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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로 가는 타임머신] 그라인딩 타임 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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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너비브 밸런타인. 환타지 소설 ‘페르소나(Persona)’의 저자.
유명한 사람이라면 누구도 용납할 리 없다. 트루하트들의 짓거리를 지지했다가는 명성에 큰 손상을 입기 때문이다. 유명인들은 숫자를 중시한다. 자신의 객석은 텅 비어 있는데 라이벌의 객석은 사람들로 미어터지는 것보다 기분 나쁜 것은 없으니까.

또한 대다수 사람들은 유명인을 보는 것만으로 만족한다. 그러나 당신이 스타를 누구보다 사랑한다면, 그리고 스타의 명성을 지키기 위해 모든 것을 포기한 트루하트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그들은 인터넷을 돌아다니면서 스타를 비판하는 사람들에게 철퇴를 날린다. 또한 회색공간 포럼에 접속해 스타의 행적을 실시간으로 확인한다. 접속 암호는 매일 변경되고, 고양이 사진 모양으로 암호화돼 전달된다. 그들에게 스타의 안티팬 사냥은 단순한 게임이 아닌 신성한 사명이다. 가끔씩은 자기 자신의 적을 사냥해야 할 때도 있다.

그만큼 진정한 팬이 된다는 건 힘든 일이다. 세상에는 숭배해야 할 유명인이 너무 많다. 그래서 많은 팬들은 흔들린다. 하지만 유명인들은 누가 트루하트인지 알 길이 없다. 어쩌면 수줍어하며 사인을 요구하는 팬들 속에 숨어 있을지도 모른다. 물론 어떤 열정에도 빈틈은 있다. 방화벽에 금이 가면, 그 틈새로 적들이 쳐들어온다.

한 배우가 자신에 관한 인터넷 포럼을 발견해 의견을 표명한 적이 있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 의견에 반발했고, 결국 그는 은퇴했다. 자초지종을 아는 사람은 단 한 명뿐이다. 어떤 희생을 치르고서라도 자신의 스타를 지키려는 트루하트다. 트루하트의 세계에 배신자가 설자리는 없다.

그라인딩 타임
메리 로비네트 코월. 휴고상 수상자. 인형술사.
앨비나는 콘도의 대나무 바닥에 다리를 꼬고 앉아 있었다. 양 허벅지 사이에는 스마트 막자사발이 끼워져 있었다. 그녀는 몸을 기울여 막자를 시계방향으로 움직이면서 갈아나갔다. 그라인더 랭킹 1위의 그녀는 계속해서 정상을 지키고 싶었다. 막자를 50바퀴쯤 돌리자 스마트 막자사발에서 음성이 송출됐다.

“잘 했어요! 이제 막자를 반시계 방향으로 돌리면서 갈아 봅시다. 명심하세요. 견갑골을 뒤로 유지해야 해요!” 그때 복도에서 가벼운 발소리가 들렸다. 남편인 토드였다. “앨비나!” 문틈으로 몸을 드러낸 남편이 그녀를 보고 한숨을 쉬었다. “지금은 한밤중이라고.” “내일 아침에 비행기를 타야 하잖아요. 아침에 먹을 옥수수 가루와 커피를 갈 시간이 지금뿐이에요.”



앨비나는 다시 정신을 집중하고 심호흡을 하며 막자를 돌렸다. 하지만 남편과 다시 논쟁을 벌이고 싶지는 않았다. “이번 세트가 끝나면 소리를 줄일게요.” 스마트 막자사발이 짹짹거렸다. “이제 절반 남았어요! 숨 쉬는 거 잊지 마세요.” 토드는 눈을 굴리며 말했다. “아침에 한 번쯤은 인스턴트식품도 괜찮잖아.” “무슨 소리예요. 손으로 간 옥수수 가루가 영양분이 훨씬 풍부해요.” 그건 사실이었다. 하지만 진짜 이유는 내일의 여행 때문에 아이디 ‘Brenda47k’에게 1등 자리를 내주기 싫기 때문이었다. 남편이 눈치 채면 그녀의 집착을 타박할 테지만 말이다.

“게다가 이 운동을 하면 삼각근에도 아주 좋다고요.” 남편은 다시 한숨을 쉬었다. “당신...그 물건을 타히티에까지 가져갈 생각은 아니지?” “물론이죠, 여보.” 거짓말이 아니었다. 그녀는 묵을 호텔의 헬스클럽을 미리 조사했는데, 그곳에는 이미 스마트 막자사발 풀세트가 갖춰져 있었다. 수수를 갈아낼 재래식 맷돌까지 있었다.

X지점 탐사
킴 스탠리 로빈슨. 휴고상·네뷸러상 수상자.
그들은 우리를 창문 없는 방으로 데려갔다. 그렇게 여행기간 내내 둘만 남겨졌다. 방에는 시계는 물론 문명의 이기들을 찾아볼 수 없었다. 침대만이 덩그러니 놓여 있었고, 음식은 외부에서 가져왔다. 음식을 먹고 잠시 이야기를 나눈 우리는 잠을 청했다.

어찌나 조용한지 우리가 비행선을 탑승했고, 이 비행선이 정말 움직이고 있기는 한 건지 의문이 들 정도였다. 며칠이 지나 바닥이 살짝 경사진 기분이 들었다. 팽창식 계단을 내려가 비스듬히 들어오는 햇빛을 받았다. 비행선은 어딘가의 산 위를 날고 있었다.

화강암 능선에 둘러싸인 고지대 빙하 분지가 보였다. 태양이 서쪽 능선 위에 있으니 우리가 바라보고 있는 방향이 남쪽이라 여겼지만 지금이 오전이라면 북쪽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진실은 곧 알게 될 것이었다. 비행선은 우리를 그곳에 내려놓고 능선 위로 사라졌다. 우리의 배낭에는 일주일 분량의 식량이 있었지만 지도나 나침반, GPS처럼 이곳이 어디인지를 알 수 있는 기기는 전혀 없었다. 그저 상상에 맡길 뿐이었다. 우리가 이곳으로 여행 온 이유가 이것이었다. 수수께끼 속에 던져져 세상을 새로운 시각에서 보고자 했다. 주변 환경은 미국 캘리포니아주의 시에라 네바다 산맥과 비슷했다.

파란 하늘 아래 연못과 시냇물이 흘렀고, 그 곁에 푸른 목초지가 펼쳐져 있었다. 하지만 우리는 솔트레이크 시티에서 이륙했다. 그렇다면 여기는 와이오밍주의 윈드 리버 산맥일지도 모른다. 시간이 조금 지나면서 지금이 오후임을 깨달았다. 이제 캠프를 설치해야 했다. 내일은 등산을 할 계획이다. 아마도 우리가 어디 있는지를 정확히 알아내려면 하루가 걸릴 수도, 일주일을 모두 쏟아 부어야 할 수도 있다. 하지만 불안감 보다는 일상적 삶의 공간과 다른 미지의 세계를 탐험하는 데서 오는 흥분이 우리 몸을 휘감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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