(기본 합의)에 그쳤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양국 간 철강 등 관세 문제에 대한 표현 차이, 디지털세 등에 대한 입장 차이를 고려할 때 향후 논의 과정에서 무역 협정 체결이 무산될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한편 러트닉 장관은 이날 인도가 영국을 이을 다음 무역 합의 대상국이 될 수 있음을 시사했다. 그는 “인도와의 합의를 강력하게 추진하고 있으며 다음 협정 체결 대상국 가운데 하나가 될 가능성이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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