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미국 텍사스주 오스틴에서 테슬라가 자율주행 택시 상용 서비스를 정식으로 시작했다. 서울 강남구 면적과 비슷한 도심 구역 안에서 일반 사용자가 스마트폰으로 테슬라 ‘모델Y’를 호출해 요금을 지불하고 탑승할 수 있다. 요금은 정액제로 편도 4.20달러(약 5800원)로 책정됐다. 테슬라의 로보택시 서비스는 시범 운행이나 기술 데모 수준을 넘어선 ‘유료 상업 서비스’라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특히 자율주행 기술이 ‘사람을 태우는 차’를 넘어 ‘물건도 스스로 움직이는 사회’로의 전환점을 열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최근 미국과 실리콘밸리를 중심으로 ‘FSDD(Full Self-Driving & Delivery)’라는 개념이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FSDD는 말 그대로 완전자율주행(FSD)과 무인배송(Delivery)이 결합된 개념이다. 기술적으로 보면 도로 상황을 스스로 인식하고 주행을 제어하는 자율주행 차량에 상품이나 식품 등을 배송할 수 있는 기능까지 붙인 구조다. FSDD가 가져오는 변화는 기술의 융합 그 자체보다 배송의 정의를 바꾸는 데 더 큰 의미가 있다. 예를 들어 스마트 냉장고가 우유가 떨어졌음을 감지하면 자동으로 주문을 넣는다. 인공지능(AI)이 날씨와 수요를 고려해 최적 배송 타이밍을 결정하고, 자율주행 배송 차량이 근거리 거점에서 우유를 픽업해 문 앞에 놓고 간다. 소비자는 아무 행동도 하지 않았다. 쇼핑도, 클릭도, 배송 요청도 없이 배송이 완료되는 시대가 시작된 것이다.
이런 변화는 도시 설계와 부동산 전략에도 영향을 미친다. 서울시 통계에 따르면 도심 내 토지의 약 30%가 주차장, 차고지, 도로 확장 공간 등 차량 기반 용도로 사용되고 있다. 자율주행 차량이 확산되고 차량 공유가 보편화되면 해당 공간은 공동 배송 거점, 드론 충전소, 무인 픽업 라운지 등 새로운 물류 인프라로 전환될 수 있다. 단순한 물류 서비스의 변화가 아니라 도시를 구성하는 방식 자체가 구조적으로 바뀌는 것이다.
지금까지는 ‘누가 더 빨리 배송하느냐’의 경쟁이었다면 앞으로는 ‘누가 더 먼저 생활의 흐름을 설계하느냐’에 비즈니스의 성패가 갈릴 것이다. 앞으로 e커머스와 플랫폼 기업만이 아니라 제조·리테일·물류 기업 모두가 라이프스타일 중심의 공급망 설계 역량을 갖춰야 한다. 또한 기술 주도권을 가진 해외 기업에 의존하지 않도록 국내 산업 생태계 차원의 AI 기반 물류 전략과 자율배송 네트워크 구축, 도심형 인프라 투자가 병행돼야 한다.
‘택배가 사라진다’는 말은 다소 자극적으로 들릴 수 있고 섣부른 진단일 수 있지만 이는 본질이 달라진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야 한다. 소비자가 택배를 ‘요청’하고 ‘기다리는’ 경험은 점점 사라질 것이다. 자율주행과 AI, 무인배송 기술이 생활 안으로 조용히 들어오면서 소비자는 배송을 인식하지 못한 채 물건을 수령하게 된다. 이러한 변화는 단지 운송 수단이나 배송 플랫폼의 경쟁을 넘어선다. 배송이라는 개념 자체가 일상에서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얘기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누가 먼저 생활을 설계하고 소비자의 기억에 남지 않을 배송을 구현할 것인가가 가장 중요한 전략이 될 것이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