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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 대생판결과 목적지상주의의 종언
입력1999-09-01 00:00:00
수정
1999.09.01 00:00:00
「실체적 적법성과 절차적 적법성은 법치주의의 두 기둥으로 행정행위를 함에 있어서 법이 규정한 절차를 지켜야만 비로소 법의 지배를 통한 정의가 실현될 수 있다. 목적과 능률에 치중한 나머지 절차를 경시하는 것은 용인될 수 없다」. 재판부가 내린 판결이유중의 한 대목이다.쉽게 말하면 목적이 아무리 좋아도 절차가 잘못됐으면 안된다는 것이다. 이게 새로운 이야기는 아니다. 고등학교 사회과목 시간에 누구나 배웠던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하지 못한다」는 것에 다름아니다. 그런데도 이 판결이 사건으로 느껴지는 것은 우리가 알고 있으면서도 망각하고 있던, 실천하기 어려웠던 평범한 사실을 새삼스럽게 깨우쳐주고 우리의 과거를 뒤돌아보는 동시에 미래를 생각케 만들기 때문이다.
대생소송과 판결은 단순하게 보면 경제사건이다. 그러나 그 판결의 의미를 곱씹어보면 경제라는 한 분야의 차원을 넘어서 정치·사회·교육·문화 등 우리사회 전반에 걸쳐 큰 메시지를 던져주었다.
새로운 사회시스템과 패러다임 구축의 필요성과 당위성 제시가 바로 그것이다. 목적지상주의를 버리고 목적 못지않게 과정과 절차를 중시하는 가치관이 사회구동의 축이 돼야 한다는게 이번 판결에 담긴 뜻이다.
수단과 목적을 가리지않고 목적만 달성하면 된다는 목적지상주의는 권위주의적 개발독재 시대의 가치관이다. 관치(官治)는 이런 개발연대의 가치관을 상징하는 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엘리트 관료들이 목표와 계획을 세우고 민간분야는 그것을 따라야 했다. 절대빈곤의 질곡을 벗어나는게 국가적 과제였던 시기에 그것은 타당성이 있었고 기여한 점도 많았다. 우리가 오늘날 이만큼 경제성장을 이룩해낸 것은 바로 목표가 정해지면 좌우 둘러보지 않고 오직 그것의 달성을 위해 일로 매진한 결과가 아닌가.
그러나 결과가 좋으면 모든게 좋다는 목적숭배주의는 사회 각분야에 적잖은 부작용과 병폐를 남겼다. 민주주의의 큰 원칙인 공정한 게임의 규칙은 사라졌다. 그결과 부정과 비리, 변칙과 탈법이 일상화됐고 도덕불감증·안전불감증으로 대표되는 불감증 증후군이 만연됐다.
정치판을 보자. 선거에서 이기기만하면 모든게 정당화된다. 망국적 지역감정을 부추기며 천문학적 금품을 살포하고 상대방을 음해·비방해도 당선만 되면 그것으로 끝이었다. 국회에서의 법안·예산안 등의 날치기 통과도 같은 맥락이다.
우리 자본주의가 「천민(賤民)자본주의」로 비하되는 것도 목적지상주의의 산물이다. 돈을 벌고 기업을 키우는 일에 「얼마나」가 중요했지 「어떻게」는 고려의 요소가 아니었다. 정경유착·투기·탈세 등으로부터 자유롭고 당당한 기업과 기업인은 얼마나 될까. 그래서 우리네 기업인과 부자들은 각고의 노력끝에 부를 쌓아올리고 기업을 키워왔지만 안타깝게도 부의 정당성을 인정받지 못하고있다.
성수대교·삼풍백화점 붕괴 등 빈발하는 대형참사도 마찬가지다. 이윤극대화의 목적이 절대가치가 되면서 안전하고 튼튼한 시공이라는 과정과 절차는 뒷전에 밀렸다. 교육이라고 예외였는가. 학교수업의 목표는 대학진학에 맞춰져있고 그결과 학생들은 수험기계화했다. 선생님들에게는 대단히 실례되는 이야기지만 교수·교사직도 사고파는 일이 비일비재한 실정이다.
그러나 이제 사정이 달라졌다. 세상은 과거에 비해 몇십배 몇백배 복잡해졌고 국경이 무의미한 시대가 됐다. 당연히 거기에 걸맞는 새로운 사회시스템이 필요하게 됐다. 그래도 우리들 대부분은 구태를 답습하고 있다. 과정과 절차원칙을 지키는 사람은 무능한 사람, 모자라는 사람으로 치부되곤 한다.
그것을 李부장판사가 여지없이 깨뜨려 버린 것이다. 이번 판결은 아직은 작은 몸짓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런 몸짓이 사법부 뿐아니라 사회 각분야에서 자주 일어나야 한다.
시냇물이 모여 바다가 되듯 작지만 구태를 깨는 일들이 쌓이면「 목적뿐만 아니라 과정과 절차의 원칙도 중시되는」 새로운 가치관의 큰 물줄기가 형성돼 우리사회를 지배할 것이다. 그게 바로 진정한 의미의 「法대로」가 통하는 사회다. 그런 사회가 훨씬 살맛나는 세상 아니겠는가.
李賢雨사회부장HULEE@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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