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메뉴

검색
팝업창 닫기
이메일보내기

인간과 동물의 유전자 결합

이종배아 논란 점화

영화 ‘스플라이스’에는 여러 생물 종의 DNA 와 인간 여성의 유전자를 결합시킨 ‘드렌’이란 생명체가 나온다. 지난 7월 이종배아(hybrid embr yos) 문제가 불거지면서 이 드렌이 현실화 될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터져나왔다.
과연 이종배아는 무엇이고 왜 만들어지는 것일까. 그리고 드렌은 실제 우리 눈앞에 나타나게 될까.

글_이동훈 과학칼럼니스트 enitel@hanmail.net

7월 말 국내 한 언론에는 ‘이종배아 충격-혹성탈출 현실로?’라는 제목의 짤막한 기사가 실렸다. 기사에선 이종배아 실험이 영화 ‘혹성탈출: 진화의 시작’에서와 마찬가지로, 동물에게 인간의 특질을 부여하는 실험이라도 되는 양 이야기했다. 아울러 현재 이종배아가 150개 이상 만들어졌다고도 밝혔다.

아닌게 아니라 이 같은 내용은 유인원들이 인간과 동일한 지능을 얻어 인간을 몰아내고 지구의 지배자가 된다는 영화 ‘혹성탈출: 진화의 시작’의 개봉시기와 맞아 떨어지면서 상당한 센세이션을 불러일으켰다.

하지만 사실상 레트로바이러스(retrovirus)를 통해 침팬지가 돌연변이를 일으킨다는 혹성탈출의 내용은 이종배아와는 완전히 무관한 것이다.

왜 이종배아인가
이종배아란 문자 그대로 종이 다른 생명체의 생식세포 또는 유전자의 결합으로 생긴 배아를 말한다. 여기에는 몇 가지 유형이 있다.

그 첫 번째, 가장 전통적인 유형은 유전적으로 가까운 두 생물종의 정자와 난자로 만들어진 배아다. 호랑이와 사자를 교배시켜 만든 라이거나 말과 당나귀를 교배시켜 만든 노새가 그 예다.

두 번째 유형으로는 ‘키메라’ 배아라고도 불리는 집합배아(chimeric embryos)를 들 수 있다. 키메라란 고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머리는 사자, 몸통은 염소, 꼬리는 뱀 등 다양한 생물체의 신체 부위를 따서 만든 생물이다. 즉, 집합배아는 한 생물종의 배아에 유전적으로 먼 다른 생물종의 세포나 유전자를 주입해 만든 것으로, 스탠포드대학 연구진은 이 방식으로 인간 뇌세포를 가진 쥐를 만들어낸 바 있다.

세 번째 유형은 인간 형질전환 배아로, 인간의 난자에 동물 DNA 조각을 집어넣어 만든 배아를 말한다.

그리고 마지막 네 번째 유형은 세포질 이종배아다. 이는 인간 세포의 핵, 예를 들어 피부세포의 핵 같은 것을 난자핵이 제거돼 거의 모든 유전정보를 상실한 동물의 난자에 이식하는 것이다.

이런 방식으로 만들어진 이종배아에서는 본래의 난자에 들어 있던 동물 DNA가 0.1% 정도만 남게 된다. 나머지는 모두 인간의 DNA인 것이다. 최근 기사에서 언급한 이종배아도 이들 세포질 이종배아다.

그렇다면 과학자들은 왜 이종배아를 가지고 싶어하는 것일까. 그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줄기세포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줄기세포란 우리 몸을 구성하는 각종 세포와 조직을 만들어내는 가장 기본적인 세포다. 따라서 이는 난치병 환자의 손상된 장기를 대체하거나 복원함으로써 환자의 질병을 고치는 재생의학의 주요한 재료가 된다.

그러나 주지하다시피 줄기세포를 얻기란 매우 까다로운 일이다. 줄기세포는 획득하는 방식에 따라 배아줄기세포, 성체줄기세포, 역분화 만능 줄기세포, 체세포 복제 배아줄기세포 등으로 나뉜다.

이중 배아줄기세포와 성체줄기세포는 각각 인간의 배아와 기존 조직에 있는 천연 줄기세포를 단순 획득한 것이다.

하지만 인간의 신체라는 지극히 한정된 자원을 이용하는 이 방식으로는 그리 많은 줄기세포를 얻을 수 없다. 게다가 배아줄기세포의 경우 인간의 배아를 파괴해야 획득이 가능하다는 점 때문에 윤리적 지탄을 받기도 한다.

역분화 만능 줄기세포는 바이러스를 이용해 인간의 체세포에 역분화유전자를 삽입, 체세포를 줄기세포 상태로 되돌려 놓는 방식으로 획득한다. 이는 일체의 윤리적 문제가 없지만, 체세포에 역분화유전자를 삽입시키는 바이러스가 부작용을 일으킬 수 있다는 위험성이 지적되고 있다.

체세포 복제 배아줄기세포는 기본적으로는 배아줄기세포와 같지만 사용되는 배아가 다르다. 기존의 배아줄기세포를 정자와 난자가 만나 생긴 배아에서 추출하는 데 반해 체세포 복제 배아줄기세포는 인간 난자의 핵을 뽑아내 인간의 다른 체세포 핵을 이식시킨 다음 전기충격을 가해 난할, 배반포기배아(blastocyst) 단계까지 성장시켜 얻는 것이다.

하지만 이 방식은 상당한 문제를 안고 있다. 배아를 사용하는 데 따르는 윤리적 문제는 차치하고라도, 이 기술 자체가 한층 뜨거운 윤리적 이슈인 복제인간 생산에 악용될 소지가 있는 것이다. 체세포 복제 배아를 만드는 데 쓰이는 기술은 복제동물 생산에 쓰이는 기술과 동일하다.

참고로 지난 2004년 황우석 박사가 논문 조작을 통해 성공했다고 주장했던 기술도 다름아닌 체세포 복제 배아줄기세포 획득 기술이다.

과학자들이 이종배아를 가지고 싶어하는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줄기세포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법적 규제 해소
인간의 난자는 꽤나 구하기가 어려운 ‘자원’이다.

인간 여성이 평생 생산하는 난자 개수는 300~500개 밖에 되지 않는다. 그것도 한 달에 하나씩만 생산된다. 그렇다면 인간의 난자보다 더욱 구하기 쉬운 대체재를 사용해 배아를 만들 수는 없을까.

이번에 이슈가 된 이종배아는 바로 이 같은 발상에서 출발했다. 많은 동물들, 가령 쥐나 돼지는 인간보다 훨씬 더 많은 난자를 만들어낸다. 이런 동물들의 난자를 인간의 난자 대신 사용해 체세포 복제 배아줄기세포를 만들면 훨씬 생산성이 높을지도 모른다.

영국의 연구자들을 중심으로 이 같은 주장이 제기되자, 지난 2008년 영국 정부는 정책을 선회했다. 1990년에 제정된 ‘인간 생식과 배아 관리에 대한 법률’은 인간과 동물 간의 이종배아 제작을 금지하고 있었지만 2008년 10월 실시한 영국 하원의 표결에서 법률을 개정, 인간과 동물 간의 이종배아 제작을 허용한 것이다.

단 인간과 동물의 생식세포를 교잡시켜 만든 이종배아의 제작은 개정된 법안에서도 불법이다. 즉 인간의 정자와 동물의 난자, 혹은 그 반대의 경우로 이종배아를 만들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또한, 만들어진 이종배아는 어디까지나 연구 목적으로만 활용돼야 하며 절대 인간이나 동물의 자궁에 주입 및 착상해서는 안 된다고 법안에 명시했다. 이와 함께 제작 후 14 일 이내에 폐기처분해야 한다고 정함으로써 이종배아가 복제인간 제작에 사용될 가능성을 원천봉쇄했다.

한편, 법안이 개정되기 전인 2008년 1월 영국의 인간수정배아관리국(HFEA)은 이미 영국 내 두 곳의 연구소에 이종배아 제작 허가를 내준 바 있다. 런던 킹스칼리지의 줄기 세포생물학연구소장 스티븐 밍거 교수는 파킨슨병과 알츠하이머 등 퇴행성 신경질환의 치료를 위해, 뉴캐슬대학 줄기세포연구소 라일 암스트롱 박사는 당뇨, 척수마비 등의 치료를 위해 인간과 소 간의 이종배아 제작 허가를 요청했는데 이 요청이 받아들여진 것이다. 라일 암스트롱 박사팀의 경우 같은 해 6월 최초로 이종배아 생산에 성공을 거두기도 했다.



영국이 이렇게 전향적인 태도를 보인 것은 외국의 활발한 줄기세포 개발 상황을 보고 다소 충격을 받은 것으로 풀이된다. 그 대표적인 나라가 미국이다.

지난 2003년 미국의 연구자 파나이오티스 자보스 박사 는 인간과 소 간의 이종배아를 만들어 2주 동안 생존시켰으며, 2004년 미국 유명 종합병원 메이요클리닉 연구 자들은 인간과 돼지의 이종혈액세포를 갖춘 돼지를 생산한 바 있다.

2005년 샌디에고의 솔크연구소에서는 쥐에게 10만개의 인간 배아줄기세포를 이식하는 방식으로 0.01%의 인간 줄기세포를 갖춘 쥐를 생산했다. 2007년 예일대학 연구자 유진 레드몬드 박사는 파킨슨병을 앓는 원숭이들의 뇌에 인간 신경 줄기세포 수백만 개를 주입하기도 했다.

이런 가운데, 미국은 2009년 3월 오바마 대통령의 지시로 배아줄기세포 연구에 대한 다소간의 법적 규제를 해소했다. 2001년 8월 이전에 제작된 배아줄기세포주에 대한 연구만을 허용하던 데에서 모든 배아줄기세포주에 대한 연구와 연방 재정 지원을 허용하도록 한 것이다.





우리나라를 비롯해 호주, 캐나다,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등 많은 나라들은 이종배아를 금지하고 있다.

격렬한 찬반 논쟁
하지만 아직도 호주, 캐나다,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등 많은 나라들은 이종배아를 금지하고 있다. 이종배아 연구를 금지한 나라 중에는 우리나라도 포함된다. 이들 국가에서는 왜 이종배아를 이용한 줄기세포 연구를 허용하지 않는 것일까. 그것은 바로 이종배아에 대한 격렬한 찬반 논쟁이 있기 때문이다.

이종배아를 이용한 연구를 찬성하는 측에서는 주장의 가장 확실한 근거로, 어느 나라건 줄기세포의 연구 중심은 배아줄기세포, 그중에서도 체세포 복제 배아줄기세포에 두고 있다는 점을 지적한다. 이는 이미 연구가 많이 진척되었을 뿐만 아니라 가장 확실한 치료용 줄기세포를 만들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물론 역분화 만능 줄기세포 방식이 있기는 하지만 새로 개척된 방식이기 때문에 그 연구 수준의 심도는 배아줄기세포 연구에 비해 아직 모자른 수준이다.

또한 찬성론자들은 이종배아를 통해 충분한 예비실험을 한다면 구하기 힘든 인간 난자를 가장 가치 있고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아울러 동물의 유전자도 인간의 유전자와 거의 비슷하므로, 앞으로의 연구 성과에 따라서는 동물의 난자를 인간 질병 치료에 직접 이용할 수도 있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여기에 더해, 찬성론자들은 동물의 난자를 이용한 이종 배아가 프랑켄슈타인이나 반인반수의 괴물을 탄생시킬 것 이라는 일부의 비난을 낡고 비과학적인 생각으로 치부한다.

실험에 사용되는 동물 난자는 난자핵과 함께 99.9%의 동물유전자가 다 제거된 상태이므로 스플라이스의 드렌과 같은 반인반수의 괴물은 나올 수가 없다는 것이다.

나아가 동종배아 연구보다 이종배아 연구가 더 안전하다는 주장도 있다.



영국은 이종배아 연구에 대한 규제를 해제, 현재 150개 이상의 이종배아를 보유하고 있다.

우리나라 생명윤리법은 동물의 난자에 인간의 체세포 핵을 이식하는 행위를 금지한다.

생명윤리법의 잣대
반대론자들은 또한 이종배아가 줄기세포를 제대로 생산하기 힘들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이종배아가 발생하려면 인간 체세포의 DNA 중 성체 세포에 필요한 단백질을 생산하는 DNA의 작동을 막고, 대신 배아 발생에 필요한 단백질을 생산하는 DNA를 작동시키는 DNA의 리프로그래밍 과정이 필요하다. 하지만 이 과정은 매우 어렵다. 그러므로 복제 동물은 생산 자체가 어려울뿐더러 기형 등의 위험이 따르는 것이다.

이러한 난이도 때문에 아직 어느 나라에서도 체세포 복제 방식으로 인간 배아줄기세포를 획득한 적은 없다. 인간의 난자를 이용한 체세포 복제 배아줄기세포도 아직 얻지 못했다. 그런 현실에서 세포질과 핵이 어울리지 않는 이종배아로 줄기세포를 얻을 가능성은 거의 희박한 것이다.

찬성론자들이 성공률을 높이기 위해 인간 난자보다 쉽게 많이 구할 수 있는 동물 난자를 사용하겠다는 생각은 이해가 가지만, 근본적으로 맞지도 않는 것을 억지로 붙여놨는데 실험 성공률이 높아질 리는 없다고 반대론자들은 주장한다.

또한 반대론자들은 이종배아가 정상적인 실험결과를 낼 수 없는 비정상적인 줄기세포를 생산할 가능성에 대해 경고한다. 인간 체세포 핵과 동물 난자의 종 간 불일치는 핵 이식 과정에서 생길 수 있는 오류를 더욱 증폭시킨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오류를 일으킨 비정상적 줄기세포가 실제 환자를 상대로 좋은 치료효과를 낼 수는 없다는 것이 반대론자들의 견해다.

하지만 이런 논란에도 불구하고 영국은 이종배아 연구에 대한 규제를 해제, 현재 150개 이상의 이종배아를 보유하고 있다. 한국의 상태는 이와는 정반대다.

지난 2008년 5월 개정된 생명윤리법에서는 동물의 난자에 인간의 체세포 핵을 이식하는 행위를 금지했다. 하지만 이 법률은 동시에 난자 제공 여성에 대한 건강검진 및 난자 제공에 대한 실비보상을 의무화 함으로써 생명공학 연구에 대한 보수파 및 진보파 어느 양쪽도 만족시키지 못하는 ‘어정쩡한 타협의 결과물’이 되고 말았다.

이종배아 연구 찬성론자들과 반대론자들의 말 중 어느 쪽이 옳은지는 섣불리 단정할 만한 문제가 아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줄기세포 연구를 담당하는 생명윤리법의 잣대는 그 어느 쪽도 만족시킬 수 없는 상태다.

정부가 진정으로 줄기세포 연구를 원하고, 줄기세포 연구에서 선도적인 위치를 점하고 싶다면, 황우석 사태 이후 상당부분 경직된 법적 잣대와 연구 분위기부터 풀어주는 합리적인 조치를 취해야 하지 않을까.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주소 : 서울특별시 종로구 율곡로 6 트윈트리타워 B동 14~16층 대표전화 : 02) 724-8600
상호 : 서울경제신문사업자번호 : 208-81-10310대표자 : 손동영등록번호 : 서울 가 00224등록일자 : 1988.05.13
인터넷신문 등록번호 : 서울 아04065 등록일자 : 2016.04.26발행일자 : 2016.04.01발행 ·편집인 : 손동영청소년보호책임자 : 신한수
서울경제의 모든 콘텐트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복사·배포 등은 법적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Copyright ⓒ Sedaily, All right reserved

서울경제를 팔로우하세요!

서울경제신문

텔레그램 뉴스채널

서울경제 1q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