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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300명 일터 보냈는데 반토막"…"한달에 10일만 일했으면"

[새해 첫 출근날, 불황 닥친 남구로 인력시장]

"집값 잡는다고 건설 일감 씨 말라

우리 같은 사람 먹고 살거리 실종"

"최저임금 인상 정책서도 사각지대

월 90만원 버는데 겨울나기 걱정"

얼어붙은 내일 찾아 끝없는 기다림

2일 서울 구로구 남구로역 사거리 하나은행 앞에서 일용직 근로자들이 일감을 기다리고 있다. 이들 앞에는 한 정당에서 걸어놓은 새해 축하 현수막이 걸려 있다. /심우일기자




“한 달에 열 번이라도 일감을 구하면 많이 나가는 것입니다. 요즘 건설경기가 너무 나빠 일감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입니다.”

2일 새벽4시30분 서울 구로구 남구로역 5번 출구 앞에서 만난 김구철(55·가명)씨는 이렇게 말하며 담배를 연신 빨아들였다. 그는 “원래도 겨울철에 (일용직) 일감이 없다고 하지만 올해는 유독 심하다”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서울경제신문이 기해년 첫 출근일인 2일 국내 최대 임시·일용직 노동시장인 남구로 인력시장을 찾았다. 한 인부는 오래간만에 만난 동료를 보고 “오랜만에 나오셨네”라며 안부부터 물었다. 인사를 건네받은 인부가 “요즘 일감이 많았느냐”고 묻자 그는 “한 달은 그냥 놀았다. 일감이 씨가 말랐다”고 푸념을 늘어놓았다. 새해 첫 평일이라는 말이 무색하게 일용직 근로자들의 얼굴에는 수심이 가득했다.

일반적으로 건설 비수기인 겨울철은 현장에서 일용직을 찾는 수요가 줄어들어 일감이 적을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날 기자가 찾은 남구로역 앞에는 영하 9도의 강추위가 무색하게 1,000명 남짓의 사람들이 하루 일당이라도 벌기 위해 모여들었다. 몇몇은 남구로역 5번 출구 앞에 자원봉사자들이 설치한 천막에서 난로를 켜고 몸을 녹이고 있었다. 남구로역 사거리를 기준으로 하나은행 앞에는 중국인이, 남구로역 5번 출구 앞에는 한국인들이 모인다.

30년 넘게 건설현장에서 일했다는 이건철(65·가명)씨 역시 기자가 다가서자 “요즘은 일 자체가 없다”며 헛웃음을 지었다. 그는 지난 한 달 동안 남구로역에 나오지 않았다고 한다. 어차피 일감이 없으니 나와 봐야 소용없다는 생각에서였다. 이씨는 “서울의 경우 아파트 일감은 씨가 말라버렸고 그나마 빌라 건설과 관련해서만 일감이 나오는 수준”이라면서 “경기·충청도라도 일감이 남아 있으면 다행일 정도”라며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이들 입장에서 박근혜 정부 때는 그나마 ‘호시절’이었다. 최경환 당시 경제부총리가 ‘초이노믹스’를 내세우며 건설경기 부양책을 추진했던 덕택이다. 이후 초이노믹스는 가계부채를 급격히 키웠다는 이유로 비판을 받았지만 적어도 남구로역에 나오는 일용직 근로자들에게 건설 부양책은 ‘일용직의 호황’을 상징했다. 이씨는 “2014년만 해도 일할 사람이 부족하다며 우리 몸값이 꽤 나갔는데 이번 정부 들어서는 집값 폭등을 억제한답시고 개발을 다 막아버려 우리 같은 사람들은 먹고살 거리가 없어졌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남구로역 인근 인력사무소들도 지난해에 비해 일감이 줄었다고 입을 모았다. A인력사무소 관계자는 “말 그대로 일감이 반 토막이 난 상황”이라며 “지난해 이맘때쯤에는 하루에 300명은 일터로 보냈는데 올해는 100~150명 정도만 현장으로 파견하는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B인력사무소 관계자도 “과거에 일감이 넘쳐나 구인난이 심했을 때는 오전6시에나 차를 보내고는 했는데 오늘은 5시20분도 되기 전에 모집이 마감됐다”며 “그만큼 일감 수요가 바닥이 났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러한 실정을 반영하듯 건설경기지표는 좋지 않은 편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건설기성액은 9조2,282억원을 기록하며 전월 대비 0.9%, 전년 동월 대비 10.6% 감소했다. 건설기성은 건설 업체의 국내 현장별 시공실적을 금액으로 표시한 통계로 건설투자가 얼마나 활발한지 보여주는 수치다. 건설투자 부진은 일용·임시직 취업자 수 감소에 영향을 끼쳤다. 마찬가지로 지난해 11월 임시 근로자 취업자 수는 전년 같은 달에 비해 11만6,000명 줄었다. 같은 시기 일용 근로자 수는 2만1,000명 늘었지만 2017년 11월부터 꾸준히 전년 동기 대비 감소세를 보여왔다.

남구로에 모인 임시·일용직 근로자들은 정부의 최저임금 인상 정책에서도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지난 2년간 최저임금이 29% 넘게 상승했음에도 불구하고 일용직 시장 노임은 그대로인 까닭이다. 이들이 받는 임금은 철저히 노동의 수요·공급 법칙에 따라 움직이기 때문이다. 건설 붐이 일어 인부들에 대한 수요가 늘어나면 노임은 곧바로 상승 압력을 받게 된다. 한국인 단순직과 기능공은 각각 12만원, 15만~17만원 수준의 일급을 받는다. 남구로역 인근 인력사무소에서 일하는 최우직(가명) 팀장은 “통상 2~3년 주기로 임금이 올라간다”며 “현재는 노동 공급(인부 수)에 비해 노동 수요(일감)가 훨씬 부족한 상태라 최저임금이 영향을 끼칠 여지가 전혀 없다”고 잘라 말했다.

힘든 것은 여성 인부들도 마찬가지다. 건설현장에서 핀과 못 등을 줍는 단순노무에 종사하는 윤영자(72·가명)씨는 목동에 아파트가 지어질 때부터 시작해 40년 가까이 현장에 나가고 있다. 그가 받는 일급은 11만원. 여기서 인력사무소에 소개비로 10%를 지불하고 현장으로 가는 봉고차 비용으로 4,000원을 쥐어주고 나면 윤씨가 하루에 버는 돈은 9만5,000원이다. 그는 “나는 그나마 경력이 있어 지난달에 15번은 나갔다”면서도 “다른 해보다 일감이 현격하게 줄면서 한 달에 90만원밖에 벌지 못해 살림살이가 너무 팍팍해졌다”며 한숨을 쉬었다. 이어 그는 “내 가족이 먹고사는 것도 문제지만 우리나라가 더 걱정된다”며 “제발 경제부터 챙겨달라고 문재인 대통령에게 하소연이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라며 눈시울을 붉혔다.
/심우일기자 vita@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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