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쯤 되면 모든 논란을 떠나 작품을 선택하는 배우 유아인의 안목을 인정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그가 출연한 영화 ‘승부’는 올해 흥행작 5위에 올랐고 30일 개봉하는 영화 ‘하이파이브’ 역시 기발하고 키치한 매력과 리듬감 넘치는 유머로 무장한 K코믹히어로물의 탄생을 알렸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26일 언론 시사회를 통해 공개된 ‘하이파이브’는 러닝타임 내내 아무 생각 없이 웃게 하는 코미디 명작이다. 그간 한국 영화에서는 형사와 범죄자 사이에 벌어지는 폭력이 수반된 자극적인 웃음 코드가 대부분이었고 코미디는 가장 만들기 어려운 장르로 꼽힌다. 모든 장르에 공식이 있지만 코미디에는 공식이 없어서 웃기려고 만들었는데 웃기지 않은 경우도 많다. 그러나 이 작품은 폭력이라는 진부하지만 강력한 조미료 없이 ‘아 다르고 어 다른’ 한국어의 맛을 살린 말싸움과 말장난이 만들어내는 ‘티키타카’한 대사, 키치한 설정과 엉뚱한 상황 등 ‘웃음 소스’가 환상적인 비율로 조합돼 코미디물의 정석 레시피를 완성했다. ‘과속스캔들(822만)’과 ‘써니(744만)’ 등을 연출한 강형철 감독이 7년 만에 선보이는 작품으로 그의 절치부심이 느껴진다.
영화는 태권소녀 완서(이재인 분), 작가 지망생 지성(안재홍 분), 프레시 매니저 선녀(라미란 분), 작업반장 약선(김희원 분), 백수 기동(유아인 분)이 장기를 이식받고 초능력이 생기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렸다. 마블 등 히어로물과 달리 초능력이 생긴 주인공들에게 인류를 구하라는 등의 거창한 미션이 주어지지 않는 차별화로 공감을 이끌어낸다. 특히 초능력으로 무엇을 어떻게 해보겠다는 욕망이 없는 이들과 이들의 능력을 빼앗아 젊은 초인 교주를 욕망하는 새신교 교주 영춘(신구 분)의 대결은 선명한 의미를 만들어 내며 히어로물이라는 판타지에 현실성을 부여한다.
교주와 쓸모도 없는 초능력은 차라리 ‘무능력’이라고 자조하는 소시민 초능력자들의 대결은 웃음 뒤에 숨겨 놓은 영화의 메시지다. 소시민의 행복과 능력을 빼앗을 수 있다고 믿는 권력자와 이에 대항하는 친구들의 끈끈한 연대, 그리고 노교주가 욕망하는 젊음과 초능력, 신도들을 통해 얻은 막대한 부 등은 우리 사회의 단면이라고 할 수 있다.
주인공들이 자신에게 생긴 초능력을 각성하면서 벌어지는 에피소드들은 ‘웃음 폭탄’이라는 표현으로도 부족하다. 이를테면 폐 이식으로 엄청난 폐활량을 얻게 된 지성은 멀리서도 입 바람을 불어 리코더를 연주할 수 있다. 나이로 서열을 정하던 중 지성이 1987년생이라고 하니 기동이 1988년생이라고 말해 서열이 정리되나 싶었는데 기동은 이내 “빠른”이라고 서열 정리를 멈춰 세운다. 이에 지성이 “빠른 언젠데”라고 깐죽거리며 묻자 기동은 “4월”이라고 말해 웃음을 자아내고 지성은 “그게 빠른이야”라고 화를 내고 티격태격은 계속된다. ‘2인 1역’ 교주 영춘을 연기하는 신구와 박진영의 빌런 연기도 압권이다. 신구는 영생을 꿈꾸는 늙은 교주의 욕망을 담백하게 표현해 기괴함을 더하고, 초능력을 빼앗아 건장한 청년으로 변신했지만 말투는 노인 그대로인 젊은 교주 역을 맡은 박진영의 연기도 기묘한 웃음을 자아낸다. 또 막바지에 젊은 영춘이 노인으로 변해 거대한 교주의 의자에 널브러진 장면은 영화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웃음으로 마무리하면서 독창적인 K코믹히어로물을 완성했다는 평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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