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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대폰 전자파의 공습

VITAL SIGNS

휴대폰은 과연 안전한가. 상당수 과학자들은 휴대폰에서 발생하는 전자파가 뇌종양을 비롯한 각종 질환을 발생시킬 수 있다고 말한다.

물론 이는 과학기술적으로 완벽하게 검증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원인을 알 수 없는 메커니즘을 통해 휴대폰이 건강에 악영향을 미치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그렇다고 휴대폰 사용을 금지할 수는 없다. 다만 안전한 설계를 통해 휴대폰의 위해성을 줄여야 한다는 게 과학자들의 주장이다.


페르 세거베크는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북동쪽으로 120km 떨어진 자연보호구역 내의 평범한 집에 산다. 그의 집 앞으로는 늑대, 큰사슴, 그리고 불곰이 자유롭게 지나다닌다.

그는 다른 사람과 지극히 제한적인 교류만 한다. 인간의 기술이 그의 몸을 아프게 하기 때문이다. 도대체 어떤 기술이 그를 이렇게 힘들게 하는 것일까.

지난해 여름 세거베크는 길을 걷다가 그의 집에서 약 90m 떨어진 이웃의 집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이웃과 이야기를 하던 도중 휴대폰이 울렸다. 이때 54세의 세거베크는 메스꺼움을 참을 수 없었고, 몇 초 후에 의식을 잃었다.

세거베크는 전자파 과민증을 앓고 있다. 전자파 과민증이란 휴대폰을 비롯한 전자제품에서 나오는 전자파와 관련된 질환을 말한다. 다시 말해 세거베크는 휴대폰, 컴퓨터, 텔레비전 등에서 나오는 전자파에 노출되면 엄청난 신체적 반응을 보인다는 뜻이다.







전자파 과민증의 증세에는 피부가 타거나 저린 느낌에서부터 메스꺼움, 두통, 수면장애, 기억상실 등이 있다. 극단적인 경우에는 호흡곤란, 심계항진, 의식상실 등을 일으키기도 한다. 심계항진이란 불규칙하거나 빠른 심장박동이 느껴지는 증상을 말한다.

일반적으로 전자파는 열작용, 비열작용을 통해 인체에 피해를 주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열작용이란 조직세포의 온도를 순식간에 비정상적으로 상승시켜 기능 이상을 일으키거나 파괴하는 것을 뜻한다. 또한 비열작용이란 조직 세포 내 대사와 관련된 이온물질에 이상을 일으킨다. 종양 세포의 억제 등 여러 가지 기능을 가진 호르몬인 멜라토닌의 분비 이상도 초래한다.

휴대폰의 경우 전화를 걸거나 받을 때, 그리고 신호를 탐색할 때 전자파의 수치가 최대가 된다. 이 때 세거베크가 일으킨 것 같은 증상이 나타나곤 한다. 전화를 걸거나 받지 않는 휴대폰이라면 눈에 띄는 전자파가 나오지 않는다. 한 마디로 세거베크는 휴대폰의 소리 때문에 발작을 일으키는 것이 아니다.

세거베크는 친구와 함께 돛단배에 탔을 때를 회상한다. 그는 위 갑판에 타고 있었는데, 누군가 그의 눈에 띄지 않게 아래 갑판에서 휴대폰 통화를 했다. 세거베크는 두통과 메스꺼움을 일으키면서 의식을 잃었다. 또한 그는 전원이 켜진 휴대폰으로부터 일정한 거리 내로 들어가면 두개골 속에 뇌가 꽉 끼어 답답한 느낌을 받는다고 한다. 안전거리는 휴대폰의 모델에 따라 전자파의 방출 정도가 다르기 때문에 다 다르다.

스웨덴은 전자파 과민증을 인체의 기능장애로 인정하는 유일한 국가다. 그리고 세거베크의 체험은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정책수립에 중요하다.

통계에 따르면 스웨덴의 전자파 과민증 환자는 전 인구의 3% 정도인 25만 명 정도다. 이들은 시각장애인이나 청각장애인과 동일한 권리와 사회적 서비스를 받는다. 현재 스웨덴의 지방자치단체들은 전자파 과민성 진단을 받은 환자들을 위해 전자청정구역을 만드는데 예산을 사용하고 있다. 전자청정구역에는 필요한 경우 금속제 방호벽까지 설치된다.





비전리방사선의 바다

세상 어디를 가더라도 전자파를 피할 수는 없다. 인간은 끊임없이 생성되는 전자파에 노출돼 있기 때문이다. 사실 전자파의 개념은 광범위하다. 전파, 적외선, 가시광선, 자외선, X선, 감마선 등이 모두 전자파다.

이 가운데 전파는 초장파, 장파, 중파, 단파, 초단파, 극초단파, 마이크로파, 밀리미터파, 서브밀리파 등 여러 주파수 대역으로 구분되지만 크게는 저주파와 고주파로 나뉜다. 저주파와 고주파를 구분하는 확실한 기준은 없지만 보통 ㎑ 단위는 저주파, ㎒ 단위 이상은 고주파라고 할 수 있다.

최근 불거진 전자파 유해성 논란의 대상은 송전선이나 전자제품에서 나오는 극(極)저주파(ELF), 그리고 휴대폰·무선전화기·이동통신 안테나·TV 및 라디오 송신탑 등에서 나오는 고주파다.

일반적으로 에너지가 높은 상태에 있는 물체가 안정을 찾기 위해 내보내는 에너지 뭉치를 방사선이라고 한다. 따라서 전자파도 넓은 의미의 방사선이라고 할 수 있다.

방사선은 전리방사선과 비(非)전리방사선으로 나뉘는데, X선·컴퓨터단층촬영·핵무기 등에서 나오는 전리방사선은 인체에 심각한 악영향을 미친다. 전리방사선은 발암물질로 분류된다. 전리방사선은 에너지가 커서 물질을 구성하는 원자들을 전리, 즉 이온화시키는 방사선을 말한다. X선이나 감마선이 대표적인 전리방사선으로 인체의 거의 모든 부위에 암을 발생시킬 수 있다.

하지만 비전리방사선은 인체에 거의 무해하다고 간주 되고 있다. 비전리방사선은 원자 결합을 파괴할 만큼 강하지 않아 각종 질환의 원인이 되는 세포의 파괴를 일으키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

사실 이 같은 종류의 방사선은 어디에나 있다. 태양광선의 자외선, 송전선이나 전자제품에서 발생하는 전자파, 그리고 휴대폰에서 방출되는 전자파 등이 모두 비전리방사선이기 때문이다.

밴더빌트 의대의 교수이자 메릴랜드 로크빌에 있는 국제전염병연구소의 과학부장 존 보이스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매일 비전리방사선의 바다에서 목욕을 하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과학자들은 비전리방사선이 해롭지 않다고 생각한다. 비전리방사선이 인체에 미치는 영향 중 유일하게 확인된 것은 인체 조직에 미세한 열을 가하는 것뿐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휴대폰은 안전한 전자제품이며, 전자파 과민성을 일으킬 조건도 있을 수 없다고 보는 것이다.

다만 미국 연방통신위원회는 너무 높은 열이 일어나지 않도록 휴대폰의 전자기장 발생 제한기준을 설정했다. 휴대폰의 전자기장 발생량은 전자파 인체 흡수율이라는 단위로 계측된다.

이와 관련, 전자파는 전기장과 자기장으로 이루어진 전 자기장을 방출한다. 전기장은 전기적 성질을 가진 파동으로 인체 표면을 타고 흐르면서 인체에 자극을 가한다. 반면 자기장은 X레이와 같이 투과성이 있으며, 인체 내부의 혈액과 장기 등에 영향을 미친다. 과학자들은 자기장이 전기장보다 더욱 해로운 것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많은 연구자들은 세거베크나 다른 환자들의 전자파 과민증 증상을 오진이거나 신경성 증상으로 여기고 있다. 일부 전문가들은 세거베크와 같은 사람들이 그저 심리적 장애를 앓고 있거나 노시보(nocebo) 효과를 나타내고 있다고 보고 있다.

노시보 효과란 의사의 말이 부정적인 감정이나 우려를 유발해 아무런 의학적 이유 없이 환자에게 해를 입히는 현상을 말한다. 이는 위약(僞藥)에 의한 심리효과로 환자의 용태를 좋아지게 하는 플라시보 효과와는 정반대 개념으로 볼 수 있다.

지난해 학회지 '생전자기학'에는 전자파 과민증 환자들 이 전자기장을 감지하는 능력이 월등하다는 증거는 없으며, 이들이 나타내는 증상은 노시보 효과에 의한 것이라는 증거를 얻었다는 평론도 게재됐다.

이 문제에 대한 휴대폰업계의 태도 역시 분명하다. CTIA-무선협회 공보담당 부회장인 존 월스는 이렇게 말 한다. "과학계 내부의 평가를 보더라도 휴대폰이 대중의 건강을 위험하게 한다는 증거는 어디에도 없습니다. 또한 연방통신위원회가 정한 전자기장 발생 제한기준을 통과한 장비가 건강에 악영향을 일으키는 메커니즘 또한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미국 식품의약국(FDA), 국제 비전리방사선보호위원회, 미국 암협회, 세계보건기구 등 주요 연구기관도 이 같은 평가에 동의한다. 보이스 역시 국립암연구소의 SEER과 같은 암 발병 환자 등록 프로그램을 증거자료로 제시한다. 지난 1990년대 초반에 비해 뇌종양 발병률이 높아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미국보다 훨씬 오랫동안 휴대폰이 사용된 덴마크, 핀란드, 노르웨이, 스웨덴 등에서도 1970년대 중반 수준의 뇌종양 발병률이 2000년대 초반까지 큰 변화 없이 이어져오고 있다.

만약 휴대폰이 뇌종양을 유발한다면 발병률이 분명 높아져야만 할 것이다. 보이스는 이렇게 말한다. "모든 생물학적 및 실험적 연구를 조사해 본다면 휴대폰과 암과는 관련이 없다는 증거가 대다수일 것입니다."

하지만 인체에 거의 무해하다던 비전리방사선도 위험 할 수 있다는 연구결과 역시 잇따라 나오고 있다. 당장 태양광선이 방출하는 자외선만 하더라도 암을 유발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또한 송전선과 전자제품, 특히 휴대폰에서 나오는 전자파로 각종 증상을 나타내는 환자도 속출하고 있다.





전자파가 불러온 이상한 증세

세거베크는 한때 뛰어난 이동통신 엔지니어였다. 그는 스웨덴의 거대 휴대폰 제조업체인 에릭슨의 계열사 엘렘텔에서 20년 이상 근무했다.

그는 재직기간 동안 연구그룹을 지휘해 휴대폰을 위한 각종 회로를 설계했다. 그는 입수 가능한 것 중 최첨단의 컴퓨터와 이동통신장비를 사용했다. 그런 컴퓨터와 이동 통신장비를 구할 수 있는 조직은 에릭슨과 스웨덴 군대 밖에는 없었다. 그 결과 세거베크는 컴퓨터, 그리고 이동통신 안테나에서 뿜어져 나오는 비전리방사선을 항상 쐬고 살 수 밖에 없었다.

그가 처음으로 어지러움, 메스꺼움, 두통, 살이 타는 것 같은 느낌, 피부 표면에 붉은 반점이 생기는 등의 이상증세를 겪은 것은 연구를 시작한 지 10년 정도가 지난 1980년 대 후반이었다.

그는 20명에 달하는 자신의 연구그룹 직원 가운데 2명을 제외한 모든 사람들이 같은 증세를 보였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의 증세가 가장 심했다. 세거베크의 전자파 과민증 증세는 더욱 악화돼 요즘은 저공으로 비행하는 항공기의 레이더 파만으로도 증상이 일어난다고 한다.

세거베크는 연구실에 넘쳐나던 전자파와 컴퓨터에서 나오는 유독성 가스가 합쳐져 이런 증상을 만들어냈다고 믿고 있다. "회사의 의사들은 이 같은 상황을 전혀 이해할 수 없었답니다."

엘렘텔에서 세거베크의 연구그룹을 관리했고, 지난 2006년 퇴직한 아그네 프레드릭슨은 연구그룹에서 컴퓨 터로 일을 한 직원들 사이에서 제일 흔한 증상이 바로 얼굴이 뜨거워지는 것이었다고 말했다.

세거베크 연구그룹의 직원들이 이상한 증세를 호소하고 있는 동안 다른 부서의 직원들도 비슷한 증세를 나타내고 있었다고 그는 회상했다. "그때 우리는 해결책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가장 증세가 심한 부서에서는 매우 심한 걱정을 했지요."

엘렘텔은 가장 심한 증세를 보이는 직원들을 위해 새로운 근무공간을 만들었다. 대 여섯 명 정도의 직원들을 위해 전자파로부터 완전 방호된 방을 만든 것이다. 다른 직원들도 새로운 컴퓨터를 지급받았다. 그리고 일부 직원들에게는 스크린 앞에서의 작업을 줄이라는 지시가 내려졌다.

예전에는 이런 일을 당해 본 사람이 없었다. 프레드릭슨은 이렇게 말한다. "그때 우리는 왜 그랬을까요?" 그는 다른 회사에서도 비슷한 상황이 나타났음을 나중에서야 알았다. 다만 외부에 발설하지 않았을 뿐이었다.

엘렘텔의 모기업인 에릭슨은 연구그룹의 핵심인물인 세거베크를 가급적 오랫동안 붙잡아두려고 했다. 1990년 대 초반 에릭슨은 세거베크의 침실에 금속 방호벽을 둘러 쳐 비전리방사선의 피폭 없이 수면과 업무를 진행할 수 있게 배려했다.

의사들은 세거베크가 안심하고 밖에 나갈 수 있도록 이동통신 송신탑이나 고압선 근처에서 일하는 엔지니어들이 입는 전자파 방호복을 지급했다. 심지어는 안전하게 회사 로 왕래할 수 있도록 특수 개조한 볼보 차량도 주었다.

하지만 1990년대 중반 스톡홀름 인근에 이동통신 송신탑 많이 세워지면서 그의 통근도 끝났고, 그는 숲속으로 가서 은거했다.

1993년 에릭슨은 세거베크의 연구실에서 있었던 일에 대한 보고서를 발행했다. 보고서의 제목은 '직장에서의 과민증'이었다.

서문에서 엘렘텔 부사장인 외르얀 마트슨과 최고관리 책임자인 토르브요른 욘슨은 이런 글을 적었다. "근무환경에 새로운 문제, 즉 과민증 문제가 발생했다. 과거의 산업 재해를 취급할 때는 인과관계에 의거한 법칙을 알아낼 수 있었다. 하지만 과민증 문제에 이 같은 접근은 통하지 않는다. 1980년대 후반 엘렘텔에서 중대한 첫 사례가 발생했을 때 우리는 준비가 돼있지 않았다. 얼마 안 있어 우리는 과민증을 회사업무에 대한 심각한 위협으로 받아들이게 됐다. 우리는 현대적인 재앙에 직면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1년 후 에릭슨은 세거베크의 연구그룹이 일하던 연구실을 폐쇄하고, 1999년에는 세거베크를 해고했다. 에릭슨의 대변인에 따르면 세거베크의 몸 상태로는 해야 할 직무를 수행할 수 없다는 것이 해고사유였다. 세거베크는 스웨덴 노동법원에 부당해고 구제를 요청했지만 패소했다.

세거베크는 자신의 증상을 초래한 원인이 무엇인지 입증할 방법이 없다는 것을 인정했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원인이 무엇인지 알기란 어려운 일입니다. 누구도 우리가 아픈 원인이 뭔지 말할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그는 치료를 받기 위해 병원에 갈 수도 없었다. 병원에도 전자장비들이 잔뜩 있기 때문이다. 거기서 나오 는 전자파를 쐬면 죽어버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그는 말했다.

스웨덴의 전자파 과민증 전문의인 울리카 아베르그는 증세가 나타난 초기부터 세거베크를 치료해 왔다. 그녀는 또한 800명 이상의 전자파 과민증 환자를 치료해왔다.

아베르그는 전자파 과민증의 증상도 사람에 따라 차이가 있다고 말한다. 사람에 따라 수면장애나 어지러움 등의 경미한 증세를 보이는 사람이 있는 반면 세거베크와 같은 중증 증세를 보이는 사람도 있다는 것이다. 그녀는 이렇게 말한다. "인간의 모든 세포는 항상 전기적 활동을 하고 있기 때문에 전자파 과민증 환자의 몸이 영향을 받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아베르그는 비교적 가벼운 증세를 보이는 환자에 대해서는 집안의 모든 전자제품을 제거할 것을 권한다. 여기에는 휴대폰, 무선전화기, 무선인터넷 등이 포함된다. 하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다른 무선기기에 노출돼 있다. 아베르그에 따르면 스웨덴에만 해도 수백 명의 전자파 과민증 난민이 있다고 한다. 이들은 전자파가 닿지 않는 곳으로 도피해서 살아야 하는 사람들이다.

심지어 어떤 전자파 과민증 환자 커플은 이동주택을 사서 증세가 심해지면 바로 다른 지역으로 옮겨간다고 한다. 그녀는 이렇게 말한다. "전자파 과민증은 논란이 많은 질환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이 같은 질환이 있다는 것도 모르고 신경 쓰지 않고 살아갑니다. 하지만 많은 전자파 과민증 환자들이 생활에 큰 불편과 불안을 느끼며 살고 있습니다. 전자파의 전자기장이 사람들에게 미치는 영향을 알기 전까지는 전자기장 발생량을 늘려서는 안 됩니다."





연관관계 입증할 증거 부족

휴대폰에서 전자기장이 주로 나오는 곳은 핸드셋 내에 있는 안테나다. 그리고 휴대폰을 머리에 갖다 대면 전자기장이 뇌까지 관통하는 것이다.

전자기장이 투과하는 정도는 주파수에 따라 다르다. 주파수가 높을수록 많이 투과하게 된다. 휴대폰은 보통 300~3,000㎒의 주파수에서 작동한다. 라디오나 TV는 그보다 훨씬 낮은 주파수에서 작동한다. 반면 전자레인지 와 레이더는 이보다 훨씬 높은 주파수에서 작동한다.

지난 1950년대 과학자들이 의료용 전자기기와 레이더를 연구하기 시작하면서 전자기장이 건강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도 연구가 시작됐다. 1960년대 전자레인지가 가정의 주방에 보급되면서 전자기장 연구는 학계의 주류에 진입했다. 그리고 1970년대 컴퓨터가 대량 보급되고, 1980년대에는 휴대폰이 대량 보급되면서 연구는 급물살을 탔다.

세계보건기구 산하 비전리방사선 및 환경보건 부서의 조정관을 지내고, 지금은 로마 대학의 초빙교수로 있는 마이클 레파촐리는 이렇게 말한다. "사람들은 새로운 전자제품이 나올 때마다 걱정을 합니다."

레파촐리는 높아만 가는 사람들의 불안에 대응하기 위해 지난 1996년 국제 전자기장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하지만 이 프로젝트는 전자기장이 건강에 영향을 미친다는 증거를 찾을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1990년대 중반 휴대폰이 뇌종양을 유발한다는 소송이 여러 건 진행되기도 했지만 승소한 것은 없다.

지난 2000년부터 2005년 사이 13개국이 세계보건기구 국제암연구소의 협조를 받아 공동으로 진행한 인터폰 프로젝트는 휴대폰이 뇌종양을 유발하는지 알아보기 위한 것이었다.

하지만 이 프로젝트는 방법론과 편향성, 그리고 모순적 결과 때문에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인터폰 프로젝트가 실시된 시기는 휴대폰의 보급 및 사용방식이 급속도로 변하던 시기였다.

예를 들면 연구대상에서 아동이 제외돼 있었는데, 이는 2000년만 하더라도 아동들은 휴대폰을 거의 사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인터폰 프로젝트를 이끈 스페인 바르셀로나 환경전염병 연구센터의 엘리자베스 카르디스는 이런 종류의 연구에서 편향성이 항상 문제가 된다고 말한다. "연구를 시작할 때부터 편향성을 최소화하고, 남아있는 편향성을 식별 및 정량화해 가장 과학적인 방법으로 설명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여왔습니다."

하지만 연구결과를 보면 답이 안 나온다. 덴마크에서 실시된 인터폰 프로젝트에서는 뇌종양의 일종인 청각신경 종양 환자 106명을 연구했다. 청각신경종양이란 청각신경에 발생하는 양성 뇌종양. 양성이지만 초기에 발견하지 못 하면 두개골 안으로 전이될 수도 있다.

하지만 청각신경종양 환자들이 장기간의 휴대폰 사용으로 발병 위험이 높아졌다는 증거는 없었다. 이들 가운데 단 2명만이 휴대폰을 장기간 사용한 사람이었던 것. 스웨덴에서 148명의 사례를 가지고 실시한 연구에서는 휴대폰 사용으로 발암 위험이 약간 증가한다는 증거를 내놓았을 뿐이다.

수년간의 밀실 논쟁을 끝내고 인터폰 프로젝트의 연구 결과가 최종 공개됐지만 그 같은 연구결과로는 어떤 것도 해결할 수 없었다. 결국 카르디스는 이렇게 말했다. "인터폰 프로젝트의 결과를 확정지으려면 더 많은 연구가 필요합니다. 특히 이번에는 아동의 휴대폰 사용을 감안한 연구가 이루어져야 합니다."





원인이냐, 촉진자냐

분명한 것은 휴대폰이 담배와는 다르다는 것이다. 다른 모든 분야에서는 건강한 생활습관을 유지하는 사람이더라도 담배를 피우면 암을 유발하는 메커니즘이 분명히 증명돼 있다.

하지만 휴대폰이 암을 유발하는 메커니즘은 아직 명확히 규명돼 있지 않다.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그런 메커니즘은 없다고 주장한다. 비엔나의대 환경보건연구소의 미카엘 쿤디는 이렇게 말한다. "휴대폰이 건강에 영향을 미친다는 확실한 증거는 없습니다. 그런 것이 있다면 다들 몹시 아프게요?"

다만 그는 알아둬야 할 한 가지 중요한 차이점이 있다고 말한다. 설령 전자기장이 담배처럼 암을 일으키는 원인은 아니라고 할지라도 암을 촉진시키는 촉진자가 될 수는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다른 여러 요소와 합쳐져 기존의 암세포를 성장시키고 전이시킬 수 있다는 것.

학계 대부분의 사람들은 휴대폰이 건강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쿤디와 일부 사람들은 휴대폰을 장기간 사용하면 전자기장에 노출돼 뇌종양의 위험이 증가할 것이라는 의심을 하고 있다.

환자들을 대상으로 한 제한적인 연구에서도 휴대폰의 전자기장이 일부 사람들에게 생리적 영향을 미쳤다는 연구결과가 나타났다. 참고로 전자파 과민증 환자들은 전자 장비가 가득한 실험시설에 들어와 실험을 받는 것을 극히 꺼리며, 실험에 응하려는 사람도 그리 많지 않다.

전자기장, 특히 휴대폰 전자기장의 피해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연구결과는 점점 많이 나오 고 있다.

사람들은 그동안 잘못된 질문을 던져왔는지도 모른다. 이제까지의 연구는 보통 "휴대폰이 암을 일으키는가" 라는 질문으로부터 시작됐다. 하지만 현재는 "어떤 메커니즘이 건강에 악영향을 미치는가"로 질문 내용이 바뀌고 있다.

2001년 당시 22살 먹은 캐서린 울램스는 교아세포종 진단을 받았다. 교아세포종은 신경교종의 하나. 신경교종은 뇌 조직을 구성하고 있는 여러 종류의 세포로부터 생기는 뇌종양이다. 뇌종양 중에서 신경교종이 차지하는 비율은 43.1%에 달해 가장 발생빈도가 높다.



그녀의 아버지인 크리스토퍼 올램스는 옥스퍼드 대학에서 생화학을 연구했으며, 특히 바이러스와 암을 전문적으로 다루었지만 이후 광고업자로 전향했다. 1990년대 초반 그는 머큐리 원투원의 출시 캠페인에 참가했다. 머큐리 원투원은 영국 최초의 디지털 휴대폰 서비스였다.

울램스는 딸의 암 진단 이후 캔서 액티브라는 자선단체를 설립했다. 이는 암 치료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는 단체다. 캐서린은 지난 2004년 사망했다.

울램스는 휴대폰 사용과 암 발병 위험성 간에 대해 놀랍도록 잘 정리된 생각을 갖고 있다. 그는 딸이 담배를 피웠으며, 식사를 제대로 하지 않았고, 항상 휴대폰에 붙어살았다고 말했다. 휴대폰이 딸의 죽음에 관계가 있었을까.

그는 이렇게 말한다. "휴대폰이 암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암에 단일 치료법이나 단일한 원인은 없습니다." 그는 전자기장과 뇌종양 간의 연관관계만 연구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그는 이어 "전자기장과 암과의 연관관계를 밝혀내기는 매우 힘듭니다. 현재까지 알아낸 가장 확실한 증거도 빈약하기 짝이 없습니다."

울햄스는 전자기장이 어떤 메커니즘으로 신체의 전반적인 면역능력을 약화시키는지 납득시켜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는 매일같이 쏟아지는 전자기장의 홍수와 다른 환경적 요소, 예를 들면 유독 화학물질과 부족한 영양 등이 모두 합쳐져 인간의 건강에 영향을 주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펼쳤다.

"휴대폰은 어쩌면 면역체계를 약화시키는 것 이상의 폐해를 인간에게 미치고 있을지도 몰라 걱정스럽습니다. 휴대폰은 뇌종양을 일으키는 여러 가지 문제점 중 하나입니다. 휴대폰에도 담배에 붙는 것 같은 경고문을 부착해야 합니다."

휴대폰과 건강상 위협 사이의 관계를 조사하는 것은 매우 어렵고, 쉽게 답이 나지 않는다. 뇌종양 연구는 특히 더 어려운 일이다. 뇌종양은 원래 희귀한 질병인데다 뇌종양의 성장에는 무려 수십 년이 걸리기 때문이다. 하지만 뇌종양 분야에서도 분명한 진전이 있었다. 연구를 통해 신경교종, 수막종, 청각신경종양과 같은 뇌종양을 제거할 수 있게 된 것. 타액선암을 주제로 삼은 연구도 있다.

대부분의 연구에서는 휴대폰과 이 같은 암들 사이의 관계를 밝혀내지 못했지만 소수 연구는 그 관계를 밝혀냈다.

스웨덴 외레브로 대학병원 종양학부의 렌나르트 하르델은 10년 이상 휴대폰을 사용한 사람들의 신경교종 및 청각신경종양 발병 위험이 높아지는 것을 발견했다. 그는 현재 휴대폰에 적용되는 전자기장 발생 제한기준이 안전하지 못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하지만 다른 연구의 진행상황은 제각각이다. 지난 2004년 영국 통계청에서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영국 아동의 뇌 및 척수 암 발병률은 1970년대 초반 100만 명 당 20명 이하였던 것이 1990년대 후반에는 100만 명 당 30명 이하로 높아졌다고 한다.

프랑스의 보건청소년체육부는 과도한 휴대폰 사용이 아이들에게 위험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리고 그 자신이 뇌종양에 걸렸다가 목숨을 건진 사람이기도 한 미국 펜실베이니아 주 상원의원 알렌 스펙터는 이 문제에 대해 상원 청문회를 개최했다.

메인 주 의회에서는 휴대폰을 판매할 때 뇌종양을 유발할 수도 있다는 경고 문구를 적을지를 놓고 투표가 진행 중이다. 그리고 샌프란시스코 시는 휴대폰 포장에 전자기장 수치 정보를 표기하게 할지를 검토 중이다.

사실 휴대폰과 암 발병률 간의 상관관계를 지적한 연구 결과는 하나같이 방법론적 실패, 빈약한 표본 크기를 지적당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을 대상으로 실험해야 의미 있는 실험결과를 얻을 수 있다는 얘기다.

또한 연구의 편향성도 문제가 되고 있다. 최근 휴대폰과 암 발병률 간의 관계를 분석한 23건의 논문을 조사한 결과 방법론적으로 우수한 연구를 수행한 연구자들일수록 휴대폰의 장기 사용이 종양 발병률을 높인다고 보고했다. 반면 방법론적으로 열등한 연구를 수행한 연구자들일 수록 휴대폰 사용자들의 종양 발병률을 낮춰 평가하고 있다는 것이 드러났다.






휴대폰 전자파 연구자들의 의견






데이비드 카펜터: 보건환경연구소의 소장이며, 뉴욕 주립대학 공공보건대학의 초대 학장. 휴대폰 전자파의 위험성에 대 한 2008년도 생물학사업 보고서를 공편했다.

"휴대폰 전자파가 인간에게 악영향이 있는지 여부는 확실히 단정 지을 수 없습니다. 다만 매우 심각한 영향을 끼칠 수도 있다는 정황은 있습니다. 북유럽은 휴대폰의 발상지며, 미국보다 더 오랜 기간 휴대폰이 사용돼 온 곳입니다. 그런데 이곳에서의 연구결과를 보면 휴대폰의 안전성에 대해 걱정하게 됩니다.
북유럽의 연구결과에 따르면 휴대폰을 10년 이상 사용한 사람은 휴대폰을 가져다대는 머리 부위의 반대편에 있는 청각 신경에 뇌종양과 암 발생 위험이 높아졌다고 합니다. 이스라엘에서 실시된 연구에서도 휴대폰을 가져다대는 부위의 반대편에 있는 침샘 등에서 종양이 생겼다고 합니다."

앨런 프레이: 코넬 대학 GE 첨단전자센터에 근무한 적이 있는 신경과학자. 그는 비전리방사선의 생물학적 영향을 실험을 통해 최초로 입증했다.

"신경이 자극을 받는 경우, 예를 들어 시신경이 빛에 의해 자극을 받으면 모든 종류의 전기적 활동이 시작됩니다. 신경 체계는 전기장을 사용해 기능합니다. 그렇다면 인체와 무관한 전자기장이 신경체계에 영향을 미칠 수도 있습니다. 그렇게 되 면 인체의 모든 기능과 행동에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저는 1970년대 개구리의 심장을 특정 주파수의 전자기장에 노출시켜 부정맥을 일으키기도 하고, 심지어 심장을 멈추게 한 적도 있습니다. 부정맥이란 심장박동이 비정상적으로 빨라지거나 늦어지는 등 불규칙해지는 것을 말합니다. 저는 또한 실험을 통해 특정 주파수의 전자기장으로 혈액 뇌 장벽을 열어 보인 적도 있습니다. 혈액 뇌 장벽이란 뇌 조직과 혈액 사이의 생리적 장벽을 말하는데, 이는 전자기장이 뇌 속으로 침투 할 수 있다는 얘깁니다."

마이클 레파촐리: 지난 1996년부터 2006년까지 세계보건기구(WTO) 산하 비전리방사선 및 환경보건 부서의 조정관을 지냈다.

"인터폰 프로젝트를 시작한 곳은 세계보건기구 산하 국제 암연구소였습니다. 국제암연구소에서는 13개국의 16건에 대한 환자군-대조군 연구를 진행해 휴대폰의 사용이 머리 또는 목 부위에서 발생하는 암과 관련이 있는지 파악했습니다.

인터폰 프로젝트의 연구결과는 발표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전체 환자군-대조군의 60%를 차지하는 영국과 북유럽 국가들의 연구결과가 최종 결과와 가장 비슷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이 프로젝트에서는 10년 정도 휴대폰을 사용한 사람에게서 머리와 목 부위의 암이 더 많이 발생한다는 증거는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현재로서는 휴대폰을 10년 이상 사용한 사람의 위험률에 대해서도 결론을 내릴 수 없습니다."

올레 요한슨: 스웨덴 왕립공과대학과 카롤린스카 대학의 부교수. 1980년대부터 전자기장이 건강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 해 오고 있다.

"지난 1940년대에는 아동화 상점에 강력한 X선을 사용, 고객의 발 치수를 측정하는 장비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지난 1950년대에는 손목시계에 야광효과를 내기 위해 방사성 페인트를 발랐습니다. 당시의 과학자들과 의사들은 따스하고 아름다운 태양광선조차 인간의 세포와 DNA를 파괴해 피부암을 유발할 수 있음을 알아냈습니다.

앞으로 무슨 일이 생길지 모릅니다. 어른이나 아이 할 것 없이 하루 24시간 온종일 전자파에 온 몸을 푹 담그고 살아가지 않습니까. 이 같은 상황에 대해 의문을 가지는 것은 그 어느 때보다도 정당하고 중요한 일입니다. 그리고 사회, 정부, 의회, 당국은 이 같은 의문에 대답을 해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전자기장의 잠재적인 위험

그렇다면 앞으로 무엇을 연구해야 할까. 쿤디는 현재까지의 연구에 따르면 전자기장은 인간의 건강에 영향을 주는 비열작용이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고 지적했다. 비열작용이란 조직세포 내 대사와 관련된 물질에 이상을 일으키는 것을 말한다.

쿤디는 이 같은 작용 이면의 메커니즘을 파악한 다음 그런 작용을 발생시키지 않는 휴대폰을 설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전자기장의 비열작용으로 거론되는 대표적인 사례는 멜라토닌 생성 방해, 유전자 발현 변화, 그리고 세 포 간 신호전달 이상이다.

멜라토닌 생성 방해

멜라토닌은 제트래그 신드롬의 해독제로 가장 잘 알려져 있다. 뇌의 송과선에서 분비되는 이 호르몬은 인간의 수면 주기 대부분을 조절한다. 또한 DNA의 손상을 차단해 암을 막고, 알츠하이머병 등으로 이어질 수 있는 신경 손상을 막는다. 송과선이란 척추동물에서 볼 수 있는 내분비선으로 멜라토닌 생성을 조절하는 기관이다.

전자기장은 쥐의 멜라토닌 분비를 억제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만약 인간의 멜라토닌 분비도 억제한다면 인체의 방어기제 가운데 하나가 약해지는 것이다.

한 역학조사에 따르면 고압선 근처에 사는 사람들의 백혈병 발병률이 높다는 것이 나타났다. 세계보건기구 산하 국제암연구소는 현재 고압선에서 나오는 것과 같은 전자기장을 잠재적인 발암물질로 분류하고 있다.

영국 브리스틀 대학의 물리학자 데니스 헨쇼는 송전선에서 나오는 전자기장이 멜라토닌 분비를 억제함으로서 면역체계의 기능을 약화시키는 증거가 있다고 말했다. 송전선은 휴대폰보다 낮은 주파수 대역인 50㎐에서 작동한다. 그런 만큼 헨쇼나 쿤디, 그 밖에 다른 연구자들은 휴대폰의 전자기장이 인간 세포에도 영향을 줄 수 있으며, 특히 멜라토닌 분비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말한다.

여러 연구자들이 멜라토닌 수치 변화를 알아냈지만 세계보건기구 산하 비전리방사선 및 환경보건 부서의 전 조정관인 레파촐리는 그것을 인정하지 않고 이렇게 말한다. "송전선에서 나오는 전자기장은 인체를 그렇게 잘 뚫고 들어갈 수 없습니다.

따라서 뭔가 다른 원인이 있는 게 분명합니다. 전자기장 이 멜라토닌 수치를 바꿀 수 있는 메커니즘은 아직 규명되지 않았습니다. 송전선에서 나오는 전자기장의 영향에 대한 논문은 수천 편이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아직도 휴대폰이 인체에 영향을 미치는지 알지 못합니다."





유전자 발현 변화

스톡홀름 대학의 유전자, 미생물학, 그리고 독소학과의 조교수인 이고르 베리에프의 연구에 따르면 전자기장은 인간과 동물세포의 유전자 발현에 변화를 일으킨다고 한다.

베리에프는 인간 면역반응에 관련된 백혈구의 일종인 림프구를 일반적인 휴대폰 주파수인 915㎒의 전자기장에 노출시켰다. 표본은 건강한 사람 및 전자파 과민증 환자에게서 채취한 것이다.

건강한 사람의 림프구나 전자파 과민증 환자의 림프구 모두 스트레스 반응을 일으켜 유전자 발현이 바뀌는 것을 베리에프는 관찰했다. 915㎒의 전자기장에 의해 유도된 스트레스 반응은 환자의 DNA 수리조직을 교란시켰으며, 이 로 인해 암을 유발하는 세포손상을 고치기 힘들어졌다고 베리에프는 결론지었다.

베리에프는 다른 연구를 통해 휴대폰의 전자기장이 줄 기세포의 DNA 복구를 방해하는 것도 발견했다. 줄기세포의 DNA가 파괴되면 백혈병이나 신경교종 등의 각종 종양이 생길 수 있다.

한 마디로 휴대폰에서 나오는 전자기장은 스트레스 반응을 유도해 유전자 발현 변화의 원인이 되고 있는 것. 하지만 레파촐리는 이렇게 말한다. "많은 실험에서 전자기장 이 신체에 미치는 영향을 찾아내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전체 조직에 미치는 것은 아닙니다. 인간의 전체 조직이 그 같은 부작용을 상쇄하기 때문입니다."

세포간 신호전달 이상

이스라엘 바이츠만과학연구소의 로니 세거는 900㎒대의 전자기장이 세포 간 신호전달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발견했다.

일반적으로 생명체를 이루고 있는 수많은 세포들은 신호전달 과정을 통해 서로 정보를 교환하고 생리현상을 조절한다. 세포끼리의 신호전달은 신호전달물질에 의해 이루어진다. 어떤 신호전달물질이 한 세포에서 방출되면 이 신호전달물질은 다른 세포의 세포막에 있는 수용체 등에 작 용해 신호를 전달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쥐의 세포를 가지고 연구한 결과 전자기장이 세포간 신호전달에 이상을 일으킨다는 것을 발견한 것. 휴대폰의 전자기장이 특정 효소의 활동을 바꾸어 자유래디컬을 생산하도록 자극한다는 것이다.

자유 래디컬이란 홀수의 전자를 가지고 있는 원자를 말한다. 보통 원자는 짝수의 전자를 가지고 있는데, 자유 래디컬은 짝이 없는 전자를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정상의 원자와는 다르다. 짝을 이뤄야할 전자 중에 하나가 분리되면 불균형 상태가 되고, 이런 불균형으로 원자가 불안정해져 격렬한 반응성과 파괴적인 성질을 갖게 된다.

세거는 전자기장이 소량의 자유 래디컬을 생산하는 효과가 있는 점을 중시했다. 그는 세포 간 신호전달 이상이 현재 완벽히 파악되지 않은 보다 일반적인 발병 메커니즘의 일부일 수 있다며 이 같은 일이 누적됐을 경우 위험할 수 있다고 말한다.

다만 그는 다음과 같이 신중한 태도를 드러낸다. "이 같은 악영향이 늘어나려면 자유래디컬의 확장이 더욱 강해져야 합니다."

하지만 보이스는 자유래디컬이 인체 신진대사의 부산물로 언제든지 생성된다는 점을 지적한다. "인체는 자유래디컬을 처리하는 과정을 갖추고 있습니다. 실험용 접시에서 나온 결과를 사람에게 함부로 적용하지 말아야 합니다."





집중 연구해야 할 비열작용

헨쇼, 베리에프, 그리고 세거는 전자기장이 암을 유발하거나 촉진시키는 방식을 증명해 냈다고 주장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이들은 비열작용을 간과해서는 안 되며, 앞으로 비열작용을 더욱 중점적으로 연구해야 한다고 말한다.

비엔나의대 환경보건연구소의 쿤디는 이렇게 말한다. "위험이 존재하는지 지금 당장 알아야 합니다. 메커니즘을 알면 발암 위험을 높이지 않는 휴대폰을 설계할 수 있습니다."

밴더빌트 의대 교수이자 국제전염병연구소의 과학부장 인 보이스 역시 휴대폰과 전자기장에 대한 연구는 계속 진행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전자기장은 비전리방사선이니 더 이상 연구할 필요가 없다는 식으로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현재까지 계속 연구를 진행해 왔습니다. 다만 연구를 통해 아무 것도 밝혀내지 못했을 뿐입니다."

휴대폰 사용자에 대한 국제집단연구는 향후 추가 연구가 필요한지 결정하는데 도움을 줄 것이다. 국제집단연구는 25만 명의 유럽인들을 향후 20~30년간 관찰해 휴대폰과 뇌종양 간의 관계를 살필 것이다. 여기에는 두통, 수면 장애, 신경성 및 뇌혈관 질환과 같은 전자파 과민증 증상도 포함된다.

하지만 국제집단연구의 결과는 일러도 2029년까지는 나오지 않는다. 그리고 지금부터 그때까지 관련기술은 예측할 수 없을 만큼 변하고 발전해 나갈 것이다.

시카고의 일리노이공대 연구소에서 진행되고 있는 연구는 여러 세대에 걸쳐 쥐에게 전자기장을 노출시킨 후 그 결과를 관찰하는 것이다. 이 연구에서 확실한 증거를 발견해야 할 것이다.

쥐를 4대에 걸쳐 한시도 쉬지 않고 휴대폰 주파수 수준의 전자기장에 노출시켜 본 유사한 실험에서는 쥐의 생식 능력이나 발육에 아무런 해가 나타나지 않았다. 레파촐리는 이를 두고 이 같은 말을 했다. "만약 일리노이공대 연구소의 연구에서 아무런 부정적 영향이 발견되지 않는다면 앞으로도 그런 부정적 영향을 발견하지 못할 가능성이 매우 큽니다."

국제 비전리방사선보호위원회는 전자기장이 건강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최신 보고서에서 이 같은 결론을 내렸다. "비열작용의 존재 여부를 반증하기란 본질적으로 불가능하지만 비열작용 메커니즘의 타당성 또한 매우 낮다."

세거는 여전히 이렇게 말한다. "비열작용이 실재한다는 증거가 속속 발견되고 있습니다. 그 메커니즘은 어떤 것일까요. 아무도 모릅니다. 그런 작용이 있다면 메커니즘은 학계의 그 누구도 알지 못하는 것일 겁니다. 우리는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생각을 해봐야 합니다."





전자파 없는 세상에 대한 꿈

세거베크는 휴대폰이 위험한 물건이라고 확신한다. "저는 엔지니어입니다. 건강에 악영향을 주지 않는 휴대폰을 설계하는 방법은 모르지만 전자기장의 발생 제한기준을 제대로 설정한다면 상황은 달라질 것입니다."

세거베크는 전자파 과민증 증세가 나타나기 시작하던 초기에만 해도 어느 정도 정상적인 생활을 영위할 수 있었다. 그가 아프기 시작했을 때 딸 안나는 어린아이였다. 그 아이는 세거베크를 앞질러 달리면서 세거베크가 들어가는 모든 방의 불을 꺼놓곤 했다. 세거베크가 그리워하는 것은 가족과의 평온한 일상사다. 아이들을 자동차로 학교에 데려다 주면서 웃고 떠드는 것이다.

요즘 그는 음식을 만들 때 나무를 태우는 스토브를 이용한다. 그의 유일한 난방 기구는 벽난로다.

물론 그도 전등이나 전화, 컴퓨터 같은 전자제품을 가지고는 있다. 하지만 전자제품의 전력원은 집에서 27m 떨어진 지하저장고에 있는 12볼트 배터리다. 27m의 거리를 둔 것은 그래야 전자기장이 세거베크에게 도달하는 수치를 최소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전자기장이 나오지 않도록 키보드와 마우스는 금속판으로 둘러싸여 있다. 거의 모든 이웃들은 그의 증세가 어떤지 알고 있어 그의 집을 방문하거나 집 근처에 갈 때는 휴대폰을 가져가지 않는다.

간혹 모르는 사람들은 세거베크를 엄청난 고통에 빠뜨리기도 한다. 하지만 세거베크는 자신의 상태에 대해 놀랍도록 낙관적이다. "물론 제가 처한 상황은 대단히 좋지 않지요. 하지만 이는 사고일 뿐입니다. 저는 긍정적인 사람입니다. 또한 매우 가혹한 자연환경을 버티고 살아남은 사람들의 후손이구요."

그는 상냥하고 부드럽게 말하는 사람이지만 전자파 과민증의 위험성을 사람들에게 인식시키고, 그 위험을 감소시키려는 굳은 의지를 가지고 있다. 다만 그는 휴대폰을 금지하는 것이 아니라 더욱 안전한 휴대폰을 만들어 그 문제를 해결하고자 한다.

그는 사람들에게 해가 될 수도 있는 물건을 만든 업계에서 일했다는 사실에 일종의 죄책감도 느끼고 있다. "저와 같은 사람들은 사회를 선도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하 지만 우리는 의학 같은 것은 몰랐습니다. 우리가 만드는 물건이 다른 사람에게 해를 입힐 수 있다는 것을 간과한 것이죠. 너무나 오랫동안 잘못을 저질렀다는 것을 몰랐습니다."






전문가들의 휴대폰 사용 습관


로니 세거
이스라엘 바이츠만 과학연구소
세거는 자신의 휴대폰 사용 습관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하루 30분~1시간 이상 사용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모든 것은 사용량의 문제이니까요." 그는 휴대폰을 몸에서 30cm 이상 떨어뜨리고 스피커폰 기능을 사용할 것을 권한다.

크리스토퍼 울램스
캔서 액티브의 창설자이자 최고경영자
울램스는 휴대폰을 거의 사용하지 않으며, 사용할 경우에는 스피커폰 기능을 이용한다. 그는 현재 14세, 23세, 26세인 자녀들에게 가급적 문자메시지만 사용할 것을 권하며, 전원이 켜진 휴대폰을 몸에 지니고 다니지 못하게 한다.

마이클 레파촐리
세계보건기구 산하 비전리방사선 및 환경보건 부서의 전 조정관
레파촐리는 2대의 휴대폰을 가지고 있으며, 아무 거리낌 없이 사용한다. 다만 휴대폰이 건강에 악영향을 끼칠지도 모른다고 걱정하는 사람들에게는 핸드프리 키트를 사용하라고 권한다. 핸드프리 키트를 사용하면 전자파에 대한 노출 정도를 줄일 수 있다.

존 보이스
밴더빌트 의대 교수이자 국제전염병 연구소의 과학부장
보이스는 하루에 휴대폰 통화를 5번 정도만 한다. 그리고 이어폰을 사용한다. 이는 전자기장이 두려워서가 아니라 나이를 먹은 탓에 휴대폰 음성이 잘 들리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울리카 아베르그
전자파 과민증 전문의
아베르그는 환자를 방문할 때 휴대폰에서 배터리를 분리한다. 그녀는 집에 있는 무선인터넷과 무선전화기를 없애라고 조언 한다. 그렇지 않으면 하루 종일 전자기장을 피할 길이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엘리자베스 카르디스
환경전염병 연구센터의 인터폰 프로젝트 책임자
카르디스는 결코 수다스러운 사람이 아니다. 시간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전자파에 대해서만큼은 말이 많다. "소비자들 이 전자파의 잠재적 위험을 두려워한다면 핸드프리 키트나 이어폰을 구입해야 합니다."

미카엘 쿤디
비엔나의대 환경보건연구소 연구원
쿤디는 가급적 유선전화를 사용하고, 수신 상태가 좋지 않은 곳에서는 휴대폰을 사용하지 말 것을 조언한다. 왜냐하면 휴대폰은 수신 상태가 안 좋은 곳에서는 연결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신호 강도를 높이는데, 이 때 전자기장의 방출도 높아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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