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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게 참 꽃 같아야
오피니언 사외칼럼 2019.11.19 19:13:33박제영며느리도 봤응께 욕 좀 그만해야 정히 거시기 해불면 거시기 대신에 꽃을 써야 그까짓 거 뭐 어렵다고, 그랴그랴 아침 묵다 말고 마누라랑 약속을 했잖여이런 꽃 같은! 이런 꽃나! 꽃까! 꽃 꽃 꽃 반나절도 안 돼서 뭔 꽃들이 그리도 피는지봐야 사는 게 참 꽃 같아야저렇게 마누라 말 잘 듣는 양반이 우찌 아들 장가가도록 욕을 입에 달고 살았을까. 천만에, 마누라 말 잘 들어서 이제 바꿨을까. 며느리가 거울인 게야. 수 -
아이에게
오피니언 사외칼럼 2019.11.12 17:35:40배창환 作하고 싶은 일 하며 살아라 사람의 한 생 잠깐이다 돈 많이 벌지 마라 썩는 내음 견디지 못하리라물가에 모래성 쌓다 말고 해거름 되어 집으로 불려가는 아이와 같이 너 또한 일어설 날이 오리니참 의로운 이름 말고는 참 따뜻한 사랑 말고는아이야, 아무것도 지상에 남기지 말고 너 여기 올 때처럼 훌훌 벗은 몸으로 내게 오라세상 물정 모르는 말씀이셔요. 인생이 하고 싶은 일 다 하도록 놓아주던가요? 사람의 한 생 잠 -
농담
오피니언 사외칼럼 2019.11.05 17:27:51이문재문득 아름다운 것과 마주쳤을 때 지금 곁에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떠오르는 얼굴이 있다면 그대는 사랑하고 있는 것이다. 그윽한 풍경이나 제대로 맛을 낸 음식 앞에서 아무도 생각하지 않는 사람 그 사람은 정말 강하거나 아니면 진짜 외로운 사람이다.종소리를 더 멀리 보내기 위하여 종은 더 아파야 한다.우연히 접어든 숲길에 단풍이 흐드러졌을 때, 모퉁이 돌자 가을꽃 황금 사태가 쏟아졌을 때, 호수의 물별들이 -
소
오피니언 사외칼럼 2019.10.29 17:29:07퇴근 무렵, 한 사내가 술을 마신다두어 평 남짓한 포장마차에 앉아 잘려나간 하루를 되새김질한다주름진 목 안으로 불편을 밀어 넣고 있다눈이 크고 두려움 많은 소는 맹수가 무서워 서둘러 풀을 뜯어 삼키곤 했다지. 안전한 곳에 가서 천천히 토해내어 다시 씹었다지. 사람과 개가 지키는 외양간에서 살게 된 뒤에도 되새김질을 멈추지 않는다지. 이제는 두려움보다 하루 일과를 반추한다지. 기다란 혀로 일기를 쓴다지. 그 날 치 -
따순 밥
오피니언 사외칼럼 2019.10.22 17:45:32언 손금을 열고 들어갔던 집그녀는 가슴을 헤쳐 명치 한가운데 묻어놓았던 공깃밥을 꺼냈다눈에서 막 떠낸 물 한 사발도 나란히 상 위에 놓아주었다모락모락 따뜻한 심장의 박동밥알을 씹을 때마다 손금 가지에는 어느 새 새순이 돋아났다물맛은 조금 짜고 비릿했지만 갈증의 뿌리까지 흠뻑 적셔주었다살면서 따순 밥이 그리워지면 언제고 다시 찾아오라는그녀의 집은 고봉으로 잔디가 덮여 있다무덤이 고봉밥을 닮은 까닭은 그녀 -
꿈과 상처
오피니언 사외칼럼 2019.10.15 17:11:41김승희나대로 살고 싶다 나대로 살고 싶다 어린 시절 그것은 꿈이었는데나대로 살 수밖에 없다 나대로 살 수밖에 없다 나이 드니 그것이 절망이구나 꿈과 상처는 청과물 상점에도 있었지. 피망은 피망답게 살고 싶었는데 어머니는 파프리카가 되라 하셨다네. 노랑 모자 씌워주고 붉은 가방 메어주고 주황 버스에 태워 파프리카 학원에 보냈다네. 가지는 가지답게 살고 싶었는데 아버지는 포도가 되라 하셨다네. 고대 왕족처럼 편두 -
젖
오피니언 사외칼럼 2019.10.01 17:55:05썩은, 썩어가는 사과가 젖을 물리고 있다하루의 시간도 한 해의 시간도 막바지 능선을 타 넘는야산 언덕에서썩은, 썩어가는 사과가아직 푸른 힘줄이 꿈틀거리는 젖가슴을반쯤 흙속에 파묻고 한마디 사과도 없이 사과가 다 떠난 사과나무에게 사과를 잊은 입, 잎들이 열꽃을 피우는 사과나무에게 젖을 물리고 있다 병든, 병들었다고 버림받은 사과가저를 버린 사과나무에게 젖을 물리고 있다-잘 여문 사과들이 떠나갔구나, 대처로 -
슬로슬로우 퀴퀵
오피니언 사외칼럼 2019.09.17 17:26:32- 오광수 어느 가을날 지리산 등성 어디쯤서 반달곰과 딱 눈이 맞는다면 마늘 몇 쪽 갖고 동굴 속으로 들어가 녀석과 살림 차려야지. 그 계곡 어디쯤서 날다람쥐 한 마리 만난다면 쳇바퀴 굴리듯 한세상 돌고 돌아야지. 가을 햇볕에 천천히 가슴을 데우다가 마침내 비등점에 오르면 붉게 붉게 타올라야지. 붉은 마음이 식어 하얀 재로 남으면 팔랑거리며 눈이 되어 내려야지. 사람도 한 그루 나무인 그 산에서 네 편 내 편도 없이 -
숨바꼭질
오피니언 사외칼럼 2019.09.10 17:41:10- 정을순오만데 한글이 다 숨었는 걸 팔십 넘어 알았다 낫 호미 괭이 속에 ㄱ ㄱ ㄱ 부침개 접시에 ㅇ ㅇ ㅇ 달아 놓은 곶감엔 ㅎ ㅎ ㅎ제 아무리 숨어봐라 인자는 다 보인다 경남 거창 문해교실에서 뒤늦게 한글을 배운 할머니의 작품이다. 오만 데 숨었던 술래를 팔십 년 만에 찾으니 얼마나 즐거울까. 부침개 접시 ㅇ까지는 그렇다 치고, 곶감 속에 숨어 있는 ㅎ까지 발견한 걸 보고 무릎을 쳤다. 한글 배운 지 수십 년 된 나는 -
노을
오피니언 사외칼럼 2019.09.03 17:35:34- 이면우세상은 아주 오래된 부엌입니다 길가로 난 어둑한 문 안에서 누군가, 느지막이 길 가는 이를 위해 가마솥 가득 붉은 수수죽을 쑤는 중입니다 타박타박 발자국에 물 한 바가지 부어 휘젓고 뚜벅뚜벅 발자국에 크게 한 바가지 더 붓고 휘휘저어 슬긍긍 뚜껑 닫고 아궁이를 들여다봅니다 찬찬히 들여다봅니다당신이 지금 허리 굽혀 아궁이를 들여다보는바로 그 눈 아닙니까 나그네 눈길이야 저녁연기 피어오르는 굴뚝으로 향 -
아배 생각
오피니언 사외칼럼 2019.08.27 17:34:19- 안상학뻔질나게 돌아다니며 외박을 밥 먹듯 하던 젊은 날 어쩌다 집에 가면 씻어도 씻어도 가시지 않는 아배 발고랑내 나는 밥상머리에 앉아 저녁을 먹는 중에도 아배는 아무렇지 않다는 듯 - 니, 오늘 외박하냐? - 아뇨, 올은 집에서 잘 건데요. - 그케, 니가 집에서 자는 게 외박 아이라?집을 자주 비우던 내가어느 노을 좋은 저녁에 또 집을 나서자 퇴근길에 마주친 아배는 자전거를 한 발로 받쳐 선 채 짐짓 아무렇지도 않다 -
태풍은 북상 중
오피니언 사외칼럼 2019.08.13 17:27:31- 이문숙물류창고 지붕 위 타이어를 보네 육중하게 방수막을 누르고 있네 창고 속으로 박스에 담긴 여러 켤레의 신발들이 딸려들어가네태풍은 북상 중이라는데 길이 유실되고 방파제가 붕괴되고 수백 년 마을이 폐허가 되는 막대한 위력의 태풍이 오고 있다는데이곳에는 타이어 아래 방수막 자락을 간신히 들었다 놓는 얕은 바람이 일 뿐 진열대에는 새로운 신발이 놓이네상륙 중인 태풍과 한바탕 격전을 치를 타이어의 검은 몸체 -
마중물
오피니언 사외칼럼 2019.08.06 17:33:33청운의 꿈을 안고 금강 줄기를 거슬러 큰물을 찾아 떠난 오빠가 몇 년이 지나자 학교를 졸업하고 일자리를 구했다며 물줄기를 내려 보냈다 나는 그 물줄기를 타고 금강을 거슬러 올라 오빠처럼 학교를 졸업하고 취직을 했다 나도 내 바로 밑 동생에게 물줄기를 내려 보내 동생을 올려왔다 동생도 나처럼 내가 보낸 물줄기를 타고 올라와 학교를 졸업하고 취직을 해 그 밑 동생에게 물줄기를 내려 보내 동생을 올려오고 그 밑에 동 -
욕실에서
오피니언 사외칼럼 2019.07.30 17:32:23- 박순원내 칫솔은 초록색이다 참 예쁘다 도마뱀 같다 손에 쥐고 있으면 파닥 파닥 움직이는 것 같다 치약은 또 얼마나 달콤한가 비누는 매끄럽고 향기롭고 면도 크림 샴푸 린스 샤워젤 풍성하게 거품이 인다 따뜻한 물로 샤워를 하고 있으면 내가 중산층 같다 내 칫솔은 초록색이다 참 예쁘고 도마뱀 같다 손에 쥐고 있으면 파다닥 빠져나갈 것 같다아, 우리 집 욕실에서도 칫솔 도마뱀이 여럿 파닥거려요. 정글 도마뱀이 사라지 -
남편
오피니언 사외칼럼 2019.07.23 17:19:05문정희아버지도 아니고 오빠도 아닌 아버지와 오빠 사이의 촌수쯤 되는 남자 내게 잠 못 이루는 연애가 생기면 제일 먼저 의논하고 물어보고 싶다가도 아차, 다 되어도 이것만은 안 되지 하고 돌아누워 버리는 세상에서 제일 가깝고도 제일 먼 남자 이 무슨 원수인가 싶을 때도 있지만 지구를 다 돌아다녀도 내가 낳은 새끼들을 제일로 사랑하는 남자는 이 남자일 것 같아 다시금 오늘도 저녁을 짓는다 그러고 보니 밥을 나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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