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이 그림에 우리의 궁금증을 유발하는 갖가지 비밀들이 숨겨져 있다. 아직까지도 완전한 실체가 밝혀지지 않아 많은 학자들의 연구대상이 되고 있는 모나리자. 과연 모나리자는 세계인을 사로잡은 미소 속에 무엇을 감추고 있는 것일까.
레오나르도 다빈치라는 이름 앞에는 다양한 수식어가 붙는다. 익히 알려졌다시피 그는 모나리자를 그린 화가일 뿐만 아니라 과학자, 의학자, 수 학자, 철학자, 건축가, 발명가였다. 이처럼 다재다능한 면모 덕분인지 그는 세상을 떠난 지 반세기가 훨씬 지난 오늘날까지 세기의 천재로 추앙받고 있다.
그리고 대중들에게는 여전히 '핫'한 아이콘이다. 최근 다빈치와 함께 떠오르는 연관 검색어는 단연 미스터리다. 화가로서 그의 또 다른 걸작 '최후의 만찬'이 세계적 베스트셀러 '다빈치 코드'의 모티브가 되면서 수많은 사람들이 그의 그림 속에 숨겨져 있을지 모를 비밀 메시지와 암호를 해독하기 위해 촉각을 곤두세웠다. 소설의 내용대로 다빈치가 예수의 핏줄과 성배를 지키는 비밀조직인 템플 기사단의 수장이었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그의 그림에 깃든 갖가지 미스터리는 우리의 호기심을 무한히 자극한다. 다빈치와 관련된 가장 유명한 미스터리는 그의 대표작 모나리자에 있다. 미인이라고 하기에는 다소 평범해 보이는 한 여인. 그녀의 오묘한 미소를 담은 이 초상화는 다른 그림에는 없는 특별한 무언가를 지니고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견해다.
그 때문인지 모나리자는 세계에서 가장 연구가 많이 된 그림이지만 아직도 많은 부분이 베일에 싸여 있다. 현재 모나리자는 프랑스 루브르박물관의 두꺼운 방탄유리 뒤에 전시돼 있다. 관람객들에게는 6m 뒤에서 10분 이라는 짧은 감상시간만이 주어진다. 그럼에도 매년 평균 800만 명이 모나리자를 보기 위해 루브르로 몰려든다.
실제 모델은 누구?
모나리자는 1503년부터 1506년 사이에 그려진 작품이다. 다빈치는 고국 이탈리아에서 프랑스로 이주할 때까지 열정적으로 이 그림에 매달렸다. 이후 오랫동안 미완성인 채로 남겨졌다가 사망하기 직전인 1519년 완성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다빈치는 자그마치 20여 년의 세월을 모나리자와 함께 한 셈이다. 1516년 모나리자를 들고 프랑스로 건너 간 다빈치는 사망할 때까지 프랑스에서 여생을 보냈다. 당시 프랑스의 국왕이던 프랑수아 1세가 다빈치에게서 처음 모나리자를 구입했고 한때 베르사유 궁전에 보관되기도 했다.
루브르에 터를 잡은 것은 프랑스형명 이후다. 나폴레옹 1세가 자신의 침실에 걸어두고자 옮긴 적도 있지만 얼마 후 다시 루브르로 돌아 왔다. 이처럼 오래 전부터 많은 이들의 관심과 사랑을 받았던 모나리자는 다른 말로 '조콘다'라고도 불린다. 모나리자 의 모델이 된 여인이 피렌체의 부유한 상인 프란체스코 델 조콘다의 부인이라는 것이 오늘날 가장 유력한 설로 받아들여지고 있기 때문이다.
조콘다 부인의 본명은 리자 레라르디니(Lisa Gherardini). 모나리자는 그녀 나이 24세 때의 초상이라고 한다. 다빈치는 이 초상화에 성모를 뜻하는 이탈리아어 '모나'와 조콘다 부인의 본명 '리자'를 합쳐 모나리자라는 제목을 붙였다. 모나리자가 완성되기까지 다빈치는 무수한 역경과 고난을 넘어 선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와 관련해서는 여러 가지 일화가 전해진다.
조콘다 부인을 화폭에 담을 때 그녀의 아름다운 미소를 표현할 방법을 찾지 못했던 다빈치는 고심을 거듭했다고 한다. 이후 마침내 혼신을 기울여 그린 초상화가 완성 단계에 이르렀을 무렵, 남편과 여행을 떠난 조콘다 부인이 갑작스런 병으로 세상을 떠나면서 모나리자는 오랜 시간 미완성인 채로 남겨질 수밖에 없었다는 게 그중 하나다.
또한 당시 어린 딸을 잃고 슬픔에 잠겨 있던 조콘다 부인을 위해 다빈치는 그림을 그릴 때마다 악사와 광대를 불러 그녀를 즐겁게 했다는 말도 있다. 부인이 따뜻한 미소와 단아한 자세를 유지할 수 있었던 비결이 여기에 있었 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조콘다 부인이 모나리자의 실제 모델이었는지 여부는 명확치 않다. 전문가들의 의견도 갈린다. 단순히 생각해도 24세의 꽃다운 조콘다 부인과 달리 모나리자는 30~40대의 여인 이미지를 풍긴다. 특히 다빈치는 그림의 모델들에 대한 기록을 따로 남겨 뒀지만 어쩐 일인지 모나리자의 모델에 대한 기록만큼은 어디서도 발견되지 않았다.
이를 빌미로 일각에서는 모나리자 의 모델이 다름 아닌 다빈치 자신이라는 다소 충격적 주장을 펼치기도 한다. 모나리자와 다 빈치의 자화상을 겹친 컴퓨터그래픽이 그 근거다. 여기서 두 작품의 모델 골격이 동일하다는 결과 가 나온 것. 특히 눈과 입 주위 근육은 정확하게 일치한다.
이를 지지하는 사람들은 모나리자의 신비스런 미소가 다빈치의 얼굴에 여성적 근육 배치를 가미함으로써 생겨난 결과라고 설명한다. 얼핏 허무맹랑한 얘기로 들릴 수 있 지만 상황에 따라 남성 혹은 여성으로 느껴지는 모나리자 특유의 중성적 이미지를 생각하면 무조건 억측으로 치부할 수 만도 없다.
인간의 모든 감정이 담긴 미소
물론 뭐니 뭐니 해도 가장 미스터리한 부분은 모나리자의 미소다. 어딘가 모르게 차가우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인자하고 따뜻하게 느껴지는 특유의 오묘한 미소는 지금도 많은 연구자들이 모나리자에서 눈을 떼지 못하게 만드는 가장 큰 이유다.
2005년 네덜란드 암스테르담대학 연구팀은 감정인식 소프트웨어를 통해 모나리자를 연구한 결과, 그 미소에 인간의 복합적 감정이 섞여 있다고 발표했다. 입술의 굴곡, 눈가의 주름 등 얼굴 주요 부위의 움직임을 수치화해 분석하자 표정의 83%는 행복의 감정이었지만 불쾌함(9%), 두려움(6%), 분노(2%) 등이 골고루 포함돼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실제로 모나리자는 코를 중심으로 왼쪽과 오른쪽의 입 근육이 서로 다르다. 왼쪽 입술은 일자로 다물고 있어 무표정하게 느껴지는 데 반해 오른쪽은 입꼬리가 살짝 올라가 웃는 듯한 모양을 하고 있다. 때문에 차갑지만 순간적으로 미소를 짓는 것처럼 보인다.
미소의 신비스러움에는 인간의 뇌 구조도 한 몫을 한다. 인간은 피사체의 왼쪽 정보는 우뇌, 오른쪽 정보는 좌뇌가 처리하며 특히 오른손잡이들은 우뇌를 통해 왼쪽 얼굴을 중심으로 전체 표정을 인식한다. 전문가들은 이것이 미소의 신비를 더 극대화하는 요인이라고 분석한다.
만일 모나리자의 얼굴을 합성해 좌우 모두를 웃도록 하거나, 무표정 하게 통일한다면 어떨까. 이 경우 표정은 더 또렷해지지만 특유의 신비감은 확연히 떨어진다. 그렇다면 과연 다빈치는 이 모든 것을 사전에 계산한 상태에서 모나리자의 미소를 표현한 것인지에 의문이 든다.
과학자이자의학자였던 그의 치밀한 면모를 감안하면 충분히 가능한 추정이다. 특히 다빈치는 해부학에 조예가 깊었다. 그는 최초로 인체의 장기를 해부한 인물이다. 르네상스 초기만 해도 인체 해부는 금기시 됐지만 차츰 의학적 용도로 허용되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다빈치는 해부학을 연구했고 뼈와 근육의 움직임을 비롯한 많은 부분을 깨달았다. 미술은 곧 과학이라 믿었던 그는 해부학을 토대로 인체를 한층 섬세하게 그려낼 수 있었던 셈이다. 하지만 모나리자의 미소가 신비스럽게 느껴지는 것은 단지 입술 등의 독특한 표현 때문만은 아니다.
오랫동안 모나리자를 연구해 온 학자들은 전시장의 밝기, 그림이 걸린 위치 등에 따라 미소를 볼 수도,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고 말한다. 우리 눈은 복합적 신호를 뇌에 전달하는데 망막의 세포들은 사물의 밝기, 위치 등을 코드화해 각각 다르게 분류된 정보를 뇌에 보낸다.
때문에 각 조건의 변화에 따라 미소가 달리 보일 수 있다는 것이다. 일례로 한 실험에서도 빛이 모나리자의 미소에 영향을 준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피실험자들을 두 부류로 나눠 각각 흰색 화면과 검은색 화면을 30초간 보도록 한 뒤 모나리자를 보여주자 흰 화면을 본 쪽에서 미소를 상대적으로 잘 포착한 것. 또한 정중앙보다는 측면에서 바라볼 때 미소가 훨씬 선명히 보인다는 실험 결과도 발표된 바 있다.
섬세한 스푸마토 기법
그렇더라도 이들 연구결과와는 상관없이 미소의 신비성을 창조한 근저에 화가로서 지닌 다빈치의 내공이 있었음을 부정하기는 어렵다. 그가 모나리자의 눈과 입매에 스푸마토(sfumato) 기법을 사용했다는 점이 그 방증이다.
스푸마토 기법은 서로 다른 색상 사이의 윤곽을 명확히 구분 짓는 대신 안개를 표현하듯 색을 미묘하게 변화시켜 색상의 경계가 자연스럽게 넘어가도록 표현하는 명암법이다.
이는 다빈치가 처음 도입한 것으로서 다람쥐털 소재의 붓으로 연하게 녹인 물감을 칠해 색의 변화를 낸 후 손가락으로 윤곽을 지워 마무리하곤 했다고 한다. 다 빈치의 그림에 아직도 그의 지문이 뚜렷이 남아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와 관련 최근 프랑스박물관 연구 복원센터가 X선형광분광기를 이용해 모나리자를 분석하기도 했다.
그 결과, 스푸마토 기법을 위해 다빈치는 물감을 여러 차례 연하게 덧칠했으며 결코 1~2㎜를 넘지 않는 붓질로 최대 30겹까지 반복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사실 르네상스 시대의 회화가 가진 최대 특징은 명확한 윤곽선의 표현이다. 그럼에도 다빈치가 스푸마토 기법을 도입한 것은 그림 속기하학적 원근법이 견고할수록 조화를 해친다고 봤기 때문이다.
이렇게 그가 구현한 섬세한 스푸마토 기법은 그림을 바라보는 이로 하여금 거리감과 공간감을 느낄 수 없도록 만들었고 이는 미소 뿐 아니라 그림 전체에 심오한 깊이를 더해주는 효과를 낳았다. 과학자들은 이를 시신경과 관련해 해석하기도 한다.
인간의 시세포는 간상 세포와 원추 세포가 있는데 전자는 명암과 이동 중인 물체, 후자는 색상과 정지된 물체를 인식한다. 스푸마토 기법은 이중간상세포를 자극, 시신경에 혼란을 불러옴으로써 다양한 반응을 유도한다는 것이다. 이외에도 다빈치는 입체감 표현에 많은 연구노력을 기울였다.
빛의 방향에 따라 입체 효과가 발휘되는 색상을 개발, 모나리자가 쓴 베일에 이를 사용했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또한 감상자를 정면으로 응시하는 여인의 시선, 그림의 중앙에서 약간 비껴 놓인 손 등 당시의 미술 화법에서 벗어나는 구도 역시 입체적 깊이를 더한다.
이처럼 섬세하고 정밀한 모나리자를 통해 다빈치는 한 인간의 외양을 넘어 인간의 오묘한 감정과 내면의 영혼까지 표현했다는 극찬을 받고 있다. 모나리자와 관련한 궁금증 중 빠뜨릴 수 없는 것이 또 하나 있다. 바로 눈썹이다. 눈썹이 없는 것은 모나리자의 대표적 특징으로 이에 대해서도 다양한 설이 제기된다.
넓은 이마를 미인의 조건으로 여겼던 당시 사회 분위기에 맞춰 눈썹을 뽑는 일이 여성들 사이에 유행했다는 설, 아직도 모나리자는 미완성 작품이라는 설 등이다. 최근에는 모나리자에 원래 눈썹이 있었다는 주장이 나오기도 했다. 모나리자 연구가로 유명한 프랑스의 파스칼 코트가 자신이 개발한 특수 카메라로 그림을 분석, 이런 결론을 내린 것. 그는 모나리자를 자외선, 적외선 등 13 개 스펙트럼을 가지고 2억 4,000만 화소급 초정밀 이미지로 스캔했다. 그리고 모나리자의 얼굴을 24배 확대해 왼쪽 눈썹 한 가닥을 그린 붓 자국을 찾아냈다.
그는 이것이 눈썹 존재의 확실한 근거라고 강조한다. 눈썹이 지워진 까닭에 대해서는 누군가의 실수로 지워졌을 개연성을 제시하고 있다. 모나리자의 눈 주위를 자세히 살피면 미세한 금들을 볼 수 있는 데 이는 그림 복원 과정에서 이 부분을 부주의하게 닦았다는 증거로 볼 수 있다는 게 그의 판단이다. 하지만 이 모든 사항들은 단지 가설일 뿐 진실은 아직 미궁 속을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다.
루브르 모나리자는 가짜?!
모나리자에 얽힌 의문들 가운데 우리를 가장 동요하게 만드는 것은 현재 루브르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는 모나리자가 진품이 아닐 수도 있다는 부분이다. 일부 음모론자들의 헛소리일 수도 있지만 이탈리아의 화가이자 역사가인 조르조 바사리는 저서 '이탈리아 미술 가 열전'에서 "다빈치는 모나리자에 4 년을 투자, 미소가 더없이 사랑스런 여인의 얼굴을 그려냈지만 미완성인 채로 끝났다"고 적었다.
하지만 알다시피 루브르박물관의 모나리자는 미완성작이 아니다. 이탈리아의 또 다른 화가이 자 역사가 지오바니 파올로 로마츠도 자신의 저서에서 조콘다 부인의 초상과 모나리자가 별개의 그림으로 존재한다는 점을 시사하기도 했다. 이게 사실이라면 미완성으로 끝났다는 원조 모나리자의 행방은 어떻게 됐을까.
관련 기록을 연구한 자료를 종합해보면 미완성 모나리자는 이탈리아에서 흘러나와 영국의 한 귀족이 보관하던 중 제1차 세계대전 직전 그 존재가 세상에 알려진다. 이후 싼 값에 미술상에 팔렸고 런던 근교의 아일워스 화랑에 보관됐다. 때문에 '아일워스의 모나리자'라는 이름이 붙었다.
그리고 이 작품은 배경 부분이 미완성인 상태다. 아일워스의 모나리자가 진품이라는 주장에 대한 근거는 다빈치의 제자였던 라파엘로의 습작 스케치다. 이 스케치는 라파엘로가 1504년 다빈치의 화실에서 모나리자를 보면서 따라 그렸다고 알려진다. 바로 여기에 루브르 모나리자에는 없지만 아일워스의 모나리자에는 그려져 있는 2개의 기둥이 있다.
현재 아일워스의 모나리자는 영국 과학자 헨리 퓰리쳐가 소유 중이다. 루브르 모나리자와 마찬가지로 다빈치의 지문이 남아있어 이미 분명한 다빈치 작품으로 판명됐다. 그러나 우리가 가장 궁금해 마지않는 루브르 모나리자와의 상관관계나 다빈치가 왜 한 명을 상대로 두 작품을 그렸는지 등은 알 길이 없다.
한 가지 조심스레 추측 가능한 것은 그림 속 주인공의 연령대를 볼 때 아일워스의 모나리자가 먼저 그려진 뒤 나중에 루브르의 모나리자가 탄생했을 것이라는 점 정도다. 한편 작년에는 모나리자의 눈 속에서 글자와 숫자가 발견됐다는 소식이 들리며 세간에 화제를 모았다.
이탈리아 국립문화유산위원회가 모나리자의 눈을 촬영한 고해상도 이미지를 현미경으로 관찰한 결과였다. 위원회 측은 오른쪽 눈에 'LV', 왼쪽 눈에는 'CE' 혹은 'B'가 쓰여 있다고 밝혔다. 또한 배경 부분인 다리의 아치에서도 숫자 '72' 혹은 글자 'L'과 숫자 '2'가 관찰됐다고 덧붙였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지금도 모른다.
이른바 다빈치 코드의 결정적 단서인지도 당연히 알 수 없다. 어쩌면 이는 프로그래머들이 게임이나 소프트웨어에 몰래 숨겨놓은 '이스터에 그'처럼 다빈치의 단순한 장난일 수도 있다. 그렇다면 모나리자를 둘러싼 작금의 추측들은 그의 천재적 능력에 의해 촉발된 해프닝일지도.
하지만 중요한 것은 모나리자에 대 한 관심이 여전히 뜨겁고 그와 관련한 갖가지 연구는 갈수록 활발해지고 있 다는 사실이다. 지금으로서는 풀리지 않는 궁금증들이 훨씬 더 많지만 앞으로 과학기술이 더욱 발전하면 모나리 자도 그 두터운 베일을 벗어던질 날이 올 것이다.
박소란 기자 psr@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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