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몇몇 학생들은 천지를 뒤흔드는 자동차 엔진의 굉음을 음악 삼아 밤을 지새운다. 이들의 목표는 레이싱대회에서 우승, 미래형 자동차의 개발 기회를 잡는 것이다.
Attention!
“피츠버그 대학팀이 혼다 F4i의 점화플러그를 구하고 있습니다. 여분의 점화플러그를 보유하고 계신 분은 지금 피츠버그 대학팀으로 연락해 주십시요.”
디트로이트에서 북쪽으로 64km 떨어진 교외 지역인 미시건 주 로미오.
이른 아침의 정적을 깨고 아나운서의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확성기로 퍼져 나간다. 그가 읽고 있는 것은 각 팀에서 요청한 긴급지원 사항이다.
어느 팀에서 토크렌치(torque wrench)가 필요한지, 어디서 아침식사용 캔 수프가 제공되고 있는지, 어느 곳을 가면 USB 케이블이나 깨끗한 수건을 구할 수 있는지 같은 것들 말이다.
이곳은 미국자동차공업협회(SAE)가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개최한 레이싱 경주대회인 ‘포뮬러 SAE’ 경기장이다.
이 콘테스트에서 학생들은 자신들이 직접 제작한 배기량 610cc의 운전석 개방형 레이싱카를 놓고 가속 성능, 제동력, 내구성, 설계 기술, 시제품 제작기술 등을 겨루게 된다.
자동차 애호가들이 참여하는 아마추어 대회이니 만큼 국가 대표급 컴퓨터 프로그래머들이 나와 미 항공우주국(NASA)에서나 보유하고 있을 만한 첨단 공기역학 장비와 탄소섬유 서스펜션을 들고 바삐 움직이는 모습을 볼 수는 없다.
하지만 학생들의 눈매는 나스카(NASCAR) 경기장을 방불케 하는 열기로 가득 차 있다.
이들이 봄 방학을 온전히 포기하고 차량 제작에 매달리며 이 대회에서 얻고자 하는 것은 오직 하나, 1등 트로피다.
상금으로 주어지는 3,000달러(약 300만원)는 차치하고라도 이 대회에서 우승하게 되면 유수의 자동차 제조업체나 유명 레이싱 팀에 곧바로 채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것이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대회가 열리는 3일 동안 혹독한 환경 속에서 고장 없이 각종 테스트를 완벽히 수행해야 하며, 이 과정에서 다른 팀의 참가 차량 100여대 보다 월등히 낳은 성능을 보여줘야 한다.
특히 심판들은 자동차 메이커 및 경주 팀에서 파견된 베테랑 기술자들로서 경기장 곳곳에서 날카로운 눈빛을 번뜩이며 일반인들은 알아채지도 못할 사소한 실수조차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대부분의 참가팀들이 경기가 열리기 직전까지 렌치와 용접기를 손에서 놓지 못한 채 중력가속도 계산과 엔진 제어 소프트웨어의 프로그래밍 등에 여념이 없는 것도 이 때문이다.
아마 참가 학생들 모두는 자신이 만든 레이싱카가 나스카, 포뮬러원(F-1), 인디레이싱리그(IRL)에서 질주하는 것을 꿈꾸며 이번 대회에 참가했겠지만 지금 이들의 머릿속은 올 한해를 모두 바쳐 만들어낸 600cc 차량을 최상의 상태로 트랙 위에 내놓는 것 밖에 생각할 틈이 없다.
며칠 후 미니 경주 차들의 굉음으로 휩싸이게 될 이 트랙은 포드자동차의 시험주행장으로 자동차 마니아들에게는 평생 단 한번이라도 달리고 싶은 꿈의 장소다. 총 80km에 이르는 주행로와 함께 전시회 몇 개는 충분히 개최할 수 있을 정도의 널찍한 포장도로가 구비돼 있는 탓이다.
포드는 바로 이곳에서 자신들이 개발한 신차들을 극한의 상황까지 밀어 넣어 철저한 테스트를 실시한다. 이를 통과해야만 비로소 시제품의 이름을 떼어내고 고객들을 만날 수 있다. 물론 테스트를 이겨내지 못하고 부서져 폐기되는 차량들도 부지기수다.
포뮬러 SAE는 젊은 엔지니어들이 자동차 업계의 강자들 앞에서 태어나고 자라는 자리라는 점에서 포드의 시험 트랙이 주는 상징적 의미는 학생들에게도 그대로 적용된다. 성공하면 미래가 보장되지만 실패한다면 문자 그대로 불타 사라질 뿐인 것이다.
본격적인 행사를 하루 앞두고 모든 참가자들이 더욱 바빠졌다. 정비를 맡은 학생들은 자동차의 세팅에 여념이 없다. 다른 팀원들은 내일 있을 구두(口頭)시험에 대비, 허공에 제스처까지 취해가며 예행연습이 한창이다.
마침내 경기의 첫째 날. 오늘은 실질적인 자동차 성능 테스트에 앞서 구두시험이 있는 날이다.
주최 측은 이 시험을 통해 각 학생들이 자동차의 구조나 설계, 작동원리, 자신들이 구현한 기술들에 대해 이론적으로 얼마나 잘 이해하고 있는지를 파악하게 된다.
학생들이 자신의 걸작품을 앞에 놓고 프레젠테이션을 하면 업계 프로들로 구성된 패널들이 중간 중간에 질문을 하는 형식으로 진행되는 것.
학생들은 프레젠테이션을 진행하면서 ‘이 특이한 형태의 서스펜션을 채택한 이유가 뭐지?’ , ‘왜 수동변속기 대신 유체변속기를 사용하려고 하지?’ 등과 같은 질문들에 명확한 답을 내놓아야 한다.
특히 심판들은 이들이 질문에 대답을 한다고 해서 그냥 넘어가지 않는다. 대답한 내용을 바탕으로 좀 더 세부적인 제2, 제3의 질문을 이어간다.
결국 하나의 질문이 던져지면 가장 기초적인 원리 단계까지 파고 들어가야 상황이 종료된다. 만약 이를 모른다면 대답이 끊어질 수밖에 없으며, 설명이 중단되는 순간 점수도 사라진다.
타이어 전문가로서 이번 대회에서 설계부문 심판을 맡고 있는 폴 하니는 “각 차량이 공학적 정밀성을 갖추고 있는지 확인하고 학생들이 이 설계를 선택한 이유를 알아내는 것이 우리의 임무”라며 “이를 위해 심판들은 끊임없이 ‘왜지?’라고 물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진땀나는 구두시험이 끝난 다음날 예선시합이 펼쳐졌다. 이날은 미끄러짐 방지 테스트, 가속 테스트, 비포장도로 주행 테스트 등에서 실력을 발휘해야 한다.
얼마나 능숙하고 날카롭게 코너를 돌고, 신속히 기어를 전환하며, 장애물을 피해내는가에 따라 내일 있을 주행시험에 응시할 자격이 주어진다.
여기서 실수를 한 팀은 본선무대 진출이 좌절돼 짐을 싸야 하거나 우승권에서 멀어진 채 들러리가 되는 것에 만족해야 한다.
좀 더 좋은 점수를 받기 위해 날이 밝자마자 각 팀의 차고에서 귀청을 찢는 엔진 음이 들려온다. 오늘의 첫 테스트인 소음측정에 대비, 사전 확인 작업을 하고 있는 것. 엔진소음이 최대 110 데시벨을 초과하게 되면 탈락이다. 적어도 앞으로 48시간 동안은 이런 야단법석이 계속될 것이다.
Attention!
“TU 그라츠 팀에서 자신들은 오스트레일리아가 아닌 오스트리아에서 왔다고 알려달라고 합니다. 오스트리아 출신 선수들에게 캥거루 얘기를 묻지 말아 주십시오.”
이미 각 팀들의 차고가 위치한 베이스캠프는 필요한 모든 것이 다 갖춰져 있는 야전사령부로 변신을 완료했다.
자동차 수리와 정비는 물론 대기하기, 취침하기, 빈둥거리기 등 모든 것이 이곳에서 행해진다.
한 참가자는 구석에 텐트를 치고 해병대식 이발소까지 무료로 운영하고 있다. 마치 기숙사 생활을 주차장에서 하는 듯한 느낌이다.
이곳에 잠시만 있어보면 누가 코스 시험에서 좋은 점수를 얻었고, 누가 실수를 했는지 금방 알 수 있다.
각 코스에서 최고 득점을 올린 드라이버들은 동료들과 하이파이브를 하거나 맥주 캔을 나눠 먹으며 지나가는 반면 그렇지 못한 선수들은 우울한 표정을 지으며 동료들의 위안에 침묵으로 일관한다.
오후가 되자 한 무리의 젊은이들이 당혹스런 표정을 감추지 못하고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모습이 포착됐다.
이들은 룻거스 대학팀 학생들로 F1 스타일을 뽐내며 사진사들의 단골 모델이 됐던 자신들의 자동차가 엔진에 문제가 생겨 주행 불능 상태에 빠진 것.
팀장인 앨튼 워싱턴을 비롯, 룻거스 팀의 학생들이 이 차의 개발에 들인 시간은 모두 합쳐 3,500 시간이 넘는다.
워싱턴은 자신의 마지막 대학생활을 포기하면서 참가한 이 대회가 여기서 끝이 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초조했지만 미리 준비해 온 백업 엔진으로 교체하는 작업이 내일의 본선 경기 전에 끝날 수 있도록 팀원들을 독려했다.
룻거스 팀이 구슬땀을 흘리는 동안 미국, 캐나다, 영국, 일본, 대한민국, 호주, 오스트리아, 브라질, 핀란드, 멕시코, 푸에르토리코, 싱가포르, 베네수엘라 등 각국에서 참가한 100여 개 팀의 레이싱 카들은 기본적인 기술검사를 마치고 하나 둘씩 포장도로 위로 나타났다.
이들의 면면을 보면 헤비메탈과 펑크를 좋아하는 혈기 왕성한 젊은이들의 작품이기는 해도 놀이동산에서 볼 수 있는 범퍼 카 수준으로 생각해서는 곤란하다.
이 자동차들은 마케팅이나 제조비용 등 신차를 출시할 때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하는 전문적인 부분에 대한 모의실험을 거친, 진지한 공학적 연구의 산물이다.
우선 모든 참가 차량은 주최 측이 규정한 규격에 맞아야 한다. 바퀴와 운전석은 완전히 개방되어야 하며, 엔진은 배기량 610cc 이하의 4행정 피스톤 엔진을 써야 한다.(참가팀 대부분은 일제 모터사이클 엔진을 사용하고 있다.)
엔진의 출력 조절시스템은 반드시 공기유량 제어식을 채용해야 하고, 공기흡입구의 크기는 20㎜가 넘으면 안 된다.
E85(에탄올 85%와 휘발유 15%의 혼합연료) 연료를 사용할 경우에는 19㎜가 마지노선이다. 이외에도 차축 길이는 최소한 152㎝를 넘어야 하며, 네 바퀴의 직경은 20㎝ 이상으로 제한된다.
이런 것들을 규정지어 놓는다는 것이 우습게 들릴지는 몰라도 참가자들 모두가 젊고 창조적인 두뇌의 소유자라는 점에서 반드시 필요한 조치다.
그렇지 않다면 누군가 꾀를 부려 포뮬러 SAE 대회 사상 최초로 인라인 스케이트 자동차를 출품할지도 모를 일이다.
이에 더해 참가자들은 자체적으로 마련한 가상 시나리오에 따라 차를 제작해야 한다. 실제 자동차 회사의 설계자나 엔지니어의 입장에서 차량을 제작하도록 하기 위해서다.
참가팀 중 한 곳의 시나리오는 이렇다.
‘자동차 시제품의 설계, 제작, 주행 테스트를 위해 굴지의 자동차기업 A사에서 자신들을 고용했다.
주 고객은 주말마다 취미로 크로스컨트리를 즐기는 사람들로서 저렴하고 믿음직하며 정비하기 쉬운 차량을 선호한다.
특히 이들은 차량의 제동 성능이나 조향성능 만큼 외관 디자인과 안락성도 중요하게 생각한다. 이에 따라 A사는 가능하면 쉽게 구할 수 있는 부품만으로 차를 만들고 싶어 한다.
시제품이 완성되면 하루 4대를 한정 생산할 예정이며, 판매가격은 2만5,000달러 이하로 책정하고 있다.’
Attention!
“에번즈빌 대학 팀에서 바비큐 그릴을 구하고 있습니다. 그릴을 빌려주신 분께는 행사 후 퀸카를 소개시켜 주겠다고 합니다.”
일희일비를 거치며 이루어졌던 예선이 마무리되고 드디어 모든 참가팀들이 기대 반 두려움반으로 기다려왔던 이번 대회의 메인이벤트 날이 밝았다.
실제 트랙을 달려야 하는 포뮬러 SAE의 마지막 관문이다. 각 팀은 두 명의 드라이버를 내세워 총 22km의 거리를 운행해야 한다.
이날 경주에서 가장 많은 점수(40%)가 배정된 분야는 당연히 주행성능 코스지만 일반적인 경주대회와 달리 누가 먼저 결승선을 통과하는가는 중요치 않다.
이 테스트의 목적은 차량의 성능에 더해 내구성과 연비를 함께 측정하기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경주가 모두 끝나면 심판들은 각 팀의 점수를 모두 합산해 2007년 포뮬러 SAE 대회의 우승자를 발표하게 된다.
룻거스 대학팀의 팀장 워싱턴은 오늘도 팀을 탈락의 위기에서 구해내고자 이른 아침부터 고군분투 중이다.
그는 어제 프로 정비사들에게서 엔진교체 방법을 배워 왔지만 백업 엔진으로 마련해온 599cc 야마하 R6 모터사이클용 엔진의 내벽에 균열이 발견되면서 또 다른 난관에 봉착해 있었다. 이들은 출전시간 이전까지 에폭시 수지로 균열을 메울 계획이다.
연이은 악재로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리고는 있지만 팀원들은 최악의 상황은 아니라고 말한다. 만약 주행 중에 심판에 의해 균열이 발견됐다면 자동 실격 처리 되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지난 이틀간 쌓아놓은 점수는 모두 허사가 되고 내년을 기약하며 다시 한번 자동차와 씨름을 벌여야 한다.
하지만 이들의 눈물겨운 노력이 결실을 맺어 내구성 및 연비 테스트를 완벽하게 수행해 낸다면 우승권의 성적을 거둘 수도 있다.
룻거스 대학 팀원들이 지금 받고 있는 엄청난 압박감은 앞으로 사회에 나가 자동차 엔지니어로 일하는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다국적 자동차 제조 기업이나 유명 레이싱 팀에 일자리를 얻으려면 다른 힘든 수련들도 필요하겠지만 무엇보다 극도의 긴장 속에서도 자신의 능력을 유감없이 발휘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같은 이유로 각 기업의 채용 담당자들은 컴퓨터로도 계산이 힘들 것 같은 수학 공식을 암산으로 처리하는 능력보다는 위기상황을 어떻게 슬기롭게 극복해 내는지에 더 큰 관심을 갖고 있다.
한 업체의 스카우터는 “실무경험은 입사한 후에도 충분히 쌓을 수 있으므로 위기극복 능력이나 미래의 보스 앞에서 재치 있는 말로 응수할 수 있는 성격의 소유자들이 채용 리스트에 오른다”고 말했다.
제네럴 모터스(GM) 레이싱 팀의 나스카 넥스켈 컵(NASCAR Nextel Cup) 프로젝트 관리자로서 포뮬러 SAE의 자원봉사자로 활동 중인 알바 콜론도 “이 분야의 기업들에게 학생들의 학과 성적은 채용할 때 중요한 고려사항이기는 해도 결코 전부는 아니다”고 덧붙였다.
그녀는 참가자들이 느끼는 압박감의 강도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자신 또한 몇 년 전 푸에르토리코 대학의 팀장 자격으로 포뮬러 SAE 대회에 출전했던 것. 그녀는 당시 GM의 스카우터 눈에 띄어 졸업도 하기 전에 입사를 제안 받았다.
콜론은 “포뮬러 SAE는 배운 것을 모두 보여줄 수 있는 몇 안되는 프로젝트이자 학교에서 배울 수 없는 기술을 익힐 수 있는 장소이기도 하다”며 “학생들이 상황이 좋지 않을 때 어떻게 대처하고 어떤 결정을 내리는지를 보고 회사는 인재를 고른다”고 밝혔다.
Attention!
“오번대학교 학생들은 수석 엔지니어를 호수에 던지지 말아주십시오. 이전에도 말씀드렸듯이 그 호수에는 하수도가 유입되고 있어 더럽습니다. 혹시 오번대학 엔지니어를 대신해 호수에 빠질 면역력이 뛰어난 분이 계시면 연락바랍니다.”
얼핏 보면 다양한 국적을 갖고 있는 100여개의 팀들 사이에서 비슷한 점을 찾아내기 어렵다. 언어와 문화, 음식과 인종 등이 모두 다르다.
그러나 이곳에서 모든 참가자들은 보기 드문 동료애를 나누고 있다. 자동차라는 끈끈한 구심점이 있기 때문이다. 이들 모두는 적어도 여기서 만큼은 국적이나 인종, 이념의 구별 없이 그저 ‘자동차 마니아’라는 국가(?)의 국민인 것이다.
어떤 대학, 어떤 국가의 학생이건 어릴 적부터 자동차를 가지고 놀았고, 텔레비전에서 중계해준 자동차 경주에 열광했다. 또한 방학 내내 일해서 번 돈으로 구입한 낡은 자동차를 고치느라 밤을 새 본 경험이 있었다.
자동차라는 끈으로 묶인 이들은 점화플러그, USB케이블, 심지어는 바비큐 그릴에 이르기까지 누군가 자신이 가진 것을 필요로 하면 즉시 그것을 갖다 주는 것이 전혀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가족처럼 지낸다.
포뮬러 SAE 대회장에서 흑백은 차량의 색깔을 구분할 때나 쓰이는 말이었다.
한편으로 참가자들은 모두 재주꾼이었고, 어떤 일을 성사시키는데 초인적 능력을 발휘하기도 했다.
오하이오 남서부의 침례교 학교인 세다빌 대학팀의 경우 어느 집 뒷마당에 녹슨 채로 방치돼 있던 1976년형 슈페리어 RV를 타고 로미오로 왔다.
이 팀의 팀원들과 지도교수인 제이 키신저 박사는 모두가 함께 타고 올 차량을 구하던 중에 이 차를 발견하고 직접 엔진을 수리하는 노력을 마다하지 않았다.
팀원들은 슈페리어 RV의 뒤에 트레일러를 매달아 경주용차와 수리용 도구들을 실었으며, 남아도는 페인트로 트레일러 옆 부분에 커다란 엄지손가락을 그려 넣어 우승에 대한 열의를 표현했다.
강력한 열정으로 어떤 어려움도 극복해나가는 젊은이들에게 잘 어울리는 로고였다.
내구성 및 연비 테스트가 본격화되자 재정이 딸려 폐품을 구해 끼워 맞춘 차량을 출품한 대학들과 탄탄한 재정지원을 받아 자신만의 독자적인 부품을 만들어낸 대학들의 차이가 여실히 드러났다. 전자에 비해 후자가 월등한 실력을 보여준 것.
하지만 예외도 있었다. 미시건 주립대학의 레이싱 카는 내구성 코스를 주행하는 과정에서 완전히 부서져 버렸다. 결승선을 불과 100m 남겨두고 엔진에서 오렌지색 화염이 뿜어져 나왔기 때문이다.
정비사들은 그것도 모른 채 계속 운전을 하고 있는 드라이버에게 이 사실을 알리기 위해 두 손을 치켜들고 뛰쳐나가야 했다.
아마추어 세상이든 프로의 세상이든 레이스에서 확실한 것은 하나도 없으며, 결승선이 다가올수록 숨어있던 기술적 문제들이 도출된다는 사실이 다시한번 증명되는 순간이었다.
어쨌든 이 사고로 우승후보 1순위였던 미시건 주립대는 10위권 밖으로 밀려나 버렸고 폐막식 때 ‘불운 상’을 받는 것으로 아픔을 달래야 했다.
지난해 5위를 차지했던 헬싱키의 폴리테크닉대학 팀 역시 인디 카와 스페이스 포트(space pod)의 부품을 섞어 만든 차량으로 1등을 노렸지만 엔진고장으로 분루를 삼켰다.
이와는 반대로 예상을 깨고 선전을 한 대학도 있었다.
뉴욕에서 온 작고 볼품없는 쿠퍼 유니온 대학 팀이 주인공. 이 팀은 이번이 첫 출전으로 마지막 날의 주행 테스트에 진출할 가능성이 거의 없어 보였고 입상의 가능성은 사실상 제로에 가까웠다. 오직 눈에 띄는 것은 한 학과에 소속된 학생 전부를 데리고 온 듯한 많은 숫자의 팀원들 뿐이었다.
이들이 가지고 온 차량은 2년 전 동아리 창립 멤버가 사재를 털어 이베이(eBay)에서 구입한 중고 자동차였다.
이번 대회 출전을 목표로 구제불능의 자동차 광들을 끌어 모은 것까지는 성공했지만 실제 차량 제작에 필요한 지원과 시설은 전무했기에 학교 연구실의 자재를 몰래 훔쳐 사용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저녁에도 집에 돌아가지 못하고 임시 창고에서 선잠을 청한 끝에 결국 대회 개막일 한 달을 앞두고 간신히 레이싱 카의 모습을 한 차량을 만들어낼 수 있었다. 팀장인 피터 오드러시키위츠에 따르면 대회 시작 전 몇 주간은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해 다들 정신이 흐리멍텅 했다고 한다.
그러나 미시간 주립대의 자동차가 불타는 사이 쿠퍼 팀의 차량은 사전 테스트를 통과한 후 주행 테스트에 이르기까지 모든 과정을 고장 없이 완수했다. 비록 내구성 테스트는 꼴찌로 통과하기는 했지만 어찌됐든 그들은 해냈다.
굴러가는 것 자체가 놀라워 보이는 자동차로 212km를 완주했으며, 1,000점 만점에 183점을 얻어 89위의 성적을 기록했다. 정확히 말해 이는 기적이다.
오드러시키위츠는 “우리는 첫 출전에서 우리 차의 신뢰성을 입증했다”며 “다음 대회에는 속도에서 능력을 보여줄 계획”이라고 말했다.
엔진 교체에 열을 올렸던 룻거스 팀은 어떻게 됐을까. 그들은 결국 야마하 엔진의 균열을 막고 오일 누설을 봉쇄하는데 성공했다. 불과 몇 분의 시한을 남겨 놓고 육안 기술검사를 통과, 트랙으로 나갔다.
팀원들이 초조하게 지켜보고 있는 가운데 이 차는 연료 누출 여부를 확인하는 경사면 테스트를 합격했고, 엔진소음 검사 또한 별 문제없이 통과했다.
모든 것이 잘 풀려나가는 듯 싶었지만 문제는 제동성능 테스트에서 발생했다. 드라이버가 정해진 위치에 정확히 정차하지 못한 것이다.
초초함에 휩싸인 워싱턴 팀장은 자신이 직접 차에 올랐고, 마지막 시도에서 너무 힘껏 브레이크 페달을 밟은 끝에 부속이 휘어져 탈락 통보를 받아야 했다.
이후 테스트를 모두 마친 다른 팀들이 긴장을 풀고 있을 무렵 오번 팀은 흥에 겨워 팀원들을 돌아가며 지저분한 연못에 던져 넣고 있었다. 미시건 주립대 학생들은 시커멓게 타버린 자동차를 트레일러에 실으며 자기들끼리 말싸움을 계속했다.
이들을 바라보며 워싱턴은 룻거스 팀의 팀원들을 불러 모았다. 자신의 팀을 ‘시련을 겪을수록 강해지는 팀’이라고 설명했던 그는 이번 경기를 통해 희망을 본 듯 했다.
워싱턴은 팀원들에게 “우리 모두는 이 경기가 정신집중을 많이 요한다는 사실을 배웠다”며 “지금 이 순간은 팀의 장래가 어찌될지, 누가 다음 팀장이 될지에 대해 걱정하기보다 여러분과 함께한 시간이 기쁠 뿐”이라고 강조했다.
내구성 테스트 이벤트 이후 모든 절차는 신속히 진행됐으며, 우승자들이 연단에 올라 상을 받는 것으로 공식 일정은 끝났다.
이번 대회의 우승은 재정 상태와 기술력 모두에서 우수한 기량을 선보인 위스콘신 매디슨 대학 팀이 차지했다.
웨스턴 오스트레일리아 대학 팀은 2등상을 거머쥐었다. 3일간 치열한 경쟁이 펼쳐졌지만 그 결과에 대해 누구도 다른 팀을 원망하거나 비난하는 모습은 없었다.
이번 경기에서 우승하지 못한 팀들이 짐을 챙기고 있는 동안 확성기가 울리더니 아나운서의 목소리가 경기장에 울려 퍼졌다. 그는 목청을 가다듬고 미래 자동차 산업의 주역이 될 촉망받는 학생들에게 마지막 메시지를 전했다.
미국 로체스터 대학 기술연구소가 대회 참가자들 모두에게 저녁 만찬을 대접한다는 반가운 소식이었다.
SO YOU WANNA BE A
HUMANOID ROBOTICIST
인간형 로봇 공학자
인간형 로봇을 만들어 일상의 잡무를 떠넘기자
카네기 멜론 대학의 로봇공학연구소 제임스 쿠프너 교수는 사람처럼 능숙하게 집안일을 할 수 있도록 기계를 훈련시키느라 하루를 다 보낸다.
그는 2025년경 테이블을 청소하고 접시를 놓는 등의 부엌일을 능숙하게 처리하는 인간형 로봇이 저렴한 가격에 출시될 것으로 예측한다.
이 같은 로봇공학 분야에 관심이 있다면 자신이 컴퓨터 공학과 출신이 아니라고 해서 실망할 필요가 없다. 로봇 공학은 컴퓨터 이외에도 다방면의 학문과 연계돼 있기 때문이다.
쿠프너 교수와 그의 동료들 또한 모두 이 분야의 1인자들이지만 출신학과는 전자공학, 기계공학, 인간-컴퓨터 상호작용 공학 등으로 다양하다.
필수 요구 조건:
▒ 공학, 컴퓨터공학, 인지과학 분야의 학사·석사·박사 학위
▒ 모방에 대한 재능
SO YOU WANNA BE A
HURRICANE DIVER
허리케인 다이버
거친 허리케인 폭풍 속으로 뛰어들어 생성 원인을 찾는다
평범한 기상학자들은 허리케인의 데이터를 보고 읽기만 한다. 하지만 짐 맥피든 박사는 그 속으로 직접 뛰어든다.
그는 미국 해양대기관리청(NOAA)의 허리케인 사냥꾼들과 함께 록히드마틴사의 WP-3D 오라이언 항공기를 타고 태풍의 한 가운데로 들어가 그 힘을 측정한다.
이 연구는 예보의 정확성을 높여줘 시민들이 허리케인에 좀 더 효과적으로 대비할 수 있도록 해준다.
실제 카트리나와 리타의 진로 예측은 과거보다 40%나 정확해 졌다. 이 일을 하기 위해서는 수학과 물리학은 물론 흔들리는 비행기 안에서 계측기의 작은 신호음까지 잡아낼 수 있는 탁월한 청력과 강심장이 필요하다.
필수 요구 조건:
▒ 기상학, 해양학, 지질학, 기후학 학사 학위 소지자 우대
▒ 멀미를 하지 않을 것
SO YOU WANNA BE A
FLAVOR SCIENTIST
미각 과학자
화학분야의 지식과 남다른 미각으로 새로운 맛을 개발한다
미국 젤리벨리 캔디 회사의 식품과학자 앰브로스 리 박사는 매일 아침 새로운 맛의 젤리를 만들 수 있는 원료 배합을 알아내기 위해 고민에 빠진다.
그는 자신이 알고 있는 모든 화학지식을 동원, 원하는 맛을 구현할 방법을 찾는다. 이를 통해 ‘cis-3-헥사놀’로 아스파라거스 맛의 젤리를 개발해 냈고, 전자레인지에 구워먹는 팝콘이 인기를 끌자 버터 맛 팝콘 젤리도 만든 적이 있다.
리와 같은 식품 과학자들은 일정부분 예술가적 재능과 과학자적 재능을 겸비해야 하며, 무엇이든 먹을 수 있는 의지가 필요하다.
필수 요구 조건:
▒ 식품과학 및 관련 화학분야의 학사·박사 학위 소지자
▒ 식품회사 인턴 십 경력자 우대
▒ 어떤 음식도 가리지 않는 소탈한 입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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