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 5일 공인회계사 합격자 발표로 각 회계법인이 신입 회계사를 맞이하는 시즌이 왔다. 인공지능(AI)의 출현으로 위협받는 직업 1위에 회계사가 꼽혔다는 얘기도 있는데 공인회계사에 도전하려는 대학생들은 최근 더 늘어난 느낌이다. 대부분의 일자리가 AI로 위협받는 것은 사실이지만 ‘과연 회계사라는 직업이 미래에 사라질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디지털 기술과 AI가 도입되면서 회계사의 업무였던 단순 입력, 계산, 확인 등은 빠르게 사라지고 있다. 기존의 디지털 기술로도 많은 단순 업무가 제거됐으며 현재는 AI를 기반으로 한 감사 시스템과 다양한 AI 에이전트 및 애플리케이션의 개발·활용으로 업무 효율성이 대폭 높아졌다.
기업의 회계 시스템 또한 전사적자원관리(ERP)를 통해 인간의 개입이 줄어들고 있다. 회계감사 역시 입력된 자료의 정확성 확인과 계산 검증 및 조서 작성은 AI로 대체되고 회계사의 역할은 회계기준에 따른 논리와 확인된 자료에 대한 이해, 검증 기술의 타당성, 이를 이용한 추론과 판단에 집중될 것으로 보인다.
새롭고 다양한 업무들도 생겨나고 있다. 대용량 데이터 처리 능력을 통해 분석 도구를 만들고 AI로 각종 계약 분석과 필요한 재무제표를 작성하며 각 사업장의 이상 징후를 감시하거나 거래처별 신용분석도 AI가 담당한다. 인수합병(M&A)에서는 기존 실사 보고서를 넘어 인수 대상 회사의 이익 변동 내역을 실시간으로 분석하며 AI를 통한 M&A 매칭을 수행한다. 이러한 업무를 위해 회계사들은 전통적인 회계·재무 지식뿐 아니라 AI를 이용한 데이터 분석과 활용 능력, 이를 바탕으로 한 판단 능력을 갖춰야 한다. 그래서 최근 회계법인의 채용 기준에도 이런 요건이 반영되고 있다.
현대사회에서 회계사는 신뢰의 상징이었다. ‘자본시장의 파수꾼’이라는 또 다른 이름으로 신뢰를 얻기 위해 노력해왔다. 최근 글로벌 회계 컨설팅 그룹인 PwC가 공개한 전략 슬로건을 봐도 회계 업계가 얼마나 신뢰를 중시하는지 알 수 있다. ‘트러스트 인 왓 매터스(Trust in What Matters)’는 신뢰를 기반으로 신뢰를 제공할 수 있는 서비스를 만들어가며 신뢰를 필요로 하는 곳에 PwC가 필요하다는 의미이다.
생각해보면 한국의 회계사도 신뢰를 기반으로 성장했다. 1960년대 국내 회계감사 제도의 초기 시절부터 회계사들은 주판알을 튕기며 회계장부가 정확한지 검증했고 신뢰도 있는 감사 보고서를 자본시장에 내놓았다. 1990년대 후반 IMF 경제위기 속에 회계사의 신뢰는 진가를 발휘했다. 해외투자가에게 한국 기업을 알리고 투자 유치가 성사되는 데 공헌을 했으며 그 결과 회계 업계는 큰 성장을 이뤘다. 이후에도 구조조정이나 투자 유치가 필요할 때, 그리고 해외 기업공개(IPO)를 비롯한 자본시장의 성장 과정에서 회계법인의 신뢰 있는 보고서는 큰 역할을 했다. 신뢰는 짧은 시간에 만들어지지 않기 때문에 정확한 분석과 판단을 할 수 있는 능력 또한 오랜 기간의 훈련과 수많은 사례를 통해 얻어진다.
AI가 회계사들의 단순 업무를 축소시켰지만 효율성을 높이면서 더 부가가치 높은 업무에 집중하도록 도와주고 있다. 미래에는 회계 업계의 AI 활용 정도에 따라 더 큰 시장이 만들어질 것으로 기대된다. AI가 지배할 앞으로의 자본시장에서도 신뢰를 주는 곳의 역할은 끝까지 필요할 것이다. 사회와 경제가 신뢰를 필요로 하는 곳, 그곳에 회계사가 서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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