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중순 기획재정부는 개인투자자를 대상으로 10년 만기 물가연동국고채에 대한 입찰을 하면서 당초 나흘 동안 청약을 받을 계획이었다. 최근 물가연동채의 인기가 높아졌다고는 하지만 개인투자자를 대상으로 하는 만큼 나흘 정도는 돼야 배정된 물량(800억원)이 소화될 것으로 판단한 것이다. 하지만 물가연동국고채는 사흘 만에 1,127억원의 청약자금이 몰리면서 조기에 마감됐다. 4월 물가연동국고채의 개인 입찰이 시작된 후 처음 있는 일이다. 이번 물가연동채 조기 마감은 최근 금융 시장의 트렌드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저금리 시대에 접어들며 투자자의 기대 수익률이 급격히 낮아지고 있다. 안전자산인 국고채를 통해 연 4~5%의 수익을 바라보던 시대는 지나갔고 투자 눈높이는 3%대의 금리에도 만족하겠다는 상황이다. 강현철 우리투자증권 투자전략팀장은 "경제성장률이 낮아지면서 기준금리가 인하, 투자 눈높이가 낮아지는 연쇄 효과가 이어지고 있다"며 "글로벌 경제의 회복이 더딘데다 한국이 선진국형 경제로 이동하면서 안전자산에 대한 기대 수익률이 2~3%로까지 하락했다"고 설명했다.
지난달 개인을 상대로 발행된 물가채의 경우 표면금리는 0.87%에 불과하지만 물가 상승분만큼 원금에 반영돼 물가가 3% 오른다면 대략 연 3.87%의 수익을 기대할 수 있다.
지난달 말 국고채전문딜러를 대상으로 실시된 국채 30년물 입찰에서도 금리가 시장의 예상치를 밑도는 수준에서 결정됐다. 정부에서 처음으로 발행하는 초장기물 국채인 30년물의 발행금리는 당초 국채 10년물에 0.1%~0.15%포인트를 가산한 수준에서 결정될 것으로 전망됐다. 하지만 입찰에서는 무려 3조1,400억원이 몰리면서 가산금리가 낮아졌다. 전체 발행물량 8,000억원 가운데 2,400억원은 국채 10년물에 0.03%포인트를 가산하고 나머지는 10년물에 0.06%포인트의 금리를 더하는 수준에서 금리가 결정된 것이다.
저금리 시대의 투자 풍경을 보여주는 것은 국고채뿐만이 아니다. 우량 기업은 유례없이 낮은 금리로 회사채를 발행해 자금을 조달하고 있다. 롯데쇼핑은 지난달 3,500억원 규모의 3년 만기 회사채를 연 2.98%의 금리로 발행했다. 기준금리보다 더 낮은 초저금리로 자금을 조달한 것이다. 신세계 역시 5년 만기 회사채를 3.18%에 발행했고 삼성테크윈은 3년 만기 회사채를 3.1%의 금리로 시장에 내놓았다. 또 LG전자는 2,000억원 규모의 회사채를 발행할 계획이었지만 수요 예측에서 기관투자가의 청약이 넘치자 발행 규모를 1,000억원 늘려 잡기도 했다.
회사채 시장의 저금리 현상이 두드러지면서 장기물 발행도 급증하고 있다. SK텔레콤은 지난달 이례적으로 만기 20년의 초장기물을 내놓았고 발행금리는 3.45%로 사상 최저 수준이었다. 기관투자가를 대상으로 한 수요 예측에서 20년물은 경쟁률이 1.1대1을 넘어서며 안정적인 수요를 보였다. S-OIL은 창사 이래 처음으로 10년 만기 회사채를 500억원 규모로 발행했고 삼성정밀화학은 11년 만에 회사채 시장에서 자금을 조달하면서 만기를 5년물로 결정했다.
박성원 KB투자증권 기업금융본부 부본부장은 "통화 당국의 기준금리 인하로 국채 금리가 급격히 낮아지면서 보험사 등 장기투자기관의 장기 회사채 수요가 크게 늘었다"며 "수요가 몰리다 보니 기업이 낮은 금리로 장기물을 발행할 수 있는 분위기가 형성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반면 고수익을 노리는 주식 투자는 점차 줄고 있다. 국내 주식 시장의 대기자금인 투자자예탁금은 2월 20조원을 넘기도 했지만 현재 18조1,000억원 수준으로 줄었다. 주식형 펀드 잔액 역시 1월 104조원대에서 현재 98조원으로 감소했다. 파생상품 시장도 위축세가 뚜렷하다. 코스피200선물 시장은 7월 하루 평균 거래대금이 39조3,684억원에 그치며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0.6% 줄었고 주식워런트증권(ELW)의 현재 하루 평균 거래대금은 1,000억원 수준으로 1월에 비해 10분의1 수준으로 급감했다.
전문가들은 앞으로도 저금리 시대가 지속되면서 투자자의 눈높이가 낮아지는 추세를 보일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최근 국제통화기금(IMF)이 우리나라의 올해 실질 경제성장률을 3% 밑으로 조정할 수 있다고 밝힌 데 이어 골드만삭스(2.6%)나 피치(2.5%) 등 국제금융업체와 신용평가사도 한국의 저성장을 전망하고 있다. 성장률이 낮아지면서 저금리 정책이 유지될 것이라는 분석이다. 이런 가운데 신용평가사인 피치가 무디스에 이어 한국의 국가 신용등급을 한 단계 올리면서 외국인의 채권 투자 여건이 더욱 좋아졌다. 지난달 말 기준으로 외국인은 86조8,870억원의 국내 상장채권을 보유하고 있으며 이는 전체 채권 시장의 6.9% 수준이다. 한국이 일본ㆍ중국보다 신용도 면에서 높은 평가를 받은 만큼 외국인의 채권 투자가 확대될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예측이다. 홍정혜 신영증권 연구원은 "중장기적으로 보면 외국인의 국내 채권 시장 점유율이 10%까지 오를 수 있다"며 "정책적 금리하락 요인이 작용하는데다 수요가 충분한 만큼 채권 시장의 금리 눈높이는 현재보다 더 낮아질 수밖에 없다"고 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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