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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에서 일하는 소령급 현역 장교들

삼성ㆍLGㆍ포스코 1년 연수 참여한 3인의 장교 독점 취재

LG전자 한욱현 육군 소령
포스코 조영우 해군 소령
삼성전자 주성규 공군 소령

지난 7월부터 현역 소령급 장교들이 전투복 대신 정장을 차려 입고 대기업에 출근을 하고 있다. 국내 최초로 시도되는 현역 장교들의 대기업 연수 프로젝트에 참여한 장교들이다. 숨 가쁘게 펼쳐지는 회의와 잦은 업무보고서 작성으로 분주한 현역 소령들은 대기업에서 과연 무엇을 배우고 있을까? 포춘코리아가 삼성전자, LG전자, 포스코에 파견된 현역 장교들의 지난 4개월 간 행보를 독점 취재했다. 이권진기자 goenergy@hk.co.kr

허창수 전경련 회장은 김관진 국방장관과 손을 맞잡으며 환하게 웃었다. 지난 3월 23일 서울 용산구에 위치한 국방부에서였다. 민간경제 단체 수장과 국방부 장관이 단둘이 대면한 행사는 무척이나 이례적인 일이었다. 이날 허 회장과 김 장관은 현대차, 삼성전자, LG전자, SK, 포스코, 롯데 등 국내 6대 그룹에 군장교 연수제를 도입하는 MOU에 서명했다. 평소 근무 성적이 우수한 소령급 현역 장교 20명을 선발해 년간 민간 대기업에 파견하자는 게 주요 골자였다. 파견되는 부서도 다양했다. 인재개발, 경영전략, 마케팅, 국제경영, 생산혁신 등 기업의 핵심적 실무부서들이었다. 단순한 기업탐방을 넘어 장교가 직접 기업경영을 체험하고 직무역량을 개발하자는 취지였다. 허창수 회장은 말했다. “이번 연수가 군과 경제계 간 생산적 교류의 좋은 선례가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김관진 장관은 화답했다. “기업체 연수는 민간의 우수 분야를 국방운영에 적극 반영하는 국방개혁의 일부분으로 더 확대될 것입니다.” 사실 군과 재계의 인연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1970년대부터 사관학교, ROTC출신 장교들이 기업경영 전반에서 활약하며 입지를 넓혀 왔다. 특히 장교 출신 들의 CEO행보는 주목할만하다. 이순동 전 삼성전자 전략기획실 사장을 비롯해 허태학 전 삼성석유화학 사장, 이기태 전 삼성전자 부회장, 손길승 SK텔레콤 명예회장, 민계식 현대중공업 회장, 윤종웅 진로 고문, 허영호 LG이노텍 사장 등이 장교 출신 CEO다. 모두 장교 특유의 강인한 리더십과 문제 해결능력을 밑바탕으로 경영자로서 성공한 인물들이다. 최근 ROTC 중앙회가 추정한 ROTC 출신 대기업 CEO만해도 250여 명에 달한다. 군에서 쌓은 커리어가 기업경영에도 효율적으로 발휘되고 있다는 방증이다.

군의 우수한 인력뿐만 아니라 운영 시스템도 기업경영의 밑거름이 돼 왔다. 실제로 1970년대 산업화 시기에 기업들은 경쟁에서 이기는 전략을 터득하기 위해 군의 필승전략을 중요한 경영 지침으로 삼았다. 군 조직에서만 사용하던 ‘전략’이란 용어가 기업에서 경영전략이나 사업전략으로 쓰여졌던 것도 바로 이때부터다. 하지만 이제는 정반대의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군이 되레 기업경영을 벤치마킹하는 데에 열을 올리고 있는 상황이다. 해외시장에서 삼성전자와 현대차의 행보는 한 국가의 군사력에 버금가는 강력한 에너지를 보여준다. 지난 10~20년 사이 국내 대기업들이 전 세계를 거점으로 긴밀하고 방대한 조직을 빠르게 구축해낸 결과였다. 평소 선진 국방운영을 주창해 온 김관진 장관이 팔을 걷어붙이고 현역 장교를 기업 실무부서에 파견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국방부 인적자원개발과 오경석 중령은 설명한다. “과거 국방경영은 관리자의 계급, 군경험 그리고 강한 열정만으로도 성과를 달성할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미래 국방환경은 과학적이고 체계적인 판단, 의사결정 없이는 제한된 예산안에서 저비용, 고효율의 성과를 달성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현역장교들이 대기업에서 선진 경영기법을 학습, 체득해 경영마인드를 강화시킴으로써 국방경영의 효율성을 달성할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합니다.” 지난 7월부터 현역 장교들의 대기업 한 수 배우기 프로젝트는 본격 가동됐다. 험난한 야전 훈련에 길들여진 장교들은 세련되고 첨단화된 사무공간에서 어떤 선진 경영기법을 체득하고 있을까.

한욱현(37) 육군 소령은 LG전자에 파견되기 전까지는 LG전자를 잘 몰랐다. 더군다나 그는 LG전자 제품을 애용하지 않는 소비자였다. 그가 18년 가까이 군 생활을 하면서 주로 썼던 TV와 가전제품 브랜드는 대부분 삼성전자 제품이었다. 주위 사람들이 쉽게 추천해준 삼성전자 제품을 큰 고민 없이 구매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한욱현 소령은 이제 LG전자의 미래 먹거리를 고민하는 전략팀원으로 활약하고 있다. 그는 말한다. “특히 올해는 LG전자와의 인연이 깊어진 남다른 해입니다. 올해 초 집에 있는 가전제품을 LG전자로 전부 교체했어요. 그동안 10번 넘게 이사하다 보니 기존 가전제품이 쉽게 고장 나더군요. 이번 기회에 LG전자 제품을 한번 써보기로 마음을 먹은 거죠. 삼성과 LG 제품을 비교하려는 목적도 있었습니다.”

한 소령이 파견된 LG전자 경영전략팀은 말 그대로 LG전자의 중추신경과 같은 곳이다. 사업부서의 경영전략을 총괄 지휘하고 변화를 기획하는 실무부서다. 한욱현 소령은 경영전략팀 가운데서도 HE사업부에 배치됐다. TV를 중점적으로 판매하는 HE사업부는 LG전자 내에서도 가장 실적이 도드라진 곳이다. 지난 3분기 HE사업부는 1,011억 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하며 LG전자 내 다른 사업부를 모두 제치고 선두가 됐다. 올해 LG전자의 소비자와 새내기가 된 한욱현 소령이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한 LG전자의 원동력을 파악하기에는 최적의 부서인 셈이다.

경영전략팀에 소속된 이후 한욱현 소령은 일상 생활에서 자기관리를 철저하게 하고 있다. 어떻게 보면 짧은 파견 기간이지만 경영전략팀에서 그는 LG전자의 보안 업무까지 관여하는 중책을 떠안고 있다. 그는 말한다. “저희 팀이 담당하는 기획이 실제 사업부서에서 실행될 때까지 사적인 모임을 자제할 생각입니다. 편한 친구들과 술자리를 갖다가 저도 모르게 보안 내용이 새어 나갈 수도 있잖아요. LG전자 관계자들은 군에서 파견된 저에게도 핵심 보안 내용을 나눠주고 있어요. 무한 신뢰를 보내주는데 절대 민폐를 끼칠 수는 없습니다.”

지난 1997년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한 한욱현 소령은 야전 부대에서 군생활의 대부분을 보냈다. 특히 전략 파트는 그의 전공 분야다. “민간 기업체에서 경영전략, 세일즈, 마케팅, 인사 등이 있듯이 군에서도 작전, 군수, 인사 등 세부적인 업무가 분장되어 있습니다. 저는 이 가운데서도 유독 작전과 전략 관련 실전경험을 오래 쌓아왔죠.” LG전자로 파견되기 전 한 소령은 육군대학에서 전략교관으로 근무했다. 이 시기에 그는 동료들과 자유로운 토의를 통해 군사전략에 대한 학문적 이해에 깊이 있게 몰두하기도 했다. 군인 신분으로 민간기업에서 전략업무를 수행한다는 것 자체가 만만한 일은 아니지만, 한 소령은 자신의 군 경험을 바탕으로 강한 자신감을 내비쳤다. 그는 “경영전략팀이야말로 군사전략과 기업 경영전략의 접점을 찾을 수 있는 중요한 기회의 공간”이라고 설명했다.

한욱현 소령에게 LG전자 경영전략팀은 차세대 국산전차 ‘K2 흑표전차’ 같은 존재다. 흑표전차는 적을 타격함과 동시에 다른 타격을 곧바로 조준할 수 있는 최상급 무기체계를 갖추고 있다. 한욱현 소령은 경영전략팀을 두고 “싸우면서 다른 싸움을 준비하는 발 빠른 조직”이라고 표현한다. “전략적 측면에서 LG전자의 경쟁력이 무섭다고 느낀 점은 싸우면서 동시에 또 다른 경쟁을 준비한다는 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눈에 띄지도 않던 경쟁자가 갑자기 달려들어도 끄떡없이 생존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군사전략 측면에서 보면 기동력이 높다고 할 수 있어요.” 그는 덧붙인다. “LG전자의 주위에는 경쟁자가 산적해 있습니다. LG전자 이외에는 파트너십을 맺은 기업이라 해도 전부 경쟁자라고 할 수 있죠. 군에서는 주적을 딱 정해놓고 적에 대한 수많은 군사전략을 수립하고 실천합니다. 그런데 LG전자에서는 당장 상대해야 할 경쟁자뿐만 아니라 아직 드러나지도 않은 잠재적 경쟁자에 대한 대비도 철저하게 하고 있더군요. 24시간 깨어 있는 조직이라고 할까요.”

하지만 LG전자의 경영환경은 그리 녹녹한 편이 아니다. 몇 년 동안 이어진 경영위기 탓에 LG전자는 지금 기업 회생이라는 중대한 과제를 떠안고 있다. LG전자는 지난 3분기 약 319억 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하며 적자로 전환했다. 특히 LG전자의 자존심이라고 할 수 있는 MC사업본부는 1,388억 원의 적자를 기록하며 좀처럼 맥을 못 추고 있다. 확실한 반전 카드로 새로운 돌파구를 모색해야 하는 절박한 시기란 얘기다. 한욱현 소령은 말한다. “LG전자와 국내외 시장에 대한 연구를 많이 하고 있습니다. 제 짧은 소견으론 내년 LG전자에겐 승산이 있습니다. 내부 직원들의 분위기가 좋고 차근히 수립한 전략도 손색이 없기 때문이죠.”

한욱현 소령은 LG전자의 경영진과 경영전략팀이 사업전략에 대해 긴밀하게 소통하고 있다는 점도 높이 평가하고 있다. 그는 지난 11월 2일 LG전자 TV사업본부장인 권희원 부사장이 이마트 중저가 TV에 대해 “사고나면 후회할 것”이라고 일갈한 것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꼭 서류상의 아이디어만으로 전략을 수립하는 건 아닙니다. 기술적으로 검토하고 여러 조사를 반복하죠. 권희원 부사장님의 발언도 LG전자 연구소에서 이마트 TV를 직접 분해해 보고 여러 실험을 거친 후에 나온 걸 겁니다. 전략 부서에서도 이러한 내용을 이미 교감하고 있었습니다.” 한욱현 소령은 기자가 거듭해서 묻는 LG전자의 향후 TV전략에 대해 기업보안을 이유로 끝까지 답을 하지 않았다. 그는 “LG전자의 인화는 군의 기본적인 이념인 인화단결과 일맥상통한다”며 “LG전자 직원의 애사심이 군인의 충성심만큼 강하다는 것이 놀랍다”고 말했다. 치밀한 사업전략 외에도 LG전자의 경영가치인 인화가 회사의 재도약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는 얘기다.

무엇보다 한욱현 소령은 LG전자를 통해 기업의 효용성 측면을 배우고 있다고 강조한다. 효용성은 자원의 투입과 비교해 얼마나 많은 이득을 내느냐를 나타내는 경제적인 가치이다. 한 소령은 설명한다. “지난 10월 1일 취임한 미국 합참의장 마틴 뎀프시가 ‘지금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경제에 대한 이해다’라는 말을 했습니다. 세계 최강 미군을 총괄하는 합참의장이 가장 필요한 자질을 경제적인 가치관이라고 역설한 건 참 인상적인 부분입니다. 우리 군도 미군과 마찬가지로 최근 이러한 경제적인 효용성에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있어요. 기업연수가 이러한 가치를 깨닫게 하는 중요한 기회가 될 것이라고 믿습니다.”

포스코 인재혁신실에서 근무 중인 조영우(36) 소령은 기업의 장점 중에서도 군에 접목할만한 조직제도와 핵심 문화를 배우는 데 노력을 아끼지 않고 있다. 하지만 그도 포스코의 혁신적인 변화에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서울 대치동 포스코센터 24층에 처음 출근한 조영우 소령은 사무실 풍경을 보고 갑자기 어리둥절했다고 한다. 그는 말한다. “굉장히 놀랐습니다. 남들보다 일찍 출근했는데 모든 책상 위가 깨끗하게 청소돼 있는 겁니다. 서류철은 물론 종이 한 장 놓여져 있지 않더군요. 빈 사무실에 들어왔다고 착각이 들 정도였어요.”

포스코가 지난 2월 24층에 있는 인재혁신실 사무실 전체를 '스마트오피스’로 개조하는 바람에 벌어진 해프닝이었다. 포스코는 인재혁신실 직원들의 고정 좌석을 아예 없애 버렸다. 먼저 출근한 사람이 일하고 싶은 자리에 앉는 방식을 적용했다. 자신의 개인 소지품과 노트북은 사물함에서 꺼내다 쓰면 그만이다. 불필요한 서류뭉치를 사라지게 하기 위해 모든 문서는 클라우드 중앙 서버에서 일괄적으로 관리한다. 개인 칸막이가 없는 대신, 사적인 용무를 보고 싶으면 사무실 한 켠에 마련된 밀폐된 사무공간으로 가면 된다. 책은 모두 회사 내 도서실에 배치돼 있다. 조영우 소령은 “며칠 생활하다 보니 사무실의 미래를 보는 것 같았다”고 회상했다.

조영우 소령은 해군에서 인사와 제도 관리에 일가견이 있는 젊은 재원이다. 해군사관학교 53기로 1999년 해군 소위로 임관한 그는 전투함정의 승조 근무가 끝난 후부터 해군본부와 해군작전사령부에서 인사와 관련한 육상업무를 계속 해왔다. 그는 말한다. “53기 동기생 중에서 가장 인사 업무 경험이 많은 편입니다. 약 11년 군 경력에서 4년 정도 인사 담당을 했습니다.” 그는 덧붙인다. “인사업무는 단순히 사람을 선발하고 특성에 맞게 배치하는 일이 아닙니다. 교육과 제도개선도 중요한 업무 중에 하나죠. 제가 근무하는 포스코 인재혁신실은 군의 인사참모부와 비슷한 기능을 합니다. 구성원들이 즐겁고 능률적으로 일할 수 있도록 조직, 문화, 제도를 관리하는 게 인사업무의 핵심이죠. 포스코는 국내에서 가장 선진화된 인사와 제도 시스템을 보여주는 기업이라고 생각합니다.”

조영우 소령이 자신의 스마트 오피스 다음으로 자주 찾는 공간은 바로 4층에 위치한 ‘포레카’다. 포레카는 포스코 직원들 사이에서 놀이터로 통한다. 1,190m²(약 360평)에 달하는 공간에 북카페, 회의실, 게임시설, 수면방 등이 자리를 잡고 있다. 그렇다고 포스코에는 ‘미래의 사무실’만 있는 게 아니다. 포스코는 최근 들어 미래형 기업, 즉 사랑받는 기업으로 거듭나고 있다. 조영우 소령이 주목하고 있는 것도 바로 사랑받는 기업으로 진화하는 포스코의 행보다. 조 소령은 말한다. “미국 벤틀리대의 라센드라 시소디어 교수의 저서 ‘위대한 기업을 넘어 사랑받는 기업으로(Firms of endearment)’를 단숨에 읽었습니다. 책에 대한 감동도 컸지만 포스코라는 기업이 국내에서 유일하게 이 비전을 실천하고 있다는 게 놀라웠죠. 시소디어 교수도 포스코가 한국에서 가장 사랑받는 기업이라고 이미 인정하고 있더군요.”

조영우 소령은 사랑받는 포스코의 원동력으로 직원들을 고객처럼 생각하는 경영자들의 리더십을 손꼽았다. 그는 스마트 오피스와 포레카도 CEO의 마인드가 이윤 추구에만 묶여 있었다면 결코 만들 수 없었던 결과물이라고 평가한다. 조영우 소령은 말한다. “물론 군 내부에도 군 특성에 적합한 여러 문화와 제도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다른 국가기관보다 예산과 구성원의 수가 월등하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기업의 효과 중심 경영마인드가 군에도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포스코 관계자도 조영우 소령을 통해 군의 인사와 제도개선 시스템의 장점을 배우고 있다. 인재혁신실 엄기용 팀장은 말한다. “현역 장교와 근무하면서 포스코 내부의 오류를 찾아내고 있습니다. 그동안 포스코의 업무 시스템이 크게 유연해진 것은 사실입니다. 유연한 업무 시스템이 효율성으로 도출되면 성공이라 할 수 있겠죠. 하지만 반대로 명령지휘체계가 약해지고 책임이 불분명해지는 일도 더러 발생했다는 점을 깨달았습니다.”

사실 포스코 만큼 보고 체계가 간편한 조직도 드물다. 포스코의 사무실에는 그룹장과 팀장 그리고 팀원만이 존재한다. 1990년대 중반부터 선진 조직 체계인 팀제를 적용할 만큼 포스코는 조직을 관리하는 데 남다른 강점을 보이고 있다. 보고 사안에 따라 팀원이 부장급인 팀장을 뛰어넘어 상무급인 그룹장에게 바로 전달하는 경우도 더러 있다. 게다가 대부분의 보고는 이메일로 이뤄진다. 엄기용 팀장은 “포스코 보고 시스템의 핵심은 위로 빠르게 전달만 하는 게 아니라 보고자에게 바로 피드백을 준다는 점”이라고 설명했다. 조영우 소령은 이러한 포스코의 보고체계에 대해 “권한과 책임을 하부조직으로 위임한다는 점에서 군에 적용 가능한 제도”라고 말했다.

조영우 소령과 엄기용 팀장은 서로의 입장에서 자신이 경험한 인사와 조직제도 개선을 되돌아 보고 있다. 특히 조영우 소령은 지난 4개월간의 생활에 대해 “미처 몰랐었던 포스코의 숨은 저력과 방대한 조직 관리의 진면목을 깨닫게 돼 무척 기쁘다”고 강조했다.

주성규(40) 공군 소령은 삼성전자 글로벌 마케팅실에 파견되기 전부터 글로벌 삼성전자의 달라진 영향력을 5년 주기로 느끼고 있었다고 말한다. 공군사관학교 43기인 주성규 소령은 미공군대학에서 초급지휘관 과정을 수료하고 남부캘리포니아 대학에서 국제학 석사과정을 마칠 만큼 평소 해외를 자주 드나들었다. 그는 말한다. “2001년 초급지휘관 과정 때문에 6개월간 미국에 머물 때 가전제품 전문점에 갔더니 매장직원이 소니 TV와 카메라를 먼저 권해주더군요. 하지만 2006년 석사과정을 밟을 땐 가전시장의 판도가 많이 바뀌어 있었어요. 매장 중앙에 삼성전자 제품이 놓여있었어요. 직원들도 삼성제품이 최고라고 엄지 손가락을 치켜세웠죠.”

2010년 잠시 들른 러시아 모스크바 공항에서 주성규 소령은 다시 한번 삼성전자의 저력을 실감했다. “새 단장한 모스크바 공항에 비치된 모든 모니터가 삼성전자 제품이었습니다. 돌이켜보면 약 5년마다 삼성전자의 변모하는 입지를 확인한 셈이죠.”

주성규 소령은 삼성의 핵심 생산공장으로 불리는 수원사업장으로 매일 출근하고 있다. 삼성전자 수원사업장에는 휴대전화를 만드는 무선사업부와 가전제품 등을 생산하는 생활가전사업부가 위치해 있다. 여기에 삼성테크윈과 삼성전자로지스텍 등 삼성 관계사 임직원을 포함해 3만여 명 근무하는 대규모 생산단지가 조성돼 있다. 주 소령은 이곳에서 해외에 나가 있는 삼성전자 직원을 대상으로 교육 콘텐츠를 제작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전 세계 68개국을 10개 지역총괄로 나눠 관리하고 있다. 주성규 소령이 근무하는 글로벌 마케팅실은 삼성전자의 전 세계 마케팅과 세일즈에 관련한 전략과 교육을 총괄하는 부서다. 해당 지역의 실무지식은 기본이고 모든 업무가 영어로 진행될 만큼 전문성을 요하는 자리다. 특히 그는 동남아 지역을 담당하는 매니저로 활동하고 있다.

지난 9월 팀원들과 함께 싱가포르와 대만 출장을 다녀오면서 주성규소령은 삼성전자가 글로벌 마케팅을 어떻게 펼치고 있는지 두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그는 말한다. “사실 해외 현지 법인별로 지역에 따라 그해 정해진 매출액이 있습니다. 대만 같은 경우엔 대부분 일본제품이 강세를 보이고 있었어요. 일본 기업이 점령한 대만 시장을 뚫기 위해 현지 삼성전자 주재원들이 정말 열심히 뛰어다니더군요.” 주 소령이 인상 깊게 본 것은 사람들의 열정만은 아니었다. 그는 현지에서 삼성전자의 글로벌 통합업무시스템을 직접 체험했다.

주성규 소령은 설명한다. “삼성전자가 자랑하는 공급망 관리(Supply Chain Management) 시스템이 동남아 현지에서 유용하게 통용되고 있었습니다. 삼성전자와 같은 글로벌 제조기업은 공급망 관리 시스템을 어떻게 운용하느냐에 따라 글로벌 시장공략의 성패가 갈린다고 할 수 있죠.” 공급망 관리는 기업에서 생산 · 유통 등 모든 공급망 단계를 최적화해 수요자가 원하는 제품을 원하는 시간과 장소에 제공하도록 돕는 시스템이다. 공급망 관리의 전 세계 1위 기업은 애플이다. 삼성전자는 10위권 언저리에서 다른 글로벌 기업들과 경합을 벌이고 있다. 공급망 관리가 체계적으로 잡힌 기업이라면 전 세계에서 생산 · 유통되는 자사 제품을 본사에서 한눈에 파악할 수 있다.

삼성그룹은 한걸음 더 나아가 ‘마이싱글 MY SI NGLE’로 전 세계를 하나로 묶고 있다. 마이싱글은 단일화된 전자결재시스템이다. 마이싱글을 통해 전 세계 법인 간의 개발, 물류, 인사, 재무, 마케팅 등이 통합되고 있다. 삼성그룹 내 25만 임직원들이 마이싱글이라는 내부 네트워크를 통해 교류하고 있다는 얘기다. “단일창구 역할을 하는 공급망 관리 시스템과 마이싱글이 68개국 현지법인 간의 의사소통을 더욱 빠르고 정확하게 만들어주는 다리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주성규 소령의 말이다.

25만 명에 육박하는 임직원을 거느린 삼성그룹에겐 60만 명에 달하는 국군처럼 철저한 조직관리가 기업을 유지할 수 있는 최대 무기일 수도 있다. 주성규 소령도 1등 기업인 삼성전자가 지난 10년 동안 세계 1위 제품을 연속해서 내놓을 수 있었던 힘을 삼성전자만의 남다른 통합시스템에서 찾고 있다. 삼성이 ‘관리의 삼성’이 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 방대한 조직을 군대처럼 일사불란하게 이끌고 가기 위한 최선의 방편이 철저한 통합관리였던 셈이다. 주성규 소령은 말한다. “그렇다고 삼성전자는 덩치만 크고 변화에 둔감한 곳이 아닙니다. 매년 커다란 변화를 기업 전반에 발 빠르게 전파하고 있더군요. 구성원들이 이러한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하는 모습이 참으로 인상적이었어요. 이건희 삼성 회장의 진두지휘 아래 25만 대군이 신속하게 적진을 향해 공격하는 모습을 느꼈습니다.”


사실 삼성그룹만큼 장교 출신의 리더십과 책임감에 주목하는 기업도 없다. 삼성그룹은 올해도 특별 공채로 전역 장교를 200명 넘게 선발했다. 학점이나 영어점수 등 스펙 좋은 신입사원들보다 리더십이나 애사심이 뛰어난 장교를 채용하는 게 더 낫다는 평가에 따른것이다. 주성규 소령은 삼성 인력 구성의 또 다른 특징을 이렇게 설명한다. “삼성에선 여성인력들이 자신의 능력을 펼칠 수 있는 기회가 많을 것 같습니다. 제가 근무하는 부서는 절반 이상이 여성인력입니다. 팀장과 부서장도 모두 여성이죠. 그동안 함께 일해 볼 기회가 없었지만 직접 부딪혀 보니 여성인력의 일처리가 상당히 꼼꼼하고 세밀하더군요..” 그는 덧붙인다. “부서마다 다양한 인종이 어울려 근무하는 모습도 진풍경입니다. 세계시장으로 입지를 넓혀나가면서 삼성에 최근 해외 전문인력이 대거 중용됐어요. 글로벌 삼성이라는 말을 여기 와서 제대로 실감하고 있습니다.”

주성규 소령은 다른 파견 장교들과 함께 내년 7월이면 다시 부대로 복귀해야 한다. 이들 정예요원은 민간기업의 시스템을 선진 국방 운영에 이식시킬 전초병 역할을 하게 된다. 명령과 지시에 익숙한 현역 장교들이 한시적이긴 하지만 기업의 효율성을 몸으로 체득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는 점에서 선진화된 한국 군대의 미래를 기대해 볼 만하다.


한욱현 육군 소령
나이 37세
학력 육군사관학교 1997년 졸업(53기)
주요 임무 GOP 중대장을 거쳐 3기갑여단과 육군대학에서 작전과 전략 업무 담당
파견 기업 LG전자 경영전략팀

조영우 해군 소령
나이 36세
학력 해군사관학교 1999년 졸업(53기)
주요 임무 전투함 승조원 근무. 해군본부 및 작전사령부에서 인사 업무 담당
파견 기업 포스코 인재혁신실

주성규 공군 소령
나이 40세
학력 공군사관학교 1995년 졸업(43기)
주요 임무 F-4D 팬덤 조종사. 비행단에서 감찰장교, 작전장교, 비행대장 등 임무 수행
파견 기업 삼성전자 글로벌 마케팅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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