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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산(泰山)이시다
오피니언 사외칼럼 2019.07.16 17:46:32- 김주대 경비 아저씨가 먼저 인사를 건네셔서 죄송한 마음에 나중에는 내가 화장실에서든 어디서든 마주치기만 하면 얼른 고개를 숙인 거라. 그래 그랬는지 어쨌는지는 모르겠지만 아저씨가 우편함 배달물들을 2층 사무실까지 갖다 주기 시작하시데. 나대로는 또 그게 고맙고 해서 비 오는 날 뜨거운 물 부어 컵라면을 하나 갖다 드렸지 뭐. 그랬더니 글쎄 시골서 올라온 거라며 이튿날 자두를 한 보따리 갖다 주시는 게 아닌가. -
꽃씨와 도둑
오피니언 사외칼럼 2019.07.09 17:43:09- 피천득마당에 꽃이 많이 피었구나 방에는 책들만 있구나 가을에 와서 꽃씨나 가져가야지참 부지런한 도둑일세. 한 계절 먼저 정탐을 나왔구먼. 참 주도면밀한 도둑일세. 당장 훔칠 물건이 아니라 가을에 가져갈 물건까지 점찍어 두다니. 참 어리석은 겉보기 도둑일세. 삐걱 책장을 밀면 온갖 골동품과 고서화 즐비한 수장고가 있을 줄도 모르다니. 참 딱한 도둑일세. 책을 훔친 도둑은 세상을 경영하고, 꽃씨 훔친 도둑은 풀이나 -
미안한 일
오피니언 사외칼럼 2019.07.02 17:10:06- 김사인개구리 한 마리가 가부좌하고 눈을 부라리며 상체를 내 쪽으로 쑥 내밀고 울대를 꿀럭거린다.뭐라고 성을 내며 따지는 게 틀림없는데둔해 알아먹지 못하고 나는 뒷목만 긁는다 눈만 꿈벅거린다 늙은 두꺼비처럼.아유 가부좌랄 게 뭐 있겠습니까. 스님들처럼 척추도 꼿꼿이 세우지 못하고 앞발로 땅 짚고 겨우 앉아 있는 걸요. 울대를 열심히 꿀럭거려도 반야심경 하나 제대로 외지 못하는 걸요. 눈을 부라리다니요. 조상 -
민화 8
오피니언 사외칼럼 2019.06.25 17:15:55성선경남편은 일찍 명퇴를 하고 아직도 직장에 남아 고생하는 아내에게 그래도 생각는다고 보약을 한 첩을 지어 주곤 남편이 다정히 물었다.- 맛있어?아내가 대답했다.- 맛이 써!아! 참, 아내는 뭘 몰라. 모르긴 뭘 모른다고 그래요? 당신 입 모양만 봐도 속엣말 다 들킨다니까요. 수수꽃다리 잎처럼 쓴 약 들이켜니 절로 오만상 찌푸려지는데 ‘맛있다’는 말 나오겠어요? 입 한 번 떼지 않고 단숨에 들이켠 것만으로도 충분하지 -
쪼그만 풀꽃
오피니언 사외칼럼 2019.06.18 18:04:48이준관목련처럼 크고 화려한 꽃보다 별꽃이라든지 봄까치꽃이라든지 구슬붕이꽃 같은 쪼그만 꽃에 더 눈길이 간다겸허하게 허리를 굽혀 바라보아야 비로소 보이는 꽃 하마터면 밟을 뻔해서 미안한 마음으로 바라보아야 비로소 보이는 꽃앉아서 보듬어주고 싶어도 너무 너무 작아서 보듬어줄 수 없고 나비도 차마 앉지 못하고 팔랑팔랑 날갯짓만 하다 가는 꽃눈으로나마 보듬어주고 안아주고 싶어서 자꾸만 눈길이 간다 너무 미안해 -
짝퉁
오피니언 사외칼럼 2019.06.11 17:32:53- 구재기신은 물낯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본떠 인간을 창조해 냈지만 인간은 물낯을 굽어보며 자기 모습 그대로 신을 만들었다그래서지상의 지금에는 본래 하나였던 신이 인간처럼 수없이 많아졌다 저마다 섬기는 신의 얼굴이 다른 까닭이군요. 신을 베낀 인간을 다시 베꼈으니 신이 인간의 부족만큼이나 많았던 까닭이군요. 짝퉁이라 너무 나무라지 마셔요. 최선을 다해 신을 닮은 자신의 모습을 섬기고 있으니까요. 진달래가 진 -
첫사랑
오피니언 사외칼럼 2019.06.04 18:38:15- 심우기쑥국새 한 마리 꽃밭에 숨었다날개 다친 새인지 다리를 저는 새인지 아니면 배고픈 새인지꽃밭을 휘저어 봐도 날아오르는 것은 없고 종일 기다려 봐도 보이는 것이 없다본 것이 맞는 건지 입맞춤을 하였는지 의문이 살짝 드는 저녁 어스름발자국이 눈에 익다새는 보이지 않고 꽃밭에서는 울음만 피어난다날개를 다치지도, 다리를 절지도 않았습니다. 끼니를 놓쳤으나 배고픈 줄도 몰랐습니다. 당신이 꽃밭을 휘저을 때에 -
비
오피니언 사외칼럼 2019.05.28 17:20:41암만 흔들어봐라 열어주나모질게 갔으면 그만이지 왜 다시 와서 지랄여꽃 피면 넌가 했던 거 바람 불면 넌가 했던 거 이젠 아녀그려왔으면 실컷울다나 가그라 그만어허, 단단히 틀어졌네. 나야 본디 구름수레 타고 떠다니다가 메마른 가슴 만나거든 대신 울어주는 직업 아니던가. 자네 두고 발 떨어지지 않아도 가뭄에 타는 곡식과 농심들 두고 아니 갈 수 있나. 우는 재주밖에 없는 내가 웃는 재주밖에 없는 자네 곁에만 머물러 -
소만(小滿)
오피니언 사외칼럼 2019.05.21 17:34:56- 도한호급하게 이를 닦고 꼭 해야 하나 쉬엄쉬엄 면도를 하고 목덜미에 물을 묻히고 있는데 단골 뱁새 두 마리가 뜰을 오르락내리락하며 나더러 빨리 나오라고 성화다 지렁이도 목 빼고 세수하고 달팽이도 창을 꼬나들고 싸움터로 나가고 굼벵이도 일 나갔는데 우리 할배는 뭣 하느라고 여태 안 나오는 거야 봄 숲의 채도가 짙은 녹색 하나로 통일되는 계절이다. 나무들은 날로 강해지는 햇빛을 받아들여 본격적으로 광합성 공장 -
김씨
오피니언 사외칼럼 2019.05.14 17:27:39쌀을 씻어 안치는데 어머니가 안 보인다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어머니가 계실 것이다 나는, 김씨! 하고 부른다 사람들이 들으면 저런 싸가지 할 것이다 화장실에서 어머니가 어! 하신다 나는 빤히 알면서도 뭐해? 하고 묻는다 어머니가 어, 그냥 앉아 있어 왜? 하신다 나는 그냥 불러봤어 하고는 가스레인지에 불을 붙인다 언제 나올지 모르는 똥을 누려고 지금 변기 위에 앉아 계시는 어머니는 나이가 여든다섯이다 나는 어머니보 -
심은 버들
오피니언 사외칼럼 2019.05.07 17:34:52- 한용운뜰 앞에 버들을 심어 님의 말을 매렸더니 님은 가실 때에 버들을 꺾어 말채찍을 하였습니다.버들마다 채찍이 되어서 님을 따르는 나의 말도 채칠까 하였더니 남은 가지 천만사(千萬絲)는 해마다 해마다 보낸 한(恨)을 잡아맵니다.그대 심은 버들 허리 말고삐를 매렸더니 주련 같은 버들가지 손에 먼저 잡히더이다. 하릴없이 꺾어 쥐고 말 궁둥이 채칠 때에 내 살인 듯 아프더이다. 말과 함께 내닫을 때 온산에 봄빛 찬연한 -
제비꽃 머리핀
오피니언 사외칼럼 2019.04.23 17:31:55- 공광규띠풀이 단정한 묏등에 핀 제비꽃 한 송이는 누군가 꽂아준 머리꽃핀이어요죽어서도 머리에 꽃핀을 꽂고 있다니 살았을 때 어지간히 머리핀을 좋아했나봐요제비꽃 머리핀이 어울릴 만한 이생의 사람 하나 내내 생각하며 돌아오는데신갈나무 연두 잎 사이로 얼굴을 내민 진달래꽃이 이생의 그분처럼 시들고 있어요나 원 참, 거기만 그런 게 아니구먼요. 팔순에 돌아가신 우리 어머니, 쉰다섯에 가신 아버지 곁에 베옷 지어 -
문화가 있는 수요일, 자연휴양림에서 즐겨보세요
사회 사회일반 2019.04.22 09:23:31이달부터 마지막주 수요일에는 국립자연휴양림을 무료로 여행할 수 있다. 산림청 국립자연휴양림관리소는 매월 마지막주 수요일 ‘문화가 있는 날’에 전국 42개 국립자연휴양림 입장료를 면제한다고 22일 밝혔다. 무료입장 대상은 ‘문화가 있는 날’에 각종 산림문화체험, 산책, 등산 등을 위해 국립자연휴양림을 방문하는 국민들이다. 주차료, 시설사용료(숙박, 야영장), 체험료는 별도로 지불해야 한다. 특히 여름 휴가철인 7 -
봄아, 넌 올해 몇 살이냐
오피니언 사외칼럼 2019.04.16 17:31:15- 이기철나무 사이에 봄이 놀러 왔다 엄마가 없어 마음이 놓이지 않는 눈치다 내년에도 입히려고 처음 사 입힌 옷이 좀 큰가 새로 신은 신발이 헐거운가 봄은 오늘 처음 학교 온 1학년짜리 같다 오줌이 마려운데 화장실이 어딘지 모르는 얼굴이다 면발 굵은 국수 가락 같은 바람이 아이의 머리카락을 만진다 여덟까지 세고 그 다음 숫자는 모르는 표정이다 이슬에 아랫도리를 씻고 있네 저 아찔한 맨발 나는 아무래도 얘의 아빠는 -
냉이꽃
오피니언 사외칼럼 2019.04.09 17:32:33-송찬호박카스 빈 병은 냉이꽃을 사랑하였다 신다가 버려진 슬리퍼 한 짝도 냉이꽃을 사랑하였다 금연으로 버림받은 담배 파이프도 그 낭만적 사랑을 냉이꽃 앞에 고백하였다 회색 늑대는 냉이꽃이 좋아 개종을 하였다 그래도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에 긴 울음을 남기고 삼나무 숲으로 되돌아갔다나는 냉이꽃이 내게 사 오라고 한 빗과 손거울을 아직 품에 간직하고 있다 자연에서 떠나온 날짜를 세어본다 나는 아직 돌아가지 못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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