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치가 세계인의 식탁에 오르는 시대다. 단순한 발효 음식에서 한국을 대표하는 문화유산이자 ‘K푸드’의 상징으로 자리 잡기까지 그 저변에는 오랜 세월을 김치 연구에 바친 장인이 있다. 바로 2014년 농림축산식품부로부터 ‘김치 명인(대한민국식품명인 제58호)’으로 지정된 이하연 봉우리영농조합법인 대표다. 서울 역삼동과 을지로에서 한정식당 ‘봉우리’를 운영하는 그는 사기 피해로 김치 공장을 잃고도 다시 땅을 파 항아리를 묻으며 김치 연구의 길을 걸었다. 김치의 날(11월 22일)을 앞둔 20일 만난 이 대표는 “김치는 세계인이 사랑하는 음식”이라고 뿌듯해 하면서도 “요즘 젊은 사람들이 김장을 안 담그는 것보다 안 먹는 게 더 걱정”이라며 씁쓸해했다.
젊은 시절부터 김밥·만두 장사 등 외식업에 몸담았던 그가 김치 사업에 뛰어든 것은 2000년대 초다. 이 대표는 “2003년 강릉 폭우로 배추 농사가 흉작이었을 때 김치를 수입한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며 “준비 없이 인수한 김치 공장은 결국 사기 피해로 문을 닫았지만 김치를 포기할 수 없었다”고 회상했다. 9남매인 그는 어린 시절 어머니가 손수 김장을 하던 기억과 추억을 떠올리며 경기 남양주시의 텃밭에 항아리를 묻고 직접 김치를 발효·연구하는 데 집중했다.
김치 명인으로서 김치의 날 제정도 주도했다. 2018년 대한민국김치협회장으로 출마하면서 김치의 날을 만들겠다고 공약했고 회장 당선 후 국회 등을 찾아다니며 읍소했다. 이 대표는 “2020년 국회 본회의를 통과해 11월 22일이 공식적으로 김치의 날이 됐다”며 “22일은 김치의 재료가 모여 22가지 효능을 낸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김치는 이제 음식의 범주를 넘어 한국의 대표적인 문화유산으로 평가받는다. 이에 대해 그는 “우리 선조들의 지혜가 집약된 발효과학의 결정체이기 때문”이라며 “김치는 발효식품에서 바이블과 같은 존재라고 볼 수 있는데 이제는 세계인이 사랑하는 음식이 됐다”고 강조했다.
이 대표가 말하는 ‘좋은 김치’의 기준은 명확하다. 설탕·사이다·요구르트 등을 넣은 김치는 제대로 된 김치가 아닌 단맛에 불과하고 김치의 본래 매력은 깊은 산미와 탄산감이라는 것이다. 그는 “요구르트의 유산균은 장까지 가면서 많이 죽지만 김치 유산균은 장까지 살아서 간다”며 “김치를 잘 먹으면 건강해질 수밖에 없다”고 김치 유산균의 효과를 강조했다.
명인으로서 그는 김치 발효에 대한 명확한 철학을 가지고 있다. 이 대표는 “간과 온도, 시간이 진정한 김치를 완성한다”며 “직접 연구를 해보니 김치가 가장 맛있게 익는 온도는 4도다. 김치냉장고 온도도 4도로 맞추는 게 좋다”고 조언했다. 요즘 젊은 세대가 김치를 담그는 대신 구매하는 현상에 대해 그는 “자연스러운 변화”라면서도 김치 소비량 자체가 줄고 있다는 점에 대해 우려했다. 이 대표는 “20년 전에는 1인 하루 평균 250g을 먹었는데, 지금은 50g 정도에 불과하다”며 “패스트푸드와 밀키트 등 먹을 게 많아져서 그렇겠지만 더 큰 문제는 많은 식당이 중국산 김치를 쓰고 그 김치에 첨가물까지 들어간다는 것”이라고 걱정했다.
세계 각지에서 김치가 현지화되는 현상에 대해 이 대표는 “오리지널을 먼저 알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최근 영국에서 김치 강의를 했을 때 영국인들은 젓갈을 입에 맞지 않아 했음에도 전통 김치에는 젓갈이 들어간다고 가르쳤다”며 “그다음에 젓갈이 싫으면 소금으로 대체해도 된다고 알려줬다”고 전했다. 전통적 방식을 전수하되 적절하게 현지화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그는 최근 ‘별별김치’라는 책을 출간했다. 김치 78종, 김치요리 10종 등의 레시피가 담겨 있다. 초보자와 셰프 등 누구나 참고할 수 있는 이 책은 식품영양학 전문가들로부터 ‘정확한 기록과 김치의 깊이를 담은 백과사전’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인터뷰 말미에 왜 김치에 대해 애착을 갖고 평생 연구하는지를 묻자 그는 “기억 때문”이라고 했다. 이 대표는 “어머니의 손맛, 가족의 식탁, 겨울의 김장 등 그 기억을 지키는 게 제가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며 “전통을 계승·발전시키라고 정부가 명인으로 지정해준 것이기 때문에 기억과 문화유산을 지키는 데 더욱 힘쓰겠다”고 말했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mykj@sedaily.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