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이 2차 상법 개정안, 노란봉투법(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개정안) 등 핵심 쟁점 법안의 처리를 서두르는 가운데 야당이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을 통한 합법적 의사 진행 방해)를 통한 강경 대응에 나서기로 했다.
범여권이 국회 의석의 절대다수를 차지한 만큼 필리버스터를 사용해도 법안 강행 처리를 막아 세울 수는 없지만 지연 전술을 통해 반대 여론을 환기하고 추가 협상 기회를 노린다는 계산이다. 여당 입장에서도 쟁점 법안의 일괄 처리가 불투명해진 만큼 지연책에 대응하고 우선 처리할 법안을 추리는 등 ‘수싸움’에 들어갔다.
30일 송언석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 겸 원내대표는 국회에서 당 중진의원들과 다음 달 4일 본회의 대응 전략을 논의한 후 기자들과 만나 “소수 야당으로서 협상이 안 될 경우 유일한 (대응) 방법은 필리버스터밖에 없다”며 “쟁점 법안이 상정되면 법안 하나하나에 대해 무제한 토론을 이어갈 생각”이라고 말했다. 당초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소속 의원들을 중심으로 방송 3법(방송법·방송문화진흥회법·한국교육방송공사법 개정안)에 대해서만 필리버스터를 검토했던 데서 전선을 대폭 넓힌 것이다.
필리버스터는 동일 안건에 대해서는 회기당 한 번만 가능하지만 개별 안건이라면 상정된 법안 하나하나마다 실시할 수 있다. 이 때문에 야당이 전면적인 필리버스터에 나설 경우 7월 임시국회에서는 사실상 1개의 쟁점 법안만 통과가 가능하다. 8월 4일 본회의에서 첫 쟁점 법안 상정 후 야당이 필리버스터를 실시하면 범여권은 24시간 후 국회의원 180명의 동의로 이를 중단시키고 표결을 할 수 있다. 민주당 의석(167석)에 조국혁신당(12석)·진보당(4석) 등을 더하면 가능한 숫자다. 하지만 그다음 상정되는 안건에서 야당이 다시 필리버스터를 시도하면 7월 임시국회 마지막 날인 5일 자정을 넘어서게 되고 회기가 자동 종료된다.
여당은 곧바로 6일부터 8월 임시국회를 소집할 계획이지만 미뤄진 법안 처리를 위한 본회의는 2주 뒤에나 열릴 것으로 전망된다. 민주당 핵심 관계자는 “임시국회는 바로 소집하지만 국외 출장 등으로 자리를 비우는 의원들이 많아 본회의는 21일 개최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 같은 사정 때문에 여당의 계산도 복잡해졌다. 2차 상법 개정안과 방송 3법, 노란봉투법, 양곡관리법·농수산물 유통 및 가격 안정에 관한 법률 개정안 등 쟁점 법안이 줄줄이 예고된 상황에서 야당이 필리버스터를 이어가면 하루에 ‘한 건’씩 처리할 수밖에 없어서다. 일단 민주당은 4일 본회의에서 여야 비쟁점 법안을 우선 일괄 처리한 뒤 방송 3법 중 방송법 개정안 처리를 시도할 계획이다. 국민의힘에서는 과방위 간사인 최형두 의원이 필리버스터 첫 주자로 나설 것으로 알려졌다.
당 원내지도부는 야당을 설득하는 한편 8월 임시국회에서 우선 처리할 법안을 정하기 위한 내부 논의를 이어갈 계획이다. 양곡관리법·농안법처럼 상임위에서 여야가 합의한 법안은 필리버스터 없이 통과할 수 있도록 협의하되 협의가 어려운 법안은 하루 1건이라도 강행 처리를 시도한다는 방침이다. 이를 위해 21일 이후 본회의가 매일 열릴 수 있다고 보고 이 기간 당 소속 의원 전원에게 비상대기 지침을 내렸다.
야당은 필리버스터 전략을 활용해 법안 처리를 최대한 지연하면서 추가 협의를 통해 각 법안의 수정을 노린다는 계산이다. 민주당이 완강한 입장을 보이고 있지만 필리버스터를 통해 ‘다수 여당의 독주’ 프레임을 구축해 반대 여론을 이끌어낸다면 법안 수정을 위한 소정의 협상력을 확보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송 비대위원장은 “쟁점 법안 처리를 위한 제일 좋은 방안은 여야가 논의해 합의 처리하는 것”이라며 “앞으로도 (여당과) 계속 소통하면서 의견 차를 좁혀나갈 생각이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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