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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로 본 2016]④ 태블릿PC '최순실'의 등장…격변의 대한민국





2016 병신(丙申)년. 말 그대로 ‘다사다난(多事多難)’이었다. 숱한 사건과 이변이 쏟아지면서 그야말로 숨돌릴 틈없는 날들의 연속이었다.

그중에서도 단연 두드러진 것은 모든 이슈를 쓰나미처럼 잠재운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비선실세 국정 농단에 전 국민은 들고 일어났다. 민초들의 분노는 ‘바람에 꺼지지 않는’ 촛불로 분출됐고, 결국 헌정 사상 두번째로 대통령 탄핵소추안 가결을 이끌어냈다.

이외에도 연초부터 ‘응답하라 1988’, ‘태양의 후예’ 등 국민들을 ‘들었다 놨다’한 드라마 열풍이 불었고, 총선 시즌을 맞아 ‘옥새 들고 나르샤’라는 유행어를 탄생 시킨 김무성 전 새누리당 대표의 웃픈 행각 등 정치권 이슈도 이어졌다. 해외에서는 브렉시트와 도널드 트럼프 당선이라는 예상치 못한 반전이 날아들었다.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2016년 대한민국을 울고 웃게 했던 ‘그 사건’들을 서울경제썸이 정리했다.

[이슈로 본 2016]1편 다시 보기▶‘응팔·태후’에 열광하고 ‘이세돌’ 응원하고[이슈로 본 2016]2편 다시 보기▶강남역·구의역서 울고, 옥시에 분노했던 여름[이슈로 본 2016]3편 다시 보기▶포켓몬·리우에 빠지고, 사드·지진에 오열하고

10월





“야, 돈도 실력이야”

‘비선실세’ 최순실 씨의 딸 ‘정유라’는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등장하기 시작한다. 8월 한여름 이대생들을 촛불들고 나오게 했던 ‘미래라이프재단’ 건립 사건이 일단락 된 뒤, 이를 조사하던 과정에서 ‘최순실’이 대학 정부지원금을 지원했단 의혹이 나왔고, 그녀의 딸인 정유라가 다시 주목받게 된 것. 당시 이화여대 입학과정 특혜시비가 있던 상황에서 발견된 그녀의 페북 글은 인터넷을 발칵 뒤집으며 전국적인 ‘공분’을 일으켰다.



정유라는 2014년 12월 3일 새벽 SNS에 “돈도 실력이야. 능력 없으면 니네 부모를 원망해. 있는 우리 부모 가지고 감 놔라 배 놔라 하지 말고. 돈도 실력이야. 불만이면 종목을 갈아타야지. 남의 욕하기 바쁘니 아무리 다른 거 한들 어디 성공하겠니?”라고 했다. ‘헬조선’, ‘열정페이’로 대입, 취업난에 힘겨워하던 젊은 세대에게 정유라의 이 같은 말은 국민의 공분을 자아냈고 ‘최순실 게이트’의 서막을 알리는 징조였다.



최순실이란 이름에 ‘게이트’가 붙기 시작했던 건 10월 24일. JTBC가 입수한 태블릿PC에 박근혜 대통령의 연설문 문건이 나오면서 ‘최순실 게이트’는 시작됐다. 이어 최순실이 박근혜 정부의 국정에 개입했다는 것과 미르재단, K스포츠재단 설립에 관여하며 그 재단을 사유화한 것 등이 보도되며 사건은 일파만파로 커졌다. 특검이나 국정조사 명칭도 “박근혜 정부의 최순실 등 민간인에 의한 국정농단 의혹 사건”으로 규정됐다. 원래 2016년 9월 20일, 한겨레 신문은 재벌들이 출연해 만든 미르재단, K스포츠재단에 최순실이 관여했다고 처음 보도했다. 이어 경향일보가 최순실이 독일에 비밀회사 ‘비덱’을 세웠다는 사실을 10월 18일, 최순실이 국내에 비밀회사 더블루K를 세웠다는 내용을 19일 보도했었다. 하지만 당시 이 사건은 개인의 불법 자금 의혹이었을 뿐 대통령이 개입된 사건으로까진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10월 24일을 기점으로 JTBC가 박근혜 대통령의 외교, 국방, 창조경제 등 안보 문건에 최순실 씨가 손을 댔다는 의혹을 연이어 보도하며 이 사건은 단순 자금 유출 사건이 아닌 ‘게이트’로 커졌다.



세상에 알려진 ‘최순실 태블릿PC’에는 44개의 대통령 연설문이 담겨 있었다. 연설문은 대통령이 직접 대중 앞에서 연설을 하기 전 최순실 씨의 첨삭을 거쳐 발언된 것으로 파악됐다. 가장 문제가 됐던 건 박 대통령의 드레스덴 연설문으로, 이 연설문은 2014년 3월 28일 대통령이 독일 드레스덴을 방문하면서 발표한 한글 파일 형식의 내용이다. 이 문건은 당시 극도의 보안이 필요하다고 전해졌지만 태블릿PC 문건 유출 경로를 파악해보니 연설 하루 전에 이미 최 씨의 손에 의해 수정됐던 것으로 밝혀졌다.



그간 최씨에 대해선 수백억원대 자산가라는 소문만 있을 뿐 정확한 재산 규모와 축재 과정은 베일에 싸여 있었다. 하지만 조사 과정에서 최 씨가 해외로 빼돌린 자금이 8,000억부터 10조까지라는 의혹이 짙어지며 향후 특검은 ‘최씨와 그 일가가 불법적으로 재산을 형성하고 은닉했다는 의혹’을 핵심 수사 대상으로 규정했다.



독일에 숨어 모습을 드러내지 않던 최 씨는 10월의 마지막 날인 31일, 대중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다음날 서울 서초 서울지방검찰청에 출두한 최씨 앞에 취재진 400여명이 몰려 진풍경이 벌어졌다. 그 과정에서 벗겨진 최순실의 신발 한 짝이 명품 브랜드 ‘프라다’로 밝혀져 그 날 오후 실시간 검색어에 ‘최순실 신발’이 상위 랭킹에 걸려있기도 했다.



앞서 박근혜 대통령은 태블릿 PC에 대한 의혹을 해명하기 위해 10월 25일 첫번째 대국민담화를 발표했다. 박 대통령은 “취임 후 일정 기간 동안 일부 자료들에 대해 의견을 묻기도 했고 청와대 보좌 체계가 완비된 이후 그만두었다”고 사과의 뜻을 밝혔고 최 씨도 27일 세계일보와의 단독 인터뷰에서 태블릿PC가 본인의 것이 아니며 “진심으로 잘못을 뉘우치고 있다”고 말했지만 12월 11일 정호성 전 비서관의 PC에서 2016년 사용기록을 포함한 180개 문건이 노출돼 결국 박근혜 대통령의 발언은 위증이 됐다.

대통령의 담화문 발표 5일 뒤인 30일, 청와대는 이원종 비서실장, 우병우 민정수석비서관, 이재만 총무비서관, 정호성 부속비서관, 안봉근 국정홍보비서관의 사표를 수리했다.

11월





10월 29일 시작해 매주 광화문 일대, 청계광장을 중심으로 전국에서 열린 ‘촛불집회’는 매주 ‘명장면’을 연출했다. 1차 촛불집회에 시민 2만여 명 참가를 시작으로 매주 참여 인원이 배로 늘어나며 5차인 12월 3일에는 230여만 명까지 늘어났다. 새누리당 한 의원의 “촛불은 바람불면 꺼진다”는 발언에 분개한 시민들은 촛불 대신 LED촛불, 횃불 등 진화한 집회용품을 들고 나오며 촛불 열기를 이어갔고, 평화적인 시위와 축제 같은 시위 구성으로 ‘대한민국 촛불집회’는 전 세계가 주목하는 ‘평화 혁명’이 되기도 했다.

이번 촛불 집회에서는 무엇보다 경찰과 시민의 합심이 빛을 발했다. 6차 집회에서 촛불 집회 도중 한 시민이 쓰러지자 경찰이 핫팩을 건네는가 하면, 시민들이 경찰 차벽에 붙인 ‘꽃 스티커’를 경찰청장이 “떼지 말라”고 지시했다. 또 이례적으로 이번 집회는 경찰이 차벽을 광화문 광장까지로 물리면서 그동안 불허했던 관례를 깨기도 했다.





동시에 전국 현장에서는 곳곳에서 시국선언 대열이 이어졌다. 10월 26일 서강대와 이화여대를 시작으로 10월 29일까지 전국 40여개 대학교가 시국 선언에 참여했으며 11월 2일에는 총 100여개의 학교가 동참했다. 시국선언은 학생, 교수 외에도 만화인, 문학인, 예술인 등 각계각층의 국민들이 직접 참여의사를 밝혔고 해에 있는 하버드, 버클리 대학교 등 미국, 영국, 일본 등지에 살고 있는 한인들도 대열에 동참했다.



미 대선을 앞두고 대선운동이 한참이던 도널드 트럼프 출마자의 음담패설이 담긴 음성파일이 유출돼 곤경을 겪었다. 당시 트럼프는 “자신이 원한다면 유부녀라도 개의치 않고 아무 여자라도 침실로 데려갈 수 있다”는 발언을 해 러닝메이트인 마이클 펜스가 잠시 등을 돌리는 등 공화당의 뭇매를 맞기도 했다. 하지만 ‘힐러리가 승리할 것’이란 모두의 예상을 뒤엎고 11월 8일(현지시간) 치러진 선거에서 트럼프가 저소득, 저학력 백인 노동자층의 표를 대거 흡수하며 306명의 선서인단을 획득, 힐러리 클린턴 후보(232명)를 제치고 당선됐다. 당선 직후 ‘대통령 트럼프’를 인정할 수 없다는 시위가 벌어지기도 했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 촉발된 10월의 촛불 혁명 첫번째 요구는 ‘박근혜 대통령 하야’였다. 국민은 즉각적인 하야를 요구했고 이에 부응해 이재명 성남 시장을 필두로 대선 잠룡을 포함해 야당 정치인들은 하야를 외쳤다.

하지만 박근혜 대통령은 2차 대국민담화에서 하야의 뜻을 밝히지 않으며 계속 정권을 유지하겠다는 의사를 밝혔고 11월 중순 정치권에서는 임기단축 조기 대선론이 불거져 나왔다. 탄핵, 하야, 개헌 등 3가지 방안으로 시작된 대통령 조기퇴진운동은 야권의 하야 운동과 함께 여당에서도 단순 개헌에 의한 임기 단축을 주장하며 대통령 임기에 대한 시나리오는 다양해졌다.



박근혜 대통령이 물러나지 않자 촛불집회는 더욱 거세지며 대통령 ‘탄핵’에 대한 열기가 전국을 뒤덮었다. 박근혜 대통령은 검찰 대면조사 가능성이 높아지자 11월 15일 유영하 변호사를 변호인으로 선임해 “검찰 조사 거부” 의사를 밝혔다.

유영하 변호사는 기자회견을 통해 “검찰의 객관성과 공정성을 믿기 어렵다”며 “(검찰이)상상과 추측을 거듭한 뒤 자신들이 바라는 환상의 집을 지었다”고 반박해 또 다시 전국적인 ‘공분’을 사기도 했다.

12월







12월 9일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 소추안이 국회에서 가결됐다. 여야 3당이 통과시킨 탄핵소추안은 재적의원 300명중 299명이 투표에 참여해 찬성 234표, 반대 56표, 무효 7표, 기권2표 기록을 남겼다. ‘최순실 게이트’가 본격화된 10월 24일 이후 한 달 반 만이었다.

그동안 박근혜 대통령의 국정수행 지지율은 한국갤럽 기준 4~5%까지 떨어지며 국정 수행이 도저히 불가능한 수준이 됐고, 탄핵 찬성 의견은 각종 여론 조사 지표에 80% 수준까지 오르기도 했다. ‘비선실세’, ‘정경유착’, ‘부정 인사’, ‘문건 유출’ 등 온갖 ‘희대의 부정부패’로 얼룩진 이번 사태에 박근혜 대통령은 제 2차, 3차 대국민 담화를 열었었지만 ‘최순실의 개인 비리’ 등으로 일관하는 무책임한 태도를 보였다.



국정조사의 ‘꽃’이라고 할 수 있는 청문회가 12월 초부터 연쇄적으로 열렸다. ‘국정농단’ 중심인물을 모두 볼 수 있었던 시간이라 전국적으로 청문회에 쏠린 눈은 엄청났다. 청문회는 모두 지상파 3사를 비롯해 종편과 케이블 채널 등에서도 생중계로 방송됐다. 무엇보다 1차 청문회 명단은 지난 80년대 5공 청문회 이후 처음으로 대기업 총수 9인이 한자리에 모이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28년 만에 주요 기업 총수 9명이 일렬로 나란히 앉아 국회의원들의 질의를 받는 모습에 국회방송은 사상 최고의 시청률을 기록하기도 했다. 1차 청문회는 ‘이재용 청문회’라고 불릴 만큼 이 부회장에게 질의가 집중됐다.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과정에서의 로비 의혹, 최순실의 존재 인지 여부, 정유라 승마 지원 의혹 등에 관한 질의가 끊이지 않았지만 이 부회장은 “송구하다” “죄송하다” 등의 답변만을 제시해 ‘송구재용’이라는 별명을 갖기도 했다.



2차 청문회에는 최순실, 우병우, 안종범, 정호성, 고영태 등 핵심 증인들이 참석할 것으로 알려져 주목을 받았지만 최순실, 우병우 등 주요 멤버들은 참석하지 않아 ‘알맹이 없는 청문회’라는 여론의 비난을 받았다. 이어진 3차, 4차, 5차 청문회에서도 최순실 일가 중 장시호를 뺀 어느 누구도 청문회에 출석하지 않아 ‘맹탕’ 청문회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이에 국조특위는 26일 구치소에 있는 최순실, 안종범, 정호성을 직접 만나러 구치소에 갔지만 이날 출석한 핵심 증인들은 시종일관 모르쇠로 일관했다. 이날 오후 3시부터 5시30분까지 약 2시간 비공개 접견에서 최순실 씨는 “국민께 여러가지 혼란케 해 죄송하다. 몸과 마음이 너무 어지럽고 심경 복잡하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최 씨는 김기춘 전 비서실장,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은 “모르는 사람이다”고 증언했다. 결국 이재용부터 우병우까지, 최순실을 아는 사람은 주요 증인 중 단 한 명도 없었다. 김기춘 전 비서실장은 초반 “최순실 씨는 모르는 사람”으로 일관하다 청문회장에서 한 네티즌이 올린 게시물에 본인의 과거 영상이 드러나 결국 위증을 ‘인정’했다.

/정수현기자 value@sedaily.com

*서울경제썸은 2016년 대한민국을 웃고 울게 했던 주요 사건들을 모아 3개월 단위로 4편, 그리고 종합편까지 총 5편을 제작해 12월 30일까지 매일 한 편씩 송고할 예정이다. 키워드 선정은 각종 포털의 빅데이터 분석 자료를 토대로 사건의 비중과 여론 집중도를 따져 선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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