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재정 적자 규모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로 2조 8000억 달러(약 3819조 7600억 원) 가량 줄지만 감세 법안 효과로 2조 4000억 달러(약 3265조 2000억 원) 규모 늘어날 것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관세 역풍으로 국내총생산(GDP), 물가, 금리, 환율 등이 요동칠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감세 정책이 강행될 경우 미국의 재정 건전화는 사실상 기대하기 힘들다는 진단이 힘을 얻고 있다.
블룸버그통신은 5일(현지 시간) 미국 연방의회 산하 예산분석기관인 의회예산국(CBO)이 민주당의 요청에 따라 공개한 관세 정책 자료를 바탕으로 이 같이 분석했다고 보도했다. CBO는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달 13일까지 시행한 관세 인상 조치로 재정 적자가 2035년까지 2조 5000억 달러(약 3410조 5000억 원) 가량 줄어들 것으로 봤다. 연방정부 순차입액 감소에 따른 이자비용 절감으로 5000억 달러(약 682조 원) 정도의 적자폭을 추가로 감축할 것으로 관측했다. 그러면서 트럼프 대통령의 대외 무역 보복으로 미국의 GDP 성장률이 매년 0.06%포인트씩 감소하고 올해와 내년 물가는 0.4%포인트씩 상승한다는 가정 아래 총액은 2조 8000억 원으로 낮춰 추산했다.
이번 분석의 전제 조건에는 한국 등 60여 개국 개별 상호관세, 중국산 제품 30% 추가 관세, 캐나다·멕시코산 25% 관세, 자동차 부품 25% 관세 등이 포함됐다. 철강·알루미늄 등에 대한 관세는 최근 인상폭 50%가 아닌 기존 25%를 적용했다. CBO가 초당파적 기관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정책을 걱정하는 채권 투자자들을 달랠 수 있는 분석 결과인 셈이다. 미국 정부의 부채는 약 36조 2200달러(약 4경 9204조 원, 2025년 3월 기준)으로 2034년에는 약 50조 7000억 달러(약 6경 8876조 원)로 늘 전망이다.
문제는 앞서 CBO가 최근 하원을 통과한 감세 법안을 두고도 10년간 미국의 재정 적자를 2조 4000억 달러 더 늘릴 것이라고 추정했다는 점이다. 이 경우 관세를 통한 재정 적자 축소 효과는 4000억 달러(약 554조 5600억 원)로 쪼그라들게 된다. 현재 공화당은 상원에서 개인 소득세율 인하, 법인세 최고세율 인하, 표준소득공제, 자녀 세액공제 확대 등 올해 종료되는 감세 조항을 연장하는 법안을 처리하기 위해 협상하고 있다.
블룸버그는 “CBO는 관세가 얼마나 많은 수익을 창출할 수 있는지는 추정하면서 경제 성장, 금리와 같은 변수가 재정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고려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필립 스웨겔 CBO 국장도 민주당 상원 의원들에게 보낸 서한에서 “정부가 관세 정책을 변경할 수 있어 수치에 상당한 불확실성이 있다”고 경고했다.
감세 법안을 두고 한때 동지 관계였던 트럼프 대통령과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 간 갈등도 연일 격화되고 있다. 머스크 CEO는 4일 엑스(X·옛 트위터)에서 “상·하원의원에게 ‘미국을 파산시키는 것은 괜찮지 않다’고 전화하고 법안을 죽이라”고 선동했다. 이를 의식한 듯 트럼프 대통령은 트루스소셜에서 머스크의 의견에 동조한 랜드 폴 상원의원을 겨냥해 “‘하나의 크고 아름다운 법안’과 다가오는 엄청난 성장을 거의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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