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신흥국 시장에서 빠져나간 자본(자본순유출) 규모는 5,400억 달러 정도가 될 것으로 보인다.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외국인투자자들은 올해 6월에서 9월까지 4개월 동안 한국 증시에서만 79억 달러에 달하는 주식을 팔았다. 우리 기업들이 글로벌 시장에서 조달하는 외화자금도 매년 줄고 있다. 우리 경제 상황이 급격히 나빠질 수 있다는 점을 인지해야 한다.
국제금융협회(IIF)에 따르면 2015년 신흥국 시장으로의 유입자금 규모는 글로벌 금융위기 초기인 2008~2009년 당시보다 적은 연간 5,500억 달러 정도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에 따라 올해 신흥시장으로부터의 자본순유출 규모는 5,400억 달러 정도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이는 매우 충격적인 흐름이다. 지난 1988년 이후 27년 만에 처음으로 신흥국 시장으로부터의 자본순유출이 나타나는 상황이다. IIF에 따르면 올해 주요 40개 신흥국에서 빠져나간 자금이 3분기에만 무려 400억 달러에 달했다. 이는 주식 190억 달러, 채권 210억 달러에 달하는 규모다. 특히 미 연준의 금리인상 연기 발표가 묘한 역할을 했다. 금리 인상 가능성이 대두되다가 연기되면서 상황이 좋아지는 듯했다. 일단 시간을 벌었고 숨 고르기가 가능해지면서 시장은 안정되는 듯 보였다.
하지만 9월 하순부터 자금유출이 다시 시작됐다. 아무래도 불안하다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움직임에는 중국이 한몫을 했다. 중국 경제성장이 둔화되는 가운데 자넷 엘런 FRB 의장은 이 부분이 금리인상 시기 연기의 배경임을 분명히 했다. 중국 등 신흥국 경제가 미국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해 금리인상을 연기한 셈이다. 즉 미국이 신흥국 경제의 부진을 확실하게 확인했다는 것이고, (미국이) 금리인상을 연기 할 정도의 상황이라는 것을 분명히 깨달았다는 것이다. 이 같은 부정적 해석이 미국 내에서 우세해지면서 상황이 다시 악화되기 시작한 것이다.
주지하다시피 글로벌 위기 이후 미국은 양적 완화 프로그램을 통해 엄청난 자금을 시장에 공급했다. 이렇게 풀린 자금은 우선적으로 은행으로 흘러 들어갔고, 은행들은 초기에는 소극적으로 대응하다가 조금씩 자금 집행을 늘리기 시작했다. 그런데 자금의 흐름에는 은행을 통한 간접금융시장만이 아니라 자본시장을 통한 직접금융시장도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직접금융시장에서도 자금을 운용하는 각종 펀드규모가 계속 증가했다. 사모펀드 · 공모펀드 · 헤지펀드 등 다양한 펀드들이 탄생하면서 이들 펀드들이 국제금융시장에서 본격적으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투자대상기업들의 상황이 괜찮다고 판단되면 많은 돈이 몰려들면서 기업들의 자금사정은 나아지기 시작했다.
IMF의 발표에 따르면 신흥국 기업들의 부채를 GDP로 나눈 비율이 2004년에는 47%였는데 2014년에는 73% 정도까지 상승했다. 무려 26%p가 늘어난 것이다. 원래 이 비율은 금융위기 직후인 2009년부터는 줄어들기 시작했다. 그런데 2012년 반전을 보이면서 2014년까지 급격한 상승세를 보였다. 양적완화의 위력이 시차를 두고 나타난 것이다. 신흥국에 속한 기업들이 보유한 부채규모 총액은 2004년 4조 달러였는데 2014년에는 18조 달러 정도까지 증가했다. 달러 자금이 저리로 풍부하게 제공되다 보니 은행을 통한 자금집행도 쉬워지고 직접 채권이나 주식을 발행하는 경우 이를 사들일 펀드 자금도 풍부해졌다.
그러나 이제 상황이 서서히 바뀌는 느낌이다. 국제금융협회에 따르면 신흥국 일반 기업의 총부채 규모가 올해 말 24조 달러에 육박한다. 그런데 시장상황이 안 좋아지면서 위에서 언급한 자본순유출이 일어나면 부채 상환으로 인한 자금수요가 늘어나면서 상황이 급격히 나빠질 가능성이 생긴다. 이처럼 외화 자금부문에서 문제가 생기면 신흥국 중앙은행들의 경기부양 노력은 큰 효과를 보기 어렵게 된다. 중국, 러시아, 터키, 인도 등 신흥국 중앙은행들이 계속 금리를 내리면서 돈을 풀어 경기를 부양하려는 상황이지만 국제금융시장의 자금흐름에 이상이 생기면 이 모든 노력이 수포로 돌아갈 수 있는 것이다. 물론 기업이 처한 상황에 따라 큰 문제없이 넘어갈 수도 있지만 외화부문의 자금 사정 변화는 상당한 파괴력이 있다. 이제 한국도 이러한 흐름의 영향권 안에 들어가고 있다. 우리 기업들이 글로벌 시장에서 직접 달러화 표시 채권으로 외화자금을 조달한 액수를 살펴보자.
지난해 초부터 같은해 9월말까지 27건의 딜을 통해 165억5천만 달러를 조달했다. 그런데 올해 같은 기간의 경우 18건에 117억 달러 정도를 조달하는데 그쳤다. 발행 건수는 33%, 액수는 30% 정도 감소한 셈이다. 작년 한해 전체 236억5천만 달러를 조달한 것을 감안하면 올해 실적도 미흡할 것이다. 연말까지 시간이 조금 남았지만 보통 11월 중순 이후엔 자금 조달이 어렵다는 점을 감안하면, 올해 실적은 작년 대비 급감할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금리 문제가 전면에 부각되고 자금흐름에 문제가 생기면 국제자금시장의 간접금융시장과 직접금융시장 모두에서 이상이 발생한다. 결국 제일 먼저 타격 받는 곳은 기업이 될 것이다.
미국 연준의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는 올해 10월과 12월 두 번 남아 있다. 최근 금리 연기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지만, 결국은 올라갈 것이라는 점에서 달러가치는 증가할 것이다. 이로 인해 신흥국 기업들이 조달한 달러 부채 부담은 커질 것으로 보인다. 국제금융센터에 따르면 외국인투자자들은 올해 6월에서 9월까지 4개월 동안 우리나라, 인도, 대만, 인도네시아, 필리핀, 태국, 베트남의 7개국 증시에서 총 231억7천만 달러의 주식을 팔았다. 그런데 7개국 가운데 순매도액이 가장 큰 곳은 우리나라로 그 규모가 79억 달러 수준이었다. 우리 경제가 안심할 수 없는 상황이 된 것이다. 지난해 우리 경제의 대중국 수출액은 1,900억 달러로 세계 1위였다. 일본은 1,630억 달러, 미국은 1,590억 달러였다. 1위는 주목 받게 되어있다. 중국경제가 어려워진다면 가장 먼저 우리나라를 쳐다보게 되어 있다. 중국은 최근 위안화를 절하시켰다. 경제 상황이 어렵다는 사실을 확실하게 고백한 셈이다.
피해갈 수 없는 부분은 잘 견뎌야 한다. 물론 조금이라도 유리한 국면을 조성하기 위한 노력 그리고 잘 견뎌내기 위한 체력을 기르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세계 경제 상황이 모호해지고 있는 지금 대비책을 잘 세우고 안전벨트를 확실하게 맬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
윤창현 교수는 ….
▲1960년 충북 청주▲1979년 대전고 ▲1984년 서울대 물리학과 ▲1986년 서울대 경제학과 ▲1993년 미 시카고대 경제학박사 ▲1993~1994년 금융연구원 연구위원 ▲ 1995~2005년 명지대 경영무역학부 교수 ▲2005년~ 서울시립대 경영학부 교수 ▲2012년~2015 한국금융연구원장 ▲현서울시립대 경영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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