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자동차그룹이 미국 전기차 시장에서 3년 만에 점유율 2위 자리를 빼앗기며 고전하고 있다. 신형 전기차 출시 등 라인업 확장이 상대적으로 더딘 데다 인센티브 감축으로 가격 경쟁력마저 떨어진 영향으로 풀이된다. 올해 현대차(005380) 최고경영자(CEO)로 취임한 호세 무뇨스 사장은 미국 고관세 정책과 전기차 보조금 폐지 등 악재를 극복해야 하는 난제를 떠안게 됐다.
9일 한국자동차모빌리티산업협회(KAMA) 등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현대차·기아(000270)의 미국 전기차 시장점유율은 7.6%로 테슬라(42.5%), 제너럴모터스(13.3%)에 이은 3위를 기록한 것으로 나타났다. 전년 동기(11.0%)보다 3.4%포인트 떨어져 점유율 순위도 한 단계 내려 앉았다.
현대차·기아가 2022년 2위 자리로 올라선 이후 3년 만의 순위 하락이다. 현대차·기아는 2021년 4위(4.1%)에서 2022년 2위(10.4%)로 도약한 이후 3년 내내 상반기 점유율 2위를 지켜왔다.
현대차·기아의 미국 전기차 판매 성장세가 크게 꺾이며 순위 하락을 피하지 못했다. 두 회사가 올 상반기 미국에서 판매한 전기차는 4만 4555대로 전년 동기보다 28% 감소했다. 같은 기간 미국 전기차 총판매량이 56만 198대에서 58만 9066대로 5.2% 증가한 상황에서도 역성장을 기록한 것이다.
판매 감소폭은 현대차에 비해 기아가 상대적으로 컸다. 현대차는 4.6% 감소한 3만 988대, 기아는 53.8% 급감한 1만 3567대를 판매했다.
미국 내 전기차 판매량 감소는 현대차그룹의 전동화 전략이 본격화한 2021년 이래 처음이다. 현대차·기아의 상반기 미국 전기차 판매량은 2021년 8262대를 시작으로 2022년 3만 4517대, 2023년 3만 8457대, 2024년 6만 1883대로 성장세를 이어왔다. 지난해에는 하반기까지 이 같은 흐름을 유지해 연간 최대 기록인 12만 3861대 판매를 달성했다.
그러나 올 들어 상황은 급변하고 있다. 현지 소비자들이 신기술과 가격 경쟁력을 갖춘 신형 전기차를 앞세운 후발 업체로 옮겨가면서 현대차·기아의 부진으로 나타났다는 분석이다. 실제로 GM은 올 상반기 가성비 모델인 쉐보레 이쿼녹스 EV의 높은 인기에 힘입어 103.8% 증가한 7만 8167대를 판매했다. 이 밖에 캐딜락 리릭, 쉐보레 블레이저 EV, 실버라도 EV, 허머 EV, 에스컬레이드 IQ 등 폭넓은 라인업으로 소비자 선택을 끌어내고 있다.
현대차·기아는 전기차 전용 플랫폼인 E-GMP에 기반한 아이오닉, EV 시리즈로 미국 시장을 공략하고 있다. 미국 판매 모델은 현대차 코나 일렉트릭·아이오닉5·아이오닉6·아이오닉9, 기아 니로EV·EV6·EV9으로 한국·유럽과 달리 대중화 모델인 캐스퍼 일렉트릭·EV3를 아직 내놓지 않았다.
업계에서는 현대차·기아의 판매 인센티브 축소에 따른 가격 경쟁력 악화를 우려하고 있다. 기존에 리스·렌터카 등 플릿 형태로 대량 판매해 온 현대차·기아가 현지 생산 확대를 계기로 개인 간 거래로 포트폴리오를 조정하며 판매 인센티브를 줄이고 있다는 분석이다. 이에 소비자들의 비용 부담이 늘고 있다는 것이다. 현대차는 미국에서 차량 1대당 인센티브를 지난 3월 3405달러에서 지난 달 2797달러로, 기아는 1월 3310달러에서 지난 달 2725달러로 각각 낮췄다.
올 하반기 미국 정부의 전기차 보조금 폐지는 악재로 작용할 것으로 예상된다. 최근 미국 의회를 통과한 ‘하나의 크고 아름다운 법안(OBBBA)’은 최대 7500달러(약 1000만 원)의 전기차 구매 보조금을 9월 말 종료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현대차의 아이오닉5·아이오닉9·GV70 전동화 모델과 기아의 EV6·EV9 등 5개 모델은 현지 생산으로 7500달러 세액공제를 받고 있으나 3개월 뒤부터는 이러한 혜택이 사라진다는 얘기다.
현대차·기아는 인기 차종인 하이브리드 모델 등 신차 확대로 전기차 부진을 상쇄할 방침이다. 현대차는 미국 등 북미 시장에서 신형 팰리세이드 하이브리드 모델의 출시를 앞두고 있다. 전기차 전용 공장으로 세워진 HMGMA는 하이브리드차까지 조립할 수 있도록 설비를 갖추고 전기차·하이브리드차·주행거리연장형전기차(EREV) 등으로 생산 차종을 확대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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