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대규모 현지 투자를 진행 중인 현대차(005380)그룹과 LG에너지솔루션(373220)을 상대로 기습적인 불법체류자 단속을 벌이며 출장을 간 한국인 직원 300명 이상을 구금하면서 파장이 커지고 있다. 미국 투자 확대를 종용하면서 신규 공장 건설을 지원할 근로자들의 투입은 가로막는 ‘엇박자 정책’에 기업들은 크게 당혹스러워하고 있다. 미국 내 신규 생산 거점 마련에 필수적인 국내 전문가들이 현지 출장 등에 어려움이 커지면 투자 및 고용 창출은 둔화할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다.
국내 자동차·배터리 업계는 4일(현지 시간) 미국 이민세관단속국(ICE)과 국토안보수사국(HSI)이 현대차그룹과 LG에너지솔루션의 조지아 합작공장(HL-GA 배터리 회사) 건설 현장에 대한 압수수색을 단행하자 촉각을 곤두세우며 바짝 긴장하고 있다. 관세를 앞세워 미국 투자 확대를 독려했던 트럼프 정부가 대규모 공장 건설 현장을 급습해 한국인 츨장자들을 포함한 수백 명의 현지 직원들을 구금했기 때문이다.
특히 업계에서는 미국이 현지 투자 기업의 근로자 일부에 대해 우회적 방식으로 미국에 체류할 수밖에 없게 해놓고 대대적인 단속을 실시해 곤혹스럽다는 반응이다. 국내 기업이 미국 내 신규 공장 건설을 위해 직간접 고용한 근로자 및 전문가를 현지에 파견하려면 전문직 비자인 ‘H-1b’가 필요하다. 하지만 H-1b 비자는 미국에서 연간 약 8만 5000명에 한해 제한적으로 발급된다. 실제 미 이민국에 따르면 2024~2025 회계연도의 H-1b 비자 추첨에 등록한 인원은 총 47만 9953명으로 당첨 확률이 18% 수준에 불과했다.
업계 관계자는 “미국 노동부와 이민국 승인을 받고 추첨에 성공하더라도 영사 인터뷰 등 남은 절차가 많은 탓에 실제 미국 입국까지는 신청부터 7개월 넘는 시간이 걸린다”며 “취업 비자는 ‘하늘의 별 따기’만큼 어렵다”고 지적했다. 이 때문에 기업들은 현지 회의 참석이나 단기 출장에 B1 비자나 무비자인 전자여행허가(ESTA)를 활용해 미국에서 업무를 보고는 한다. 특히 트럼프 정부 들어 B1 비자 발급도 장기간이 소요돼 편법이지만 ESTA 활용이 적지 않은 실정이다.
미국 10개 지역에 60조 원가량을 투입해 공장을 건설 중인 국내 배터리 3사는 비상이 걸렸다. 미 당국의 급습 대상이 된 LG에너지솔루션뿐 아니라 삼성SDI와 SK온도 신규 공장 설립을 위해 생산라인을 신설해본 경험 있는 인력들이 계속 투입돼야 하는데 비자 문제를 한층 정교하게 처리해야 해 공사 일정에 차질이 불가피한 실정이다. LG에너지솔루션은 현대차와 5조 7000억 원을 투입해 만들기로 한 조지아 합작공장 건설을 이날 일단 중단했다.
LG에너지솔루션은 또 연말까지 일본 혼다와의 합작공장을 완공하고 내년 상반기에는 애리조나 퀸크리크 단독 공장 건설을 마치고 생산에 돌입할 계획이었다. SK온도 포드와 합작한 테네시 1공장 및 현대차그룹과 짓는 조지아 공장을, 삼성SDI는 제너럴모터스(GM)와의 합작공장 등을 2027년 가동할 예정이었다.
인력 수급에 어려움을 겪게 돼 반도체·자동차·조선 업계의 미국 투자 계획에도 타격이 예상된다. SK하이닉스(000660)는 미국 인디애나주에 38억 7000만 달러(약 5조 4000억 원)를 투자해 고대역폭메모리 패키징 공장을 짓고 있다. 2028년을 가동 목표로 잡았는데 가뜩이나 미국 내 물가 상승으로 비용 부담이 큰 상황에서 트럼프 정부의 비자 규제 강화로 인해 공장 건설 인력 확보마저 한층 어렵게 됐다.
현대차그룹도 3만 대 규모의 로봇 공장을 미국에 건설할 계획인데 초기부터 인력 수급에 문제가 생기면 전체 투자 일정이 무기한 지연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아울러 현대차그룹이 루이지애나주에 건설하려는 일관제철소와 한화·HD현대 등이 ‘마스가(MASGA)’를 기치로 투자를 늘리려는 미국 내 조선소 운영도 상당한 차질이 우려된다.
다만 기업들은 투자 속도가 느려지면 미국이 기대한 일자리 창출 등도 줄줄이 연기돼 향후 인력 확보나 비자 문제에 숨통이 트일지 주목하고 있다. 현대차그룹과 SK하이닉스, 삼성전자(005930), 국내 배터리 3사 등이 공장 건설로 창출할 미국 내 일자리는 10만 명을 훌쩍 넘을 것으로 업계는 추산하고 있다. 이들 기업의 공장 건설이 늦어지면 미국 측 협력 업체들 역시 피해를 입을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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