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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공시의 아이러니
입력2002-11-20 00:00:00
수정
2002.11.20 00:00:00
오후5시30분께. 회사로 가기 위해 지하철에 몸을 맡기고 잠시 눈을 붙이고 있을 때 휴대폰이 요란스럽게 울렸다. 그리고 오전에 통화했던 한 업체의 IR 담당자의 목소리가 다급하게 들려왔다. "제가 잘 몰라서 그랬는데요. 오전에 말했던 것 제발 없었던 것으로 해주세요. 저희가 납품하는 A사에서 알면 큰일납니다. 제발 부탁입니다." 아직 취재가 덜 돼서 기사로 쓰지 못하고 보충취재를 하고 있는 건이었다. 이 담당자는 공정공시제도 도입 이후에 그 기업에서 자신과 관련된 일체의 사항은 자그마한 것이라도 꼭 알려주고 허락을 받으라고 했다는 것이다. 최근 한 대기업을 통해 미국에 대규모 납품을 성사시켰던 한 벤처기업에서도 비슷한 경험을 한 적이 있다. 그 업체의 사장은 무심코 해당 기업명을 말했다가 기자에게 "대기업에서 싫어하기 때문에 절대로 기사에 언급해서는 안됩니다. 그러다가는 우리 밥줄이 끊깁니다"라고 하소연했다. 이러한 현상이 물론 어제오늘 갑자기 생긴 것은 아니다. 이전에도 대기업의 허락 없이 취재에 임했다가 곤혹을 치른 중소업체들이 있었다. 그중 일부는 계약까지 했다가 파기를 당한 곳도 있다. 하지만 최근 들어 대기업의 중소기업에 대한 정보통제가 더 심해졌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이름만 대면 알 만한 국내 굴지의 대기업 중 한곳은 아예 회사와 직접적으로 관련된 것뿐만 아니라 하청업체에 관련된 것까지 일일이 허락을 받도록 했다는 얘기도 들린다. 이렇게 되자 중소기업들이 아예 입을 다물어버렸다. 회사에 관한 한 어떤 것도 얘기해줄 수 없다는 것이다. 친분이 돈독한 사장조차 회사얘기는 하지 말자고 한다. 정보가 흐르지 않고 고이고 있는 것이다. 고인 물이 썩기 쉽듯 정보도 햇볕 속에 드러나지 않으면 악취를 풍기기 마련이다. 정보는 어느 일방에게 독점이 돼서는 안된다. 그것이 언론이든, 국가든, 대기업이든 마찬가지다. 정보의 독점현상이 나타나면 그 사회는 이미 병든 사회가 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지금 이런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정보의 투명성을 내건 공정공시제도가 실시된 후 모습을 드러낸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송영규<성장기업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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