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국적 정유사 로열 더치 셀은 이미 알래스카 북부 해안 시추프로젝트에 45억 달러를 투자했고, 코노코필립스는 내년 중 알래스카 인근 추크치해에서 시추가 예정돼 있다. 엑슨 역시 러시아 기업과 손잡고 2015년경 시베리아 북부 해양에서 시추를 수행할 방침이다.
그러나 바다 위에 시추설비와 원유·천연가스 플랫폼을 띄워놓은 형태의 기존 부양식 시추기지는 여의도의 10배나 되는 초대형 해빙이나 북극 바다에서 부는 시속 100㎞의 강풍을 견디지 못한다.
노르웨이의 석유기업 스타토일은 그 해법으로 세계 최초의 해저 석유시추기지를 개발하고 있다. 별도의 해상 플랫폼 없이 해저에 원유와 천연가스 채굴 기지를 세우겠다는 것. 이렇게 하면 해빙이나 폭풍의 위험에서 자유로운데다 시추에 따른 환경피해도 최소화된다는 설명이다. 정유사들은 또 경제적 이익도 누릴 수 있다. 대형 해상 플랫폼은 건조에만 수억 달러가 들어가고, 운용을 위해 인건비가 비싼 고급인력을 다수 배치해야 한다. 반면 해저설비는 소규모인데다 원격조종이 가능해 상당한 비용이 절감된다.
이와 관련 스타토일과 셀은 지난 수년간 해저를 모방한 물웅덩이에서 핵심 채굴장비인 해저 가스압축기를 테스트해왔다. 셀의 한 관계자에 따르면 유정과 가스정은 원유와 천연가스를 뽑아낼수록 내부압력이 낮아지므로 원활한 채굴을 위해서는 압축기를 통해 추가적인 압력을 가해줘야 한다.
"압축기를 해저에 설치하면 해상 플랫폼에 설치한 것보다 훨씬 효율적입니다. 압축기가 유정이나 가스정과 가까울수록 적은 에너지로 석유 및 천연가스를 파이프라인에 밀어 넣을 수 있기 때문이죠."
현재 스타토일은 해저 압축기의 실전배치를 2015년으로 내다본다. 다만 동력은 해상 플랫폼으로부터 공급받는 방식이 될 전망이다.
셀의 경우 해저케이블로 전력을 공급받는 완전한 의미의 해저 압축기를 표방하고 있다.
이외에도 해저 채굴 기지 건설에 필요한 기술의 상당수는 이미 개발돼 있다. 1983년 반잠수식 시추선에 컴퓨터 제어식 해저 분출방지장치가 설치됐고, 원유에서 모래와 물을 분리한 뒤 해저로 되돌려 보내는 해저 분리기도 2007년 선을 보였다. 노르웨이 해양기술연구소(MTRI)는 수주일 동안 해저에서 채굴장비를 유지·보수할 유인잠수함을 설계 중이기도 하다. 스타토일의 선임엔지니어 룬 모드 람베르그는 이렇게 말한다.
"새로운 기술개발에 더해 그동안 개별적으로 개발·운용되던 기술들을 하나의 시스템으로 통합해야 해요. 이것이 최후의 숙제가 될 겁니다."
스타토일은 2020년까지 해저 굴착 기지를 완성한다는 방침이지만 북극은 그리 만만한 상대는 아니다. 일례로 빙산이 유정의 입구를 부숴버릴 수도, 세굴에 의해 해저의 토사가 씻겨나가 파이프라인이 외부로 드러날 수도 있다. 또한 여러 보고서에서는 북극에서 원유 유출사고가 발생나면 낮은 광량과 잦은 폭풍으로 방재작업이 어려우며, 매년 시추시기 말미에는 해빙때문에 원유 회수선의 운용이 어렵다는 한계를 지적하고 있다. 2010년 미국 멕시코만에서 일어난 딥워터 호라이즌호 원유 유출 사고 당시 바다가 평온했음에도 원유의 25%만 회수됐음을 감안하면 북극 원유 유출 사고의 위험성을 짐작할 수 있다. 물론 최후 수단으로 유출된 원유를 소각하는 '현장소각(ISB)' 방법이 남아있기는 하지만 아직은 그 효용성이 검증되지 않았고, 북극이 불타는 광경을 보는 것도 그리 마뜩잖다.
"그동안 개별적으로 개발·운용되던 기술들을 하나의 시스템으로 통합해야 해요. 이것이 최후의 숙제가 될 겁니다."
[THE PROCESS] 심해 채굴 공정
유량제어
일명 '크리스마스 트리'라고 불리는 유량제어장치를 유정 및 가스정의 입구에 설치, 원유와 천연가스의 흐름을 제어한다.
불순물 분리
해저 분리기가 원유와 천연가스에 들어있는 물과 큰 불순물(모래 등)을 분리, 별도의 저장소로 보낸다. 분리된 물은 유정 및 가스정을 재투입하여 내부 압력을 높이는 데 활용할 수도 있다. 이후 다단계 부스터를 활용해 원유와 천연가스를 해저파이프라인으로 이송한다.
압축
셀의 해저 압축기는 해저케이블에서 공급받은 12.5㎿의 전력을 동력삼아 하루 1,500만㎥의 원유 및 천연가스를 가압, 파이프라인으로 주입되는 속도를 높인다.
수송
엄빌리컬 케이블 안에는 전력선, 광섬유 통신케이블은 물론, 원유가 파이프라인 속에서 얼어붙어 파이프가 막히는 것을 방지하는 메탄올 튜브도 들어있다.
해빙 (sea ice, 海氷) 바닷물이 얼어서 바다 위에 떠있는 얼음.
세굴 (scour, 洗掘) 해저면의 토사가 씻겨나가면서 바닥이 패는 현상. 북극의 경우 상대적으로 따뜻한 강물이 해빙을 뚫고 유입, 하강 해류가 일어나면서 세굴이 생긴다.
원유 회수선 (oil skimmer) 선박사고 등에 의해 해상에 유출된 기름(원유)을 회수하는 선박.
엄빌리컬 케이블 (umbilical cable) 해양엔지니어링에 쓰이는 다목적 복합케이블. 전력선, 통신선 등이 들어있으며 물이나 가스를 운반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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