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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간기업의 참여·규합을 외치는 NASA주변소리들…

캘리포니아 공대 우주과학자인 그레그 델로리는 어렸을 때 칼 세이건의 책들을 탐독했다. 현재 그는 태양계내에 존재할지도 모르는 물과 생명체를 찾고 있다. 제프 그리슨은 캘리포니아 공대에서 리차드 파인만으로부터 직접 암석 채집법을 배웠다. 현재 캘리포니아 소재 로켓 회사에 다니는 그는 회사에서 제작한 엔진에서 액화산소를 연소시키고 있다. 알렉산더 폴레스척은 우주정거장 미르에서 6개월을 지낸 뒤 인생이 바뀌었다. 현재 이 전직 러시아 우주비행사는 조국의 숭고한 우주개발 목표와 자금 조달 능력 부족 문제를 놓고 씨름중이다.

이들은 우주 개척의 세 가지 비전을 보여 준다. NASA가 콜럼비아호 참사의 후유증을 극복하려 고군분투하는 사이 다음 단계의 우주 여행이 이미 시작되었다. 새로운 철학과 과제들을 중심으로 한 우주 시대를 외계를 이해하려고 하는 세이건파와 우주를 식민지화 하려는 오닐파, 그리고 우주에 먼저 가보는 걸 목표로 하는 브라운파 등 세 유형의 우주 탐험가들이 주도하고 있다고 스페이스 프론티어 재단의 릭 텀린슨은 말한다.

세이건파 : 올해말 코스모스 1호 발사
2004년 말쯤 세계 최초의 태양풍 추진 우주선인 코스모스 1호가 발사되면 다음과 같은 사건들이 전개될 것이다: 개조된 냉전시대의 대륙간 탄도 미사일이 잠수함에서 발사되어 러시아제 태양풍 우주선을 단 채 바렌트해 수면을 뚫고 솟아 오른다. 이 로켓은 시베리아 상공에서 가속되어 태평양 상공으로 치솟는다. 궤도 정점에서 엔진이 점화되면서 우주선이 외곽 궤도로 진입해 800㎞ 상공에서 압축공기 튜브에 의해 8개의 대형 삼각 돛들이 마술사의 모자에서 나온 비단 스카프처럼 펼쳐진다.

길이 12미터, 폭 10미터에 달하는 이 돛들은 사람 머리카락 1/20 두께의 알루미늄을 입힌 마일라로 제작되었다. 돛들을 활짝 펴면 이 우주선은 하늘에 떠있는 쌍돛대 범선이라기 보다는 거대한 데이지 꽃처럼 보인다. 지구를 5~10회 돈 다음 이 우주선은 캘리포니아 대학 우주 과학 관측소의 원격계측 안테나에 포착된다. 이 우주 활동 연구소에서는 그레그 델로리와 동료들이 이 우주선의 좌표를 추적한다. 제 위치에 도달하면 데이터가 전송되어 PC 화면에 나타난다.

이 우주선의 위치 추적을 담당하는 과학자들 중 한 명인 델로리는 이 우주선을 제작하고 조종하게 될 미션 오퍼레이션 모스크바(MOP)와 이번 실험 비행을 후원하는 친우주개발 단체인 행성협회 본부인 프로젝트 오퍼레이션 파사데나(POP)와 지속적인 연락을 취하게 된다.
이것은 유사한 디자인의 우주선이 “가정”이 아니라 “현실로” 지구 궤도를 벗어나 우주로 뛰어들 날을 예견하는 대단한 사건이다.

장거리 우주여행엔 태양풍 이용
작업용 바지와 검은색 티셔츠를 입은 35세의 델로이는 하스브로 액션 게임 배우 모형(우주선 별매)을 닮아 젊은 존 글렌 중령처럼 보인다. 그는 캘리포니아 대학의 실험지구물리학자로 고등학교 시절 과학 프로젝트가 우주왕복선 수행 실험으로 채택(1991년 델로이의 프로젝트가 실제 수행되었다)되었지만 별로 대수로워 하지도 않는 타고난 천재였다. 그의 하루일과 중에는 외계 행성의 지표 깊숙이 존재하는 물 탐사와 태양 분출물들이 화성과 다른 행성들에 미치는 영향을 탐지하기 위해 우주로 발사될 저주파 센서 개발도 포함되어 있다. 가라데 검은 띠 보유자만 아니라면 “기인”이라고 부르는 게 적절할 듯 싶다.

델로리는 태양풍 개념에 매료되었는데, 누군들 안 그랬겠는가? 첫 시작은 지구 개척의 핵심 역할을 한 항해였고 그 다음은 칼 세이건의 미망인인 앤 드루얀의 표현대로 “바람 타는 법을 배웠듯 빛을 타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태양풍 우주선은 돛에 부딪쳐 되돌아가는 태양광, 즉 광자들에 의해 추진된다. 광자들의 운동량 변화가 태양풍 우주선에 에너지로 전환되어 “추진력”을 제공한다. 일부 과학자들은 태양풍의 강도가 태양으로부터 멀어질수록 감소하기 때문에 장거리 항해를 위해서 궤도상에 태양광 레이저를 고정시켜 멀어지는 돛을 향하도록 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태양광 우주선 적용 논란
태양광 우주선은 이론상으로 은행의 예금이 복리로 불어나듯 속도가 증가해 결국은 핵 추진 보이저 1호 보다도 더 빨라지게 된다. 27년 전 발사된 보이저 1호는 그동안 130억㎞를 항해해 태양계 내의 모든 행성 궤도를 벗어나 우주상에서 인간이 만든 것으로는 가장 멀리 간 물체가 되었다. 일부 천문학자들은 태양풍 추진력이 화성으로의 인간과 화물 운송이나 행성간 여행 같은 먼 우주 탐사에 가장 큰 잠재력을 갖고 있다고 생각한다.

코스모스 1호는 이미 항공학 역사에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작년 여름 비행 100주년 기념 전시회 기간중 뉴욕시 록펠러 센터에 여러 개의 돛 중 하나가 내걸렸다. 라이트 형제 비행기와 아폴로 13호, 레드 스톤 로켓 복제본들이 이곳에 나란히 전시됐지만 태양풍 돛은 이들 모두를 압도했다.
하지만 축배를 들기에는 아직 이르다. 러시아 로켓 과학자 프리드리히 샌더가 1920년대에 태양풍에 관해 처음 글을 쓴 이후 NASA를 비롯한 어느 누구도 이 원리가 실제로 가능하다는 것을 입증하지 못했다. 코스모스 1호는 진공 상태에 가까운 우주에서 태양 흑점 폭발이나 우주선 자체에서 방출되는 불규칙한 기류로 인해 전혀 예기치 못한 방향으로 나아갈 수도 있다.

엔트로피 법칙에 위배
더구나 기본 원리가 확실하다고 보장할 수도 없다. “이론상으로 돛의 압력은 저항력보다 10배가 큽니다”라고 델로리는 말한다. 하지만 저명한 코넬 대학 천체물리학자인 토마스 골드는 이것이 터무니없는 얘기라고 생각한다. 골드는 태양풍 개념이 물리학의 기본 법칙인 열역학의 엔트로피 법칙에 위배된다고 믿는다. 그의 견해로는 광자만으로는 우주선이 전진할 수 없다.

하지만 행성협회 이사인 루이스 프리드마는 태양광의 압력이 1860년대에 이미 제임스 클럭 맥스웰에 의해 입증됐으며 직접 측정되어 수많은 우주 탐사에서 활용되었다고 주장한다. 그 때문에 코스모스 1호로 실험을 하려는 것이다. 이 우주선은 멀리까지 가지도 않을 것이고 특별히 염두에 둔 목적지도 없다. 코스모스 1호에 부딪친 태양광이 이 우주선의 궤도를 바꾸어 놓을 정도로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지 보여주기 위한 실험일 뿐이다. “사람들은 코스모스 1호가 드넓은 망망대해로 나아가는 상상을 하는데 실제로는 파도가 몰아치는 바다로 고무보트를 타고 나가는 것과 같습니다”라고 델로리는 말한다. “표류하는 것보다는 좀 더 빨리 해안에 도착할 뿐입니다. 마치 콜럼부스가 출항했을 때와 비슷하죠. 차이가 있다면 코스모스 1호는 항구에서 출발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담배갑 크기 화성용 마이크
델로리는 화성 극 착륙선에 실려 5년 전 기억에서 사라진 담배갑 크기의 탐지기인 화성용 소형 마이크를 제작한 팀의 팀장으로 가장 잘 알려져 있다. 이 마이크는 착륙선이 실종되지만 않았더라면 화성의 소리를 최초로 지구로 전송함으로써 화성 “체험”을 한 차원 높은 수준으로 끌어올렸을 것이다. 이 착륙선은 1999년 화성 남극에 착륙 직전 원인 불명으로 신호가 끊겼다.

세 부류의 우주 개척 그룹중 델로리는 세이건파로 책과 TV 쇼 코스모스, 영화 컨택트로 우주를 일반인들에게 널리 알린 천문학자 칼 세이건의 우주 탐사 정신의 영향을 받았다. 칼 세이건은 우주 탐사가 인류의 족적을 남기기 위한 것이 아니라 원대한 의문들에 대한 대답을 찾으려는 실존적 욕구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세이건파의 특징은 경외심이다. 이들은 탐사 자체에 의미를 두고 인간의 이득을 위해 우주를 이용하는 것에 반대한다. “이익만이 궁극적 목적이었다면 아마 여기까지 오지 못했을 겁니다”라고 고인이 된 남편의 유업을 이어가고 있는 드루얀이 말한다. 그녀의 회사인 코스모스 스튜디오는 400만 달러에 달하는 코스코스 1호 실험 비용을 대고 있다. “즉각적인 수익이 나지 않는 연구도 자금 지원을 해야 합니다. 과학을 조금이라도 접해 본 사람이라면 쉽게 알 수 있듯이 한 가지를 추구하다 보면 에상치 못했던 다른 것들을 발견하게 되는 경우가 자주 있기 때문입니다.”

코스모스 1호 프로젝트
코스모스 1호 프로젝트는 세이건파들의 특징들이 그대로 반영되어 있다: 국제적 협력이나 환경친화적 추진 방법, 그리고 웹을 통해 코스모스 1호를 추적하며 수백만 명이 가상의 우주 탐험을 해 볼 기회를 제공하는 점이 그렇다. 한때 미국의 도시를 겨냥했던 러시아 로켓이 코스모스 1호를 실어나르게 한 점을 세이건은 특히 좋아했다. 하지만 결국 코스모스 1호 실험이 성공한다 하더라도 뒤를 이어 수도 없이 많은 문제들이 놓여 있는데 세이건파는 세이건파답게 이들을 모두 떠맡을 것이다.

태양풍 우주선을 이용해 행성간 임무에 필요한 보급품을 운반한다는 생각에는 많은 문제점들이 있다. 무엇보다도 돛이 너무 크다보니 우주의 파편들에 의해 찢겨질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델로리는 그런 문제를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다. 가까운 시일 내에 인류가 대규모로 우주로 나갈 일을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세이건파는 대체로 무인탐사가 유인탐사에 비해 안전성과 비용, 실용성 면에서 낫다고 생각한다. 인간 승무원들은 천체물리학자 제임스 반 알렌이 1992년 다소 논란을 빚은 강연에서 말했듯 “효용성이 의심스럽기 때문에 특수 분야에서만 선택하는 것이 좋다.” “언젠가는 유인탐사를 하게 되겠지요”라고 드루얀이 말한다. “하지만 당분간은 로봇 탐사가 나을 겁니다. 새로운 분야거든요. 우리들 대부분이 초보 아마추어들이죠. 일반인의 관심을 끌려고 목숨을 무릅쓰는 것은 마치 옛날 검투사들처럼 인간의 생명을 지나치게 경시하는 것이 아닌가 싶어요.”

인간·로봇이 합심하는 탐사
델로리는 아직 가상 탐사의 잠재력이 발휘되기 시작하지 않았다고 믿는다. “화성 패스파인더를 한 번 봅시다”라고 그가 말한다. “탐사선을 조종하는 사람은 3-D 보호경을 써야 합니다. 시간과 자금이 넉넉하다면 인간의 귀 기능을 흉내내 소리에 반응하고 직접 소리를 감지하는 능력을 갖춘 송화기 장치를 추가할 수 있을 겁니다. 표면으로부터의 소리를 녹음하고 3-D 연사 촬영 카메라가 있으면 지상의 사용자가 가상현실 체험으로 촬영 내용을 되돌려 볼 수 있을 겁니다.”

“인간 탐사 주창자들은 로봇의 역할을 경시하는 경향이 있습니다”라고 그가 덧붙인다. “로봇은 바보같고 느린데다 일일이 지시를 해줘야 한다는 겁니다. 그래도 로봇에겐 부당한 평가라고 생각됩니다.” 델로리는 인간과 로봇이 합심해 효과적으로 태양계를 탐사하는 미래의 우주 프로그램을 상상한다. 인간과 로봇의 시너지 효과로 과학적 결실은 극대화 될 것이다. 로봇이 행성 환경에 관한 자료를 수집하는 정찰 활동을 하고 나면 인간이 파견되어 후속 탐사 작업을 하면서 가장 흥미있는 목표물에 대해 세부조사를 하는 것이다. 그는 달 너머까지 인간의 탐사를 생각하고 있지만 일단 로봇이 과학적 기반을 다져놓은 후라야만 한다. 그러면 탐사에 나설까? 아마 그럴 것이다.

독특한 우연의 소산물
사실 그는 NASA의 우주비행사 후보 프로그램에 지원했다. 하지만 어찌 되었든 거대한 그림을 가장 잘 볼 수 있는 곳은 바로 이곳, 대단히 중요한 미지의 문제들 중심인 것이다. “우리는 누구일까요?”라고 그가 다소 어렵게 묻는다.'" 우리는 독특한 우연의 소산물일까요 아니면 보다 웅대한 계획의 일부일까요?” 그의 시선이 책상 위의 화성 모형에 머무른다. “사실 일요일에 예배드리러 가느니 전 차라리 화성에 미생물이 있는지, 그리고 인간의 DNA와 상당히 유사한지 알아낼 겁니다. 그런 다음 우주의 모든 별들을 바라보며 깨닫게 되죠. 뭔가 더 큰 의도가 있음을 말이죠.”

오닐파 : 7개 민간 로켓회사들의 고투
캘리포니아가 대체 우주 기구의 산실이라면 모자브 사막은 침상에 해당한다. 록히드 마틴사의 불운한 10억 달러짜리 X-33 궤도 우주비행선이 먼지를 뒤집어 쓴 채 놓여 있는 에드워드 공군기지에서 불과 몇 킬로미터 밖에 안 떨어진 이곳에서 일곱 개의 민간 로켓 회사들이 사업을 시작했다. 가장 유명한 회사는 물론 스케일드 콤포지트사인데, 이 회사 관리인인 버트 루탄은 2주만에 우주 비행을 2차례 하는 최초의 민간 항공기에 수여되는 1천만 달러의 X상 수상 유력 후보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하지만 이보다 덜 알려진 XCOR 에어로스페이스에서도 연구가 한창 진행중이다.

XCOR사가 입주해 있는 특징없는 건물은 1947년 척 예거가 “매혹적인 글레니스”를 몰고 최초로 음속을 돌파했을 때 흔들린 적이 있는데 어떤 의미에서 보면 사정없이 밀어붙이는 사장 탓에 아직도 흔들리고 있는 셈이다. XCOR의 공동 설립자이자 사장인 제프 그리슨은 예전에 인텔사에서의 근무 강도가 무색할 정도로 연구 일정을 유지하고 있다. 오늘도 그는 14시간의 일과를 숫자와의 씨름으로 시작해 XCOR이 개발중인 ㅜ주비행기 제러스의 배터리 무게를 줄이는 데 골몰해 있다. 그는 컴퓨터를 들여다 보면서 밀폐용 그릇들을 뒤져 저녁을 찾으면서 부스러기를 흘려 사무실에 돌아다니는 쥐가 먹지 않도록 조심한다.

낙천주의자들의 모임
새로 고용한 랜달 클래그가 머리를 불쑥 디민다. 눈동자에는 핏발이 서 있고, 말은 웅얼거림으로 들린다. “나 녹초가 됐어.” “아직 일할 시간이 많이 남았는데”라고 그리슨이 쾌활하게 말한다. “시체도 일을 하나?” “필요한 곳에 전기를 흘리면 될걸.”
그리슨은 37세의 나이에 비해 늙어 보인다. “급하게 살아서 그렇죠”라고 그가 말한다. 고지대 사막에서 도망자처럼 돌아다녀도 그의 피부는 까맣게 타지 않고 일곱 시간동안 훈제한 송아지 갈비살처럼 분홍빛이 돈다. 매서운 바람에 도로의 중앙선이 지워져 나가고 영화관이나 변변한 식당조차 없는 마을에서 할 것이라고는 일 밖에 없다.
이곳이 유배지라는 데 그리슨과 팀원들 모두가 전적으로 공감한다. 관심을 빼앗길 만한 게 아무것도 없다. 이들이 타고난 낙천주의자들로 이루어진 팀이라는 점은 컨셉의 성패에 개의치 않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팀 창립 멤버인 월트 앤더슨은 프로젝트에 대해 자신감을 잃고도 자비로 3천만 달러를 쓴 후에야 포기했다. 그리슨은 로톤의 실패를 실패로 생각하지 않는다. 앤더슨의 두툼한 지갑 덕분에 그는 서부지역을 샅샅이 뒤져 인재들을 찾아내 모자브 사막에 모이도록 할 수 있었다. 그들은 과거에 자신들이 익숙했던 방식과 다르게 일을 해야 하는데도 아직 이곳에 남아 있다.

부품구입시 원가절감에 집중
스스로 모든 걸 알아서 해야 하는 XCOR의 문화는 NASA의 로터리 로켓 프로젝트처럼 풍족한 환경과는 정반대이다. 이곳의 남자들과 홍일점 팀원들은 녹이 슨 자동차를 몰고 다니고, 필요한 부품을 찾아 eBay를 뒤진다. “록히드사가 X-33용 환경평가에만 들인 비용이 우리가 쓴 비용 전체보다 많습니다”라고 수석 엔지니어 댄 디롱이 말한다. XCOR의 첫 시험 로켓-비행기인 EZ-로켓의 점화기는 2달러짜리 기계톱/잡초 제거기용 점화 플러그이다. “만약 NASA에서 한다면 점화 플러그로도 충분할 것을 자체 제작했을 겁니다”라고 중고 장비 이용을 주장했던 XCOR의 전자 기술자 마이크 매시가 말한다. “우리는 그냥 점화 플러그를 씁니다.”

제러스는 여러 가지 이유 때문에 X상 후보가 되기 어렵지만 그리슨에게는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그는 원가를 절감할 방법에 집중하고 있다. 저렴하고, 무해하며, 유지비용이 싸고, 고장율이 낮아서 호텔 연회장에서 선보일 만한 로켓을 만드는 게 목표이다. (실제로 2000년 애리조나주 스콧대일 소재 홀리데이인 호텔에서 열린 한 컨퍼런스에서 XCOR이 그렇게 했던 적이 있다.) 그런 다음 전체 장비를 단계적으로 지구저궤도부터 우주까지 세분화하는 것이다.

스페이스 어드벤처사와 계약
XCOR은 이미 스페이스 어드벤처사와 계약을 체결해, 이 회사의 웹사이트에 경쟁제품인 러시아제 코스모폴리스와 함께 저궤도 진입용 비행선으로 제러스가 올라 있다. “먼저 개발을 끝내는 측이 승객들을 태우게 될 겁니다”라고 그리슨이 말한다. “현재의 X상 만큼이나 보상이 큰 셈입니다.”

최상의 시나리오는 버트의 형인 딕 루탄이 제러스의 시험 비행을 맡아 척 예거처럼 멋진 모습으로 유료 고객에게 껌을 건네는 일이 5년 내에 실현되는 것이다. NASA의 기준으로 보면 이 정도 개발기간은 너무 짧다. 하지만 NASA에는 엔지니어들에게 인센티브를 부여하는 제도가 없다. “이익은 지금까지 우주 산업에 적용된 적이 없는 강력한 동기입니다”라고 그리슨은 말한다. “지금껏 우리가 보아온 발전과 이 사업으로 사람들이 돈을 벌 경우 보게 될 발전간의 차이는 거의 무한대에 가깝습니다.”

우주 대규모 식민지화
1977년 자신의 저서 하이 프론티어에서 이상적 성향의 프린스턴 대학 물리학자 제러드 오닐은 이렇게 비전을 제시했다: 소규모 민간 기업들이 우주로의 활로를 개척하면서 인류에게 혜택을 가져다 줄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건 전혀 정부의 관여없이 이루어진다는 점이다. 1992년에 사망한 오닐은 우주의 대규모 식민지화가 단순한 가능성 문제가 아니라 불가피한 것이라고 믿었다. 그는 궤도상의 거주지와 지구에 가까운 행성과 달 표면에 완벽한 구조의 공동체가 거주하는 안을 제안했다. 이러한 개척지는 지구에서 사용될 값비싼 외계 자원 채굴자들에게 가장 알맞은 거주지가 될 것이다.

XCOR을 비롯한 유사한 다른 업체들은 오닐파의 정신을 반영한다. 끈질긴 오닐파에게 민간인의 우주 여행이 “30년 밖에 안 남았다”고 늘상 되뇌이는 NASA의 말은 허풍에 불과하다. 인터넷 뉴스그룹의 한 기고가는 최근 이렇게 썼다: “NASA 양반들, 30년이 다 됐수다.” 게다가 미국 연방항공청의 비잔틴 개발 및 발사 규정은 보통 사람들을 영원히 지상에 묶어두는 방법이 아닐까 싶을 정도이다.
“오닐이 “여러분은 우주에 가보아야 합니다”라고 했다고 오닐파의 대표 단체인 스페이스 프론티어 재단의 릭 텀린슨 회장은 말한다. “도구와 상상력, 그리고 가용 가능한 자원을 이용하십시오.”

어떤 측면에서는 지구 저궤도로의 저렴하고 신뢰할 만한 접근 방법을 제대로 찾아내는 게 달과 화성간의 탐사 우선 순위 문제와 같이 뒤이어 대두될 중대한 결정에 대해 타협해야 하는 수고를 사전에 덜어 줄 수도 있다. “둘 다 막대한 비용이 들기 때문에 둘 중 한 가지만 선택을 해야 한다고 가정을 하고 있지만 저 같으면 ‘둘 다 합시다’라고 할 겁니다. 각각의 비용을 줄여 둘 다 할 수 있도록 하면 되거든요”라고 디롱이 말한다.



맥주병크기 엔진서 마하1까지
그리슨도 동의한다. “전 사람들이 우주 비행을 위해 우리가 투자해야 하는 비용 이상을 지불할 거라고 확신합니다. 얼마나 더 지불을 할까요? 조금씩만 더 지불해도 위성 발사나 극미중력 실험 수행 비용보다 우주 비행 희망자들이 내는 돈이 더 많을 겁니다. 이쯤되면 확실한 사업인 셈이죠. 분명히 말씀드리지만 사람들은 우주 여행을 간절히 원하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회의적인 투자자들과 실패를 거듭하는 장비 실험에도 불구하고 엉뚱한 꿈을 꾸고 있는 XCOR의 팀원들은 너그럽게 용서를 받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들의 꿈 속에는 매서운 바람이 몰아치는 외지나 계속되는 밤샘 작업, 초간편 저녁 식사 등은 배제되어 있다. 그리슨은 아직도 인텔에 있는 동료들로부터 언제든 그만두고 다시 돌아오고 싶으면 얘기하라는 말을 늘상 듣는다. XCOR의 EZ로켓은 만화에나 나옴직할 정도로 작지만 시험 비행차 아스팔트에 잡아 매자 끈을 당기며 격렬한 기세로 전진하려 했다. 40온스짜리 맥주병만한 엔진에서 마하1까지 가속시킬 수 있는 추진력이 나오지만 비행기 구조가 이를 감당해내지 못한다. 모자브 사막 활주로에서 시험비행차 EZ로켓에 점화를 하기 전에 팀원들은 격납고에서 사전 테스트를 한다.

실용주의와 대담함의 조화
클래그가 종합 확인표에 나온 278가지 중간 점검 과정, 즉 헬륨 하중과 액화산소 하중 확인, 착륙후 활주 점검, 비행전 추진 기능 등을 꼼꼼히 확인하느라 시간이 다소 걸린다. “여기 나온대로 모두 점검하면 시험 비행이 성공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며 이 회사 설립 멤버인 덕 존스가 우연히 점검 목록을 들여다 보고는 말한다.

이곳에서는 실용주의와 대담함이 묘하게 균형을 이루고 있는데, 민간 로켓 개발업자들이 바로 이런 상황에 처해 있다. 그리슨은 뜨거운 공기를 내뿜는 대신 연료를 엔진에 불어넣을 수 있도록 해보이겠다고 공언했는데 터무니없는 주장만은 아니다. 이곳의 팀원들은 결코 괴짜로 취급받고 싶어하지 않는다. 아마 이 때문에 이들은 공개석상에서 본인들의 비전에 관한 얘기를 자제한다. 하지만 오해하면 안된다. 이들은 본인들이 원해서 우주선 개발 사업에 뛰어든 것이다. 목적지는 어디일까? “중요치 않다”고 클래그는 말한다. “그냥 위로 가는 겁니다. 왜냐고요? 버즈 앨드린 말처럼 ‘질문이 필요한 문제는 대답을 이해하기 어렵거든요.” 인간이 우주 여행을 하고 싶어하는 숱한 이유들 중에서 오닐파에게는 두 가지만이 중요하다.

인류 멸종을 막는다
첫 번째는 인류 멸종을 막는 것이다. XCOR 엔지니어 알레타 잭슨의 표현대로 “만약 공룡 멸종을 초래한 것 같은 대재난이 발생하면 인류가 전멸”하기 때문에 인류의 유전자를 가급적 널리 퍼뜨리는 게 좋다. 두 번째 이유는 명확한 목적지이다. 인간은 천성적으로 탐사하고, 정복하고, 정착한다. 아무도 가보지 않은 곳으로 대담하게 진출해 뿌리를 내린 후 브링햄 영처럼 “바로 이곳이다”라고 선포하는 게 인간의 습성인 것이다. 이들은 세이건파처럼 묵상만 하지 않는다. “칼 세이건처럼 관찰만 하는 것도 좋은 일입니다”라고 잭슨이 말한다. “하지만 저는 기질상 엔지니어이기 때문에 아무 것도 하지 않은 채 앉아만 있는 것은 체질에 맞지 않습니다.

전 목성의 위성인 가니메데에 가서 무엇이 있는지 보고 싶습니다. 목성의 제1 위성인 이오에는 생명체가 있을까요? 알파 켄타우루스에서 보면 우주가 어떻게 보일까요?”
그리슨도 나름대로 말년을 화성의 하인레인 분화구 입구에 있는 팽창식 수경용 온실이 딸린 농가에서 보내고 싶어할 것이다. 그곳에서 멀지 않은 곳에 릭 텀린슨의 나비 농장이 있을 것이다.

최초 우주 백파이프 연주
지구를 오랫동안 떠나 있고 싶어하지 않는 XCOR의 팀원들 중에는 XCOR의 우주선 조작과 엔진 시험용 EZ로켓 조종을 담당하는 전기 기술자 버즈 랜지가 있다. 그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직업은 지구 저궤도용 우주선 조종사로 지구와 저궤도 사이를 왕복하며 사람이나 화물을 실어나르면서 지구 궤도 밖으로 벗어나지 않는 것이다. 그가 원하는 직업은 최초의 우주 백파이프 연주가이다. “비행기에 실을 수만 있다면 백파이프를 가져갈 겁니다”라고 그가 공언한다. 나이가 들며 아래턱이 발달한 랜지로부터 연상되는 이미지는 지구를 지키면서 텅빈 격납고에서 “용감한 스코틀랜드”를 연주하는 모습이다. “물론 다른 사람들이 간다면 저도 그러고 싶은 충동이 들 겁니다”라고 그가 말한다.

본 브라운파 : 고칠 곳을 찾는데 999달러
최고의 휴양지인 우주정거장 미르에서 6개월을 지낸 이후 알렉산더 폴레슈크는 지구생활에 인내심이 부족해졌다. 10년이나 지난 오늘도 전직 우주비행사인 그는 음침한 블록 건물들이 늘어선 모스크바 외곽의 도요타 자동차 판매점에 앉아 차를 마시고 담배갑을 만지작거리며 그의 자동차가 정비소에서 빠져 나오기를 초조하게 기다린다. 러시아의 새로운 기업가층인 남자들이 탁아소에 온 아빠들처럼 창가에 다닥다닥 붙어선 채 각자 본인들의 번쩍이는 코롤라 자동차를 불안한 눈으로 바라보고 있다.

작업복 색의 스웨터를 입고 억센 구레나룻을 기른 51세의 폴레슈크를 아무도 알아채지 못해 이렇게 묻는 사람도 없다. “가만, 무중력 상태에서 미르 우주정거장이 15년 동안이나 잘 돌아가게 한 정비 솜씨를 가진 우주비행사라면 자기 차는 손수 고쳐야 하는 거 아닌가?” “제게는 자동차가 운송 수단이지 소일거리가 아닙니다”라고 폴레슈크가 녹색 눈동자를 반짝이며 말한다. 소련 말에 “자동차는 운송수단이지 사치품이 아니다”라는 말이 있었는데 새로운 러시아가 탄생해 자본가 계급이 늘어나면서 이 말이 무색해지고 있다.

우주도킹 조립기능 테스트
현재 폴레슈크는 우주에 갔었을 때의 모습과 많이 다르다. 지구 저궤도에 있는 동안 그의 내면에 중요한 변화가 있었다. “극한 상황에 있다보면 정신세계에 변화가 옵니다”라고 그가 말한다. “지구는 제가 생각했던 만큼 커 보이지 않았습니다. 생태학적 문제의 증거도 눈에 띄면서 인간이 생산적이면서도 파괴적일 수 있음을 깨닫게 됩니다. 마치 자신이 우주의 가시적인 입자인 것처럼 느끼게 됩니다. 더 이상 자신이 태어난 지구에 속하지 않는 겁니다.”

우주팬들은 폴레슈크를 13대 미르호 임무를 수행한 비행 엔지니어로 기억하게 될 것이다. 1993년 6개월간의 우주 항해 기간중 그는 10시간 동안 우주에서 걸어다니며 뒤이어 오게 될 아홉 차례의 우주왕복선 방문시 사용될 도킹 조립 기능을 테스트했다. 이것은 그의 처음이자 마지막 임무였다. 소련이 붕괴한 후 소유즈호의 계획이 무산되었고, 이후에도 우주정거장 파견자 대열에 끼어 있기는 했지만 “저는 비행을 기다리는 젊은 우주비행사들이 많고, 제가 할 다른 일들이 많다고 판단을 했습니다.”

러시아 우주 프로그램에 적합한 일자리가 있어서 폴레슈크는 25년간 이곳에서 일해 왔다. 이곳은 러시아 국립 우주 전략의 핵심부인 RSC 에너지아이다. 에너지아 설계국의 선임 테스트 엔지니어인 폴레슈크는 비행과 너트와 볼트 수리, 조립 기술 등 우주에서 자신이 했던 일들을 검토한다. 러시아 우주 프로그램 종사자들 중 그보다 더 상세한 현장중심의 수리 지식을 갖춘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국가적 자부심서 출발한 동기
인류의 우주 정복 동기를 역사적으로 살펴보면 국가적 자부심이 항상 수위를 차지했다. 미국 우주 전략의 설계자였던 베르너 본 브라운은 나치를 위해 로켓을 설계했다.
그는 시대를 너무 앞서 있었기 때문에 전쟁 후 러시아인들이 그가 만든 V-2 로켓들 중 하나를 발견했을 때 놀라움에 찬 엔지니어들은 이 로켓을 “불가능한 것”이라고 말했다. 본 브라운의 두드러진 유업은 인간의 달 착륙 외에 우주 탐사가 주간 고속도로나 핵 발전처럼 너무 규모가 크고 까다로운 프로젝트이기 때문에 민간 부문에서 담당할 수 없다는 신조를 견지한 것이었다.

10년 전만 해도 민간 기업이 전무했던 소련은 최초의 본 브라운파였던 셈이다. 의 원조는 에너지아 설립자인 세르게이 파블로비치 코롤레프(1907-1966)였다. 소련 우주 프로그램은 서로 다른 정파들과 연결된 사람들이 이끄는 프로그램들끼리 경쟁하는 비잔틴 시스템에 의해 운용되었기 때문에 코롤레프가 혼자서 모든 것을 구상했다고 하기는 어렵지만 최초의 위성과 최초의 우주비행사, 최초의 우주 유영과 최초의 여류 우주비행사 등 소련이 이룩한 위대한 최초의 기록들 곳곳에 그의 흔적이 남아 있었다.

족벌발주의와 기술적 한계
게다가 사망 후에도 최초의 우주정거장, 최초의 도킹, 최초의 우주 참사와 관련이 있었다. 이런 모든 업적들은 족벌주의와 기술적 한계(우주 경쟁 초기였던 코롤레프 시대에 엔지니어의 이미지는 로켓 궤도를 손으로 직접 계산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소련의 양대 달 프로그램의 전반적인 비효율성과 코롤레프가 사망할 때까지 러시아의 최고 우주 시스템 설계자의 신원을 아무도 모르게 유지한 관습화된 편집증과 같은 온갖 난관을 극복하고 이루어 낸 것이다.

“그는 믿기지 않을 정도의 온갖 고통과 기쁨을 체험했습니다”라고 코롤레프에게 개인적으로 빚을 진 폴레슈크가 말한다. 1961년 유리 가가린의 역사적인 첫 우주 비행 직후 군의 시험비행 조종사들 외에 엔지니어와 과학자들도 우주비행사에 포함되어야 한다고 추천한 것이 바로 코롤레프였다. 그런데 소련 우주 프로그램의 위상이 최고조에 달했을 때 코롤레프가 암으로 사망하면서 모든 것이 변했다.
그당시 러시아의 우주 개발 목표와 이를 달성할 수 있는 능력 사이에 격차가 드러났다. 만약 코롤레프가 살아있었다면 어땠을까? “아마 달에 발을 디뎠을 겁니다”라고 폴레슈크가 말한다. “그 점은 의심의 여지가 없죠.”

우주비행사 인기 퇴색
모스크바 차 전시장의 조명등이 갑자기 꺼지자 폴레슈크는 마치 미르 우주정거장에 있는 듯 문제를 해결하러 반사적으로 의자에서 튀어나온다. 근처 테이블에 있던 사람들이 그에 대해 뭔가 속삭이는데 무슨 말인지 잘 들리지 않는다. 분명 이들은 20년 전 학생들이 과거와 현재의 모든 우주비행사 이름을 외우던 시절처럼 경외심에 차 있는 건 아니었다. 오히려 이들은 숙제보다는 좀 나은 디스커버리 채널의 쇼를 보는 10대들처럼 막연한 호기심에 차 있는 것처럼 보인다. 러시아에서는 미국에서처럼 우주비행사들의 영웅적 인기가 상당 부분 퇴색되었다. “제 시대만 해도 항공우주 분야 종사자들은 열렬한 애국자들어었고 국가에서도 환대해 보수도 괜찮은 편이었습니다”라고 폴레슈크가 말한다.

요즘에는 젊은 러시아인들이 우주공학 분야로 진출하더라도 우주비행사가 되기 위해서나 우주를 좋아하기 때문이 아니라고 폴레슈크는 말한다. “진짜 이유는 이 첨단분야에서 훈련을 받으면 다른 분야에서 유용하게 쓰일 것임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가 차를 한 모금 빨더니 계속한다. “청년들이 자신들의 일을 통해 국가에 대한 자부심을 충족시킬 수 있다는 생각을 포기한 겁니다.”

러시아의 어려움
지금은 러시아에서 본 브라운파나 코롤레프파가 되기에 여러 모로 어려운 시기이다. 매주 수요일 에너지아 본부에서는 부서장들이 모임을 갖고 한 명씩 돌아가며 각 부서의 문제를 발표한다. “경제학자들은 돈이 없다고 하고 공장 사람들은 부품이 부족하다고 불만입니다.” 소련 붕괴 후 경제적 파산으로 국가 지원을 받던 우주 프로그램들의 지원이 끊기면서 독립적이던 러시아가 마지못해 시장 경제로 전환하게 되었다. 에너지아는 준민간기업으로 절반의 지분을 주주들이 소유하고 있는데, 사회주의 이념에는 위배됐지만 그나마 이 덕분에 힘겹게 10년을 버텨올 수 있었다.

에너지아의 오랜 경쟁상대이던 크루니쉐프는 힘좋은 양자 로켓 제작자이자 국가의 전폭적인 지원 후보 1순위였지만 어쩔 수 없이 록히드 마틴과 보잉 같은 국제 협력사에 도움을 요청할 수 밖에 없었다. 러시아는 현재 영혼을 파는 악마와의 거래를 하고 있다. 대개 어렵게 획득한 전문 지식을 최고가 경매자에게 제공한다. 한 주는 생의학 문제 연구소에서 쇼유즈호 예비 승객 랜스 바스의 의학적 검사를 해 주고, 그 다음 주에는 유럽 우주비행사를 스타 시티에 있는 가가린 우주비행사 훈련소의 원심력 발생기에 태우고 돌리는 식이다. 러시아의 고급 두뇌 고용은 이제 흔한 일이 되었다.

영화 아마겟돈에서 한 우주비행사가 우주정거장에 문제가 생기자 망치로 계기판을 두드려 해결한다. “1천달러 내”라고 그가 말한다. “망치질 한 번에 천 달러라고?” 미국인 동료가 놀라서 묻는다. “그래. 망치질에 1달러고 어딜 쳐야 하는지 아는 데 999달러라야.”

사업적 프로그램으로 변모
러시아인들은 어디를 고쳐야 할지 알고 있다. 하지만 한때 “국가의 환대를 받다가” 이제는 푸쉬킨 광장 야간 택시 운전수 월급의 1/4 밖에 못 받는 고급 엔지니어들에게는 이런 게 큰 위안이 되지 못한다. 위대한 코롤레프의 시대가 끝났음을 보여주는 흔적들이 곳곳에서 눈에 띈다. 한때 붉은 광장에서 퍼레이드를 펼치며 위용을 자랑하던 대륙간 미사일이 이제는 시장 가격으로 위성을 쏘아올리는 데 이용된다. 코스모노틱스지 같은 유서깊은 기관들도 민간자본에 의해 명맥을 유지중이다. 게다가 기자들이 과거 소련의 우주비행사들과 인터뷰를 요청하면 우주비행사들이 돈을 요구하면서 자신들의 과거 기억 회상을 비롯해 모든 게 새로운 시장 경제하에서 협상이 가능하다는 식으로 접근해 오는 경우가 간혹 있다.

결국 러시아의 우주 프로그램은 세계에서 가장 투명한 정부 운영 프로그램으로부터 가장 사업적인 프로그램으로 변모했다. 하지만 1991년 소련 붕괴와 함께 본 브라운파의 의지도 사라진 것은 아니다. 러시아의 우주과학자들은 미국과 프랑스, 캐나다로부터 요리사 월급 수준이 아니라 최고 과학자에 걸맞는 대우를 보장하는 제안을 받았다. 일부는 에너지아를 떠났지만 두뇌 유출은 에상했던 것만큼 심각하지 않았다. “다른 곳에서 훨씬 더 많은 돈을 준다 해도 항공우주업계를 결코 떠나지 사람들도 있습니다”라고 폴레슈크는 말한다. “전 이런 사람들을 존경합니다.”

민간 자본의 한계
에너지아의 엔지니어들은 아직도 원대한 계획을 갖고 있다. “우리는 화성 비행과 달 기지 건설, 소행성 탐지를 위한 라그랑지 지점의 관측소 설치 및 행성간 공장 건설에 관해 논의중”이라고 폴레슈크가 말한다. 생의학 문제 연구소는 유럽 우주국의 지원을 받아 200만 달러짜리 고립실 실험을 할 계획이다. 2006년 소수의 과학자들이 450평방 피트짜리 방에서 1년반 동안 머무르면서 우주비행사들이 화성 탐사 기간중 겪게 될 상황을 미리 체험해 본다.

화성 탐사는 대부분의 국민들이 제대로 먹고 살지도 못하는 러시아에서 최우선 과제는 아니지만 대다수 러시아인들은 이런 원대한 본 브라운파의 계획이 그나마 유일한 꿈이라고 생각한다. “전 우주 정복이라는 생각으로 애국을 하는 셈이죠”라고 폴레슈크가 말한다. 민간 투자를 받아 우주 개척을 하려는 오닐파의 생각은 어떨까? 턱이 단단해 보이는 크루니쉐프의 부소장 데니스 피브니크는 고개를 젓는다. “우리는 주나 정부에 의존해야만 합니다. 민간 자본으로 우주 프로그램을 추진할 수는 없습니다. 절대로 안 되죠”라고 그가 말한다. 그렇다면 국가가 지원하되 정복적이기 보다는 관조적인 성격의 프로그램은 어떨까? 세이건파의 생각대로 화성을 가상 탐사하는 것은 어떨까? “아마 인공지능이 발달해 인간을 대체하게 될 겁니다”라고 폴레슈크는 말한다.

문명의 몰락속 기형적 현상
“아마 화성 탐사에도 이용되겠죠. 그렇다면 왜 그래야 할까요? 왜 화성을 가상으로만 탐사해야 하는 거죠?” 더 안전해서일까? “언론에서 너무 과장되게 안전 문제를 다룹니다”라고 다소 흥분한 채 그가 말한다. “국가는 들을 말이 너무 많아서 소파에 앉아 거짓말하는 사람들 얘기까지 들을 여유가 없습니다. 이 사람들은 무지한 바보들입니다. 몰락해가는 문명들에서 나타나는 전형적인 현상이죠.”

파퓰러사이언스에 자주 기고하는 브루스 그리어슨은 본 기사를 취재하기 위해 미국과 러시아 여러 곳을 돌아다녔다. 파퓰러사이언스지 러시아판 편집장 미하일 이바노프와 그의 팀이 지원을 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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