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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니 붕어빵 민희 씨
오피니언 사외칼럼 2020.07.07 17:15:18붕어빵 민희 씨가 빵틀을 돌린다 누구나 직업으로 세상을 헤엄치듯 민희 씨도 세상 위에 연탄 한 장 올려놓고 우리 골목 초입을 열기로 데운다 오늘도 민희 씨는 눈이 많이 내리면 이글루를 지어 들어가서 자겠다던 낭만주의자를 생각한다 차가움을 쌓아올려 더운 열기를 만드는 추운 나라의 건축기술처럼 알코올을 쌓아올려 염병할 행복을 지으려다 술병의 탑을 쌓고 만 그를 생각한다 민희 씨가 데워놓은 훈기에 안겨 꿈의 끝까 -
언니들과의 저녁 식사
오피니언 사외칼럼 2020.06.30 17:21:30김해자밥 먹으러 오슈전화 받고 아랫집 갔더니 빗소리 장단 맞춰 톡닥톡닥 도마질 소리 도란도란 둘러앉은 밥상 앞에 달작지근 말소리 늙도 젊도 않은 호박이라 맛나네, 흰소리도 되작이며 겉만 푸르죽죽하지 맘은 파릇파릇한 봄똥이쥬, 맞장구도 한 잎 싸 주며 밥맛 없을 때 숟가락 맞드는 사램만 있어도 넘어가유, 단소리도 쭈욱 들이켜며 달 몇 번 윙크 하고 나믄 여든 살 되쥬? 애썼슈 나이 잡수시느라 관 속 같이 어둑시근한 -
할아버지
오피니언 사외칼럼 2020.06.23 16:57:22느티나무 아래서 평상에 앉아 부채질을 하며 말복 더위를 식히고 있는데 달려오던 빨간 자동차가 끽 멈춰섰다 운전석 차창이 쏙 열리더니 마흔 살 될까 말까 한 아줌마가 고개도 까딱하지 않고 - 할아버지! 진소천 가는 길이 어디죠? 꼬나보듯 묻는다 부채를 탁 접으며 나는 말했다 - 쭉 내려가면 돼요, 할머니! 내 말을 듣고는 앗, 뜨거! 놀란 듯 자동차가 달아났다우리나라에는 단군할아버지 말고는 ‘할아버지’라고 부를 사람 -
외팔이 짜장면집
오피니언 사외칼럼 2020.06.17 05:00:00최달연함양 마천 피아골에 가면 외팔로 탁, 탁 짜장면 가락을 뽑아내는 그 사내가 있다구로공단 생활 25년으로 한쪽 팔을 잃고 웅크린 한쪽 죽지 잃은 새가 되어 절뚝거리며 실상사 근처로 내려앉은 세월 소림사 혜가 스님처럼 살고 싶어 그 근처 둥지를 틀었다 피아골 핏빛 단풍철에 미쳐 밀가루 범벅 휘파람새 같은 마천 골짜기 외팔이 짜장면집 사장이 되어 밥걱정은 면했지만 기울어진 개암나무처럼 외로운 그는 지리산을 닮았 -
실패의 힘
오피니언 사외칼럼 2020.06.10 05:00:57최병근잘 나가다 실패한 형님을 만났다 자네 풍선을 터뜨려본 경험이 있는가삶도 불다가 터진 풍선 같지 어느 정도 불면 잘 가지고 놀아야 해 풍선을 불다가 터트려본 경험이야 누구라도 있다마다요. ‘조금만 더!’ 미간을 찌푸리며 볼 풍선 속 공기를 고무풍선 속으로 밀어 넣다가 ‘펑!’하고 터질 때 움찔하던 기억 있다마다요. 풍선이야 터지면 그뿐이지만 삶이 풍선이라면 이야기가 다르지요. 풍선이 부풀 듯 승승장구할 때 -
두더지
오피니언 사외칼럼 2020.06.03 05:00:00이면우비 갠 아침 밭두둑 올려붙이는 바로 그 앞에 두더지 저도 팟팟팟 밭고랑 세우며 땅 속을 간다 꼭 꼬마 트랙터가 땅 속 마을을 질주하는 듯하다 야, 이게 약이 된다는데 하며 삽날 치켜들다 금방 내렸다 땅 아래 살아 있다는 게 저처럼 분명하고 또 앞뒷발 팔랑개비처럼 놀려 제 앞길 뚫어나가는 열정에 문득 유쾌해졌던 거다 그리고 언젠가 깜깜한 데서 내 손 툭 치며 요놈의 두더지 가만 못 있어 하던 아내 말이 귓전을 치 -
웃음 세 송이
오피니언 사외칼럼 2020.05.26 17:21:21고진하하루치 근심이 무거워 턱을 괴고 있는 사람처럼 꽃 핀 머리가 무거운 해바라기들은 이끼 낀 돌담에 등을 척 기대고 있네 웃음 세 송이! 웃음이 저렇듯 무거운 줄 처음 알았네 오호라,호탕한 웃음이 무거워 나도 어디 돌담 같은 데 척 기대고 싶네하, 하, 하! 하루 종일 해님을 바라보며 동에서 서로 고개가 돌아가지. 연모하는 자는 연모하는 이를 닮아가지. 커다랗고 둥근 얼굴 한가득 웃음이 그득하지. 해바라기들은 웃음 -
어떤 거리
오피니언 사외칼럼 2020.05.19 17:35:24김형엽 당신은 아주 멀리 있다 싶다가도 새벽녘 오리온 별자리 기울어진 사다리꼴 끝과 끝에 대롱대롱 우리가 산다 생각하면 그런대로 가깝게 느껴지네어느 날 내 뜨락에 날아온 박새가 당신이 사는 마을로도 지난다 생각하면 또한 마냥 가깝게 느껴지네오늘 막 몸을 연 홍매화 당신도 보고 있을 거라 생각하면 당신과 나의 거리는 오전 열한 시와 정오의 간격처럼 그런대로 견딜만하다 느껴지네별과 별 사이의 거리는 아득한 광년 -
봄비
오피니언 사외칼럼 2020.05.13 05:00:00- 박기섭하늘 어느 한갓진 데 국수틀을 걸어 놓고 봄비는 가지런히 면발들을 뽑고 있다산동네 늦잔칫집에 安南 색시 오던 날봄 들판 적시는 빗줄기 가늘고 곱다 싶었는데 그 동네에서 보낸 잔치국수였군요. 산골마을 살림 넉넉지 않을 텐데 과용한 것 아닌가요? 이곳 모르는 사람들에게까지 뚝딱 한 그릇씩 말아주시다니요. 앞집 강아지도 밥그릇에 고이는 면발 보며 꼬리를 흔드는군요. 먼 남쪽나라 색시 맞는 늦결혼이라니 그 집 -
소화기
오피니언 사외칼럼 2020.05.05 17:44:33종종 찾아가 먼지라도 털어주자할머니는 다급하면 며느리를 찾았고 아버지는 여차하면 여보를 불렀고 아이들은 궁하면 엄마를 불렀지푸르든 그 마음 붉게 물들이고 오늘도 묵묵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급한 불이 없는지찾는 손길 없어진 지 오래 먼지를 하얗게 덮어쓰고 앉아 먼 산 바라보며 한숨지으시는세상에 있는 듯 없는 듯 뒷전으로 밀려나 툇마루에 앉아 콩을 고르다 돌아가신 어머니지금도 찾는다 발등에 불 떨어지면 아 -
퀵서비스
오피니언 사외칼럼 2020.04.28 17:33:04황주경오토바이 가게 앞을 지나가는데 다리를 걷어붙인 청년 하나가 빨간약을 바르고 있다 스패너를 든 가게 사장이 다 고치는데 시간이 좀 걸릴 것 같다고 말하자, 청년 왈 배달이 밀려 큰일이라며 성화를 부린다 나는 오지랖 넓게 가던 길을 멈추고 “배달이 뭔 대수냐? 빨리 병원부터 가시라”고 말하려는데 청년의 휴대폰이 울린다 “죄송합니다. 사모님, 곧 도착합니다. 조금만 기다려주십시오”휴대폰에 대고 쩔쩔매는 청년 -
목련꽃
오피니언 사외칼럼 2020.04.07 11:23:27- 성명진복지관 앞 앙상한 그, 무얼 얻으려 서 있나 했는데 아니었어요오히려환한 밥덩이 몇을 가만히 내놓는 것이었어요그곳에도 가셨군요. 이곳에도 오셨습니다. 겨우내 헐벗은 모습 안쓰러워 뜨거운 국밥이라도 말아드리고 싶었는데, 희디흰 주먹밥을 불쑥 내놓으니 놀라지 않을 수 없었지요. 꽃샘바람에 다 식은 차가운 밥이지만 어찌나 가슴 먹먹하게 하든지요. 기초 수급자 할머니가 어느 경찰서에 살짝 건네주고 간 마스크 -
강
오피니언 사외칼럼 2020.03.31 17:12:32- 이성복저렇게 버리고도 남는 것이 삶이라면 우리는 어디서 죽을 것인가 저렇게 흐르고도 지치지 않는 것이 희망이라면 우리는 언제 절망할 것인가해도 달도 숨은 흐린 날 인기척 없는 강가에 서면, 물결 위에 실려가는 조그만 마분지조각이 미지의 중심에 아픈 배를 비빈다 버릴수록 남는 것이 강물뿐이랴. 지난가을 천 장의 나뭇잎을 떨군 나무는 올봄 만 장의 잎을 새로 달 것이다. 만 장의 잎이 오롯이 봄나무의 것이겠는가. -
키다리 풍선 인형
오피니언 사외칼럼 2020.03.24 17:29:42- 김중식 신장개업 음식점 앞에서 바람 잔뜩 들어간 키다리 풍선 인형이 미니스커트 아가씨와 함께 관절 꺾는 춤을 추고 있다 기마 체위로 오르내리는 식은 불꽃 순대를 꿈틀거리며 스텝 없이 몸부림만 있는, 흥분하지만 표정이 없는 에어 댄서 무릎 꿇었다 화들짝 일어서는 게 통성기도를 할수록 버림받는 자세다 해 떨어질 때 다리 풀리고 풀 죽은 거죽만 남아 말없이 제정신도 아닌 헛바람 허수아비헛바람 들었다지만 최선을 다 -
연두생각-춘화첩
오피니언 사외칼럼 2020.03.17 17:53:36- 장철문다시 올까? 썩은 가지는 떨어져 부서지고, 목이 없는 해바라기 대궁지퍼를 목까지 끌어올리고 발아래 부서지는 서릿발 장다리 꽃필까? 얼음 박인 봄동밤나무 가지에 비닐 걸려 날리고, 다시 싹틀까? 저수지 살얼음 위에 날리는 눈발물오를까? 뒹구는 새의 부러진 뼈 머리는 부리를 달고 육탈을 기다려다시 날아오를까, 연두는 우화(羽化)처럼염려 마슈. 곧 부지깽이도 싹이 날 거유, 불탄 줄도 모르고. 바위도 엉덩이 들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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