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통령이 지난달 캐나다 카나나스키스에서 열린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에 참석하며 다자외교 무대에 한국의 복귀를 알렸다. 계엄 이후 위축됐던 한국의 글로벌 리더십을 재확인하는 의미가 컸다. 경주에서 10월 말 열릴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로 다자외교의 성공이 이어지길 바란다.
오늘날 강대국 정치의 부활은 다자협력의 걸림돌이다. 그러나 한국과 같은 중견국은 다자외교를 적극 활용해야 한다. 이재명 정부가 내세운 실용외교 방향은 한미동맹과 한미일 협력의 강화, 중국 및 러시아와의 관계 개선, 한반도 평화를 위한 남북 협력으로 추려진다. 미국·중국·일본·러시아 모두 강대국이고 북한은 어느 정권에나 다루기 어려운 대상이다. 이들 국가와의 다자외교에서 국익을 극대화하려면 매우 정교한 정책 기조가 필요하다.
먼저 예사롭지 않은 미국의 변화에 대응해 다자협력을 통한 완충 기제를 찾아야 한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는 ‘미국 우선주의’를 내세워 관세 협상을 밀어붙이고 있다. 조만간 주한미군의 분담금 인상 요구가 제기될 것이다. 돈만이 아니다. 트럼프 행정부의 안보 정책은 유럽 방어의 책임은 줄이고 중국의 인도태평양 지역 패권을 억지하는 데 초점을 두고 있다. 그 일환에서 중국의 대만 침공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주한미군의 지상군 여단을 괌으로 이전하는 계획도 나온다. 주한미군 철수도 고려했던 트럼프이기에 역내 미군의 ‘전략적 유연성’ 요구에 어떤 형태로든 협력이 불가피해 보인다. 일본과 호주도 동일한 요구를 받고 있는 만큼 이들과 대화 채널을 늘려 한국은 어디까지 협력할 수 있을지 선을 그어 놓아야 할 것이다.
아울러 한일 협력을 강화해 인도태평양 지역 다자협력체를 작동시켜야 한다. 트럼프 행정부는 한미일 삼자협력이나 한일관계 강화에는 관심이 없다. 인도태평양 지역에서는 일본만큼 우리와 이익과 가치를 공유하는 나라가 없다. 따라서 미국이 빠지는 역내 다자협력을 위해 한일을 핵심으로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아세안)을 비롯해 호주·뉴질랜드 등과 함께 노력해야 한다. 인도태평양 경제프레임워크(IPEF)가 여전히 작동하도록 한미일 협력을 견인하고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에도 가입하는 등 경제협력체에 적극 참여해야 한다.
중국과의 관계 개선에 있어서도 외교 공간을 넓혀 여럿 속의 하나인 한국으로 보험을 드는 방식이 필요해 보인다. 미중 간의 안보·경제·기술 경쟁이 치열해지는 상황에서 안보와 경제를 분리해 대응하기 어렵다. 국가 안보를 미국의 핵우산에 의존하는 한국으로서는 미국을 우선시하는 것은 불가피하다. 동시에 주변 강대국인 중국과 우호협력을 강화하는 것도 마땅하다. 이점에서 새 정부는 이슈별로 줄타기 외교를 하기보다는 원칙을 마련해 일관된 정책 방향을 세우는 것이 바람직하다. 서두르지 말고 중국과 환경, 인적 및 문화 교류 등의 분야에서 차분하게 협력 기반을 넗혀가는 것이 현실적이다. 재가동을 시작한 한중일 삼자협력과 역내 다자채널을 활용할 수 있다. 동시에 남중국해나 대만 문제에 관해서는 중국의 현상변경을 반대한다는 레토릭 외교를 넘어 해양 안보를 위한 다자협력에 보다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것이 좋겠다.
마지막으로 북한과 러시아에 대한 새로운 외교가 필요하지만 이는 신중을 기해야 할 것이다. 국제적 제재가 유지되고 있는 한 러시아와의 관계 개선은 어렵다. 북한의 경우는 트럼프 1기 때의 미북 대화로 돌아갈 기회가 열릴 것으로 전망된다. 이스라엘·이란 전쟁이 종식되면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의 협상에 나설 것이라는 예측이 파다하기 때문이다. 2019년 하노이 북미정상회담이 결렬된 이래 북한의 핵과 미사일 능력은 더 고도화했고 러시아와의 안보 결속은 강화됐다. 트럼프 대통령과 김 위원장 및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의 관계가 북핵을 둘러싼 고차방정식을 푸는 데 핵심이겠지만 한국도 국제사회와 함께 북한의 무력 도발을 억제할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한국은 다자외교의 주요 플레이어다. 한류가 준 글로벌 소프트파워는 강력한 우군이다. 외교 공간을 넓히려면 보다 적극적으로 다자무대에 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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