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가 자문위원으로 참여하고 있는 세계경제포럼(WEF)의 바이오경제 이니셔티브 그룹은 지난달 ‘차세대 바이오 혁신 : 상업적 가치 창출’이라는 제목의 보고서를 발간했다.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생명공학 분야에서의 혁신은 다양한 산업에서 상업적 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매우 큰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 그러한 기대 하에 탄생한 바이오경제라는 말은 수년이 지난 지금까지 소비자와 기업 모두에 그다지 크게 다가오지 못하고 있다. 이는 기술 중심의 접근 방식이 수요를 충분히 고려하지 못했기 때문이며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단순한 기술 개발을 넘어 시장 중심의 차별화된 가치 창출을 해야 한다.”
2000년 이후 생명공학 기술은 급속하게 발전했고 유전자 편집 기술과 합성생물학 기술뿐 아니라 인공지능(AI), 데이터 기술, 로봇 기술 등과의 융합도 활발히 이뤄져왔다. 이처럼 생명공학 분야에서 개발된 혁신적 도구들은 막대한 투자를 끌어왔다. 미국과 유럽의 바이오 산업은 2023년 한 해 동안에만 약 811억 달러에 이르는 자본을 유치했다. 즉 상당수가 기술을 먼저 개발하고 그 기술에 맞는 시장을 나중에 찾거나 창출하는 ‘기술주도형(tech push)’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투자의 상당수는 수요 창출에는 성공하지 못했다. 일부 존재하는 성공적인 사례들은 시장의 실제 수요와 맞물리며 상업적 타당성을 확보한 경우에 한정된다. 따라서 앞으로의 바이오 혁신은 주로 시장의 명확한 수요와 요구에 따라 기술 개발이 이뤄지는 ‘시장수요기반형(market pull)’으로 차별화된 가치를 목표로 추진돼야 한다.
차별화된 가치는 크게 제품 자체의 특성과 생산 시스템에서 만들 수 있다. 제품 자체의 가치는 기존의 원료나 제품, 예를 들면 온실가스를 다량 배출하는 석유화학제품을 바이오 기반 제품으로 교체하거나 이제까지 없던 완전히 새로운 기능을 가진 제품을 창출함으로써 얻을 수 있다. 지속 가능한 화학물질, 동물성 성분이 없는 윤리적 제품, 인체 고기능성 제품, 또는 전혀 새로운 용도를 제공하는 신제품 등이 좋은 예가 될 수 있다. 생산 시스템에 대한 기여 관점에서는 바이오 기반 공정이 생산 유연성, 원료 다양성, 공급망 회복력, 비용 절감 등의 측면에서 가치를 제공해 줄 수 있다. 특히 분산형 생산 체계를 통해 공급망의 탄력성을 높이고 수요 신호에 맞춰 생산량을 조절할 수 있는 점은 바이오 기반 생산의 장점이다.
개인 맞춤형으로 암을 치료해 주는 키메라 항원 수용체 T세포(CAR-T cell) 기술은 완전히 새로운 치료 방식을 제공함으로써 환자에게 획기적인 혜택을 제공하고 상업적으로도 크게 성공한 예다. 미생물 이용 히알루론산 생산의 경우 전통적으로 동물 조직에서 추출되던 것을 미생물 발효 기반으로 전환함으로써 생산비 절감, 윤리성 확보, 기능 개선 등 다양한 가치를 창출했다. 필자의 연구실에서도 지난 30여 년간 많은 종류의 바이오 화학물질, 고분자, 천연물 등을 생산하는 기술들을 개발했다. 이중 생체적합성과 생분해성이 있는 의료용고분자, 강철보다 강하면서 생체친화적이며 상처 치유 기능을 가진 거미실크단백질, 시력 보호에 도움이 되는 루테인과 같은 여러 제품들은 위 두 가지 차별화된 가치를 제공하는 것들이다.
이러한 바이오 혁신은 바이오 스타트업이나 치료제 개발 기업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다. 앞으로 바이오 혁신은 산업 전반의 생산 기반으로 자리 잡을 것이다. 하지만 상업적 실행 가능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바이오로 생산했으니 환경친화적’이라는 ‘그린 프리미엄’에만 의존할 수는 없다. 상용화를 위해서는 시장의 주요 동인을 분석하고 상업적 가치 실현을 위한 추가 연구개발(R&D)이 필요함을 의미한다.
이상과 같은 바이오 혁신 가치 창출 패러다임에 정책, 자금, 규제, 소비자 인식 등이 시너지를 내도록 뒷받침해야 한다. 이를 통해 기존 수요를 단순히 충족시키는 것을 넘어 미래의 수요를 창출하고 그에 따른 제품과 비즈니스 모델이 개발되면 지속 가능한 성장과 혁신적 산업화를 가져오는 진정한 바이오경제로 자리 잡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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