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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판 조회를 잘 하려면…

박근혜 정부가 출범 직후 가장 처음 마주친 난관은 사람을 뽑는 일이었다. 고르고 골라도 청문회에서 탈이 났다. 좋은 사람을 뽑는 건 그만큼 어려운 일이다. 기업이 인재를 뽑을 때 번드르르한 스펙 외에도 평판 조회에 세심한 신경을 쓰는 이유다.
글·사진 차병선 기자 acha@hk.co.kr


우리나라에서 평판 조회가 시작된 건 대략 외환위기 이후부터다. 삼성과 LG 같은 대기업을 중심으로 국내외 인재를 적극 스카우트하는 사람 중심의 경영이 뿌리를 내리기 시작했다. 그렇지만 초기엔 막상 기대에 못 미치는 성적표를 받기가 일쑤였다. 휘황찬란한 자기소개서와 달리 실제 업무 능력은 보잘것없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인사담당자들은 서구식 평판조회에서 해법을 찾기 시작했다. 이력서나 자기소개서에 100% 의존하는 대신 전 직장 사람들의 평가에 귀를 기울였다.

유순신 유앤파트너즈 대표는 말한다. “어느 대기업에선 외국 인사전문가를 모셔와 인사제도를 정비했죠. 평판조회에 익숙한 분이셨는데, 초기에는 괴리감이 좀 있었어요. 서양식 요구와 한국문화가 잘 맞지 않았죠.” 유 대표는 당시 사례 한 가지를 소개해 주었다. 그는 모 기업으로부터 임원급 인사 A씨에 대한 평판조회를 의뢰 받은 상황이었다. 유 대표는 A씨가 다녔던 직장 사람들을 만나 A씨가 좋은 사람이라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고 이를 레포트로 옮겼다. 그러나 레포트는 퇴짜를 맞았다. ‘장점만 서술하고, 단점은 없다’는 게 문제였다. 이른바 밸런스가 맞지 않는다는 것. 그렇지만 단점을 알아 내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한국사회에선 좋은 게 좋은 거라고, 장점만 말해주는 게 일반적이었죠. 저희 같은 제3자에겐 단점을 좀처럼 말해주지 않았죠. 고위직으로 갈수록 더했어요.”

서구에선 평판조회가 문화적으로 자리잡고 있다. 이직자는 먼저 평판조회에 응해 줄 사람을 스스로 선정해 새 직장에 알려줘야 한다. 회사는 추천인에 한해 평판을 물을 수 있다. 다른 사람에게 묻는 건 개인정보보호법에 위배된다. 추천인은 비교적 상세하고 객관적으로 이직자에 대한 장점과 단점을 꼽아준다. 이직자와 추천인의 ‘짜고 치는 고스톱’이 아닐까 싶지만 실제론 그런 일이 잘 일어나지 않는다. 유 대표는 말한다. “신용을 중시하는 서구사회에선 말 한마디에 대해 끝까지 책임을 져야 하기 때문에 매우 신중하게 답할 수밖에 없어요.”

지난 10여 년간 유 대표는 서양의 평판조회법을 한국 기업문화에 맞게 변형시켜 왔다. 유앤파트너스는 적어도 3명 이상에게 7가지 항목에 대해 묻는다. 상사, 동료, 부하직원 등 서로 입장이 다른 이들에게 확인을 한다. 상사에겐 이직자가 얼마나 추진력과 애사심을 가지고 있는지를 묻고, 동료에겐 그가 이기적인지 아니면 팀플레이어인지를 확인한다. 부하에겐 그가 리더십이 있는지, 독선적이지 않은지 등을 체크한다. 채용하려는 기업별로 중점을 두는 항목도 다르다.

스타트업 회사는 리더십과 추진력을 중시하고, 공공기업은 윤리성과 도덕성을, 노조가 극렬한 곳은 커뮤니케이션 능력과 노사 화합력을 우선순위에 둔다. 좀처럼 대답을 하지 않는 사람들의 입을 열기 위해선 전문적인 스킬이 필요하다. 유앤파트너즈의 경우 30명의 컨설턴트 중 평판조회를 할 수 있는 이는 5명에 불과하다. 이들은 정해진 양식에 따라 질문하되, 요령껏 답을 유도해낸다. 이들은 감정적인 평가 대신 객관적 사실을 이끌어낸다. 다시 말해 ‘그는 이기적이다’라는 평가 대신 ‘지난 프로젝트에서 팀원 모두 야근하는데, 자기만 일 마쳤다며 먼저 퇴근했다’는 식의 상세한 스토리를 끄집어 내야 한다. 그들에겐 닫힌 입을 여는 것만큼이나 좋은 정보를 걸러내는 것도 과제다. “요즘 젊은 사람들은 예전 세대와 달리 말을 많이 해요. 하지만 말에 무게가 없죠. 말에 대해 책임을 지지 않기 때문에, 주워들은 말을 함부로 전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는 덧붙인다. “평판조회는 바위를 깨고 들어가 옥석을 가리는 일과 같아요. 오랜 경험과 노하우가 있어야만 할 수 있는 작업입니다.”

그는 ‘이 사람과 앞으로도 일하고 싶으십니까’라고 마지막 질문을 했을 때, 응답자가 0.5초라도 주저하는지 여부도 중요한 시금석이 된다고 말했다. 그야말로 전문가만 사용할 수 있는 방법이다. 분야별 접근법도 조금씩은 달라야 한다. 예컨대 금융분야에선 금감위 제재를 받으면 3년간 동일 업종에 종사할 수 없는데, 이 같은 점을 간과해선 안 된다. 은행 사외이사를 선발할 때도 지난 몇 년간 그 은행과의 채무관계를 확인하는 등 체크포인트를 달리 해야 한다.

평판조회는 점점 더 늘어가는 추세다. 취업포탈 잡코리아가 지난해 기업 인사담당자 418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절반에 달하는 51.4%가 ‘채용 시 평판조회를 한다’고 응답했다. 이런 답변은 대기업(64.7%)이 중소기업(49.6%)보다 높았다. 조회 범위도 넓어지고 있다. 과거에는 임원 이하 직원들의 평판조회를 잘 하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평판조회에 들어가는 비용이 만만치 않았기 때문이다. 유앤파트너즈의 경우 1인당 최소 100만 원에서 500만원까지 든다. 그럼에도 최근 들어 평판조회 대상이 팀장이나 부장급으로 넓어지고 있다. 몇몇 기업은 심지어 신입사원을 뽑을 때에도 평판조회를 실시한다.

올해 초 한 대기업이 유앤파트너즈에 신입사원 응시자 B씨에 대한 평판조회를 의뢰해왔다. B씨는 지난해 8월에 대학을 졸업한 후 약 반년간 경력이 비어 있었다. 스펙상으론 분명 어디든 취업할 수 있을만한 인재였다. 본인은 “이 회사에 들어오고 싶어 기다렸다”고 답했지만 어딘지 미심쩍었다. 조사 결과 모 기업에 취업돼 지방 연구소로 발령이 난 적이 있었다. B씨는 서울로 옮겨달라고 요구하며 회사생활 내내 불평불만을 많이 터뜨렸다고 한다. 회사를 그만둘 때도 인사부에 제대로 통보하지 않고 떠났다고 한다. B씨는 결국 새로 응시한 기업에서 탈락했다.기업의 요구에 따라 평판조회 시장도 다분화되고 있다. 기업규모와 인력시장의 글로벌화에 따른 자연스런 결과다.

국내에선 헤드헌팅회사가 주로 평판조회를 겸하고 있었지만, 몇 년 전부터는 퍼스트어드 밴티지와 같은 전문 글로벌 평판조회 업체도 국내 시장에 들어와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조회 항목도 다양해지고 있다. 단순히 주변 인물의 평가를 듣는 수준에서 벗어나 학력위조, 논문표절, 성희롱, 음주운전, 신용도 등까지 범위가 넓어지고 있다. 머지 않아 맞춤형 평판조회가 생겨, 기업이 부담하는 비용도 조절이 가능해질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그렇다면 기업은 어떻게 평판조회를 잘할 수 있을까? 유 대표는 “전문가에게 맡겨라”라고 잘라 말한다. 비전문가가 해낼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것. 재정이 넉넉지 못한 중소기업에겐 “시중에 돌아다니는 평판조회 리포트를 참고해서 그대로 따라하라”고 현실적인 조언을 해주었다. 단 현재 근무하는 직장에는 절대 연락하지 말라고 강조했다. 이직이 확정되기 전까지 현직장에는 비밀을 지켜줘야 하기 때문이다.

개인이 평판을 관리하는 방법은 따로 없다. “일상이 평판이라 생각하고, 직장생활을 잘하는 것이 최고의 비결”이라고 유 대표는 말한다. 혹 사람들 입에 오르내릴 만한 과거가 있다면 이력서에 미리 해명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그는 마지막으로 “지나온 다리를 불태우지 말라”고 강조했다. 이직하기 전 마지막 1~2개월 동안 직장 업무를 소홀히 할 경우, 결국 그것이 부메랑이 되어 자신의 평판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사람과 앞으로도 일하고 싶으십니까’라고 마지막 질문을 했을 때, 응답자가 0.5초라도 주저하는지 여부도 중요한 시금석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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