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일 오후 3시 서울 서대문구의 한 어린이 공원. 하굣길 학생들은 달궈진 미끄럼틀과 그네를 지나쳐 서둘러 집으로 향하는 모습이었다. 이날 서울의 낮 최고 기온은 32도까지 올랐다. 연희초에 다니는 박 모(9)군은 “밖에 있으면 금방 땀이 나서 집에서 게임하는 게 더 재밌다”며 웃어 보였다.
폭염과 집중호우가 반복되는 등 변덕스러운 날씨가 계속되는 가운데 아이들의 ‘놀이권’이 위협받고 있다. 이상기후가 일상화된 만큼 아이들이 뛰어 놀 수 있는 공공형 실내 놀이터 등의 확충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7일 행정안전부 어린이놀이시설 통계에 따르면 전국 8만 4394개 놀이시설 중 7만 8122개(92.57%)가 실외에 설치된 것으로 나타났다. 공공 키즈카페 등 실내 시설은 6272개(7.43%)에 불과했다. 실외 시설이 대부분이지만 더위와 폭우의 영향으로 바깥 활동은 갈수록 줄어드는 추세다. 폭염이 이어지자 지난 7월 서울시교육청은 학생들의 야외 체육활동 금지를 권고했다.
이상기후로 실외 활동이 어려워진 아이들은 대안으로 키즈카페를 찾고 있다. 서울시는 공공형 키즈카페의 누적 방문자 수가 2022년 12월 1만 753명에서 올해 3월 말 65만 4975명으로 급증했다고 밝혔다. 민간에서 운영하는 키즈카페까지 포함하면 방문자 증가 폭은 더 클 것으로 예상된다. 8세 여아 학부모 박민정 씨(32)는 “유튜브 시청보단 신체 활동이 건강에 더 좋을 것 같아 날이 더울 때는 키즈카페에 자주 온다”고 전했다.
그러나 민간 키즈카페는 높은 이용료 탓에 ‘모두를 위한 놀이시설’로 보기는 어렵다. 실제 서울 강남구의 한 키즈카페는 2시간 이용료가 2만 원에 달한다. 부모 입장료를 따로 받는 곳도 많다. 자녀가 둘인 부가족이 키즈카페 내 식음료 시설 등까지 이용하면 이용료가 10만원에 넘는 경우도 생긴다. 반면 서울형(공공) 키즈카페는 2시간 당 2000원에서 최대 5000원으로 민간의 10분의 1 수준이다.
그나마 저렴한 공공 실내 놀이터는 대부분 수도권에 몰려 있어 지역별 편차도 크다. 서울에는 현재 공공 키즈카페 93개소가 운영 중이며 180개까지 확대될 예정이다. 경기에도 ‘아이사랑놀이터’ 92개소가 마련돼 있다. 반면 주민등록 인구통계 기준 전국에서 세 번째로 아동 수가 많은 경남은 12개소에 불과하다. 대구에는 3개, 부산에는 2개가 설치돼 있다. 부산에서 거주하는 A 씨는 “시에서 운영하는 키즈카페가 있다고 듣긴 했지만 너무 멀어서 잘 이용하지 않는다”고 한숨 쉬었다.
전문가들은 기후위기에 대비해 공공형 실내 놀이터를 확충하는 동시에 청소년도 이용할 수 있는 체육시설을 늘려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기상청이 4일 발표한 ‘2025 여름철 기후특성’에 따르면 올 여름철(6~8월)의 전국 평균 기온은 25.7도로 평년보다 2.0도 높았다. 강수량은 적었지만 전남 함평, 인천 옹진군 등에선 시간당 140㎜가 넘는 국지적인 폭우가 반복되기도 했다. 정수종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는 “도시 숲 등을 적극 활용한 야외 놀이터를 만드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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