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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타 면제 남발에…정부, 달빛고속철 '퇴짜'
경제·금융 경제·금융일반 2023.10.26 08:00:00정부가 광주송정역과 서대구역 간 198.8㎞ 길이의 고속철도를 놓는 이른바 ‘달빛고속철도 건설’에 반대 의견을 내놓았다. 정치권은 올 8월 헌정 사상 최대인 여야 의원 261명의 명의로 예비타당성조사 면제를 권고하는 내용의 관련 특별법을 발의했지만 재정 당국인 기획재정부가 “예타 면제는 안 된다”며 제동을 건 것이다. 예타 주무 부처인 기재부의 동의가 없으면 달빛고속철도의 착공이 어려워 지역 민심을 등에 업은 정치권의 노골적인 압박이 예상된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지역 인프라 사업이 우후죽순 추진될 것이라는 경고의 목소리가 나온다. 26일 서울경제신문의 취재를 종합하면 기재부는 최근 광주시와 대구시 측에 달빛고속철도 특별법의 핵심 조항인 예타 면제에 대한 우려를 담은 입장을 전달했다. 기재부는 광주·대구시 행정부시장과 달빛고속철도 특별법 관련 비공개 협의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이 같은 입장을 표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기재부 관계자는 “(특별법으로) 예타제도의 실효성이 떨어질 수 있다는 입장을 전달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르면 2026년 착공해 2030년 완공될 예정인 달빛고속철도는 국비만 4조 5158억 원이 투입되는 대형 사업이다. 문제는 정치권이 이미 발의된 특별법을 통해 이번 사업을 예타 없이 졸속 추진하려는 데 있다. 기재부의 한 관계자는 “가덕도신공항 등 공항 건설 특별법에 이어 철도 건설 특별법이 제정되면 전국적으로 모든 사회간접자본(SOC) 사업을 특별법을 통해 예타 면제를 추진하려는 시도가 잇따를 것”이라고 우려했다. 실제 공항 외 SOC 사업의 예타 면제를 특별법으로 추진하는 것은 달빛고속철도가 처음이다. 기재부는 광주·대구시 측에 달빛고속철도의 인적·물적 수요예측치 등 구체적인 추가 자료 제출도 요구한 것으로 전해졌다. 기재부의 반대로 달빛고속철도 사업이 차질을 빚을 가능성도 커졌다. 특별법은 예타 면제를 권고할 뿐 의무 조항은 아니다. 한 전직 국책연구원장은 “지역 공항도 이용객이 없어 활주로에서 고추를 말리는 촌극이 빚어지고 있다”며 “영호남 화합이라는 그럴듯한 명분으로 경제성도 없는 사업에 혈세가 낭비돼서는 안 된다”고 비판했다. “예타제도 무력화” 우려 “(일부 국책 사업은) 경제성만으로 의사 결정이 이뤄지지 않는 한계가 있습니다. 국가 전체적으로 진지한 논의가 필요합니다.” 재정 당국 수장인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최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국정감사에서 대규모 국책 사업으로 인한 예산 낭비를 겨냥해 한 말이다. 추 경제부총리가 이런 ‘작심 발언’을 내놓은 것은 수조~수십조 원 규모의 대형 사회간접자본(SOC) 사업들이 제대로 된 검증을 거치지 않은 채 대거 추진되고 있다는 판단에서다. 기재부가 달빛고속철도 특별법의 핵심 조항인 예비타당성조사 면제에 반대를 표명한 배경에도 이런 맥락이 자리한다. 달빛고속철도 특별법에는 공항 외 SOC 사업 관련 특별법 중 처음으로 예타 면제 조항이 담겼다. 이번 특별법이 향후 다른 SOC 사업 추진 과정에서 예타제도를 우회하는 근거로 활용될 수 있다는 의미다. 기재부가 최근 대구·광주시와의 비공개 협의 과정에서 ‘달빛고속철도 특별법이 선례로 남으면 전국적으로 모든 SOC 사업을 예타 면제 특별법으로 추진하려는 시도가 잇따를 것’이라는 취지의 입장을 전달한 것도 이 때문이다. 유정훈 아주대 교통시스템공학과 교수는 “(달빛고속철도) 특별법으로 예타제도가 무력화될 가능성이 높다”며 “굳이 특별법으로 예타를 면제할 정도면 국가적으로 촌각을 다툴 정도로 긴급한 사업이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렇지 않아도 예타 면제 사업은 급격히 늘고 있다. 국회입법조사처에 따르면 지난해 예타 면제 사업의 총사업비는 17조 2400억 원으로 전년(10조 5000억 원) 대비 7조 원 가까이 늘었다. 7년 전인 2015년(1조 4000억 원)과 비교하면 약 12배 급증했다. 같은 기간 예타 면제 사업 수는 13건에서 26건으로 2배 늘었다. 입법조사처는 최근 보고서를 통해 “예외적으로 인정돼야 할 예타 면제가 주(主)가 되고 예타 실시는 부(副)가 됐다”고 지적했다. 문제는 예타가 없으면 국비가 투입되는 대형 사업의 적절성을 제대로 따져볼 수 없다는 점이다. 정부는 1~2년에 걸친 예타를 통해 경제성·지속성 등 대형 사업의 여러 측면을 분석한다. 예타를 거치지 않으면 대형 사업에 대한 중립적·객관적 분석이 이뤄지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당초 정부가 1999년 예타제도를 도입한 것도 국책 사업의 남발로 인한 재정 누수를 막기 위해서였다. 유 교수는 “예타제도는 대규모 국비 투자 사업을 검증하는 합리적 시스템”이라며 “제도 도입 후 24년 동안 재정 건전성 등에 긍정적 영향을 미쳤다”고 말했다. 재정건전성 타격도 불가피 달빛고속철도의 경제성은 한 차례 분석된 바 있다. 국토교통부가 2021년 발표한 사전타당성조사 결과를 보면 달빛고속철도 사업의 비용·편익(B/C) 수치는 0.483에 그쳤다. 통상 B/C 수치는 1.0보다 커야 경제적 타당성이 있는 것으로 본다. 정창수 나라살림연구소 소장은 “사업을 추진할 타당성이 어느 정도라도 있으려면 B/C 수치가 최소 0.5는 넘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경제성이 낮게 분석된 것은 달빛고속철도가 담양·순창·거창·합천 등 대부분 ‘인구 감소 지역’으로 지정된 곳을 지나가기 때문이다. 심지어 순창·합천·고령 등 일부 지역은 소멸 고위험군이다. 정도는 다르지만 광주와 대구도 인구가 감소세인 것은 마찬가지다. 전국적으로 인구 감소 속도가 빨라지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일러야 2030년께 완공될 예정인 달빛고속철도의 수요를 장담할 수 없다는 뜻이다. 광주·대구 고속도로만 놓고 봐도 지난해 기준 일일 교통량이 2만 2322대로 전국 고속도로 평균치(5만 2116대)의 절반에도 못 미쳤다. 재정 건전성 타격도 우려된다. 4조 5000억 원 규모의 달빛고속철도 사업은 전액 국비로 추진된다. 역대급 ‘세수 펑크’로 팍팍한 나라 살림에 기름을 붓는 셈이다. 정부는 올해 세금이 기존 예상보다 59조 원 이상 덜 걷힐 것으로 보고 있다. 상황이 이런데도 정치권은 이번 특별법의 국회 통과를 밀어붙여 재정 당국 압박에 나설 가능성이 크다. 다만 기재부가 예타 면제를 담은 특별법에 끝까지 반대하면 예타를 받아야 하기 때문에 2026년 조기 착공은 물 건너간다. ‘경제성이 없다’고 판명되면 사업 착수도 불가능하다. 이는 정치권이 내년 총선을 앞두고 기재부에 대한 압박 강도를 높일 것으로 보는 이유다. 총선 위기에…與도 재정만능주의 그림자 내년 총선을 앞두고 정치권에 ‘재정 만능주의’ 그림자가 다시 드리우고 있다. 여당은 윤석열 정부의 국정 기조에 부합해 ‘선심성 정책를 배격한다’는 입장을 견지해왔지만 ‘10·11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패배를 계기로 현금 지원 등 선심성 정책에 슬금슬금 시동을 걸고 있다. 집권 여당이 역대급 세수 결손이라는 나라 곳간 사정을 모른 척하고 미래 세대에 뒷감당을 맡기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26일 정치권에 따르면 국민의힘 정책위원회는 657조 원 규모의 2024년 예산안을 뜯어보며 민생 사업 증액 가능성을 검토하고 있다. 여당 내부에서는 국회 심사 과정에서 제도적 지원 확대뿐 아니라 지원금 인상을 검토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소속의 한 국민의힘 의원은 “나랏빚을 갚아나가는 것도 좋지만 ‘민생을 왜 책임지지 않는냐’는 불만이 계속 나온다”며 “통상 정부 예산안은 국회에서 유지 내지 감액되지만 올해는 증액 가능성도 열어둘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총선이 5개월 앞으로 다가오자 국민의힘은 집권 여당의 지위를 활용해 퍼주기 정책 대결의 신호탄을 쏘아올렸다. 국민의힘은 전일 이장·통장의 월 기본 수당 인상(월 30만 원→40만 원) 추진을 공식화했다. 여당은 ‘수당의 현실화’라고 배경을 설명했다. 하지만 2019년 수당을 10만 원 인상한 뒤 4년 만에 10만원을 인상하는 것을 두고 총선을 겨냥한 ‘퍼주기’라는 시선이 적지 않다. 전국의 이장·통장은 9만 9000명에 육박한다. 이밖에도 여당은 지지 기반이 취약한 청년·소상공인 관련 예산을 대폭 확대하겠다는 기조를 세웠고 지역 유지들이 수혜를 받은 지역 문화 조직 관련 예산 등을 확대해야 한다는 의견도 내놨다. 강서구청장 선거 참패를 계기로 적극적 재정에 대한 요구가 수면 위로 부상하는 모습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8월 국회의원들이 모인 당 연찬회에서 “나라가 거덜 나기 일보 직전”이라고 하는 등 매표 정치를 극도로 경계해왔다. 당내에서는 이를 두고 “재정 건전성이 중요하지만 선거에서 지면 무슨 의미가 있겠냐”(여당 초선) 등의 답답함을 토로하는 볼멘소리가 나왔지만 확고한 기조에 불만이 표면화되지 못했다. 하지만 선거 패배를 계기로 재정 지원이라는 극약을 허용하는 분위기가 다시금 무르익는 모습이다. 나라 곳간 사정을 외면한 정치권의 요구는 연말로 갈수록 노골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총선이 가까워질수록 지역민, 이해단체들의 요구를 외면하기 힘든 데다 여야 모두 서로 자신의 이름을 딴 생색 내기용 사업 편성 경쟁에 불이 붙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유권자 환심 사기 경쟁에 ‘역대 최저 증가율(2.8%)’이라는 정부의 긴축 의지가 담긴 내년 예산안 의미가 퇴색될 가능성이 커졌다. 한편 정부 여당이 선심성 예산을 늘리려 하면서도 정작 경제성장에 필요한 미래 산업 연구개발(R&D) 예산은 대거 삭감하고 있다는 지적이 일자 여당에서도 자성의 움직임이 보이고 있다. 예산 나눠 먹기식으로 추진된 사업에 대해서는 예산 감액 기조를 유지하되 바이오 분야 등 국가전략산업의 R&D 예산은 복원·확대하는 방안이 검토되고 있다. 실제로 이날 정부가 여당 예결위원들을 상대로 한 예산안 설명회에서 일부 의원들은 R&D 예산 감액과 관련해 홍보 방식을 질타하며 4차산업 관련 예산 증액을 요구했다. 한 위원은 “R&D 예산은 여론전에서 이미 졌다”며 “바이오 등의 R&D 예산을 증액해 국민적 오해를 거둬들여야 한다”는 취지로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
정부, 2025년 의대정원 확대 위한 수요조사 착수…연말까지 숫자 확정될까
사회 사회일반 2023.10.26 06:30:00정부가 의과대학 정원 확대를 위한 수요조사에 나서고 의사단체와 머리를 맞대는 등 '필수의료 혁신전략' 후속조치에 시동을 걸었다. 2025년도 입시부터 의대정원을 늘리기 위해서는 구체적인 증원규모를 오는 12월까지는 확정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가운데 정부가 두 달도 안 남은 기간 동안 협의점을 도출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26일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조규홍 장관은 이날 오후 2시 의대 증원에 대한 수요조사와 지역·필수의료 정책패키지 추진 등 향후 계획을 설명할 예정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19일 '필수의료혁신 전략회의'를 주재하고 의대정원 증원 방침을 공식화한지 1주일 만이다. 현재 국내 의대는 총 40곳이다. 국립대 11곳 중 3곳은 입학 정원이 50명 미만이고 사립대 29곳 중 14곳이 입학 정원 60명 이하다. 의대증원 규모는 전국 40개 의대를 대상으로 한 사전 수요조사와 전문가 연구결과 등으로 확정될 것으로 보인다. 정부 안팎에서는 2025년도 입시부터 의대 정원을 늘리려면 구체적인 증원규모를 12월까지 확정해야 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대학입시 입학정원 조정 결과를 교육부에 통보하는 시한이 매년 연말이기 때문이다. 의대 증원은 입학 정원이 50명 미만인 지방의대를 중심으로 이뤄질 것으로 전망된다. 조규홍 장관은 전날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전체 의대 중 정원이 50명 이하인 곳이 17곳"이라며 "의대 정원이 최소 80명 이상은 돼야 한다는 전문가 의견을 대통령께 보고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이 의대정원 증원 규모가 '최소 510명 이상'은 돼야 한다고 제시한 것으로 해석된다. 관건은 두 달 남짓한 시간동안 의대정원 확대규모를 최종 확정지을 수 있느냐에 있다. 복지부가 지난 1월부터 무려 14차례에 걸쳐 대한의사협회와 양자 협의체인 '의료현안협의체' 회의를 열고 의대 정원 문제 등을 논의했지만 결론을 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복지부는 이날 오후 3시 제15차 의료현안협의체를 열고 의협 등 의사단체와 한 테이블에 앉을 예정이다. 다음달 2일에는 의료계는 물론 환자단체 등 수요자대표, 시민단체까지 다양한 주체들이 참여하는 제2차 보건의료정책심의위원회(이하 보정심)를 개최해 의대정원 확대방안을 논의한다. 복지부는 의협과 논의를 계속하면서도 보정심을 의대증원 논의의 핵심 협의체로 활용할 계획이지만 의협은 의료현안협의체가 논의의 중심이 돼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에 따라 향후 의대정원 논의는 보정심에서 파격적인 규모의 증원 의견이 나오고 의료현안협의체에서 최대한 보수적으로 방어에 나서는 모양새로 흘러갈 가능성이 높다는 게 정부 안팎의 시각이다. -
◇10월 26일 주요 정당 일정
정치 모임·행사 2023.10.26 06:20:26◇10월 26일 주요 정당 일정 ■더불어민주당 ▲09:00 원내대표 국정감사 대책회의(국회 본청 원내대표회의실) ▲10:00 원내대표 종합감사(문체부 등 소관기관)(국회 본청 506호) ▲11:30 당대표 - 원내대표 전·현직 원내대표 간담회(국회 본청 당대표회의실) ▲18:10 원내대표 CBS 박재홍의 한판승부 전화인터뷰 ■국민의힘 ▲11:00 당대표-원내대표 故 박정희 前 대통령 서거 44주기 추모식(국립 서울 현충원 / 서울 동작구 현충로 210) ▲13:30 당대표-원내대표 최고위원회의(국회 본관 228호) ▲15:00 당대표-원내대표 故 노태우 前 대통령 서거 2주기 추모식(동화경모공원 / 경기 파주시 탄현면 헤이리로 98) ■정의당 ▲09:30 당대표 제94차 상무집행위원회 회의(국회 본관 223호) ▲10:00 원내대표 국방위 국정감사 현장점검(드론작전사령부) -
與 "대통령이 백신 구걸, 수모 잊었나" 질타…백신주권 확보 탄력받나
사회 사회일반 2023.10.26 06:00:00수입 의존도가 높은 필수예방접종 백신의 국산화를 위해 정부의 지원이 절실하다는 주장이 나왔다. 고난도 제조기술과 막대한 비용투자, 낮은 수익성을 무릅쓰고 필수 백신 개발에 도전하는 국내 기업들을 위해 연구개발(R&D) 예산을 과감히 늘리고, 규제완화를 검토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 "백신주권 확보하려면 R&D 예산 확대 필요" 당부 강기윤 국민의힘 의원은 지난 25일 종합국정감사에서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을 향해 "대한민국이 그래도 경제 10위권 안에 드는데 코로나19 당시 너무도 창피한 일을 많이 겪었다. 백신을 구걸하려 대통령까지 나갔는데 깜깜이로 매수 수량도, 금액도, 납기일도, QCD도 모르는 수모를 당했다”고 운을 뗐다. 이어 "글로벌 백신 허브화 조기 달성을 주창하지 않았나. 백신 주권 국가로서의 직위를 확보하려면 관련 R&D 예산을 대폭 늘려야 한다고 본다. 장관이 노력해 달라"고 주문했다. 이에 조 장관은 "2024년 예산에 '한국형 ARPA-H'라고 하는 사업을 새로 도입한 만큼 백신 주권 확보를 잘 지원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며 "차질 없이 추진하겠다"고 답했다. ◇ 글로벌 기업 독점에…필수 예방접종도 공급 불안 코로나19 팬데믹을 논외로 치더라도 백신은 국내 제약바이오기업들에게 '아픈 손가락'이다. 전 세계 백신 시장은 소수의 다국적 기업이 독점하고 있다. 영국 기업인 글락소스미스클라인(GSK)와 미국 머크(MSD)를 필두로 프랑스의 사노피, 미국의 화이자 등 4개사가 전체 시장의 80% 이상을 점유하는 구조다. 높은 접종률을 자랑하는 국가필수예방접종(NIP) 사업의 이면에는 백신 자급화율이 30%에 그치는 현실이 숨겨져 있다. 보건산업진흥원에 따르면 2022년 8월 기준 NIP 백신 22종 중 순수 국내 제조는 B형 간염과 파상풍·B형 헤모필루스 인플루엔자·수두·인플루엔자·신증후군 출혈열·장티푸스 등 7종에 불과하다. 피내용BCG·일본뇌염(생백신)·폐렴구균 10가·사람유두종바이러스2가·홍역/풍진/유행성이하선염 등 10종은 전량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현지에서 백신 수급이 원활하지 못하면 그 피해가 고스란히 국민들에게 돌아간다. 실제 지난해 전량 수입에 의존해 온 백일해(보르데텔라 백일해균에 의한 감염으로 발생하는 호흡기 질환) 백신이 동나면서 생후 2개월 영유아, 임신부 등 NIP 대상자들이 접종을 못 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2021년 GSK가 가격협상 결렬로 철수하며 사노피가 독점 공급하는 가운데 실험 보완을 이유로 공급을 중단하자 대안이 없어진 탓이다. ◇ 국산 백신 상용화까지 머나먼 길…"규제완화 필요" 목소리도 LG화학(051910)이 백일해균의 특정 항원을 적용한 ‘정제 백일해’를 기반으로 DTaP(디프테리아·파상풍·백일해)과 소아마비·뇌수막염·B형간염의 6개 감염병을 예방하는 백신 개발에 착수했지만, 아직 임상 1상 단계에 머물러 있다. LG화학이 내세운 국내 상용화 목표 시점은 2030년이다. 진료 현장에서도 백신 수급 불균형에 따른 애로사항이 많다. 조혜경 이대목동병원 소아청소년가 교수는 서울경제와의 인터뷰에서 "아이들이 접종하는 백신 중 국내 생산이 불가능해 글로벌 제약회사에 의존하는 품목들이 있다. 국내에 들여오기 위한 절차들이 많다 보니 공급이 원활하지 못하거나 사업을 접는 경우도 적지 않은 것으로 안다"며 "필요한 절차인 건 맞지만 백신 공급 자체가 제한되면 결국 아이들이 피해를 볼 수 있다. 특정 회사 한곳이 공급하는 상황을 최소화하고 수요와 공급이 원활한 환경이 조성되길 바란다"고 언급한 바 있다. 백신 독과점에 따른 폐해는 시장 가격에도 반영된다. MSD는 자궁경부암 백신 ‘가다실9’의 가격을 2021년 4월 15%, 2022년 6월 8.9% 등 2년 연속 인상했다. 가다실9는 자궁경부암을 비롯해 9가지 사람유두종바이러스(HPV) 유형에 의한 질환을 예방할 수 있는 유일한 백신이다. 3회 접종을 완료할 경우 총 접종비용이 80만 원대에 육박하지만, 경쟁 품목이 등장하지 않는 한 가격인상을 제한할 길이 없다. 백신 개발은 다른 의약품과 마찬가지로 후보물질 탐색부터 전임상시험, 임상시험, 규제 기관 승인의 절차를 거쳐야 하기 때문에 대략 10~15년이 소요된다. 신속한 백신 개발을 유인하려면 다국가 임상에서 내국인 참여 비율을 낮추는 등 규제 완화가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이날 강 의원은 식품의약품안전처를 향해 “많은 국내 기업들이 백신 개발에 뛰어들면서 다국가 임상을 진행 중인데 내국인 참여율을 10% 권고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 다른 나라에 비하면 굉장히 높게 돼 있다”고 짚었다. 이어 “내국인 비율을 5% 정도만 낮춰도 백신 개발이 한 2~3년 단축된다는 이야기가 있다”며 “이 부분을 적극적으로 검토해 달라”고 당부했다. 오유경 식품의약품안전처장은 "(다국가 임상의 내국인 참여 비율은) 의무가 아니라 권고"며 "개발사가 통계학적으로 타당한 근거를 제시하면 (내국인의 참여 비율은) 유연하게 조정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백신 개발과 관련해 적극적으로 업계의 말을 듣고 규정을 완화할 필요가 있다"는 강 의원의 발언에 대해서도 “그렇게 하겠다”고 응답했다. -
학폭 소송 승소했는데…피해자가 가해자 소송비 부담, 대체 왜?
사회 사회일반 2023.10.25 21:10:00학교폭력 피해 사건으로 말미암은 손해배상 소송에서 이기고도 되레 학폭 가해자 부모의 변호사비를 물어주게 된 판결에 대해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지적이 국정감사에서 나왔다.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24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의 춘천지법 등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손해배상 사건에서 학폭 피해자가 이겼는데도 소송비용 전체 중 70%는 피해자가 부담하라고 되어버렸다"며 "상식적으로 학폭 피해자의 입장이 전혀 배려되지 않는 판결이 아닌가 싶다"고 지적했다. 이어 "학폭 피해로 인한 치료비를 가해자가 주지 않아서 소송했더니 오히려 가해자 소송비용까지 얹어주는 판결이 나와 (피해자로서는) 심리적으로 위축, 경제적으로는 부담, 재판효력에 대한 의구심을 갖게 되는 이런 일이 왜 벌어졌는지 이해가 안 된다"고 했다. 박 의원은 "돈 없고, 힘없고, 빽 없는 피해자가 이리 뛰고 저리 뛰어서 학폭위 결과도 받았고, 민사소송도 시작했는데 재판 결과는 이상하다"며 판결 이유를 물었다. 부상준 춘천지방법원장은 "민사소송법에 따라 소송비용은 패소자 부담이 원칙인 게 맞지만, 심리 지속 원인 등 여러 가지를 따졌을 때 승소자에게도 부담시킬 수 있는 예외 규정이 있다"고 설명했다. 지난 6월 말 춘천지법 원주지원은 학폭 피해 가족이 가해자 측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에서 원고(피해자 측) 일부 승소 판결을 했다. 피해자는 성기 부위를 여러 차례 걷어차여 비뇨기과에서 치료받아야 했고, 정신적인 충격으로 심리치료까지 받았다. 피해 가족은 '피해자에게 서면으로 사과하고, 치료비를 지원해주라'는 학폭위 결과가 나왔음에도 가해자 부모가 이를 이행하지 않자 결국 대한법률구조공단을 통해 민사소송을 제기했다. 약 1년에 걸친 재판 끝에 A씨는 지난 6월 '일부 승소'했다. 법원은 피해자 측이 청구한 손해배상액 2600여만원 중 550여만원만 인정하면서 '소송비용 전체 중 70%는 원고가 부담하고, 30%는 피고(가해자 측)가 부담하라'고 명령했다. 민사소송법은 '소송비용은 패소한 당사자가 부담한다'고 규정한다. 다만 변호사의 보수와 소송비용에 관해서는 대법원규칙이 정하는 금액의 범위 안에서 인정하기에 전부 돌려받을 수는 없다. 또한 법원은 예외적으로 승소한 당사자에게도 소송비용 일부를 부담하게 할 수 있다. 결국 예외 규정에 걸린 피해자 측은 상대 측 소송비용의 일부인 160여만원을 물어줘야 하는 처지가 됐다. 피해자 측은 "길고 긴 싸움이 드디어 끝났다고 생각해 마음 놓고 항소도 포기했는데, 되레 상대 가해자 부모의 변호사비를 물어주게 된 너무나 억울한 상황을 맞았다"고 토로했다. 이처럼 소송에서는 이겼으나 소송비용 확정 신청 과정에서 '공수'가 뒤집히는 사례는 공익소송에서 종종 발생한다. 이 때문에 사회적·경제적 약자가 제기하는 공익소송 등에서 소송비용까지 부담하게 하는 것은 가혹하다는 문제 제기는 꾸준히 이뤄지고 있고, 국회에도 비슷한 취지를 담은 민사소송법 일부개정안들이 발의됐으나 계류 중이다. -
비명계 통합 vs 도로 친명계…李 '임명직 당직' 고심
정치 국회·정당·정책 2023.10.25 18:17:00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새 지명직 최고위원과 정책위의장의 인선을 놓고 장고에 들어갔다. 이번 인선이 ‘당내 통합의 가늠자’로 평가되는 만큼 이 대표는 ‘추가 의견 수렴’에 들어가며 신중한 행보를 하고 있다. 박성준 민주당 대변인은 25일 “대표께서 임명직 당직자와 관련해 결정을 내린 것 같다”면서도 “당내 여러 목소리를 추가로 듣고 있다”고 전했다. 인선 발표 시점에 대해서는 “추가 논의 후 발표할 예정”이라며 “국정감사 종료 후 있을 ‘국감 총평’ 등의 일정을 고려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당초 새 지명직 최고위원에는 ‘원외·충청·여성’ 인사로 친명계에 속하는 박정현 전 대덕구청장이 유력하게 거론됐다. 그러나 전임 송갑석 최고위원이 ‘체포동의안 가결’에 책임을 지고 물러난 만큼 정치권에서는 이번 인선을 이 대표 ‘통합 의지’의 첫 가늠자로 보는 시각이 우세하다. 김민석 의원이 앞서 원내대표 선거 출마를 위해 사퇴한 후 공석이 된 새 정책위의장 인선도 이 대표의 내홍 수습 의지 여부를 엿볼 수 있는 이슈로 꼽힌다. 비명계 의원들은 현재의 당 지도부가 ‘친명계 일색’이라는 점을 비판하고 있다. 비명계 조응천 의원은 23일 한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당 지도부가 소프라노 일색”이라며 “다른 목소리를 냈던 사람을 인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반면 친명 지도부에서는 ‘비명계 최고위원 인선론’에 대한 불편한 기류가 흐르고 있다. 친명계 정청래 최고위원은 조 의원의 지적에 대해 “‘삑사리’ 내는 사람을 등용할 수는 없다”면서 “배려·화합 차원에서 실력이 안 되는 선수를 기용하라는 것”이라고 일축했다. 한편 이 대표는 26일 국회에서 전·현직 원내대표와 오찬 간담회를 갖고 복귀 일성이었던 ‘당 통합’ 행보를 이어간다. 이 자리에는 홍익표 원내대표를 비롯해 우상호·우원식·홍영표·이인영·김태년·윤호중·박홍근·박광온 전 원내대표가 참석해 향후 당 운영 방안을 논의할 계획이다. -
'의대 증원' 협의 시작부터 삐걱…강경파 반발에 의사단체 내분 조짐도
사회 사회일반 2023.10.25 17:46:34정부가 필수지역의료를 살리기 위해 의과대학 정원 확대 의지를 밝혔지만, 본격적인 논의를 시작도 하기 전에 삐걱거리는 모양새다. 의대 증원 문제를 논의할 의료현안협의체를 하루 앞둔 25일 일부 강경파 의사들이 "원점부터 논의해야 한다"며 강한 반대 목소리를 내자 대한의사협회 집행부는 "보건복지부와 의대 증원에 합의한 적이 없다"며 진화에 나섰다. 의사단체 내부 분열이 심화할 경우 정책 추진에 더욱 혼선이 빚어질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 의료현안협의체 하루 앞두고 강경파 “원점 논의” 어깃장 박명하 서울시의사회장과 임현택 대한소아청소년과의사회 회장은 이날 서울시 용산구 소재 의협 회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현재 정부가 졸속 강행하는 의대 정원 확대는 대한민국 의료의 근간을 위태롭게 할 포퓰리즘임을 분명히 하고 이를 절대 거부한다"고 밝혔다. 이들은 "의대 정원 문제에 대해 이필수 의협 집행부는 정부에 굴욕적인 자세로 회원들을 기만해 신뢰를 잃었다"며 "현재의 의료현안협의체에서 의대정원 논의를 즉각 중단하고, 의대 정원 문제에 대해 전권을 갖고 원점부터 논의할 별도의 의정 협상단을 즉시 구성하라"고 요구했다. 정부와 의협은 당장 26일 '제15차 의료현안협의체'를 열고 의대 증원 문제 등을 논의할 예정이다. 정부가 2025년 의대 입학 정원을 1000명 규모로 늘리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다는 언론 보도가 쏟아진 이후 의료계와 처음 마주 앉는 자리여서 의료계 안팎의 관심은 한껏 높아졌다. 복지부는 지난 19일 의대 정원 확대 방침이 담긴 필수의료 혁신전략을 발표하면서도 구체적인 증원 규모를 밝히지 않았다. 의협 집행부도 당초 "정부가 (의대 증원 관련) 일방적 발표를 강행할 경우 어떠한 투쟁도 불사할 것"이라며 거세게 반발했던 데서 한발 물러서 "정부의 필수지역의료 육성 및 지원 필요성에 공감한다"는 입장을 취한 바 있다. 하지만 의료계 내부에서는 이러한 의협 집행부의 스탠스에 불만을 갖는 이들도 적지 않은 실정이다. 이날 간담회를 주도한 박 회장은 올 초 간호법·면허박탈법 저지 비상대책위원회를 이끌었다. 임 회장은 지난 7월 이필수 의협 회장 탄핵 서명운동을 벌이는 등 의료계 대표 강경파로 꼽힌다. 임 회장은 정부의 의대 증원 추진 등에 반발하며 의협과 별도의 투쟁조직인 미래를생각하는의사모임을 최근 출범시켰다. 이날 박 회장 등은 "정부는 '9·4 의정합의'에 따라 의대 정원 문제를 의사와 논의해야 할 뿐 아니라, 의료현안협의체 구성 자체도 바꿔야 한다"고 주장했다. 9.4 의정합의는 문재인 정부 시절인 2020년 의대 정원 확대를 시도하다 의료계 반발이 거세지자 중단하고, 코로나19 유행이 안정화된 후 의정협의체에서 다시 논의하기로 합의한 것을 말한다. 이에 따라 복지부는 의협과 양자 협의체인 의료현안협의체를 꾸리고, 올해 1월부터 14차례에 걸쳐 회의를 열어 의대 증원 문제 등을 논의했다. 박 회장 등은 현재 의협 집행부가 의대 증원 문제와 관련해 회원들의 의견을 충분히 반영하지 않았고, 정부와의 협의 절차도 불투명해 인정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 의협·복지부 “증원 규모 합의 사실 아니다” 일축 의협은 이날 오후 입장문을 내고 "지난 6월 의료현안협의체에서 의협과 복지부가 정원을 300명 선에서 확대하기로 합의했다는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 발언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라고 일축했다. 필수의료와 지역의료를 살리려면 필수의료사고처리특례법을 제정하고 기피 분야에 대한 적정 보상 등 근본적인 해결책 마련이 우선이라고 강조해 왔으며, 정부 역시 이런 제안에 동의하면서도 의료인력 확충이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다는 게 현 의협 집행부의 입장이다. 조규홍 복지부 장관 역시 이날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의료현안협의체를 통해 의협과 의대생 350명 증원을 논의했다는 주장은 사실이 아니다"라고 발언했다. 다만 “(의대) 교육을 더 효율적으로 하려면 정원이 최소 80명 이상은 돼야 한다는 전문가들의 의견이 있어, 이를 대통령에게 보고했다”고 발언하는 등 의대 증원 의지를 분명하게 드러냈다. 정부는 의대 증원 문제를 의사단체 뿐 아니라 환자단체, 시민단체 등이 참여하는 보건의료인력정책심의위원회에서도 논의하겠다는 입장이다. 복지부는 애초 내달 2일 의료현안협의체를 열 예정이었다가 일주일 앞당겼다. 내달 2일에는 보정심을 열 계획으로 알려졌다. 정부와 의료계가 합의점을 찾지 못한 가운데 의사단체 내분 조짐까지 일면서 향후 적지 않은 갈등이 예상된다. -
[단독]고속철역 대부분 인구소멸지역…"票퓰리즘에 혈세 줄줄 샐 판"
경제·금융 경제·금융일반 2023.10.25 17:37:55“(일부 국책 사업은) 경제성만으로 의사 결정이 이뤄지지 않는 한계가 있습니다. 국가 전체적으로 진지한 논의가 필요합니다.” 재정 당국 수장인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최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국정감사에서 대규모 국책 사업으로 인한 예산 낭비를 겨냥해 한 말이다. 추 경제부총리가 이런 ‘작심 발언’을 내놓은 것은 수조~수십조 원 규모의 대형 사회간접자본(SOC) 사업들이 제대로 된 검증을 거치지 않은 채 대거 추진되고 있다는 판단에서다. 기재부가 달빛고속철도 특별법의 핵심 조항인 예비타당성조사 면제에 반대를 표명한 배경에도 이런 맥락이 자리한다. 달빛고속철도 특별법에는 공항 외 SOC 사업 관련 특별법 중 처음으로 예타 면제 조항이 담겼다. 이번 특별법이 향후 다른 SOC 사업 추진 과정에서 예타제도를 우회하는 근거로 활용될 수 있다는 의미다. 기재부가 최근 대구·광주시와의 비공개 협의 과정에서 ‘달빛고속철도 특별법이 선례로 남으면 전국적으로 모든 SOC 사업을 예타 면제 특별법으로 추진하려는 시도가 잇따를 것’이라는 취지의 입장을 전달한 것도 이 때문이다. 유정훈 아주대 교통시스템공학과 교수는 “(달빛고속철도) 특별법으로 예타제도가 무력화될 가능성이 높다”며 “굳이 특별법으로 예타를 면제할 정도면 국가적으로 촌각을 다툴 정도로 긴급한 사업이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렇지 않아도 예타 면제 사업은 급격히 늘고 있다. 국회입법조사처에 따르면 지난해 예타 면제 사업의 총사업비는 17조 2400억 원으로 전년(10조 5000억 원) 대비 7조 원 가까이 늘었다. 7년 전인 2015년(1조 4000억 원)과 비교하면 약 12배 급증했다. 같은 기간 예타 면제 사업 수는 13건에서 26건으로 2배 늘었다. 입법조사처는 최근 보고서를 통해 “예외적으로 인정돼야 할 예타 면제가 주(主)가 되고 예타 실시는 부(副)가 됐다”고 지적했다. 문제는 예타가 없으면 국비가 투입되는 대형 사업의 적절성을 제대로 따져볼 수 없다는 점이다. 정부는 1~2년에 걸친 예타를 통해 경제성·지속성 등 대형 사업의 여러 측면을 분석한다. 예타를 거치지 않으면 대형 사업에 대한 중립적·객관적 분석이 이뤄지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당초 정부가 1999년 예타제도를 도입한 것도 국책 사업의 남발로 인한 재정 누수를 막기 위해서였다. 유 교수는 “예타제도는 대규모 국비 투자 사업을 검증하는 합리적 시스템”이라며 “제도 도입 후 24년 동안 재정 건전성 등에 긍정적 영향을 미쳤다”고 말했다. 달빛고속철도의 경제성은 한 차례 분석된 바 있다. 국토교통부가 2021년 발표한 사전타당성조사 결과를 보면 달빛고속철도 사업의 비용·편익(B/C) 수치는 0.483에 그쳤다. 통상 B/C 수치는 1.0보다 커야 경제적 타당성이 있는 것으로 본다. 정창수 나라살림연구소 소장은 “사업을 추진할 타당성이 어느 정도라도 있으려면 B/C 수치가 최소 0.5는 넘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경제성이 낮게 분석된 것은 달빛고속철도가 담양·순창·거창·합천 등 대부분 ‘인구 감소 지역’으로 지정된 곳을 지나가기 때문이다. 심지어 순창·합천·고령 등 일부 지역은 소멸 고위험군이다. 정도는 다르지만 광주와 대구도 인구가 감소세인 것은 마찬가지다. 전국적으로 인구 감소 속도가 빨라지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일러야 2030년께 완공될 예정인 달빛고속철도의 수요를 장담할 수 없다는 뜻이다. 광주·대구 고속도로만 놓고 봐도 지난해 기준 일일 교통량이 2만 2322대로 전국 고속도로 평균치(5만 2116대)의 절반에도 못 미쳤다. 재정 건전성 타격도 우려된다. 4조 5000억 원 규모의 달빛고속철도 사업은 전액 국비로 추진된다. 역대급 ‘세수 펑크’로 팍팍한 나라 살림에 기름을 붓는 셈이다. 정부는 올해 세금이 기존 예상보다 59조 원 이상 덜 걷힐 것으로 보고 있다. 상황이 이런데도 정치권은 이번 특별법의 국회 통과를 밀어붙여 재정 당국 압박에 나설 가능성이 크다. 다만 기재부가 예타 면제를 담은 특별법에 끝까지 반대하면 예타를 받아야 하기 때문에 2026년 조기 착공은 물 건너간다. ‘경제성이 없다’고 판명되면 사업 착수도 불가능하다. 이는 정치권이 내년 총선을 앞두고 기재부에 대한 압박 강도를 높일 것으로 보는 이유다. -
항공보안 질타에 윤형중 공항公 사장 "원점서 마스터플랜만들 것"
사회 사회일반 2023.10.25 17:31:4025일 인천국제공항공사에서 열린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국정감사에서는 공항 내 보안 안전 사고 대책에 대한 질타가 쏟아졌다. 윤형중 한국공항공사 사장은 이날 이같은 여야 의원들의 지적에 "보안 실패 사례가 연이어 발생하는 것에 대해 엄중하게 인식하고 있다"며 "항공 보안 태세를 원점에서 리셋한다는 차원에서 마스터플랜을 계획하고 있다"고 답했다. 앞서 정동만 국민의힘 의원은 "항공기 내 반입금지 위해물품 적발현황에 의하면 2019년부터 올해 9월까지 총기·실탄 류·도검 등이 1439건 적발됐다"며 "최근 공공장소에서 흉기 난동 등이 늘고 있어 인천공항 보안을 강화할 강력한 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같은 당 권영세 의원도 "전국 공항에서 실탄이나 전기충격기, 가스 분사기 등 항공기 테러와도 이어질 수 있는 물품들이 보안 실패로 기내에 반입됐다"며 "보안 검색요원들의 능숙도를 높일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정의당 심상정 의원은 "보안을 책임진 인천국제공항 보안 정원이 3619명인데 올해 3월 실제 근무 인원은 18%나 부족한 3026명이었다"며 "코로나19로 인건비 절감을 위해 결원이 생겨도 보충하지 않다가 이용객이 급증하니까 모자란 인원으로 휴식도 없이 급하게 검색하다가 사고 난 것"이라고 주장했다. 마약류 유통 근절을 위한 인천국제공항공사와 한국공항공사의 역할도 강조됐다. 김학용 국민의힘 의원은 "두 공항 공사에서는 보안 검색을 할 때 무기 또는 폭발물로 한정돼 마약류는 별도 검색을 하고 있지 않다"며 "관세청에만 미룰 것이 아니라 인천공항공사와 한국공항공사가 선제적 대책을 세워 주시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이에 이학재 인천국제공항공사 사장은 “공사에서 무기나 폭발물 등을 검색하고 있기 때문에 철저히 해서 마약까지 단속할 수 있도록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겠다”고 했다. -
민주 "국정원, 선관위에 해킹툴 남겨…진실 밝힐 것"
정치 정치일반 2023.10.25 16:07:00더불어민주당은 국가정보원이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보안 점검을 진행한 뒤 선관위 내부 시스템에 점검 도구를 다수 남겨놨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국정원을 향해 선관위 장악 시도를 중단하라고 촉구했다. 민주당은 이날 국회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강병원 의원이 선관위로부터 보고받은 내용을 공개했다. 강 의원은 “앞서 선관위가 국정원 보안점검을 받은 후 내부 시스템에 점검 도구 2개가 남아있는 것을 자체 인지해 삭제했다고 밝힌 바 있는데, 추가 확인 결과 총 4개 시스템에 15개의 점검 도구가 있었던 것으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강 의원은 “보안 전문가들에 따르면 도구 파일 이름 등으로 미뤄볼 때 명백한 해킹 툴 같다”며 “지금도 선관위가 내부 파일을 자체 조사 중이어서 얼마나 많은 점검 도구가 더 발견될지 모르는 상황”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현재 비활성화돼 있더라도 특정 시기에 활성화가 가능한 파일도 있을 수 있다”며 “보안 점검이 선한 의도였다면 국정원 스스로 나서 모든 추진 과정과 사용한 도구, 사용 이유 등을 소상하게 밝혀야 한다”고 촉구했다. 강 의원은 국정원이 특히 헌법기관 중에서도 선관위에 대해서만 집요하게 보안 점검을 요구해 이번 점검이 진행됐다고 주장했다. 그는 지난 1월 27일 행정안전부가 국회, 대법원, 헌법재판소, 감사원, 선관위에 국정원의 보안 점검 실시 안내 공문을 보냈고, 감사원만이 이에 응해 2주간의 홈페이지 보안 점검을 받았다고 설명했다. 강 의원은 “국회, 대법원, 헌재는 선관위와 마찬가지로 보안 점검에 응하지 않았는데 국정원이 유독 선관위에만 별도 연락하고 관계자를 외부에서 만나가며 집요하게 점검받도록 압박했다”고 말했다. 민주당은 국정원의 행보를 ‘선관위 흔들기’라고 규정하며 앞으로 총선 등 선거에 개입하려는 의도가 의심된다고 비판했다. 홍익표 원내대표는 “국정원의 선관위 흔들기는 정권 야욕에 복무하면서 국내 정보수집 기능 부활을 꿈꾸며 국내 정치와 선거에 개입하겠다는 ‘대국민 선전포고’”라고 비판했다. 홍 원내대표는 “국정원이 보안 점검에 깊숙이 개입하고 석연치 않은 과정, 말끔하지 않은 뒤처리로 더 큰 의혹을 남겼다”며 “국정감사 이후에라도 다른 수단을 통해 국정원의 선관위 개입 여부에 대한 진실을 밝힐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
의대정원 ‘미니 의대' 중심으로 늘어나나…복지부 장관 "'정원 50명 이하 의대, 80명 이상은 돼야' 대통령 보고"
사회 사회일반 2023.10.25 14:30:58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은 25일 "의대 정원이 최소 80명 이상은 돼야 한다는 전문가 의견을 대통령께 보고했다"고 말했다. 정원이 50명 이하인 소규모 의대는 17곳인 것을 감안할 때 전문가들은 나머지 대학을 그대로 두더라도 이번 기회에 510명 이상은 정원을 늘려야 한다는 견해를 제시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조 장관은 이날 국회에서 열린 보건복지위원회 국정감사 종합감사에서 지역·필수 의료 혁신 방안에 관한 질문에 이같이 답했다. 조 장관은 사립대 의대 정원을 배정할 계획을 묻는 말에 "전체 의대 중 정원이 50명 이하인 곳이 17곳"이라며 "더 효율적으로 교육하려면 최소한 (정원이) 80명 이상은 돼야 한다는 전문가 얘기를 대통령께 보고드렸다"고 답했다. 악화일로인 지역·필수의료 인프라와 의사·환자들의 수도권 선호현상을 완화하기 위해서는 지방 국립대와 정원 50명 이하의 '미니 의대' 중심으로 의대 증원이 이뤄져야 한다는 얘기다. 조 장관은 또 "정원을 늘릴 때는 대학의 수용 능력도 중요하고, 그게 되더라도 구성원들이 얼마나 확충할 것인지 의사도 중요하기 때문에 정확하게 조사해야 한다"며 "2025년 입학에서 차질 없이 의대 정원을 확대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조 장관은 의대정원 확대규모는 정해지지 않았다고 선을 그었다. 전체 의사 숫자 부족분과 지역 수급동향, 필수의료 과(科) 부족 상태 등을 파악한 후 대한의사협회 등 의료계 협의를 하겠다는 계획이다. 조 장관은 "아직 정원 확대 규모를 정하지 않았다"며 "거시적으로는 수급 동향, OECD 1000명당 의사 수를 보고, 미시적으로는 각 지역과 과목 간의 특수성을 고려하려고 한다"고 했다. 그는 "대한의사협회는 2000년에 감축한 인원인 350명 수준을 (확대) 마지노선으로 본다고 하는데 맞냐"는 질문에는 "그런 의견을 듣거나 보고받은 바 없다"고 답했다. 조 장관은 의사들의 의무복무 방안을 두고는 "의사들이 의료 취약지역에 근무하게끔 하는 제도적인 방안은 필요하다고 생각하지만, (의무복무 방안은) 장단점이 있기 때문에 잘 검토해야 한다"고 밝혔다. 또 "지역에 의사 확충이 필요하다는 것은 인정한다"며 "공공의대라는 별도의 모델을 만들 것인지 아니면 현재의 국립 의대 모델을 통해 지역 의사를 양성할지는 충분히 논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편 조 장관은 26일 오후 2시 지역·필수의료 혁신전략 추진을 위한 후속 조치를 발표할 예정이다. -
감사원, '이태원 참사' 등 재난안전체계 감사 착수
정치 정치일반 2023.10.25 13:41:13감사원이 지난해 10월 발생한 이태원 참사와 관련 재난·안전관리체계 전반을 점검하는 감사를 진행한다. 감사원 행정안전국 행정안전1과는 행정안전부, 소방청, 경찰, 지방자치단체 등을 대상으로 관련 자료 수집에 돌입했다. 자료수집을 마치는 대로 실지감사에 들어갈 예정이다. 감사원 관계자는 “자료 수집 이후 본 감사의 구체 범위와 대상이 정해질 것”이라고 언급했다. 이태원 참사는 재난·안전관리체계 감사의 한 항목으로 포함될 예정이다. 최재해 감사원장은 앞서 국정감사에서 “이태원 참사를 포함해 재난 안전관리체계 감사 계획을 넣어놨다”고 밝힌 바 있다. 감사원이 이태원 참사가 발생한 지 1년 가량된 시점에 뒤늦게 감사에 나선 것은 유가족 등이 여전히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 등을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태원 참사 시민대책회의는 박희영 용산구청장의 사퇴와 이태원 참사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고 있다. 이들은 박 구청장이 안전대책을 제대로 수립하지 않아 대형 참사가 벌어졌다고 주장하고 있다. 또 검찰의 부실수사와 은폐로 인해 참사의 원인 규명과 책임자 처벌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며 특별법 제정이 필요하다고 보고 있다. 감사원은 이와 관련 “폭넓게 관련 자료를 수집하고 있으며 절차에 따라 감사를 진행하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
"국립대 의대 10곳, 정시 신입생 5명 중 4명 이상 N수생"
사회 사회일반 2023.10.25 11:10:00최근 3년간 전국 국립대 의대에 정시모집으로 입학한 학생 5명 가운데 4명 이상이 N수생인 것으로 집계됐다. '의대 쏠림' 현상이 심화하면서 재수·삼수에 뛰어드는 학생이 늘어나는 것이다. 이로써 학생·학부모의 부담이 가중되는 동시에 사회적인 손실을 가져올 수 있어 교육당국의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25일 국회 교육위원회 안민석 의원(더불어민주당)이 전국 10개 국립대 의대에서 제출받아 분석한 국정감사 자료를 보면, 최근 3년간 정시모집을 통해 이들 대학에 입학한 학생은 모두 1121명이었다. 이들 가운데 N수생은 911명으로 81.3%에 달했다. 연도별로 살펴보면 2021학년도에는 정시모집 신입생의 84.2%(386명 중 325명)이 N수생이었고, 2022학년도에는 82.0%(373명중 306명), 2023학년도에는 77.3%(362명 중 280명)가 N수생이었다. 학교별로 따져보면 'N수생 강세 현상'은 더 극명하게 나타난다. A대학의 경우 2022학년도 정시모집으로 입학한 신입생 29명 가운데 1명을 뺀 28명(96.6%)이 N수생이었다. 고교 3학년생이라면 사실상 이 대학 의대 정시모집에 지원해 합격할 가능성이 거의 없는 셈이다. 이 학교는 이듬해에도 정시모집 신입생 30명 중 28명(93.3%)이 N수생이었다. B대학의 경우 2021학년도 정시모집 신입생 55명 중 50명(90.9%)이, C대학도 2022학년도 정시모집 신입생 20명 가운데 18명(90.0%)이 N수생이었다. 고교 졸업예정자가 N수생보다 많았던 경우는 2023학년도 D대학 정시모집뿐이었는데 이마저도 35명 가운데 절반을 겨우 넘어선 18명이 고3이었고, 나머지 17명이 N수생(48.6%)이었다. 안민석 의원은 "의대 열풍과 재수생 증가는 우리나라 교육 현실과 입시의 한 단면을 보여주고 있다"라며 "'의대 쏠림'으로 학생·학부모는 물론, 대학과 사회가 부담해야 하는 사회적 비용도 커지고 있기 때문에 국회와 교육부, 국가교육위원회, 학교가 머리를 맞대고 공론화를 통해 해법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
'옷 절도 혐의' 김필여 마퇴본부이사장 결국 자진 사퇴
사회 사회일반 2023.10.25 10:55:43의류 매장에서 옷을 훔친 혐의로 벌금형의 선고유예를 받은 김필여 한국마약퇴치운동본부 이사장이 25일 사퇴 의사를 밝혔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종합 국정감사 마지막날인 이날 한정애 더불어민주당 의원을 필두로 야당 의원들은 오유경 식품의약품안전처장에게 김 이사장의 해임을 요구하고 나섰다. 한 의원은 “사회적으로 물의를 일으킨 김필여 한국마약퇴치운동본부 이사장이 신상을 정리하지 않고 있는 데 대해 상당한 유감을 표한다”며 “국정감사가 끝나기 이전에 스스로 용퇴를 해 주시기를 부탁드린다”고 말했다. 오 처장이 “(마약퇴치운동본부가) 식품의약품안전처 산하기관인 만큼 이사회에 퇴임을 요구하는 자료를 제출했다”고 답하자 김영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이사회는 기관장이 임명한 측근들로 꾸려졌다. 보건복지부 차원에서 이 문제를 논의해야지, 이사회 결과를 기다리는 것은 무책임하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이 같은 발언이 오간 이후 오 처장이 “김필여 이사장이 방금 사퇴 의사를 밝혀 왔다”고 전하며 사퇴를 공식화했다. 김 이사장은 지난해 11월 경기도 소재 의류매장에서 옷을 훔친 혐의로 법원에서 벌금 10만 원의 선고 유예를 받은 사실이 알려지며 논란이 일었다. 경찰 경미범죄심사위원회는 김 이사장에 대해 절도 혐의로 즉결심판 처분을 내렸고, 수원지법 안양지원이 선고유예 처분을 내린 것으로 전해진다. 선고 유예는 경미한 범인에 대해 일정한 기간 형의 선고를 유예하고, 그 유예기간을 사고 없이 지내면 형의 선고를 면하게 하는 제도다. 김 이사장은 국민의힘 경기 안양동안을 당협위원장을 겸하고 있다. 이 같은 사실이 알려지자 마퇴본부 내에서 김 이사장을 해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졌고, 당 내에서도 징계가 내려졌다. 식약처는 지난 23일 마퇴본부 이사회에 김 이사장의 본부 정관 위반을 이유로 해임요구안을 발송한 바 있다. 마퇴본부는 오는 31일 이사회에서 김 이사장 해임 안건을 상정하고심의할 예정이었다. -
고속정·초계기 띄우고도 목선 못찾은 軍…“사전에 레이더로 탐지·추적” 반박[이현호 기자의 밀리터리!톡]
정치 통일·외교·안보 2023.10.25 07:30:00북한 주민 4명이 지난 24일 소형 목선을 타고 동해 북방한계선(NLL)을 넘어와 귀순 의사를 밝혀 정부가 조사에 착수한 가운데 군 당국의 경계태세가 도마에 올랐다. 어민 신고 후 군 당국이 이들에게 접근한 점이 2019년 북한 목선의 삼척항 입항 사건을 연상케 하면서 군이 또다시 해안 감시·경계에 실패했다는 질타가 쏟아지고 있다. 이에 대해 군은 북방한계선(NLL)이남부터 목선을 사전에 레이더로 포착해 정상적인 작전에 따라 신병을 확보했다는 입장이다. 사전에 레이더로 탐지해 추적했다며 시간별 작전 대응에 대해 이례적으로 국방부 출입기자단에 문자공지를 보내며 일일이 반박했다. 분명한 것은 오전 4시 이전부터 NLL 인근에서 북한군의 동향을 포착하고 동해상에 초계기와 고속정을 보냈지만, 민간 어선이 신고할 때까지 해당 선박을 특정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북한 목선이 NLL을 지나 남쪽으로 40∼50㎞ 떨어진 지점까지 내려오도록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 것이다. 군도 이 부분에 허점이 드러난 것을 인정하고 있다. 만약 북한이 침투였다며 해상 경계가 뚫렸을 것이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고속정·초계기 띄우고도 목선 못찾아 우리측 민간 어선이 24일 오전 7시 10분께 강원도 속초 동쪽 약 11㎞ 해상에서 발견한 북한 선박은 NLL을 넘어 남쪽으로 내려온 것으로 확인됐다. 북한 목선이 동해 NLL 넘어오는 동안 군 당국은 이를 제대로 포착하지 못했다. 해경 등에 따르면 오전 7시 10분쯤 속초시 외옹치항 인근 바다에서 조업을 하고 있던 어민이 ‘이상한 배가 있다’며 신고했고 해경은 곧장 출동해 해당 선박에 타고 있던 선원 4명의 신병을 해상에서 확보했다. 이들이 타고 온 목선은 북한군에서 조업 등에 활용하는 5톤 이하의 나무로 만들어진 부업선인 것으로 알려졌다. 해경은 이들 4명의 신병을 군 당국에 넘겼다 국정원 관계자는 “(귀순 의사를 밝힌) 북한 인원 4명이 동해상을 통해 (NLL을) 월선한 것은 사실”이라며 “향후 통합방위법에 따라 유관기관과 합동정보조사가 이루어질 것”이라고 밝혔다. 합동참모본부에 따르면 군은 24일 오전 4시 이전부터 동해 NLL 이북 해상에서 특이징후가 있어 해군 초계기와 함정을 투입해 작전을 실시했다. 이후 오전 5시 30분쯤 육군 레이더를 통해 뭍에서 10해리(약 18㎞) 떨어진 지점에 선박으로 의심되는 점이 최초 포착됐다. NLL에서 남쪽으로 약 40∼50㎞ 떨어진 지점이다. 육군은 먼 바다에서 느리게 남서쪽으로 이동하던 해당 점을 오전 6시 30분쯤부터는 열상감시장치(TOD)로 집중 감시에 들어갔다. 이후 6시 59분쯤 TOD로 이 물체가 선박 형태를 띠고 있다고 판단했다고 한다. 그러는 사이 오전 7시 10분쯤 조업 중이던 어민으로부터 '이상한 배가 있다'는 신고가 접수됐다. 군 당국은 이 배를 자체 추적 중인 물체와 동일한 표적으로 확인했다. 이후 오전 8시쯤 속초 동북방 약 11㎞ 지점에 떠있던 목선에 어민 신고를 받고 출동한 해경 순찰정과 해군 고속정은 오전 8시쯤 현장에 도착해 여성 3명과 남성 1명이 승선한 것을 확인했다. 군 관계자는 “북한군의 특이징후가 있었는데 그런 움직임이 탈북하는 목선을 추적하는 것과 관련이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포착부터 접근까지 2시간 30분 소요 논란은 겉보기엔 무리 없이 작전이 이뤄진 것처럼 보이지만, 최초 포착 후 목선에 접촉하기까지 약 2시간 30분이나 소요돼 일각에선 경계태세에 빈틈이 생긴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해군 출신인 김동엽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귀순 어선이 아니라 침투였다면 지금쯤 이미 동해 주요시설 한 군데는 뚫렸을 것”이라고 했다. 북한이 육상, 공중은 물론 해상으로 이스라엘에 침투한 하마스처럼 도발에 나설 경우 제대로 된 대응이 어렵지 않겠느냐는 지적이다 이날 열린 국회 국방위원회의 해군본부 국정감사에서도 질타가 쏟아졌다. 김병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해군에서 NLL 넘어 40~50㎞까지 오기 전에 포착하고 작전해야 했는데 주민 신고 후 작전 시작은 경계작전의 실패로 추정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군 당국은 해당 목선이 정확히 언제, 어느 경로로 NLL을 넘었는지도 확인 중이라고 밝혔다. 이를 해석하면 북한 목선이 NLL을 지나 남쪽으로 40∼50㎞ 떨어진 지점까지 내려오는 동안 선제적 대응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앞서 군 당국은 지난 5월 6일 밤 서해에서 북한 어선 1척이 NLL 가까이 접근하는 동향을 포착하고 감시하다가 NLL을 넘자 즉각 병력을 투입해 신병을 확보한 바 있다. 당시와 달리 이번에는 특정하지도 고속정과 초계기를 보내고도 목선을 찾지 못했다는 점에 경계에 실패한 것이라는 비판이 나오는 것은 이 같은 까닭이다. 이에 대해 해군은 서해 NLL과 달리 동해 NLL은 북한 소형 목선 감시에 어려움이 있다는 입장이다. 해군 관계자는 “서해 NLL에는 섬이 많고 짧아 경계·감시가 비교적 수월하지만, 동해는 섬이 없고 NLL 길이가 400㎞가 넘어 북한 소형 목선이 넘어오는 것을 모두 잡아내기 힘들다”며 “게다가 먼 바다에 있는 소형 목선은 레이더에 잘 포착되지 않는다”고 해명했다. 동해 NLL을 넘어온 북한 어선을 군 당국이 제때 포착하지 못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19년 6월 15일 어민 4명이 탄 북한 어선이 삼척항 외항 방파제를 지나 부두까지 다가와 접안했고 인근에 있던 민간인이 112에 신고해 발견됐다. 군 당국은 이 어선의 동해 NLL 월선을 포착하지 못했다. 또 2009년 10월 1일 강릉 앞바다에서 북한 선박이 발견됐을 때도 군 당국은 이 선박의 동해 NLL 월선을 식별하지 못했다. 논란이 커지자 군 당국은 적극 해명에 나섰다. 합참은 24일 새벽 동해상의 '의심 선박'을 레이더와 열상감시장비(TOD) 등 감시장비로 포착하고 오전 5시 30분께부터 작전조치에 들어갔다고 밝혔다. 합참 관계자는 “레이더와 TOD로 포착된 해당 선박은 어선 신호가 없어 의심 선박으로 추적하고 있었다”며 “초계기와 고속정을 보냈지만, 소형 북한 목선을 찾지 못했고, 이런 와중에 민간 어선이 북한 배를 신고했다”고 설명했다.그러면서도 이 관계자는 “레이더에 포착되는 수많은 점 중 미세한 표적 하나하나에 출동하는 건 물리적으로 힘들다”며 “그렇기 때문에 계속 추적한 뒤 특이점을 발견해 출동한 것”이라고 말했다. 시간이 걸리긴 했지만 레이더에서 이상 물체를 성공적으로 탐지해냈고 탐색까지 작전을 펼쳤다는 것이다. 또 다른 군 관계자는 “이번처럼 먼 바다에서 목선이 돌아서 들어오면 레이더에서 식별해내는 것 자체가 굉장히 까다롭다"며 "400㎞가 넘는 점도 동해 NLL 길이도 경계를 어렵게 하는 요인”이라고 설명했다. 이와 관련해 군은 국방부 출입기자단 문자공지를 통해서 이번에 넘어온 목선은 7.5m 길이로 2019년 삼척항에 입항한 10m 길이 목선보다 작다고 해명하기도 했다. 軍 “레이더로 탐지해 표적 번호까지 부여” 물론 한정된 군·경 자원으로 방대한 지역을 경계해야 되는 현실적인 어려움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북한 역시 이런 허점을 노린 침투에 언제든 나설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2019년 6월 북한 주민이 목선을 타고 삼척항에 스스로 입항한 사건처럼 결과적으로 이번에도 민간 어선 신고 이후 목선 접촉이 이뤄지는 등 본격적인 작전 조치가 취해져 감시·경계가 실패했다는 지적은 피하기 어렵다는 게 군사 전문가들의 평가다. 이 같은 비판에 대해 군은 해당 선박이 매우 작은 데다 위협의 정도가 떨어진다고 판단해 연안으로 접근할 때까지 기다렸다가 고속정을 출동시키기로 계획해놓은 상태로 어민 신고로 작전을 시작한 건 아니다고 반박했다. 오전 7시 3분 추가적인 현장 근접 확인을 위해 이 선박에 자체 표적 번호를 부여했고 함정 긴급출항 등으로 현장을 확인하던 중 어민 신고 내용을 듣게 됐다는 게 합참의 설명이다. 또 해당 목선을 추적·감시하는 과정에서 육군은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감시태세를 격상하고 위기조치반을 운영했다고 강조했다. 군, 경찰, 정보당국, 통일부 등으로 구성된 정부합동정보조사팀은 북한 주민 4명의 신원과 귀순 의사의 진정성 여부 등을 놓고 신문을 진행 중이다. 이들 구성원이 일가족인지 등에 대해 통일부는 “확인해주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통상적으로 관계 당국은 북한에 남은 가족의 신변 안전을 고려해 귀순자의 개인 정보를 공개하지 않는다. 해상을 통한 귀순은 지난 5월 이후 약 5개월 만이다. 당시 10명 미만으로 이뤄진 가족 단위 북한 주민들은 어선으로 서해 NLL을 넘었다. 동해를 통한 귀순은 2019년 11월 선박 살해 혐의를 받고 강제 북송된 2명 이후 4년 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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