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시장 붕괴의 피해자는 사기를 당한 임차인만이 아닙니다. 임대인도 무너지고 있습니다”
24일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주최로 열린 ‘전세제도 개선안 공청회’에 참석한 비(非)아파트 임대사업자 40여 명이 한목소리로 그간의 고충을 쏟아냈다. 이날 발언 도중 울먹이는 임대인이 있는가 하면 격앙된 반응들도 터져나왔다. 최근 정치권과 시민사회 일각에서 이뤄지고 있는 부동산 제도 개편 논의에 대해 임대인들이 한자리에 모여 입장을 전한 드문 사례다.
임대인도 구조적 전세 부실의 피해자라는 주장이 대표적이다. 전국오피스텔협회 대표로 나선 A씨는 “대위변제 한 건만 있어도 나머지 19채 전세계약이 막히고, 신용은 바닥나며 파산조차 불가능해진다”며 “현 제도는 사기꾼이 아닌 선량한 임대인까지 부실화시키는 구조”라고 호소했다. 그러면서 “이미 무너진 임대인들을 위한 구제방안이 시급하다”고도 강조했다.
시민사회계 일각에서 논의된 전세금 보증보험제도의 개편안에 대해서도 사실상 반대 의견이 나왔다. 강희창 한국임대인연합회장은 “보증보험의 통합 자체에는 일정 부분 공감하지만 전액을 임대인에게 의무화하는 방안은 선의의 사업자에게까지 사실상 ‘징벌’로 작용할 위험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전세금 반환보증 한도가 60%에 그친다면 나머지는 월세로 전환될 수밖에 없고, 그 부담은 고스란히 세입자 몫으로 전가된다”고도 꼬집었다. 앞서 경실련은 보증보험 가입 책임을 임대인 측에 두고, 범위도 집값의 60% 수준으로 제한해야 시장 안정성이 회복된다고 주장한 바 있다.
경실련은 이날 공청회에서 기존 입장을 다시 설명하며 제도 개선의 방향성을 제시했다. △서민 주거 안정 △임대차 시장 정상화 △위험 주택의 사전 차단이 이번 개편안의 핵심 목표다. 경실련 측은 “전세가를 시장 원리에 따라 형성시키면서 공공 보증은 제한적으로 작동해야 한다”면서 “임차인과 임대인의 분쟁 조정을 위한 공동 구제센터 신설도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장석호 공인중개사는 “임대차 시장 불안의 근본 원인은 수년간 누적된 정책 실패”라면서 “보증비율과 전세자금대출 한도를 점진적으로 축소하고 과도한 세제 혜택은 재조정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이번 공청회는 그간 임차인 피해 중심으로 논의돼온 전세사기 담론에 임대인들의 목소리까지 반영하려는 시도라는 점에서 주목된다. 정택수 경실련 부장은 “전세제도 정상화를 위해선 임대인과 임차인 모두의 협력과 상생이 필요하다”며 “현장의 목소리를 반영해 실효성 있는 제도 개선안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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