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 약 8조이 넘는 예산을 투입해 세계 여덟 번째로 독자 개발한 첫 국산 초음속 전투기 KF-21 ‘보라매’와 관련해 최근 두 가지 소식이 전해져 눈길을 끌었다.
방위사업청은 지난 6월 13일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서 개최된 방산전시회 ‘인도 디펜스’에 참가해 인도네시아 측과 ‘공동개발 기본합의서 개정안’에 서명했다고 밝혔다. 핵심은 공동개발 파트너인 인도네시아와의 개발 분담금이 1조 6000억 원이 아니고 최종적으로 6000억 원으로 1조원이나 깎은 것이다. 현재까지 인도네시아가 납부한 분담금은 4000억 원 규모다.
엿세만인 19일(현지 시간)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인도네시아가 지난 11∼14일 자카르타에서 열린 방산박람회 ‘IDEX 2025’ 기간에 튀르키예와 5세대 전투기인 ‘칸’(Kaan) 48대를 도입하는 계약을 맺었다고 보도했다. 계약은 약 100억 달러(약 14조 원) 규모로 향후 10년 동안 해당 전투기 생산과 인도가 진행된다. 과거 TF-X로 불린 칸 전투기는 튀르키예가 미국에서 도입한 F-16 전투기를 대체하기 위해 2010년 개발에 착수해 2028년 본격 양산될 예정이다.
두 소식을 종합하면, 인도네시아는 기술진들의 KF-21 기밀유출 혐의도 무혐의 처분되고 분담금 1조까지 삭감해줬지만 결국 타국 전투기 도입을 강행해 먹튀 논란이 현실화된 셈이다.
인도네시아 입장에서 보면 튀르키예는 같은 이슬람권 국가로 현지 생산까지 제시해 충분히 매력적이다. 게다가 4.5세대 전투기 ‘KF-21’과 달리 5세대 전투기 ‘칸’의 전력화 시점이 2년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 점도 칸 전투기 구매가 인도네시아 공군 전력화에 더 실효성이 높은 수 있는 까닭에서다.
안보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프라보워 수비안토 인도네시아 대통령은 과거 국방장관으로 재임한 5년 동안 공군과 해군의 첨단 무기 예산을 확보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특히 특정 국가에 의존하지 않으려고 몇 년 전부터 무기 수입국을 다변화하고 있다. 이는 1990년대 말 '동티모르 사태'를 계기로 1999∼2005년 미국으로부터 무기 수입을 금지당한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크게 두 가지다. 인도네시아가 약속은 지키지 않았고, 분담금 삭감을 위한 꼼수도 부렸다는 점이다.
인도네시아는 2023년 말 분담금 납부 기한을 2034년까지로 연장해달라고 요구하며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동시에 분담금을 3분의 1 수준인 6000억 원으로 줄이는 대신 기술 이전도 그만큼 덜 받겠다고 한국에 제안했다. 협상 기간 중에 KF-21 제작 업체인 한국항공우주산업(KAI)에 파견됐던 인도네시아 기술진이 기술 유출을 시도하다가 수사 당국에 적발됐다. 업계에서 KF-21과 관련된 핵심기술들을 이미 뻬돌려 분담금을 낮추려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왔다.
기밀유출로 분담금 인하가 결정이 지연되면서 인도네시아는 프랑스 전투기를 눈길을 돌렸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지난달 말 인도네시아 자카르타를 방문해 프라보워 수비안토 인도네시아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열고 예비 국방 협력 의향서(LOI)를 체결했고 라팔 전투기의 추가 판매 가능성을 언급했다. 앞서 프라보워 대통령은 국방부 장관이던 2022년 라팔 전투기 42대를 81억 달러(약 11조 2000억 원)에 구매하는 계약을 했다. 내년에 6대 전투기를 인도 받을 예정이다.
KAI는 다급해지면서 분담금 인하 합의를 위해 직접 나섰다. 인도네시아 기술자들의 선처를 요구하는 탄원서까지 제출해 대구지검은 지난 5월에 인도네시아 기술진에 대해 방산기술보호법·방위사업법·대외무역법 위반 혐의는 무혐의, 부정경쟁방지법 위반은 기소유예 처분을 내리며 사실상 면죄부를 줬다.
이 같은 한국 측의 노력에도 인도네시아는 이중적 태도를 보였다.
중국산 J-10 전투기 구매 검토하고 있다고 밝힌 것은 물론 앞서 미국 항공기 제조업체 보잉과 4.5세대급 전투기 F-15 EX 24대를 구매하기 위한 양해각서(MOU)도 체결했다. 도니 에르마완 토우판토 인도네시아 국방부 차관은 “프랑스 제안도 고려하고 있다”며 “전체 예산과 함께 J-10, F-15 등 다양한 옵션을 비교하고 있다”고 말했다. 다만 한국과 개발하기로 한 한국형 초음속 전투기인 KF-21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인도네시아가 전투기 구입을 위해 미국, 프랑스, 중국 등을 지속 접촉하면서 전투기 공동 개발 파트너인 한국에게는 분담금 삭감을 압박하는 계산적 행보를 한 것이다.
한국과의 협력을 뒤로 한 채 칸 전투기를 구매하겠다는 인도네시아의 태도에 방산업계는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KF-21의 성능을 개량해 5세대 전투기 ‘KF-21EX’가 개발되면 결국 칸 전투기는 ‘경쟁 기종’이 될 수 밖에 없다는 점에서 인도네시아의 칸 전투기 구매 계약은 향후 5세대 전투기 KF-21EX의 해외 수출에도 발목을 잡을 수 있다는 지적이다.
한 방산업계 관계자는 “인도네시아가 칸 전투기 도입에 약 14조 원의 자금을 투입하면서 정작 전투기 공동 개발 파트너인 한국에는 충분한 해명 등이 없고 분담금만 삭제하는 혜택을 봤다”며 “KF-21 조종석에는 인도네시아와의 공동개발을 상징하는 국기까지 그렸는데 이중적 태도를 보인 것은 향후 우리가 스스로 웃음거리가 되는 것으로 KF-21 해외 수출에도 문제가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반면 방사청은 전투기 뿐만 아니라 지상과 해상 체계로 협력 분야를 확대하기 합의했다며 양국간 방산 협력은 다시 탄력을 받을 것이라는 입장이다. 인도네시아의 이중적 행보에 대해선 전혀 입장을 내놓지 않는 ‘저자세’를 보이고 있다.
일각에서는 인도네시아가 합의는 했지만, 타국 전투기 도입으로 예산이 부족해졌다는 이유로 KF-21 공동 개발의 잔여 분담금도 납부하지 않고 시간만 끌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뿐만 아니라 인도네시아에게 삭감해 준 1조 원 규모 개발비는 결국 정부와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이 분담해야 ‘국민 혈세’가 더 투입되는 상황에 대해 사업을 총괄하는 방사청은 인도네시아와 불협화음에 대한 사과나 해명은 전혀 내놓지 않고 있다.
논란에 대해 방사청은 “그동안 다소 경색됐던 양국 방산 협력 관계가 본궤도에 올랐다”며 “앞으로 인도네시아와 잠수함, 화력, 방공체계 등 다양한 분야로 협력을 강화해 향후 동남아 지역 전체로 협력을 확대할 것”이라는 불확실한 미래 얘기만 반복하고 있다.
KF-21 첫 해외 수출 레코딩이 인도네시아가 지킬 것이라는 보장도 없는 것도 우려스러운 대목이다. 인도네시아는 공동 개발 사업 종료 이후 48대를 도입할 계획이지만, 잇따라 다른 나라 전투기 구매 계약을 나서고 있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