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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기본소득' 논의, 단순 인기전술로 흘러선 안 된다

미래 세대의 청년들은 충분한 일자리를 향유할 수 있을까. 불행히도 미래학자들의 전망은 비관적이다. 우리는 이미 인공지능(AI)이 질병을 정확하게 진단하고 처방하는 세상을 살아가고 있다. 앞으로는 모든 역사적 판례를 기억하고 있는 AI가 재판을 담당할지 모른다. 회계사나 세무사의 역할도 대신할 것이다. 이런 현상이 보편화할수록 육체노동은 말할 것도 없고 고도의 지능을 요구하는 전문가들의 일자리도 안전하지 않다.

저성장의 고착화와 소득 양극화도 오늘날의 지구촌이 직면한 커다란 두통거리다. 그럼 우리네 보통 인간들은 어떻게 돈을 벌고 살아갈 것인가. 이런 미래사회의 고민을 해결하기 위한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는 것이 보편적 기본소득(Universal Basic Income) 제도다.

기본소득은 재산이나 소득의 많고 적음, 노동 참여 여부와 상관없이 모든 사회 구성원에게 균등하게 지급하는 소득을 의미한다. 이 제도가 본격적으로 세상의 주목을 받게 된 것은 6월 초 ‘월 300만원의 기본소득’ 도입 여부를 결정하는 스위스 국민투표 소식이 전해지면서다.

우리나라에서도 조기 대선이 가시화하면서 기본소득제 도입 논의가 정치권을 달구기 시작했다. 일부 대선주자들이 대선 공약으로 내걸고 나섰기 때문이다. 노동시장의 문제를 근원적으로 건드린다는 점에서 기본소득제는 시간이 흐를수록 가장 뜨거운 사회적 이슈로 떠오를 수밖에 없다.

정치권에서는 김종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6월 포용적 성장을 위해 기본소득제를 도입할 필요성을 언급했다. 대권 행보에 나선 이재명 성남시장이나 박원순 서울시장도 한국형 기본소득제 도입을 제안하고 있다. 중도로 분류되는 정운찬 전 국무총리도 이 제도의 필요성을 인정한 바 있다. 보수 우파를 지향하는 새누리당 쪽에서는 아직 구체적인 언급이 나오고 있지 않지만 기본소득제는 애초부터 이념의 좌우를 떠난 공통 관심사라 할 수 있다.

좌파는 무엇보다 이를 사회정의를 실현하는 첩경으로 여긴다. 기본소득이야말로 절대적 빈곤을 없애고 상대적 빈곤을 줄이면서 사회 구성원의 자유와 평등을 증진할 것이라는 주장이다. 우파는 대신 복지국가의 폐해 축소와 작은 정부를 추구하는 방법론으로 주목한다.

재원을 마련하는 방법에 관해 좌파 쪽에서는 증세에 기대고 있다. 하지만 이는 좌파 쪽의 논리적 약점이기도 하다. 스위스에서 18세 이상 모든 성인에게 월 300만원을 지급하는 기본소득 도입법을 놓고 국민투표를 실시했으나 76.9%의 압도적 반대로 부결된 것도 결국은 증세로 연결될 수밖에 없다는 유권자들의 우려 때문이었다. 스위스 정부에 따르면 법안이 통과될 경우 연간 정부 지출의 세 배가 넘는 248조원의 재원이 추가로 필요하다.



우파 쪽에서 기본소득제에 주목하는 것은 행정비용을 절감하고 관료제의 폐해를 줄이기 위해서다. 사회보장 제도가 이미 확립된 유럽이나 미국 경제학자들이 주로 이를 거론한다. 어떤 시민이 복지 혜택을 받을 만한 사람인지 가려내기 위한 심사기구를 운영해야 하는 전통적 사회보장과 달리 기본소득은 일인당 일정액을 지급하기만 하면 되기 때문에 복지를 위한 관료 행정기구가 사라진다. 자동적으로 작은 정부가 실현될 수 있다. 각종 정부 보조금이나 실업급여 및 저소득층 사회보장, 건강보험 등 모든 복지를 제거해 재원을 마련해야 한다는 방법론을 제시하기도 한다.

유럽 국가들 중 중앙정부 차원에서 기본소득 연구에 가장 적극적인 자세를 보이는 나라는 핀란드다. 좌파도 핀란드의 사례를 즐겨 인용하는 편이다. 하지만 그 내용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기존 복지 체계의 개혁과 정부의 역할 축소를 위한 대안으로서의 기본소득제라는 측면이 강하다. 우파적 접근 방식이라 할 수 있다.

설령 국민투표가 기본소득제 도입을 결정한다고 해도 앞길은 상당히 험난하다. 기본소득을 도입한다는 전제하에 국민연금·고용보험·산재보험·건강보험 등 모든 공공부조와 사회보험에 대한 전면적 재편이 불가피하거니와 어떻게 재편할지를 둘러싼 방식 역시 큰 논쟁거리가 될 수밖에 없다. 기본소득이 초래할 노동의욕 감소나 그에 따른 사회적 모럴해저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하는 숙제도 여전히 남아 있다.

앞서 지적했듯이 기본소득제는 좌우 이념을 떠나 국민의 생활권과 사회안전망의 성공 여부가 걸려 있는 주요 정책과제다. 우파인 새누리당도 적극적으로 논의에 참여해 건설적인 답안을 내놓을 준비를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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