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통령이 후보였던 지난달 18일 대통령 선거 TV 토론회에 나와 “(자영업자의 빚은) 단순 채무 조정을 넘어 실질적인 채무 탕감이 필요하다”며 “다른 나라는 국가부채를 감수하면서 코로나19 피해를 책임졌던 반면 한국은 돈을 빌려주는 방식으로 대응해 결국 국민 빚만 늘렸다”고 비판했다.
공약대로 이재명 정부는 각종 빚 탕감 정책을 준비하고 있다. 현재 금융 당국은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 산하에 배드뱅크 설치와 새출발기금 지원 강화, 특별감면제 및 상환유예제 확대 등 다양한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최근에는 금융위원회가 비영리법인에서 개인 채권을 매입할 수 있도록 하는 감독규정 변경을 예고하기도 했다.
이재명 정부가 부채 탕감 정책을 펼치는 일차적인 이유는 소상공인과 서민 재기 지원이다. 코로나19 지원 과정에서 지나치게 많은 대출이 풀렸고 이로 인해 소상공인들이 빚의 수렁에 빠지게 된 만큼 이를 정부가 주도해 탕감해줘야 한다는 논리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다중채무자면서도 저소득·저신용자인 자영업자가 받은 대출은 지난해 말 기준 총 125조 4000억 원이나 된다. 이 과정에서 경기 침체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저소득층과 서민도 함께 지원할 방침이다. 박창균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코로나의 경우 정부 정책으로 외식 등 활동을 금지했기 때문에 사유재산권을 침해한 것”이라며 “탕감이라는 용어도 사실 맞지 않다. 당연히 국가가 도와야 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업계에서는 일정 부분 채무 탕감이 필요하다고 보면서도 감면과 함께 근본적인 처방을 할 때라는 의견이 많다. 매 정부마다 각종 부채 탕감 정책을 추진해왔지만 일회적인 효과만 냈을 뿐 구조적 문제는 지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소득 하위 20%의 대출액은 탕감이 있을 때 감소했다가 이후 다시 증가하는 형태를 반복하고 있다. 박근혜 정부 출범 직전 하위 20% 가계의 평균 신용대출 규모는 183만 원에서 문재인 정부 출범 첫해인 2018년 126만 원까지 줄었지만 2022년에는 204만 원으로 다시 200만 원을 돌파했다. 윤석열 정부의 새출발기금으로 지난해에는 다시 194만 원으로 내려왔지만 2012년과 비교해도 6%가량 높다. 김홍기 한남대 경제학과 교수는 “새 정부가 들어설 때마다 채무 탕감책을 내놓는데 이러한 정책이 실제 소상공인의 장기적인 영업 환경에 도움이 됐다는 증거는 뚜렷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자영업자의 빚 탕감도 마찬가지다. 2022년 김성숙 계명대 교수와 정운영 성균관대 교수가 한국FP학회지에 수록한 논문에 따르면 자영업자의 채무 조정 중도 탈락률은 직장인보다 1.6배가량 높았다. 채무 조정 대상에 포함될 경우 면제받고 남은 빚을 반드시 갚아야 하는데 이마저도 상환하지 못해 채무 조정 프로그램에서 탈락하는 자영업자가 많았다는 의미다. 한 전직 공공기관장은 “사실 자영업은 중소기업 지원보다는 노동시장과 더 관련이 깊은 분야”라며 “그럼에도 현재는 자영업 정책을 금융 지원이라는 관점에서 보는 경향이 지나치게 강하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서민과 자영업자의 경우 채무 탕감 같은 대증요법에 기댈 것이 아니라 대출 심사 강화와 소득 보장과 일자리 확대 정책이 함께 이뤄져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1차로는 상환이 가능한 이들에게 대출이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대출을 갚지 못하는 이들은 복지와 재정의 영역에서 지원을 해줘야 한다는 뜻이다. 소득 하위 20% 가구의 신용부채 용도별 비중을 보면 생활비 마련이 34.5%로 가장 높다. 소득 상위 20% 가구의 경우 이 비율이 19.8%에 불과하다. 저소득층에서 신용대출을 받는 핵심적인 이유가 당장의 생활비를 충당하기 위한 것이라는 해석이 가능한 대목이다.
장기적으로는 질서 있는 폐업과 이를 통한 임금 근로자 전환을 유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조언도 제기된다. 노민선 중소벤처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원활한 폐업을 통해 과당경쟁을 해소하고 임금근로자로 전환해 장기적 정책에 초점을 두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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