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인공지능(AI) 기술력은 미국과 중국에 비해 많이 부족합니다. 하지만 네이버는 늘 ‘언더독’이었고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이 익숙합니다. 상거래·UGC(이용자생성콘텐츠) 등 특정 분야에서는 한국 AI도 글로벌 시장에서 충분한 승산이 있습니다.”
이해진 네이버 의장은 5일(현지 시간) 실리콘밸리 특파원단을 만나 “AI는 인터넷·모바일 수준의 ‘근본적 파도’”라며 “지금은 다윗이 골리앗을 이기기 위해 집중할 ‘돌멩이’를 골라내는 과정”이라고 말했다. 챗GPT처럼 전 영역을 아우르는 ‘기초 AI 모델’로 미국·중국을 이기기는 힘들지라도 네이버가 특장점을 지닌 상거래·콘텐츠 특화 AI에서는 경쟁력을 가질 수 있다는 의미다.
이 의장은 글로벌투자책임자(GIO) 활동 당시 이뤄진 네이버의 포시마크·왈라팝·왓패드 등 글로벌 인수합병(M&A)도 특화 AI를 위한 발판이라고 했다. 그는 “네이버가 난데없이 중고 시장에 투자했다고 생각할 수 있으나 상거래 데이터를 위함이었고 왓패드에는 지금도 수많은 창작자들이 콘텐츠를 올린다”며 “빅테크도 사용자 구매 데이터를 수집하기는 어려운데다 과거 ‘질 낮다’고 여겨졌던 UGC는 이제 AI 학습에 굉장히 소중한 데이터로 꼽힌다”고 설명했다.
한국은 구글 외 자국 검색엔진 점유율이 더 높은 드문 나라다. 이 의장은 지난 25년간 네이버가 생존해온 배경에 UGC와 상거래가 있었다며 소버린(주권) AI 구축으로 한국만의 ‘다양성’을 지켜나가겠다는 의지를 내비쳤다. 그는 “정보를 독점하지 않고 보급하려 했다는 점에서 세종대왕의 ‘한글 프로젝트’는 세계 역사상 가장 위대한 소프트웨어 프로젝트”라며 “세계가 하나의 검색 엔진을 사용하면 위험할 수 있다는 생각과 함께 영어 검색 엔진이 미흡하던 당시 한글 정보를 보급하기 위해 네이버 프로젝트를 시작했었다”고 회고했다.
이어 “추후에는 구글도 한글 검색을 잘 처리하게 돼 큰 위기감을 느꼈으나 지식인·블로그·카페 등 커뮤니티와 상거래가 네이버를 생존케 했다’며 “네이버는 세계에서 가장 먼저 UGC·상거래와 검색이 연결될 때 나오는 힘을 깨달은 사람들”이라고 말했다.
이 의장은 변화에 민감한 한국 시장을 ‘본진’으로 두고 있다는 점 또한 네이버의 장점으로 꼽았다. 그는 “네이버 성공의 가장 큰 이유는 초고속인터넷의 이른 보급과 세계에서 가장 반응이 빠른 ‘최고의 테스트베드’ 한국 사용자”라며 “결국 AI 모델은 국가·기업·서비스 별 특성화(로컬라이즈)해야 하고 이 단계에서 한국 사용자의 빠른 적응력이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했다.
이 의장은 7년 전 사내이사직을 내려놓은 후 GIO로만 활동하다 올 초 주주총회에서 이사회에 복귀했다. 당시 이 의장은 AI 혁신에 힘을 싣겠다며 “젊은 경영진의 활동을 돕겠다”고 밝혔다. 실제 이번 실리콘밸리 방문 또한 설립을 앞둔 ‘네이버 벤처스’ 지원을 위해 이뤄진 것이다. 그는 “네이버 설립 후 25년간 매년 신기술의 등장을 보며 회사가 망할 것 같다는 위기의식을 느꼈다”며 “공격적인 투자가 필요할 때라 느낀 것이 이사회 복귀의 계기”라고 말했다.
그간 네이버는 초기 단계 스타트업을 육성하는 ‘D2SF’ 조직을 운영해왔으나 본격적인 벤처투자사를 세우는 것은 처음이다. 극초기 단계 스타트업 ‘육성’을 넘어선 대형 벤처 투자를 기대하게 한다. 동석한 최수연 네이버 대표는 “투자금 한도를 정하지 않고 전략투자(SI)를 기본으로 금액과 범위 모두 ‘더 큰 규모’로 활동하겠다”며 “콘텐츠와 상거래 관련 기업들은 물론 현 네이버 사업과 거리가 있더라도 현지·한인 스타트업 등 경계를 정하지 않고 기회를 보겠다”고 말했다. 네이버 벤처스는 이달 중 설립절차를 마무리한다. 김남선 전략투자부문 대표가 현지 투자 활동을 진두지휘할 계획이다. 첫 투자처로는 비디오 AI 스타트업 ‘트웰브랩스’를 선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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