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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D수첩’ 미투 폭로 한 달, 직장 성폭력 폭로 후 떠난 건 피해자들뿐?





13일 방송되는 MBC ‘PD수첩’에서는 ‘미투 그 후, 피해자만 떠났다’ 편이 전파를 탄다.

피해자들이 말을 하기 시작했다. 하루가 멀다 하고 새로운 미투가 터져 나온 지난 한 달간 에도 많은 제보가 들어왔다. 터트리기만 하면 이슈가 되는 유명 인사에 대한 미투와 달리, 아무리 말해도 들어 주는 이 없던 평범한 여성들의 제보였다. 성희롱 피해가 가장 많이 발생하는 장소는 ‘직장’이다. 직장 내 성폭력을 겪은 이후, 평범했던 이들의 일상은 더 이상 평범할 수 없게 됐다. 피해 사실을 말한 다음부터 더 큰 피해를 입게 되었다는 그녀들의 이야기를 에서 취재했다.

▲ 미투, 싸움은 지금부터

전남CBS에서 일하던 강민주 피디는 두 차례 해고를 당했다. 수습사원이던 그녀가 상사의 성희롱에 문제 제기를 한 이후였다. 회사는 해고를 강 피디 책임으로 돌렸다. 강 피디의 업무 능력을 문제 삼으며, 수습평가 결과 채용 부적격으로 판정되어 정당한 인사권을 행사했을 뿐, 성희롱 신고에 대한 보복성 해고가 아니라는 것이었다. 현행 남녀고용평등법에 따르면 직장 내 성희롱 피해자에게 해고나 불리한 조치를 취한 사업주는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2천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게 되어 있다. 하지만 실효성에 대한 논란은 끊이지 않는다. 강민주 피디는 사건 발생 초기부터 증거를 수집하며 대응을 잘 준비한 편이지만, 약자인 근로자가 회사를 상대로 2차 피해를 입증하기란 쉽지 않다. 여성노동자회의 조사에 따르면 직장 내 성희롱 발생 후 피해자의 72%가 회사를 떠났다. 현재 강민주 피디는 복직을 요구하는 싸움을 계속하고 있다. 그녀는 다시 회사로 돌아갈 수 있을까?

“이렇게 문제 제기를 하면 이 바닥 좁은데 매장 당한다는 말도 워낙 많이 들었고, 정말 어떻게 될지 저도 모르겠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결정을 한 건, 덜 후회하려고 결정한 거였고요. 앞으로 제가 무슨 일을 하면서 어떻게 살지 모르겠지만, 그렇게 문제 제기했던 그 친구, 어디선가 무슨 일을 하면서 되게 잘 살더라는 좋은 선례가 되고 싶어요.”

― 강민주 님 인터뷰 中

▲ 성폭력 역고소, 2차 피해의 역습

지난 2월, 대학원생 이혜선 씨는 다른 이들보다 더욱 뜻깊은 졸업식을 치렀다. 2016년 11월 지도교수에게 성추행 피해를 당하고 바로 며칠 뒤 연구조교에서 해임되었고, 지도교수가 휴학 승인을 해주지 않아 제적까지 당했던 것이다. 지도교수의 성추행 이후, 혜선 씨의 삶은 고난의 연속이었다. 학내 양성평등센터나 학과장과의 면담에서도 도움을 받지 못해 가해자를 형사 고소했지만, 지도교수의 권력에 맞서 증언해 줄 동료도 없었고, 증거가 될 CCTV는 삭제된 상태였다. 결국 증거불충분으로 불기소되자, 가해자는 혜선 씨를 명예훼손과 무고로 역고소하기 시작했다. 성추행 피해 자체보다 더 힘겨운 싸움이 시작된 것이다.

“학교 안에서 해결될 기미가 안 보이니까 형사 고소를 결심했던 거고요. 그런데 더 힘든 싸움인 거죠. 학교에서 일어난 일을 학교 밖으로 힘없는 학생이 가지고 나오는 순간, 야생에 나온 느낌이었어요. 증거가 없으니까..”

― 이혜선 님 인터뷰 中



이 이혜선 씨를 취재하던 와중에도 혜선 씨에 대한 가해자의 추가 역고소와 경찰서 조사 출석 요구는 계속됐다. 사실적시 명예훼손도 죄가 되는 현행법상, 피해자들은 어렵게 용기를 내어 미투를 외치고 나서도, 공익 목적의 ‘진실한 사실’임을 경찰서 조사 과정에서 스스로 입증해야 한다. 이처럼 피해자의 입을 막기 위한 수단으로 무분별하게 사용되는 역고소로부터 피해자를 보호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 ‘미투’에 응답하라, 조력자를 보호하라

대부분 우월적 지위를 이용해 발생하는 직장 내 성폭력의 특성상, 피해자 혼자서 용기를 내기란 대단히 어려운 일이다. 때문에 폭력의 현장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주변인들의 역할이다. 김해에서 근무하는 임희경 경위는 작년 4월, 신임 여경의 성추행 피해를 듣게 됐다. 3개월차 시보라는 불안한 처지에 신고할 엄두도 못 내고 있던 후배 여경의 고백에, 임 경위는 면담 후 감찰에 신고할 수 있게 도움을 주었다. 문제는 그 이후에 시작됐다. 신고를 도운 임 경위가 ‘좋은 자리’를 노리고 피해자를 부추겨 성추행 피해를 조작한 ‘꽃뱀’이라는 소문이 김해 전 경찰서에 퍼졌다. 같은 지구대의 상사는 내부적으로 조용히 해결할 수 있었던 사건을 키웠다며 임 경위를 공개적으로 질책했고, 동료들은 그녀를 따돌리기 시작했다. 심지어 가해자는 임 경위의 업무상 약점을 잡아 검찰에 고발까지 했다. 모두 임 경위가 피해 여경을 도왔다는 이유만으로 겪은 일들이다. 결국 지난 1월, 임 경위는 공개 감찰을 요구하며 1인 시위에 나섰다.

“잘못된 것은 잘못되었다고 말하게 되었고, 계속 목소리를 내고 글을 쓰게 되었고, 경찰 조직에도 알리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그 피해 여경이 처음에 저를 찾아온 게 결코 잘못되지 않았다는 것, 그것을 지금까지 보여 주고 싶었어요.”

― 임희경 경위 인터뷰 中

미투 한 달여, 많은 폭로와 분노가 이어졌지만 과연 세상은 바뀌었을까? 남은 인생을 걸고 피해 사실을 공개한 이들에 대한 들끓는 관심과 호기심이 멈춘 뒤에, 우리 사회는 이들을 책임질 준비가 되어 있는가? 성폭력 피해를 입은 여경을 도왔을 뿐인데 임 경위는 2차 피해의 당사자가 되었다. 심지어 1인 시위 이후에 그녀에 대한 비난 여론이 담긴 허위 보고서가 경찰 내부에서 작성된 사실까지 드러났다. 조력자에 대해 조직적으로 괴롭힘이 가해진 것이다.

피해자에게만 용기를 내라고 요구할 수는 없다. 피해자가 두려움 없이 당당하게 미투를 하기 위해서는 피해자를 지지하는 조력자가 반드시 필요하다. 침묵하고 방관하는 주변인은 암묵적으로 피해자를 고립시키는 2차 가해에 동조하는 것과 다름없다. 이에 최근 정부에서도 직장 내 성폭력 근절을 위해 공공부문에서부터 선도해 나가야 한다며, 피해자와 조력자에 대한 보호와 2차 피해 방지 및 기관장의 책임 강화 등을 발표한 바 있다. 피해자들은 말한다. 더 이상 나와 같은 피해자가 생기지 않기를, 다시는 이런 슬픈 일이 반복되지 않기를, 세상이 조금쯤 더 나아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용기를 냈다고. 이제는 사회가 그녀들의 미투에 응답할 차례다.

[사진=MBC ‘PD수첩’ 예고영상캡처]

/서경스타 전종선기자 jjs7377@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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