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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진예측과 동물들의 이상행동

살아있는 지진 경보기

지진은 오늘날 가장 무서운 자연재해의 하나다. 과학이 크게 발달했지만 이를 예보할 수 있는 기술은 사실상 전무한 탓이다. 이런 가운데 동물들의 예민한 감각을 이용한 지진 예측 연구가 새삼 관심을 끌고 있다.

지진 발생 전 동물들이 보이는 갖가지 이상행동을 지진의 전조로 활용할 수 있다는 가능성이 활발히 제기되고 있는 것. 우리의 기대대로 동물은 살아있는 지진 경보기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을까. 그 속에 숨겨진 과학적 비밀을 파헤쳐보자.


지난 2008년 5월 전 세계를 공포에 떨게 한 사건이 있었다. 중국 쓰촨성에서 리히터 규모 7.8의 대지진이 발생한 것. 약 2분간 지속된 이 지진은 원자폭탄 252개를 한꺼번에 폭발시킨 것과 맞먹는 수준의 위력을 보였으며 무려 9만명에 달하는 사망자와 실종자를 냈다.

중국 최악의 참사라는 표현이 결코 과장이 아니었던 셈. 하지만 우리를 놀라게 한 것은 이뿐만이 아니었다. 지진이 발생하기 사흘 전 진앙지 부근의 한 마을에서는 두꺼비 수십만 마리가 떼를 지어 이동하는 진귀한 광경이 펼쳐진 것이다.

도로 인근을 새까맣게 뒤덮은 두꺼비 떼는 차에 치이거나 사람의 발에 밟히기도 했지만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해서 한 방향으로 이동했다고 한다. 이후 중국 언론은 두꺼비의 대규모 이동을 가리켜 지진 발생 전 나타난 전조 현상이라고 보도했다.

이를 부연하듯, 이후 영국 방송대학의 한 생물학자는 리히터 규모 6.3의 이탈리아 라퀼라 지진 발생 닷새 전에도 수컷 두꺼비의 96%가 사라졌다는 사실을 밝히며 '두꺼비의 지진 예측력'에 힘을 실었다. 하지만 두꺼비가 실제로 지진을 예감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과학적으로 규명된 바가 없다.

미신이 아닌 과학

두꺼비와 같은 양서류뿐만 아니라 포유류, 파충류, 어류, 조류 등 대다수 동물들이 지진이 발생하기 전 이상행동을 보인다는 것은 일반인들에게도 잘 알려진 사실이다. 지금껏 언론 등을 통해 보고된 바에 따르면 이 같은 이상 행동은 쓰촨성의 두꺼비처럼 주로 지진이 일어나기 전 살던 곳을 뛰쳐나와 비정상적으로 날뛰거나 다른 서식지로 이동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벌들이 벌집을 버리고 나와 떼를 지어 하늘을 날아다녔고 겨울잠에서 갑자기 깨어난 뱀이 거리를 활보하기도 했으며 우리에 갇혀 있던 맹수가 우리를 탈출하려고 갖은 애를 썼다는 등 이루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예가 있다.

작년 5월부터 기상청의 지원을 받아 국내에서 처음으로 동물의 이상행동을 비롯한 생물학적 전조 현상을 종합적으로 수집·분석해 지진 예측 가능성에 관한 연구를 수행한 전북대 지구환경과학과 조봉곤 교수는 이밖에도 세간에 잘 알려지지 않는 다양한 사례를 추가로 소개했다.

어딘가로 숨거나 밖으로 나가길 거부하는 고양이, 흥분한 채 떼를 지어 빙빙 도는 닭, 물 밖으로 뛰쳐나오는 물고기, 술 취한 듯 비틀거리는 쥐, 해안가 높은 곳으로 이동하는 홍합, 서로의 꼬리를 무는 돼지 등이 그 예다.

이러한 일련의 보고는 사실 기원전부터 수없이 많이 있어 왔지만 오랫동안 일종의 미신처럼 치부됐으며 현대에 들어서야 가까스로 정식 연구가 수행되기 시작했다. 1971년 지진 발생 전 동물들의 이상행동을 세계 최초로 수집, 정리한 중국 지진국은 4년 뒤인 1975년 발생한 해청 지진에 이를 적용해 지진 예측에 성공했다고 발표했다.

실제로 리히터 규모 7.3의 해청 지진은 도시의 절반 이상이 파괴되는 강진이었지만 지진국의 사전 예측과 대응으로 사망자는 수백 명 정도에 불과했다.

이는 사실상 동물의 이상행동을 이용한 최초이자 유일한 지진 예측 성공사례로 회자된다. 그러나 그 구체적 과정이나 내용, 심지어 어떤 동물을 활용했는지 조차 알려져 있지 않아 신빙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이들도 없지 않다. 어쨌든 이를 계기로 1970년대부터 동양은 물론 전 세계적으로 동물의 이상행동을 포함해 다양한 지진 전조 현상에 대한 연구가 보다 활발히 이뤄지게 된다.

그 결과 동물들의 이상행동이 지진 발생 전에 나타나는 과학적 현상과 일련의 연관이 있다는 사실이 조금씩 밝혀졌다. 동물들이 특정 자극을 감지했을 때의 반응이 기존에 보고된 지진 발생 전의 이상행동과 유사하다는 게 전문가들 의 설명이다. 최근에는 동물들의 이상행동이 위기상황에서의 생존본능과 관련이 있을 수 있다는 유전공학적 연구 결과도 보고된 바 있다.

동물들만의 슈퍼센서

지진은 지구 내부에서 일어나는 거대한 운동(지체구조운동 또는 판구조운동)에 의해 그 내부의 에너지가 지표로 나와 지각이 파괴되면서 땅이 갈라지는 현상을 말한다. 지진 발생 전에 나타나는 지각의 변형은 소리, 진동, 전기 및 자기 현상, 지하 수위 변동, 라돈(Rn) 가스 방출 등 다양한 물리적·화학적 현상을 유발한다.

조 교수에 따르면 각각의 동물들은 이 같은 지진의 물리적·화학적 자극에 대한 초고감도의 감지능력을 지니고 있다. 사람에게는 없는 슈' 퍼센서'를 가지고 있다는 얘기다. 이는 다른 말로 자극을 감지하는 기관, 즉 '수용기'라고도 한다. 수용기는 시각, 청각, 촉각, 후각, 미각을 비롯해 빛, 열, 압력, 진동 등 특정한 자극에 신속·정확하게 반응하는 능력을 의미하는데 수십억 년에 걸쳐 생존을 위해 발달한 진화의 산물이라 할 수 있다. 동물들은 이 능력을 통해 지진의 전조 현상을 감지, 미리 대처할 수 있다는 것이다.

가령, 사람의 가청 주파수는 20.2만㎐ 범위다. 20㎐ 이하를 초저음파, 2만㎐ 이상을 초음파라고 하며 양서류와 파충류는 저음에, 곤충은 고음에 민감하다. 개는 8만㎐, 박쥐는 10만㎐ 정도의 초음파까지 들을 수 있고 코끼리는 사람이 들을 수 없는 12㎐ 정도의 초저음파로 수㎞ 떨어진 곳에서도 의사소통이 가능하다고 한다.

이는 사람에 비해 동물들의 청각 세포가 훨씬 고밀도로 분포돼 있기 때문인데 이들 동물에게는 귀의 고막이 슈퍼센서인 셈이다. 전기 및 자기 현상에 대해 슈퍼센서를 지닌 동물들도 있다. 비둘기나 기러기와 같은 새들이 대표적이다. 조 교수는 "이런 새들의 부리 속에는 '자석' 성분이 들어 있다"고 말한다.

평소 이 자석은 지구 자기장의 방향을 가늠, 나침반처럼 새들이 길을 찾는 데 쓰이지만 지진 발생 전에 나타나는 자기장의 떨림도 감지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곤충의 경우 외부 자극에 특히 예민하다. 특유의 촉각센서인 더듬이가 예민성을 배가시키기 때문이다.

일례로 사마귀와 비슷한 생김새를 지닌 물방개붙이의 더듬이는 100 만분의 1㎜의 진동을 감지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를 감안하면 동물들은 오늘날의 그 어떤 탐지장치보다 뛰어난 지진 예보관처럼 느껴진다.

이에 대해 조 교수는 "동물들의 이상행동이 미신이나 신비의 개념이 아니라 과학적으로 타당한 현상인 것만은 분명하다"며 "동물들 각각의 행동이 모두 과학적으로 증명된 것은 아니지만 지진 예측에 있어 상당한 설득력을 지니고 있음은 부인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지진 예측은 시기상조

이렇듯 동물들의 이상행동에 관한 과학적 이해에도 불구하고 이를 활용한 지진 예측 연구는 아직까지 큰 성과를 낳지 못하고 있다. 중국 지질관측소가 밝힌 바로는 지난 20년간 자연현상을 통해 중국 내 지진 예측에 성공한 횟수는 단 20 회에 불과하다. 중국 전체의 지진 발생률에 비해 정확성이 턱없이 낮은 수준이다.



이런 이유로 다수의 연구자들은 동물로 지진을 예측하는 행위는 신뢰성 있는 방법이 아니라는 입장을 고수하기도 한다. 진실 여부를 떠나 현재의 기술로는 시기상조라는 것이다. 과연 상황이 이렇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조 교수는 크게 두 가지를 든다.

첫 번째는 지진의 다양성이다. 지구에서는 매년 80만회 이상의 지진이 발생하는데 이들 중 동일한 지진은 거의 없다. 조 교수는 이를 "사람들이 제각기 다른 얼굴을 가지고 있는 것과 같다"고 설명했다. 따라서 물리적·화학적 전조 현상도 지진마다 다르고 그에 따른 동물들의 반응도 당연히 다르게 나타날 수밖에 없다.

쓰촨성 지진에서 두꺼비가 대이동을 했다고 해서 앞으로 발생할 다른 지진에서도 똑같이 행동할 것이라는 보장이 없다는 말이다. 과학계에서 아직까지 이렇다 할 지진 예측 기술을 내놓지 못하고 있는 것 역시 일관된 전조 현상을 파악하기 힘든 지진의 까다로운 성질과 유관하다.

현재 기상청에서 지하 단층이 어떻게 갈라졌는지 등 지진의 움직임을 알아내려면 지진이 발생한 뒤 그 파장을 분석하는 방법밖에 없다.

두 번째 이유는 관측의 우연성이다. 발생 시기와 장소를 미리 예측할 수 없는 지진의 불가측성이 연구를 방해하는 장벽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 조 교수는 "동물의 행동으로 지진을 예측하려면 모든 종류의 동물을 한곳에 일정 간격으로 배치하고 상시적으로 관찰을 해야 한다"며 "이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또한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동물의 이상행동은 우연히 진앙지 부근에 특정 동물이 서식했을 경우, 그리고 그것을 목격한 관찰자가 있었을 때에 보고된 것들이다.

그런데 그 목격자는 지진의 전조 현상에 대한 전문적 지식이 없는 일반인일 가능성이 높다. 이 경우 목격자가 자신이 본 것을 지진의 전조 현상으로 인식치 못한다는 점도 어려움으로 작용한다. 거의 모든 동물의 이상행동 보고 사례가 지진 발생 전이 아닌 이후에 보고된다는 사실이 이를 방증하는 것이다.

센서 메커니즘이 관건





이 같은 여러 가지 어려움으로 인해 조 교수 역시 지난 1년여간의 연구 끝에 "지진과 관련된 동물의 이상행동과 이를 이용한 지진 예측은 지금으로선 그 전망이 불투명한 과학적 과제"라는 결론을 내렸다. 이는 동물의 이상행동뿐만 아니라 다른 어떤 자연현상을 통해서도 지진의 예측은 매우 어려운 일이라는 말과 일맥상통한다.

하지만 조 교수는 이 분야는 학문적으로 엄청난 과학을 담고 있는 주제라고 강조한다. 우주개발, 암 정복, 핵융합과 다를 바 없는 인류의 궁극적이고 보편적인 관심사이자 생물, 물리, 화학 등이 두루 연계된 거대 복합과학이며 미래과학의 하나라는 것. 때문에 이 연구는 과학 전 분야에서 힘을 합쳐 계속적으로 추진해 나가야 한다고 피력했다.

초기 연구단계인 현 시점에서 이 분야의 연구가 어떻게 전개될지 단정 짓기는 힘들다. 향후 첨단과학기술이 접목될 경우엔 동물의 이상행동이 지진 예측의 유일한 열쇠가 될지도 모를 일이지만 말이다.

조 교수는 다시 한 번 이렇게 강조했다.
"과학이란 언제나 의외성이 따르는 학문입니다. 거대한 궁극적 목표를 지향해 한걸음씩 나아가다보면 획기적인 뭔가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동물의 이상행동을 통한 지진 예측 연구 속에는 엄청난 과학이 담겨 있는 것만은 사실입니다. 동물들의 센서 메커니즘에 대한 연구가 보다 풍부하게 이뤄진다면 언젠가 이 속에서 인류의 문명을 바꿔 놓을만 한 획기적인 원리를 발견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 식물도 지진을 예측한다?



동물과 마찬가지로 식물도 지진 발생 전에 이상반응을 보인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겨울에 꽃이 핀다거나 이미 폈다가 진 꽃이 금세 다시 폈다는 사례, 그리고 느닷없이 꽃이 지는 사례들이 보고된 바 있다.

또한 배, 감 등의 과일 수확량이 갑자기 늘어났다는 기록도 있다. 특히 영어권에서는 원산지가 브라질인 여러해살이풀 미모사가 지진 발생 전 잎사귀가 오므라들거나 꽃이 고개를 숙이는 등 다양한 반응을 보인다는 보고가 있다. 그래서인지 미모사의 영어 이름도 민감한 식물이라는 뜻의 'sensitive plant'다.

이들 식물의 반응은 지진이 생성될 때 나타나는 자기장의 떨림이 식물의 뿌리를 자극함으로써 그에 상응하는 갖가지 형태로 나타난다고 알려져 있지만 식물 각각의 반응 메커니즘에 대해서는 아직 구체적으로 밝혀진 것이 없다.



◎ 지진, 한반도는 안전할까?

유라시아판 내부에 있는 한반도는 유라시아판과 태평양판의 경계에 위치한 일본에 비해 상대적으로 안전하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판 내부에 있다 하더라도 지진을 촉진하는 에너지가 단층에 축적되면 언제라도 지진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게 지질학자들의 입장이다.

실제로 최근 북한의 두만강과 러시아 국경 일대에서는 리히터 규모 6.0 이상의 강진이 잇따라 발생하기도 했다. 또한 기성청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에서만 총 42차례의 지진이 탐지됐다. 이는 2009년 60회에 비해 줄어든 수치지만 지난 10년간의 지진 발생 추이를 비교했을 때 발생빈도는 꾸준히 증가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특히 작년 2월에는 경기도 시흥에서 리히터 규모 3.0의 지진이 발생,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 내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 진동을 느낀 바 있다. 이는 여태껏 수도권에서 발생한 지진 중 가장 큰 지진으로 기록된다. 한편 지난 한해 국외에서 규모 5.0 이상의 강진이 발생한 횟수는 총 2,098회로 연평균 1,599회와 비교해 월등히 많은 수치를 기록했다.

박소란 기자 psr@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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