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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람]배기동 국립중앙박물관장"박물관은 민족 문화의 神殿...나머지 반쪽 못찾아 아쉽죠"

12월 '대고려전' 차근차근 준비중

태조 왕건과 정신적 스승 희랑대사

1000년만의 만남 생각만해도 짜릿

스물 일곱살 서울대 조교 시절

고고학사 뒤엎은 전곡리와 인연

2011년엔 초대 박물관장 맡기도

시공 뛰어넘는 디지털박물관 추진

한국 인문학의 대표 플랫폼 만들것

배기동 국립중앙박물관장./이호재기자.




박물관(博物館)은 말 그대로 물건이 모인 곳이다. 하지만 아무 물건이나 모아서는 안 된다. 그 물건이 탄생한 배경과 이용했던 이들의 이야기, 다시 세상의 빛을 보게 되기까지의 과정이 어우러져 박물관 속 하나의 소장품이 된다. 1972년 서울대 고고인류학과에 입학한 청년은 그런 박물관이 좋았다. 어수선한 시국상황까지 겹쳐 박물관은 그의 유일한 안식처였다. 그런 그의 모습을 본 학과 선배는 후배가 박물관 아르바이트를 할 수 있게 주선해줬다. 배기동(66) 국립중앙박물관장과 박물관의 인연은 그렇게 시작됐다.

1909년 대한제국의 순종황제가 지은 제실박물관에 뿌리를 둔 국립중앙박물관은 대한민국의 얼굴이자 혼이 깃든 터전이다. 인류가 한반도에 살기 시작한 구석기 시대부터 일제강점기 손기정 선수가 베를린올림픽에서 금메달을 획득하며 받은 투구까지 총망라돼 있다. 하지만 배 관장은 “아직 우리의 반쪽을 찾지 못하고 있다”고 입을 뗐다. 북한에 남아 우리가 접할 수 없는 유물들이 적지 않다는 의미다. 오는 12월 ‘대고려전’을 앞두고 배 관장은 “찬란했던 문화가 피어난 고려 시대 유물을 쉽게 접할 수 없다는 것은 매우 안타까운 일”이라고 밝혔다.

“우리나라 문화의 최정상을 이룩한 나라가 바로 고려입니다. 해외에까지 이름이 널리 알려졌었어요. 세종대왕 때 한글을 만들 수 있었던 것도 고려 시대 때 쌓아놓은 기반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불화·청자뿐 아니라 삼국유사·삼국사기와 같은 기록물들도 고려 시대 때 본격적으로 제작되기 시작했어요. 그래서 고려를 재인식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하지만 고려의 수도가 개성인데다 개성이 속한 북한과 접촉하는 것 자체가 금기시돼 연구하기 어려운 점이 많았습니다.”

배 관장은 그래서 최근의 ‘봄이 온’ 남북관계에 반색했다. ‘대고려전’을 국립중앙박물관 100주년 기념전보다 더 큰 규모의 국가적 행사로 치르겠다고 강조한다. 구체적인 계획들도 차례로 진행하고 있다. 2006년 한 번 서울을 찾은 적 있던 왕건상뿐 아니라 개성 관음사 관음보살좌상, 만월대 출토 금속활자 등 50여점의 북한 유물 대여를 요청했다. 구체적인 이야기도 준비돼 있다. 1,100년 만의 사제 간 만남이 그것이다.

“왕건의 정신적 스승인 희랑 대사 목조상(보물 제999호)이 경남 합천 해인사에 있고 왕건상이 평양에 있습니다. 이 둘을 서울에서 만나게 해줄 생각이에요. 짜릿하지 않습니까. 이를 통해 멀어졌던 남북관계가 가까워질 수 있으면 금상첨화이지요. 이외에도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금속활자 판본인 ‘직지’도 프랑스에서 대여해올 것입니다. 6월 프랑스에 직접 가서 요청하려 합니다. 고려를 모르는 사람은 없지만 문화적인 상징성에 비해 인지도가 적은 편인데 이를 바꿔 놓고 싶습니다.”

아울러 ‘대고려전’ 이후의 북한과의 교류 계획에 대해서는 ‘유물보존’을 강조했다. 긴급보수가 필요한 유물들은 국립중앙박물관이 직접 보존 처리해 북한에 보내주고 북한의 박물관 인력들을 국립중앙박물관에서 훈련시킬 계획이다. 아울러 북한에서 발굴된 유물의 목록을 컴퓨터 시스템에 입력해 재분류할 작업도 진행하고 남북 교류 전시도 정기적으로 이뤄질 수 있도록 추진한다. 배 관장은 “결국 북쪽의 문화유산도 우리 문화유산”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문화유산 교류는 우리가 지금은 분단돼 있지만 과거에는 하나였음을 명확하게 심어줄 수 있는 최고의 협력사업입니다. 특히 남북 정상회담과 북미 정상회담으로 이어지는 이 시점은 남북 문화교류의 최대 분기점입니다. 박물관은 이 시기를 놓치지 말고 남북한의 문화적 연대를 이루고 서로의 정체성을 인식하는 데 도움을 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배기동 국립중앙박물관장./이호재기자.


선을 넘어야 할 북쪽은 국립중앙박물관 북측 구역도 마찬가지다. 용산미군기지 때문에 박물관은 북쪽 부지를 사용하지 못하고 있다. 배 관장은 이 때문에 국립중앙박물관의 접근성이 떨어지는 점, 많은 사람이 용산의 박물관으로 전쟁기념관을 먼저 생각하는 점 등을 지적했다. 배 관장은 박물관이 제 기능을 찾으려면 미군기지가 완전 이전하고 용산공원이 조성돼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국립중앙박물관은 미완의 박물관입니다. 용산으로 이전한 지 13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접근성 문제가 풀리지 않고 있습니다. 용산 자체는 서울의 노른자위 땅입니다. 용산역이 있어 교통도 좋고 이태원과 같은 상업시설도 많습니다. 지금도 인근 호텔·영화관 등 문화시설과 업무협약을 맺어 제휴할인을 하고 있기도 하고요. 하지만 용산 한가운데 있는 미군기지의 존재가 국립중앙박물관을 고립시키는 것은 사실입니다. 탁 트인 공원으로 바뀌면 나아지겠지요. 장기적으로는 용산공원에 어린이들을 위한 박물관을 신설할 계획도 있습니다.”

배 관장은 국립중앙박물관의 접근성 증대와 더불어 지방 국립박물관들을 강화해 각 지역의 문화를 보존·강화하고 중앙과 지방의 문화격차를 해소한다는 계획을 실행하고 있다. 이를 위해 취임 직후부터 지방 국립박물관의 브랜드 작업에 힘을 쏟고 있다. 국립부여박물관은 ‘백제금동대향로’를 위시로 한 ‘백제의 하모니’, 예로부터 내려오는 낙원(樂園)의 상징 강원도의 국립춘천박물관은 ‘꿈의 공원’, 섬유의 도시 대구의 국립대구박물관은 자수공예를 비롯한 ‘텍스타일’을 브랜드로 내세우는 식이다.



“우리나라의 최대 과제가 남북통일이라면 두 번째는 중앙과 지방의 격차 해소인데 현재 가장 큰 격차가 나는 분야가 바로 문화입니다. 지역마다 고유의 문화가 있는 만큼 13개의 지방 국립박물관들이 각 지역의 고유한 문화 정체성을 유지하면서 지방문화를 이끌도록 할 계획입니다. 아울러 지역 네트워킹 작업을 진행해 관람객들을 유치하며 전통문화를 즐기고 공연을 하며 파티도 여는 지역 문화의 장(場)이 될 수 있도록 만드는 게 목표입니다. 각 지역 사람들이 자신만만하게 지역 문화를 자랑할 수 있도록 말입니다.”

하지만 지방 국립박물관 육성이 쉽지만은 않다. 지역적 기반도 약하고 사회적인 반향도 부족하다. 배 관장은 특히 문화 육성 관련 논의에서 박물관이 빠졌다는 점을 크게 아쉬워했다. 그 어느 정권에서도 박물관을 우선순위로 뒀던 적이 없었다고 한다. 배 관장은 “박물관이야말로 어떤 스토리가 생겨날지 모르는 영원한 문화자산인 만큼 정책의 축 자체도 공간·자산이 확립돼 있는 박물관을 중심으로 활용하는 방안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배기동 국립중앙박물관장./이호재기자.


배 관장은 스물일곱 청년이던 1979년 서울대 조교 신분으로 연천 전곡리 구석기 유적 발굴에 참여한 것을 계기로 지난 2011년 대한민국 유일의 석기 시대 전문 박물관인 전곡선사박물관 개관을 이끌고 초대 관장을 역임했다. 전곡리 구석기 유적에서는 당시 동아시아에서 나올 수 없다고 여겨졌던 아슐리안형 주먹도끼의 발견으로 세계 고고학계의 정설을 뒤엎었다. 이후 마련된 ‘연천 구석기 축제’는 구석기 유적과 박물관이 중심이 돼 이룬 대표적 지역 문화 행사다. 신라 문화의 보고(寶庫)인 국립경주박물관의 경우 한 해 방문객이 평균 100만명에 이른다. 배 관장이 “박물관에 대한 인식 자체를 바꿔 문화의 재료가 바로 박물관에서 온다는 것을 알려야 한다”는 이유다.

한편 배 관장은 디지털국립박물관 육성에도 힘을 쏟고 있다. 한국 인문학의 최고 플랫폼을 만드는 것이 목표다. 마치 포털 내부에서 블로그·게시판 등을 통해 수많은 정보가 재생산되는 것처럼 이용자가 자신만의 컬렉션을 만들고 이를 공유할 수 있는 생태계를 구축할 예정이다.

“기술의 발달로 갈 수 없던 곳을 가고 볼 수 없던 것들을 보게 됐습니다. 아날로그의 한계를 뛰어넘은 것이지요. 시공을 초월해서 높은 수준의 전시를 디지털로 감상할 수 있도록 만들고 싶습니다. 디지털의 활용 방안은 무궁무진합니다. 이용자들이 자신만의 박물관을 만들어 다른 사람들 앞에 내놓을 수 있는 것도 디지털이니까 가능합니다. 이런 자료들이 쌓이고 돌다 보면 창의적인 재생산이 가능해지지 않을까요.”

배 관장이 정리한 국립중앙박물관의 정의는 ‘한국 문화의 신전’이다. 대학 입학 이후 40년 넘게 박물관만 바라보고 산 그다운 대답이었다. 신전의 사제처럼 그는 오늘도 박물관을, 박물관을 찾아오는 관람객들을 고민한다.

/우영탁기자 tak@sedaily.com 사진=이호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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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2년 부산 △1971년 경남고 졸업 △1975년 서울대 고고인류학과 학사 △1976~1978년 호암미술관 학예연구원 △1979~1983년 서울대 박물관 학예연구원 △1980년 서울대 고고학과 석사 △1984~1985년 미국 캘리포니아대 로위인류학박물관 학예연구원 △1988년 미국 캘리포니아대 인류학·고고학 박사 △1990~2009년 한양대 문화인류학과 교수 △1998~2009년 한양대박물관 관장 △2009~2010년 한국전통문화학교 총장 △2011~2015년 전곡선사박물관 관장 △2014년~ 국제박물관협의회(ICOM) 국가위원회 의장 △2016년 국립박물관문화재단 이사장 △2017년~ 국제푸른방패 집행위원 △2017년~ 국립중앙박물관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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