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닫힌 공간에서 위안 찾는 독존청년...거듭된 실패로 자존감↓

[기획] 출구 없는 취업난 '독존청년'의 아우성

<하> 방에 갇히는 '독존청년'... 왜?

#올해로 취업 준비 3년 차인 최승준(가명·29)씨는 수험생활로 인해 하루 중 대부분의 시간을 집에서 보낸다. 사람 만나는 것을 기피하는 것은 기본이고 심할 경우 사람이 많은 영화관이나 공연장에 가면 정신이 혼미해져 기절하는 경우까지 있었다. 지친 삶의 해방구가 필요할 때 그는 그나마 있는 지인들과 외부와 단절된 곳인 집이나 칸막이가 있는 조용한 다락방 카페에서 여가 시간을 즐긴다.

오랜 취업 준비와 수험 생활로 혼자에 익숙해진 청년에게 더 이상 광장 같은 ‘열린 공간’은 즐거움의 공간이 아니라 스트레스를 안겨주는 ‘피곤한’ 공간이 됐다. 청년들은 자신이 주인공이 되는 조그마한 ‘폐쇄적인’ 공간에서 행복을 느끼고 유희를 찾는다.

◇확산되는 방 문화, ‘독존청년’의 ‘위험한’ 탈출구

잦은 실패로 인한 자존감의 하락, 얼굴을 맞대는 직접적인 관계 맺기 실패에 따른 스트레스 때문에 대학가를 중심으로 방탈출 카페를 찾는 발길이 급증하는 추세다. 지난해 5월 처음 강남역 근처에 생긴지 1년 만에 전국적으로 50개가 넘는 곳에서 인기리에 운영 중이다. 젊은이들 사이에서 방탈출 카페가 인기를 끄는 이유는 밀실 안에서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추리와 심리 게임을 즐길 수 있기 때문. 정해진 시간 동안 밀실에 갇혀 각 방마다 주어진 미션을 풀어야 나갈 수 있는 방탈출 카페는 혼자만의 시간을 방해받지 않고자 하는 청년층의 성향을 고스란히 반영한 유희 공간이다.

일반적으로 2~6명이 한 팀을 이뤄 미션 하나를 해결하게 되는데, 미션이 이뤄지는 2시간 동안 사회로부터 ‘완전한’ 독립을 맛볼 수 있다. 한 달에만 2~3번 방탈출 카페를 이용한다는 김선웅(26)씨는 “취업 준비를 한 지 2년이 넘었는데 그동안 실패만을 해왔다”며 “방탈출 카페에서 친구들과 미션을 해결할 때면 무너진 자존감이 회복되는 느낌이 들어 자주 오는 편이다”고 말했다.

홍대에서 방탈출 카페를 운영하는 김모(35)씨는 “대부분 3~4인이 와서 카페를 즐기다 가는 편인데 최근에는 혼자 오는 사람들도 있는 편”이라며 “미션을 해결하느냐 못하느냐가 문제가 아니라 혼자 무언가를 즐길 수 있다는 게 중요한 것 같다”고 말했다. 방탈출 카페 외에 혼자만의 공간을 원하는 청년층을 타깃으로 한 업소들도 성행 중이다. 홍대, 신촌 등 대학가를 중심으로 다락방 카페, 칸막이 카페 등이 생겼다. 혼자 방에 들어가 노래를 부를 수 있는 코인 노래방도 우후죽순 들어서고 있다.

전문가들은 밀실 문화가 사회적 관계 맺기에 어려움을 겪는 ‘독존청년’들에게 잠시의 위안을 주지만 실질적인 ‘치유’와는 거리가 멀다고 지적한다. 민간 공익재단인 광주청년센터 ‘더숲’에서 청년심리상담을 하고 있는 상담가 류리나씨는 “청년들은 문제가 생기면 자조(自嘲) 집단에 들어가 자신의 문제를 합리화하려고 하는 성향을 보이는데 이마저도 힘든 청년들은 ‘힐링’이라는 이름으로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며 불안정한 상황을 벗어나려 애쓴다”며 “유희를 즐길 때는 모르다가 다시 혼자 있게 되면 돌아오는 회의감은 그 전보다 더욱 클 수 있기 때문에 사회와 소통하고 접촉할 수 있는 사회적인 안전망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얼굴 맞대는 직접적 관계 회피

“무너진 자존감 회복되는 느낌”

방 탈출 카페 등 밀실 문화 확산

◇고실업과 절름발이 교육이 ‘독존 청년’ 만들어

2010년대에 접어들면서 한국사회는 끊임없이 ‘실패’를 맛봤다. 경제적인 성장률은 점점 떨어져 바닥을 치고 있고, 가계부채는 1,200조를 넘어섰다. 저성장으로 일자리가 줄어들면서 청년들은 자립 기반이 무너지는 느낌이다. 당장 자기 자신의 안위가 확보되지 않은 상태에서 청년들이 유희를 즐긴다는 것은 사치와 다를 바 없다. 충분한 유희가 허락되지 않은 청년들은 정서적 허기를 느끼고, 홀로 ‘절약적인’ 유희를 찾는다.



지난 2013년 소외된 문화를 즐기는 청년들을 분석한 ‘허기 사회’를 쓴 주창윤 서울여대 언론영상학부 교수는 “1997년 외환위기 이후 공동체라는 개념이 완전히 무너지고, 청년들을 소외시켜왔다”며 “사회가 청년을 배제하고 청년들은 적극적인 노력보다 스스로 사회를 배제하는 경향을 보이면서 ‘독존청년’이 만들어지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거듭된 실패로 인한 좌절감을 해소시킬 수 있는 면역력을 길러주지 못한 교육에도 문제가 있다. 취재 중 만난 성균관대 3학년 김모(23)씨는 조모임을 하고, 같이 과제를 수행하는 것 자체가 힘들다고 토로한다. 초·중·고등학교를 거치며 정규 학교 교육을 받았지만 함께 어떤 목표를 달성한다는 것이 어렵다고 한다.

성균관대 학생상담센터장을 맡고 있는 이동훈 교육학과 교수는 ‘독존청년’의 탄생은 혼자 자라는 게 익숙했던 성장 과정에 기인한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생애주기에 따라 가져야 하는 책임감과 그에 따르는 스트레스가 존재한다”며 “그러나 남한테 의지하는 것이 익숙하고 부모의 충분한 지원 속에 ‘대학 입시’라는 단기간의 목표만 달성하면 됐던 학생들은 대학에 와서 자신이 책임져야 할 상황이 많아지면 심리적인 절벽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고 말했다.

◇관계 맺기의 과부하가 낳은 ‘방’ 문화





N세대로 대표되는 지금의 청년들은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로 소통한다. 오프라인을 통한 대면 관계 맺기보다 SNS로 소통하며 새로운 인간관계를 맺는 것을 더 선호한다. 얼굴을 맞댄 관계 맺기보다 훨씬 피로도가 적기 때문이다.

그러나 SNS를 통한 과도한 관계 맺기는 이용자들에게 스트레스로 다가온다. 실제로 지난해 모바일 잠금 화면 플랫폼 ‘캐시슬라이드’가 1,271명을 대상으로 SNS 사용행태에 대한 설문 조사를 실시한 결과, 응답자 중 49.4%가 SNS 사용 시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응답했다. 특히, 잦은 실패를 경험한 ‘독존청년’에게는 일반인보다 더 큰 스트레스로 작용한다. 자신의 일상이 공개되는 것이 자신의 실패를 공개하는 일과 동일하게 여겨지기 때문이다.

문은미 동신대 상담심리학과 교수는 “자존감이 극도로 떨어진 상태에서 자기 자신이 공개되는 것은 대중 앞에 발가벗고 서 있는 것과 같다”며 “홀로 있는 시간이 많은 청년일수록 자신이 공개되면 될수록 혼자가 되려고 하는 의식이 더 커질 것이다”고 말했다.

/이종호기자 phillies@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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