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만의 제조업 강점을 잘 살린다면 심우주탐사도 문제없다고 생각합니다. 현대차·기아가 세계적인 자동차 제조 역량을 앞세워 화성탐사용 로버(차량)를 개발하는 식이죠.”
캐나다 최초 우주비행사인 로버트 브렌트 서스크 전 캐나다우주국(CSA) 심우주의료자문위원장은 10일 ‘제3회 세계한인과학기술인대회’가 열린 서울 강남구 한국과학기술회관에서 서울경제신문과 인터뷰를 갖고 “캐나다가 그랬듯 한국도 다른 나라가 가질 수 없는 강점을 앞세워 우주개발에 나서야 한다”며 이같이 말했다.
서스크 전 위원장은 “캐나다는 과거 글로벌 우주 협력에서 기여도가 낮았지만 로봇·통신·리모트(원거리) 센싱 분야의 강점을 살렸다”며 “국제우주정거장(ISS)의 핵심 장치인 17m 길이 로보틱스 암(로봇 팔)을 공급했고 현재 이를 다루는 교육을 위해 전 세계 우주인이 몬트리올로 모일 만큼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다”고 소개했다. 미국 주도로 주요국들이 구축 중인 달 우주정거장 ‘루나 게이트웨이’도 로봇 팔은 캐나다에 의존할 정도다.
한국 역시 유인 달탐사 계획 ‘아르테미스 프로그램’ 같은 국제 협력 프로젝트에서 배제되지 않으려면 로봇 팔 기술 같은 특기가 필요하며 제조업이 그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게 우주탐사 분야 권위자인 서스크 전 위원장의 생각이다. 한국은 선진국보다 한발 늦은 2030년대에 재사용발사체와 달 착륙선과 같은 우주탐사 필수 기술 확보에 나서는 후발 주자다. 그럼에도 자동차·반도체처럼 제조 혁신으로 성능을 높이고 비용을 줄일 수 있다면 글로벌 경쟁에서 승산이 있다는 것이다.
서스크 전 위원장은 1983년 4000명이 넘는 지원자 가운데 캐나다 첫 우주인단으로 선발되며 자국 우주 개척에 앞장섰다. 1996년 우주왕복선 컬럼비아호에 탑승해 생명과학과 무중력에 관한 우주 연구 임무에 참여했고 2009년에는 캐나다 우주비행사 최초로 ISS에서 6개월간 머무는 ‘장기 임무’를 수행했다. 이후 캘거리대 총장을 거쳐 CSA 심우주의료자문위원회를 이끌며 유인 우주탐사에 필요한 의학 연구를 맡았다.
그는 “한국은 국가적으로 우주탐사에 대한 풍토를 조성하고 리더십을 갖추는 일이 필요하다”고 주문했다. 한국이 우주발사체 ‘누리호’와 달탐사선 ‘다누리’ 개발로 7대 우주 강국에 올랐다고 자평하지만 성장을 이어가려면 우주개발 분야에 적극 투자하고 인재를 끌어들일 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가 조성돼야 한다는 것이다. 서스크 전 위원장은 이를 위해 한국도 유인 우주탐사가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그는 “유인 탐사는 우주에 대한 대중의 관심을 높여 젊은 인재를 우주인으로 성장시킬 수 있는 동기를 부여한다”며 “나 역시 1960년대 세계 최초 달 착륙선인 미국 아폴로 프로젝트에 영감을 받아 이 진로를 선택했다”고 설명했다. 한국은 2008년 첫 우주인 이소연 씨를 탄생시킨 후 ISS 등 유인 우주 임무에 제대로 참여하지 못하고 있다.
유인 탐사의 일환으로 우주 의료 연구의 필요성도 강조했다. 서스크 전 위원장은 “2억 2500만 ㎞ 떨어진 화성에서 생활하려면 우주비행사가 스스로 치료하고 응급 상황에 대처할 수 있어야 하며 심우주탐사를 위해서는 헬스케어 혁신이 뒷받침돼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마지막으로 미국 정부의 우주 예산 삭감과 관련해 “과학 예산 삭감은 10년·20년 뒤에 분명 대가를 치를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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